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주도 보호무역주의, 중장기적 트렌드
미국 경쟁우위 산업 위주 자유무역 추구
파리협정 등 온난환 방지 신기후체제에 제동
【세종=뉴시스】이예슬 기자 = "저가 수입품이 미국인들의 일자리를 훔쳐갔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협정", "중국과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를 세계무역기구(WTO)가 문제삼을 경우 WTO 탈퇴도 불사할 것"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대선 승리에 큰 역할을 한 발언들이다. 선거운동 기간 지속된 막말과 성추문에도 트럼프가 최후의 승자가 된 것은 미국 서민들에게 그만큼 먹고 사는 문제가 급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남편, 빌 클린턴이 1992년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백악관 입성에 성공한 것처럼 트럼프도 일자리를 내세워 승리했고, 이같은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예상된다.
자유무역주의의 수호자였던 미국이 트럼프의 집권으로 보호무역주의의 선두주자가 되면서 글로벌 무역 트렌드도 송두리째 바뀔 전망이다.
◇극단적 보호무역주의 현실화 가능성 높아
트럼프는 선거 과정 내내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미국의 제품이 수입품으로 대체되면서 미국의 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었고, 생산공장이 신흥국으로 이전되는 과정에서 미국민들의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20세기 후반 세계 각국이 각종 무역장벽을 없애고 다수 지역에서 지역무역협정이 이뤄지면서 빠르게 진전돼 왔던 세계화가 주춤하던 시점에서 트럼프가 등장했다. 유권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일자리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자국 산업을 보호할 것이라는 그의 전략은 유효했다.
LG경제연구원은 '반세계화 시대의 세계화'라는 보고서를 통해 "선진국의 소득분배 악화는 구조적 측면이 강해 기존 질서와 기득권층에 대한 분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연구원은 "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반세계화 성향의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고 있고, 미국에서도 주요 정당의 정강에 이미 보호무역주의가 반영돼 있는 것은 현재의 움직임이 일시적이기보다는 중장기적 트렌드일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트럼프가 공언한 대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고 45%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조치가 취해질 경우 미·중 통상마찰은 저성장과 교역 감소로 인해 위축된 글로벌 경제를 침체 상황에 빠뜨릴 가능성이 높다.
◇미국 주도 첨단산업엔 자유무역 기치 유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전통적으로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과 자유무역을 통해 몸집을 키워 온 기업들의 목소리를 무시할 순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는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다국적 기업, 금융기관 등은 자유무역으로 이익을 본 주체"라며 "기업가인 트럼프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보호무역주의 기조는 지속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경쟁우위 첨단산업을 중심으로 새로운 영역의 통상규범 주도를 이끌어 갈 가능성이 높다. 저가 수출이 어렵고 미국이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분야에서 글로벌 시장 확대를 추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연구위원은 "미국 기업들은 4차산업혁명과 IT, 디지털 무역 영역 등에서 해외 시장의 자유화에 대한 요구를 강화하고 있다"며 "특히 디지털 전송 서비스 산업이 미국의 수출에 기여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디지털 무역과 관련된 규범의 중요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녹색산업·신기후체제 퇴보할 듯
오바마 행정부가 추진해 온 기후변화 대응 정책과 녹색산업 육성책 등은 후퇴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는 화석연료 생산 확대를 통한 에너지 독립을 주장해 왔다. 미국 내 원유 생산량을 늘리고 수입을 대폭 줄이겠다는 것이다.
파리기후변화협약 등 신기후체제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드러낸 바 있다. 그는 "기후변화는 날조된 것"이라며 "파리협정은 미국의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외국이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양에 간섭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형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계 최대 경제대국이자 세계 2번째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이 신기후체제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석탄 등 화석연료에 기반해 산업화를 이루고 있는 개발도상국의 참여 의지를 위축시킬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