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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쫒겨나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 그 다음 [성군]이 나와 나라를 부강케 하고 ......>>>.

영어회화

by 21세기 나의조국 2016. 11. 18.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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쫒겨나는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 그 다음 [성군]이 나와 나라를 부강케 하고 .......

꿈을 파는 상인|조회 367|추천 3|2016.11.18. 04:25http://cafe.daum.net/urifuture/XlVL/4140

 

 


 


예전에 한 번 본 기억에 현실이 너무나 예언과 맞아 돌아 가는것 같아서

인터넷을 뒤지다 발견 되어 스크랩 합니다.


재미로 한 번들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이글 뒤로도 엄청 나게 긴 글인데 앞 부분만 스크랩 합니다.

너무나 길고 어려워 꿈파상은 이해 불가 였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찾아서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스크랩]


정도전과 지창룡의 [예언분석], [여군주]가 쫓겨나고 [성군]과 [영웅들이 출세]한다.


아일랜드 2015.10.04 19:58

 


 

풍수 관상 대가 국사(國師) 지창룡 대사(大師) 서설



왕건이 세운 고려왕조의 터를 잡는데는 국사(國師) 도참이 있었고,


이성계가 세운 조선왕조의


터를 잡는데는 대사(大師) 박무학(朴無學)과 정도전이 있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터를 잡고 세우는데는 누가 있었을까.


의문을 풀기 위하여 을지로 6가 동대문지하철 역에서 내려


청오(靑奧) 지창룡(池昌龍) 옹(翁)을 찾아갔다.


77세의 희수(喜壽)를 맞는 노옹(老翁)이다.


작은 체구의 노안(老顔)은 홍조(紅潮)를 띄운


항상 싱글벙글 미소를 짓은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였다.

천지인(天地人)에 대한 해박하고 심오한 천리(天理)를


쉴새없이 피력하는 옹의 얼굴에는 아직도 선명한


쌍가플의 눈망울이 천진(天眞)스런 어린 아이처럼 깜박이고 있었다.

인생의 예지(叡智)를 발(發)하는 신비의 눈이었다.

옹이 일을 보는 사무실 청오제는 오후 네 시 까지만 문을 연다.


그 후의 옹은 술집에 가 있기가 십중팔구(十中八九)이다.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

한 번 시작한 술자리는 밤 열두시 전에


끝나는 일이 거의 없고, 새벽 두서너 시까지 연장되는 일이 허다하다.


"천리란 무상치 않아. 거기에 무슨 연유가 있는지 늘 생각하지."


지그시 눈을 감고 옹이 한 말이다.

그러면서 대통령 이승만과


대통령 박정희의 부름을 받아 도와주고 '국사(國師)'라는


칭호를 받은 옹이지만 그의 손으로 두 대통령을 땅에 묻었다


한 대통령을 묻고 나면 또 다른 대통령이 옹과 인연이 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의 시신을 묻고 얼마 후에


옹은 다음과 같은 비기(秘記)를 써서 전두환 보안사령관에게 보냈다.


"귀의삼보(歸依三寶)하니


삼이후예(三耳後裔)라.


입왕이십환(入王二十煥)이니,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라."


비기란 비밀스런 기록이라 보통 사람이 보면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위에 적은 귀의삼보 삼이후예 입왕이십환이란 무엇인가.


귀의삼보란 '불교'에 귀의한다는 뜻이다.


삼이후예란 좀 어려운 해석인데


전(全) 씨의 시조가 전섭(全攝)이라 섭(攝) 자에 있는 귀 이(耳) 자 세 개를 뜻하며,


입왕이십환이란 전두환의 한자를 파자(破字)한 것이다.


전(全) 자는 입(入) 자와 왕(王) 자로, 두(斗) 자는


이(二) 자와 십(十)으로 파자하고, 환(煥) 자는 그대로 표기했다.


해석하면 '중이 될 팔자'를 타고난


전섭의 후예인 전두환이 왕이 되어 치국평천하?한다는 뜻이다.


전두환은 물론 옹의 비기대로 후에 대통령도 되고 불교와 깊은 인연을 맺지만,


10.26 직후 보안사령관 때에 이 비기를 받아든 전두환은 손을 달달 떨었다고 한다.

아마도 자신의 운명을 알고 있는 어떤 사람이 있다는


직감이 엄습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노태우도 김영삼도 옹과 인연이 깊다.


물론 다 대통령이 된 사람들이다.

이번에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과는 직접적인 관계는 없으나,

이미 3년 전에 어떤 작가를 통하여 발표한 '풍수'라는 소설에


호남 인사의 대권 승리를 예언한 바 있고,


지난 번 선거 기간 중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가신(家臣)으로 불리워 지는 한화갑의원 등이


찾아와 김대중후보의 당낙에 대한 운수를 물어 보기도 했고,


최형우 이회창 이인제 캠프 등에서도 몰려와 '어찌 하오리까'를 연신 조아렸다.


물론 옹은 세 후보에 대한 운세(運勢)와 방책(方策)을 모두 말하여 주었고,

결국 그 방책을 실현하지 못한 사람은 낙방(落榜)을 하였다고 최근에 나온 저서(著書)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에서 공언하고 있다.


이쯤 되면 지창룡 옹은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들을 도운 국사(國師)임과

동시에 천리(天理)를 꿰뚫는 대사(大師)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나는 고려 왕조에는 도참 국사가 있고, 조선왕조에는 무학 대사가 있으며,


대한민국에는 청오 지창룡 대사가 있다는 말을 한다.


그러면 청오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유명한 국사이며 대사가 되었나를 더듬어 보자.


청오와 풍수의 만남은 운명적이었다.


옹의 조부는 4대 독자였다.


대(代)가 끊어질 판이었다.


증조부가 조부에게 이르기를 '이 자리는 순전히 대를 잇기 위하여 택한 자리다.


내가 죽으면 이 자리에 묻고 네가 아들 넷을 나으면 이장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뜬다.

증조부의 말대로 조부는 아들 넷을 나았으나, 증조부의 말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


그 결과 4형제 중에 셋이 일찍 죽었고, 창룡의 아버지도 창룡이 두 살 때에 세상을 떠났다.

가족의 수난은 끝이 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네 아들들의 자손이 많았으나 이상하게 아이들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 때 어린 창룡이 증조부의 유언을 기억해 내어 '소년 참상'만은


면할 자리로 증조부의 묘를 이장했다. 신기했다.


그 후로 자손들의 소년 참상이 멎었다.

이리하여 열 살 전에 천자문과 격몽요결, 사서까지 읽었던


창룡은 주역(周易)에 관심을 갖는다.


나이가 들어서 일본에 건너갔다.

공학을 공부하고, 동경의 한 공장에서 용광로 책임자가 되어 일하고 있을 때다.


하루는 천황릉(天皇陵)에 놀러갔다.


거기에 '망국의 한을 패철로 다스리고 있는 한 나그네'라는 도인(道人)을 만난다.

조선인이었다.

도인은 천황릉 앞에서 패철을 읽다가,

'일본은 곧 망하니 고향에 가라'는 말을 한다.


창룡은 무엇인가 느낌이 와서 귀국한다.

어머니에게 도인의 말을 전하고 가야산에 입산하여 도를 닦는다.


어느 날 눈을 떴다. 모든 것이 보였다.

사람들의 운명과 산세와 지리,

그리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보는 영혼의 눈을 뜬 것이다.

고향에 돌아와 여주 여인과 결혼하고 바로 경북 봉화에 가서 더욱 정진(精進)한다.


거기에서 영롱한 철인(哲人)의 세계가 개안(開眼)한다.


하루는 하숙집(?) 딸이 간질병을 일으켰다.

보아허니 선조의 무덤 탓이었고, 주인에게 말하여 이장한 후에


그 집 딸의 간질병은 없어졌다. 소문이 파다하게 났다.


봉화에 젊은 도인이 나타났다는 소문이었다.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많은 문제를 가지고 창룡을 찾아와 상담해 주었다.


1950년 새해 새아침이었다.

창룡은 해마다 의식처럼 주역의 괘를 뽑아 그 해의 국운(國運)을 가름해 보았다.


큰일이었다. 그해 음력 5월에 공산당의 남침이 있을 수가 나왔다.


주인에게 슬며시 이 사실을 일러주고 고향으로 돌아와


어머니에게 말씀드린 후 피난 차 밀양으로 갔다.


그의 예측과 예언대로 6월 25일 새벽에 난리가 난 것을 라디오를 통하여 알았다.


전쟁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았다. 9.28 수복 후

밀양에서 고향에 와 여주에 가서 농사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난리는 3년만에 휴전 협정으로 끝이 났다.


창룡은 그 때에 서울로 왔다.


하루는 집 앞에 검은 뾼차가 멎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나타나 이승만이 만나자고 한다는 말을 전달했다.


젊은 창룡은 소스라쳐 놀랐다.


왜 대통령이 자기를 만나자고 할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아침에 이승만앞에 창룡이 갔다.


"젊은이가 해방이 될 것과 전쟁이 날 것을 알고, 산을 잘 본다고?

우리나라는 난리통에 수 많은 청장년들이 불귀의 객이 되었다.

그들의 영혼을 위로할 안식처를 만들려고 한다.


어느 자리가 좋은가 점지(點指)해 보라."


지창룡은 미리 예정되어 있던 후보지인 덕소, 소사, 팔당을 버리고

한강대교 건너 동작동을 점지했다.

오늘의 국립묘지이다.


이 일로 지창룡은 국사(國事) 지관(地官)이 되어 일략 명성을 얻는다.


4. 19혁명으로 이승만 정권이 망하고, 장면 정권이 들어섰다.

다음 해 새해 초에 사복 입은 짝달막한 사람과 중위 계급장을


단 군인을 비롯하여 몇 명이 찾아와 신수(身數)를 보아달라고 했다.


첫눈에 영험이 있는 한줄기 서광(瑞光)이 청오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4월에 무슨 일을 하실려고 하는데 4월은 안됩니다. 5월에 하십시오.


그래야 뜻한 바가 이루어 집니다."


그래서 5월 16일에 군사혁명이 났다.


사복을 입었던 체구가 작은 사람은 육군 소장 박정희였고,

중령 계급장을 단 사람은 김종필이었다.


옹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정치계 뿐만이 아니었다.


경제계 이병철을 비롯하여 수 많은 각계 최고위 명사들의 이름과 일화가 줄줄이 나왔다.

한 때 옹의 생일에는 길옥윤이 와서 새소폰을 불고


박춘석이 와서 노래를 불렀으며, 내노라 하는 명사들이 일만 있으면 찾아와 상담했다.



-남한에는 남한대로, 북한에는 북한대로 6.25 전란으로 인한 국립묘지가 있다.


통일이 되면 이 적대적(敵對的)인 두 국립묘지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납골당을 만들어야 해요.


그곳에 같이 모셔야지요."



지창용 [池昌龍, 1922~1999]

한국의 풍수지리가로 정부중앙청사,


동작동 국립묘지, 대전 국립묘지 등의 위치에 대한 자문을 담당했다.


1945년 일본 정치대학을 졸업하였고 1980년 UNION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풍수지리와 역리철학으로 인정받았으며 이승만 전 대통령,


박정희 전 대통령,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 등


수많은 정·재계 인사들의 특별 자문 역할을 맡았다.


또 정부중앙청사, 동작동국립묘지, 대전 국립묘지 등의


위치에 대한 자문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김영상 대통령 집권시절에


지창룡은 이런 예언을 하였다고한다.



- 다음 대에는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김대중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 한 사람의 가장 가련하고 불쌍한

대통령(노무현 대통령)이 나올 것이며,



- 한 사람의 쫓겨나는 대통령(박근혜)이 나올것이며,



- 그 다음 [성군]이 나와 나라를 부강케 하고

나라를 우뚝 서게 할 것이다.




지창룡은 여자 대통령인 박근혜가

쫓겨날 것이라고 이야기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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