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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의 새로운 축, 동북아시아

경제·강의방

by 21세기 나의조국 2017. 9. 8.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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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질서의 새로운 축, 동북아시아

_ “한국혁명 _ 불평등 해소의 새로운 길 _ 박세길 지음” 중에서 일부 발췌 편집한 글           

중년학생 | 조회 115 |추천 1 |2017.09.07. 14:09 http://cafe.daum.net/agoodcapitalism/fy1i/89  

      


③ 세계 질서의 새로운 축, 동북아시아

 

낡은 질서를 붕괴시킬 균열은 모든 지점에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 근대 이후 구미 제국이 지배해 온 세계 질서 역시 예외가 아니다. 균열과 뒤이은 붕괴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창조적 파괴의 과정일 수 있다. 새로운 질서 형성을 선도할 대표적인 곳은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이다. 우리는 이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능동적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 동아시아 역습과 세계화 위기


2016년 발생한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 트럼프의 당선은 세계정세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영국은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거느린 대영제국의 주인공이었다. 미국은 20세기 한복판을 통과한 말 그대로 초강대국의 대명사 이었다. 세계의 부는 각 시기마다 이들 두 나라 속으로 빨려들어 갔다. 런던과 뉴욕이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을 이룬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은 공히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선도한 나라이다. 그런데 두 나라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세계화로부터 가장 먼저 발을 빼는 양상을 보였다. 영국의 브렉시트는 세계화의 일환으로 추진된 EU 즉 유럽 단일시장으로부터의 철수이다. 트럼프는 자유무역 반대 기조를 앞세워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과연 이 두 사건이 발생한 배경은 무엇이며 향후 세계정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본디 미국과 유럽 등 제국주의 세계 지배를 주도했던 나라들은 제조업 경쟁력에서도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들 나라들은 기술집약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대신 노동집약적인 저부가가치 산업은 가난한 개발도상국으로 이전시켰다. 이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제품은 비싸게 팔고 개발도상국 제품은 헐값에 구매하는 부등가 교환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미셀 초스토프스키의 <빈곤의 세계화>는 선진국이 개발도상국과의 거래에서 어느 정도 이익을 취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그에 따르면 선진국은 국제무역업자와 도소매자의 유통이윤, 운송, 저장 등 물류비용, 상품이 선진국을 통과할 때 매겨지는 관세와 판매될 때 부과되는 부가가치세 등을 통해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된 상품 가치의 대부분을 취득해 왔다. 개발도상국에서 생산되는 셔츠를 예로 들면 선진국들이 취득하는 몫은 상품 총가치의 97%에 이를 정도이다. 불과 2~3%만이 임금과 제조업자 이윤이라는 형태로 개발도상국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선진국들은 세계의 부를 자신들의 수중으로 집중시킴으로써 번영을 구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위기를 알리는 빨간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정점에 있던 미국에서 집중적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면서 무역적자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것이다.


미국 무역적자 확대의 일차적 요인은 같은 선진국인 일본의 파상공세 때문이었다. 1980년대 일본은 막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미국 시장을 거침없이 잠식했다. 여기에 한국, 타이완, 홍콩 등 아시아 호랑이들이 가세했다. 동아시아의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주역은 아직 대기 상태에 있었다. 중국은 이제 막 개혁개방의 닻을 올린 상태에서 본 모습을 드러내고 있지 않았다.


미국은 사태 수습을 위해 자신이 지니고 있는 막강한 권력을 동원했다. 미국은 1985년 플라자합의를 통해 달러 가치를 강제로 하락시킴으로써 수출 경쟁력 회복을 시도했다. 더불어 한국 등을 대상으로 대미 수출 제품에 보복무역 관세를 부가하는 등 보호무역주의 장벽을 높이는 목적으로 1992년 캐나다와 멕시코가 함께 참여하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했다.


세계 시장 질서는 혼란 속으로 빠져들었다. 강제적인 환율 조정, 보호 무역주의 장벽과 수입 개방 확대 요구가 엇갈리는 불공정 무역의 강화, NAFTA와 같은 지역 블록의 확대로 인해 세계 시장의 균열 조짐 등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자칫 세계 시장이 붕괴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뒤이어 반작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세계 시장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각국 시장을 공평하게 개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논의 흐름이 형성되었다. 논의 흐름을 지배한 좌표는 ‘세계화’로 표현되었다. 미국 역시 세계화를 적극 추진하는 것으로 방침을 정했다.


두 가지 요소가 작용한 결과였다. 미국은 제조업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금융 분야에서의 이익 확대를 통해 충분히 보충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세계화를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요리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또 하나는 소련 동구 사회주의권 붕괴 사태에 대한 대응의 필요성이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들 나라를 서둘러 자본주의 세계 시장으로 편입시키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그러자면 그간의 혼란을 종식하고 가능한 공정한 룰이 지배하는 세계 시장을 만들 필요가 있었다.


결국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은 종료되었다. 1995년 세계화를 관장할 국제기구로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했다. 세계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막을 올리면서 방향을 달리하는 두 개의 흐름이 세계 시장을 지배했다.


표면상 지배적 흐름은 미국 주도의 신자유주의 세계화였다. 미국계 중심의 금융자본이 전 세계로 퍼져나가 부를 빨아올려 다시금 본국에 쏟아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미국의 종합주가지수는 1990년대 전 기간에 걸쳐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덕분에 중산층의 호주머니가 두둑이 채워질 수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세계화’라고 부를 만한 흐름이 강력히 형성 되었다. 동아시아산 제품이 미국을 포함해 전 세계 시장을 점령한 것이다. 그 중심에 불시에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이 자리 잡고 있었다. 동아시아 세계화의 위력은 외환보유고에서 뚜렷이 입증된다.


2016년 각국 외환보유고 순위를 살펴보면 1위는 3조 3천억 달러 수준인 중국이고, 2위는 약 1조 2,600억 달러인 일본이다. 5위는 4,600억 달러 수준인 타이완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은 약 3,700억 달러로 7위를 차지하고 있다. 도시 국가인 홍콩과 싱가포르마저도 10위 안에 랭크되어 있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외환보유고는 3위인 스위스처럼 각국의 예금을 받아 이루어진 것도 아니고 4,6위인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처럼 원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 판매로 얻은 것도 아니었다. 동아시아 나라들의 외환보유고는 대부분 제조업 기반의 제품 수출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이 제조업에서 이룩한 강력한 경쟁력의 원천은 뛰어난 기술력이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산업화 초기에는 불가피하게 저임금 노동력을 바탕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했다. 국제분업 질서에서 하위 체계에 자리 잡았던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구축했고 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이 지점에서 일본이 가장 먼저 성공했고, 한국이 뒤를 이었으며, 신흥 경제대국 중국이 가세하면서 그 영역을 비약적으로 확대시켜 나갔다.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은 국제분업 질서의 하위 체계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월적 위치에서 구미 열강들의 시장을 거침없이 점령해 들어갔던 것이다.


과연 동아시아의 저력은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일까? 이는 긴 역사적 안목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답을 찾기 어려운 문제이다. 근대 이후 유럽의 지식인들은 좌우를 막론하고 동아시아를 변방에 위치한 후진 지역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동아시아는 변방은커녕 근대 이전 세계 문명의 중심지로서 찬란한 역사를 이어온 곳이었다. 폴 케네디조차도 <강대국의 흥망>에서 “근대 이전의 문명 가운데 중국 문명만큼 앞서고 자부심에 찬 문명은 일찍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과학기술 분야에서는 대부분의 역사 기간 동안 동아시아가 유럽을 압도했다. 로버트 로이드 조지의 <세계는 어디로 가는가.>는 근대 이전 과학기술의 발전과 발명의 상당 부분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에서 이루어졌음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 결과가 유럽에 소개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지만 하루아침에 사라지지도 않는다. 1842년 아편전쟁 이후부터 1949년 현대 중국이 건설되기까지 동아시아는 굴욕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중국은 서구 열강들의 간섭과 지배로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조선과 타이완은 수십 년에 걸쳐 서구식 근대화를 거친 일본의 식민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동아시아 고유의 지적, 문화적 유산은 사라지지 않았다.


동아시아는 다시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역사를 통해 축적해 온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동아시아의 역습’이 본격화된 것이다. 과연 구미 열강 중심의 제국주의 지배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는 급속히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동안 누차 확인한 것처럼 신자유주의는 애초부터 지속가능성이 없는 시스템이었다. 몰락은 필연적 결과였다. 그러자 신자유주의의 신기루에 의해 가려져 있던 참상들이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에 대한 의존도가 컸던 미국과 영국은 신자유주의 몰락으로 더 이상 중산층의 호주머니를 채워줄 수 없었다. 반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대했던 제조업 기반은 동아시아 제품의 공습으로 크게 망가져 있었다. 미국의 대표적 공업 지대였던 오대호 일대는 공장들이 연이어 문을 닫으면서 ‘러스트 지역’으로 전락했다. 그 최종 결과는 선진국의 상징이었던 두터운 중산층의 급속한 붕괴였다.


제국주의 지배 체제의 근간은 압도적인 생산력 우위를 바탕으로 전 세계에서 부를 빨아들여 국내에 쏟아냄으로써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시킨 것이었다. 한 시대 제국주의 열강을 대표했던 영국과 미국에서 그 근간이 무너진 것이다. 신자유주의 자체 모순과 동아시아의 역습이 결합되어 빚어낸 결과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미국과 영국의 여론 지형이 급격히 바뀌기 시작했다. 중산층들에서 떨어져 나와 몰락했거나 몰락 위기에 처한 노동자들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 형성되었다. 바로 이 반발 여론이 브렉시트와 트럼프 당선이라는 세기의 이변을 낳은 요소였다. 신자유주의를 앞세우고 세계화를 선도했던 미국과 영국이 세계화 흐름에서 가장 먼저 발을 뺀 배경이기도 하다.


그동안 진행된 세계화는 평가를 떠나 세계 질서에 일정한 규칙을 부가해 왔었다. 이를 바탕으로 불확실성을 최소화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으로 그 규칙들이 크게 흔들리고 있다. 적과 우방도 가리지 않을 방침이다. 시장 논리를 뛰어넘어 글로벌 기업들에게 미국 내 투자를 겁박하고 있으며 각종 무역 분쟁을 예고하고 있다. 트럼프는 신설된 백악관 국가무역위원회와 미 무역대표부 수장에 반중反中 인사를 지명하면서 중국과의 무역전쟁에 돌입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환율·무역정책에서 중국과 사사건건 충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시대 미국의 행보는 세계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가능성이 크다. 세계화는 암초에 부딪쳤다.


한국은 세계화 시대를 관통한 두 가지 흐름이 극단적으로 교차한 나라이다. 한국은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으며 동아시아 나라들 중에서는 예외적으로 신자유주의 세계화 흐름에 깊숙이 편입되었다. 중국과 일본은 그로부터 상당히 벗어나 있다. 그러면서도 동아시아 세계화 물결을 타고 일약 8대 무역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 그 과정에서 수출 의존도 또한 80% 가까이 크게 높아졌다.


이 모든 것은 한국이야말로 그 어느 나라보다 세계화 동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나라임을 말해 준다. 그만큼 세계화 위기를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지 가장 깊이 고민해야 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세계화가 안정적으로 진행되던 시절로 되돌아갈 확률은 매우 낮다는 사실이다.


 

 

“한국혁명 _ 불평등 해소의 새로운 길 _ 박세길 지음” 중에서 일부 발췌 편집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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