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나 비싼 삼원가든이 성공한 비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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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점 9 / 누적 292 | 조회수 747 | 작성일 2017-03-14 |
삼원가든, 한국 고기집 역사를 쓰다 1981년 11월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에 4000㎡(약 1200평) 규모의 고기집이 생겼다. 고즈넉한 한옥에 설치된 수백 개의 장식용 외등과 내등, 다른 식당보다 배나 비싼 갈비 가격. ‘삼원가든’의 등장은 당시 언론이 앞 다퉈 보도할 정도로 화제가 됐던 일이었다. 일각에선 ‘사치를 부추긴다’며 삼원가든을 맹렬히 비판했지만 이후 고기 맛 좀 안다는 전국의 미식가들이 삼원가든으로 모여 들며 전국에 ‘~가든’ 상호가 유행처럼 번지게 됐다. 남북 고위급회담 오찬(1990년), 이산가족 상봉 환영 만찬(2000년) 등도 모두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처럼 삼원가든이 가든 고기집의 원조로 굳건히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데에는 창업주 박수남 회장의 사업가 기질이 큰 몫을 했다. ‘제대로 된 고기를 팔면 사람들이 몰릴 것이다’라는 생각 하나로 박 회장은 부자 동네에 고기집을 열 것을 고집했다. 가진 돈을 모두 털고 여기에 사채까지 더해 삼원가든을 차렸다. 갈비 한 대 가격은 1800원. 당시 자장면 한 그릇이 200원~300원할 때라 주변에선 박 회장을 두고 제 정신이 아니라고 수근 거렸다.
원칙 안 지키는 직원은 OUT, 박 회장의 철저한 원칙주의 경영 하지만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삼원가든은 점차 매출이 늘어 강남의 상징이 됐고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 자리를 지켜왔다. 박 회장은 삼원가든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로 ‘철처한 원칙주의’를 꼽았다. 실제 그는 ‘정직·성실·맛’, 이 세 가지를 식당 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절대 이를 어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직원 중 누구도 이 원칙 중 하나라도 어기면 그날로 파면했다. 외식업은 사람을 관리하는 장사이기 때문에 엄하게 하지 않으면 가게 전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그는 맛에 대한 고집도 대단했다. 수백 번의 테스트를 거쳐 가장 반응이 좋았던 맛을 기억해 내 매번 금은방에서 쓰는 저울로 계량한 뒤 음식을 냈다. 또한 전국 8도 모든 사람의 입맛을 맞추려고 하지 않았다. 박 회장이 판단하기에 최적의 맛이라 판단되면 이는 끝까지 밀어붙였다. 모든 손님들의 입맛을 맞추다 자칫 가게의 정체성이 사라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그는 최상의 맛을 보장하기 위해 직접 전국의 정육점을 돌아다녔고 당시 보기 힘들었던 냉장탑차까지 구매해 고기 품질에 신경 썼다. 지독할 정도로 원칙에 충실했던 것이 삼원가든의 비법이었다.
“정직한 직원과는 평생 함께 해야” 현재 박 회장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지만 그의 아들 박영식 부사장이 그 뒤를 이어 새로운 도전에 앞장서고 있다. 삼원가든을 뿌리로 한 이탈리안 요리(블루밍가든, 봉고, 부띠끄블루밍), 일식 요리(퓨어멜랑쥬), 수제버거(패티패티) 등 새로운 외식브랜드를 만들어내며 삼원가든의 외연을 넓혀 나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박 회장은 지금도 아들에게 “맛과 품질에 정직함을 추구하는 직원은 평생 함께 가야 한다”는 가치를 강조하며 40년 삼원가든 정신을 이어나가는데 주력하고 있다.
* 보편적 원칙에 집착하면 된다. 그곳에다 전략적이면 더할나위 없다. “맛과 품질에 정직함을 추구하는 직원은 “꿈이 있고 측은지심에 정직함을 추구하는 직원은평생 함께 가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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