빚내서 부동산 투자하던 시대 끝난다
B1면| 기사입력 2017-10-25 03:08
[가계부채 대책 시장 영향은]
부동산 임대사업자 대출도 타깃, 갭투자는 더욱 기승 부릴 수도
"부동산 출입구 모두 막은 격… 시장 전반에 가격조정 불가피"
무주택자·청년은 대출한도 늘어
"은행 대출을 끼고 부동산을 사들여 임대 수익이나 시세 차익을 얻던 시대는 끝났다. 집값 상승세도 꺾일 것이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대한 다수 전문가의 평가다. 대책의 집중 타깃은 '다주택자'와 '부동산 임대사업자'이다. 살 집을 구하는 1주택자는 대출 규제 영향이 별로 없고, 일부 청년층은 대출 한도가 기존보다 늘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주택자는 대출 가능액이 크게 줄고, 특히 마이너스통장에 자동차 할부금까지 갚아오던 경우라면 아예 대출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정부는 주택뿐만 아니라 오피스텔 등 상업용 부동산을 포함한 '부동산 임대사업'에 대한 대출을 옥죄기로 했다. "8·2 대책 등 기존 부동산 규제에다 금리 인상, 입주 물량 급증 등 악재가 겹치고 있어 부동산발(發) 경기 침체가 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다주택자 대출 옥죄기… 청년·무주택자는 수혜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신(新)DTI(총부채상환비율)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DTI는 개인의 부채 상환능력을 소득과 비교해 대출 한도를 정하는 계산 비율이다. 현재 서울 지역 DTI는 40%인데, 이는 '대출자의 연간 대출 원금과 이자 지출액이 연봉의 40%를 넘게 빌릴 수 없다'는 의미다.
신DTI의 핵심은 추가로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을 받을 때 '이미 보유한 주담대의 원리금(원금과 이자) 상환액'까지 합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DTI는 새로 받는 주담대 원리금 상환액에 기존 주담대의 '이자 상환액'만 합산했다. 다주택자는 직격탄을 맞는다. 기존 주담대 보유자의 추가 주담대에는 '만기 15년' 제한도 가해진다.
국토교통부의 전국 주택소유자별 주택 거래량(5월 기준)을 보면, 2주택 이상 가진 사람의 거래는 전체 거래량의 약 14%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대출을 활용한 투자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집이 없던 사람이나, 기존 집을 팔고 새집으로 옮기는 사람 입장에선 큰 차이가 없다. 청년층은 수혜를 볼 수도 있다. 신DTI가 '장래 소득' 예상치까지 고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만 40세 미만 무주택 근로자에 대해서는 은행 재량으로 장래 예상소득을 10% 넘게 늘려줄 수 있도록 했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도 도입된다. 대출자의 주담대만이 아니라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 자동차할부금 등 모든 형태의 대출 원리금을 합산하는 방식이다. 정부는 일단 DSR을 금융회사 관리를 위한 지표로 활용할 방침이지만, 대출자에게도 영향을 줄 전망이다.
◇임대사업자 대출도 타깃… 갭투자 기승 가능성
부동산 임대사업자는 이번 대출 규제의 또 다른 타깃이다. 여기에는 주택은 물론 상가·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이 모두 포함된다.
우선 정부는 은행의 자영업 대출이 '부동산 임대업종'에 쏠리는 것을 완화하는 방안을 다음 달 중 마련키로 했다. 또 이자 비용 대비 임대소득인 RTI(임대업 이자상환 비율)를 일단 대출 심사의 참고지표로 활용하되, 향후 의무적으로 규제하는 방안도 검토한다고 밝혔다. 현재로서는 'RTI 150%'가 규제 적정선으로 거론된다. 대출 이자가 100만원이라면 최소한 150만원은 벌 수 있는 임대업자에게만 대출을 내주겠다는 의미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시장에서 값싼 이자를 활용해 무리하게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해오던 수요자가 모두 빠져나간다는 의미"라며 "시장 전반에 걸친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매매가격과 전세금의 차액(差額)만으로 아파트를 사들이는 ‘갭(gap)투자’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갭투자는 사실상 은행 대출 대신 세입자로부터 대출을 받는 형태여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실제로 올해 들어 집값이 오르는 가운데 정부가 대출에 규제를 가하자 월세 대신 전세를 택하는 집주인이 늘고 있다. 전체 주택 임대계약 중 전세계약 비중은 지난 3월 54.7%이던 것이 9월에는 59.1%까지 늘었다.
◇“세금과 대출로 출입구 동시 봉쇄, 급랭 가능성”
대책에 따른 충격의 강도(强度)에 대해서는 다양한 전망이 나왔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잇따른 부동산 규제 속에서도 최근 청약 결과를 보면 ‘입지 좋은 곳의 신축 아파트’에 대한 수요는 상당히 많다는 게 입증됐다”며 “이런 아파트는 대책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석 신한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장은 “가뜩이나 8·2 대책으로 거래량이 급감 중인 상황인 데다 대규모 입주 일정, 금리 인상 등이 맞물리면서 주택 시장이 상당 기간 안정기에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정부가 양도세 인상을 예고해놓은 상태에서 금리 인상·대출 규제를 동시에 들고나와 부동산 시장이 급랭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상진 기자 jh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