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과정서 기존 정치인들이 하지 못했던 수위 높은 발언 쏟아내
각종 논란에도 불구 국민 정서 대변하며 막판 뒤집기에 성공
스타성으로 클린턴 정치 압도한 '정치 기업인'이라는 평가도 나와
즉흥적이고 허술한 이미지완 달리 경제정책에서는 일관성 보여
반이민·반자유주의 앞세워 '위대한 미국' 재건 작업 추진
첫 국빈 방문자로 메이 영국 총리 꼽으며 '美-英 파트너' 체제 구축
금융시장도 트럼프의 재정투자·감세 정책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서울=뉴시스】이근홍 기자 = '이단아'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향후 그가 어떤 식으로 미국과 세계를 이끌어 갈지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당선 5일째로 접어들면서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지면 여전히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한편으론 기존의 반이민, 오바마 케어(건강보험) 폐기등의 정책을 완화할 조짐을 보이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선 중국의 환율조작국 지정 등 보호무역주의는 그대로 가져갈 것처럼 비쳐지는 등 어느 쪽으로 튈지 오리무중이다.
사실 트럼프는 '두 얼굴의 면모'를 보였다. 대선 과정에서 각종 막말과 기행 등으로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는 어디로 튈지 모를 '럭비공' 같은 인물로 알려졌지만, 대중의 심리를 정확히 파악하고 선거를 승리로 이끈 '고도의 전략가'이기도 하다.
때문에 내년 새 정부 출범 후 트럼프가 둘 중 어떤 모습을 표출하느냐에 따라 미국의 외교·경제 정책 등이 달라질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가 트럼프의 두 얼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이유다.
트럼프의 진면목을 가늠해 보기 위해 대선때의 언행부터 다시 한번 찬찬히 살펴보자.
◇대통령 후보 맞아?…금기 깨는 언행 서슴지 않는 '럭비공'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독주 체제였던 대선 초반에서 트럼프가 대중들의 시선을 끌기 시작한 건 사실상 금기를 깨는 파격적인 언행을 하면서부터다.
기존 정치인들이 하지 못했던 성·인종차별, 외교·국방 정책 관련 발언들을 쏟아내며 그는 매스컴의 중심에 섰다.
트럼프의 대표적인 발언으로는 "한국은 미쳤다. 한국은 주한미군을 위해 아무것도 부담하지 않는다", "멕시코 이민자들은 성폭행범이고 마약, 범죄를 가져오고 있다. 남쪽 국경에 거대한 방벽을 쌓겠다", "(TV토론 여성앵커)메긴 켈리의 눈에서 피가 나는 걸 봤다. 아마 신체 다른 어디에서도 났을 것이다", "이반카가 내 딸이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와 데이트했을 것이다" 등이 있다.
트럼프가 중도 하차하게 될 것이란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발쳤지만 미국 국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기존 정치권에 불신을 품고 있던 이들이 트럼프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고 지난 6월말 35%에 그쳤던 그의 대선 후보 지지도는 8월말 45%까지 치솟았다.
선거 당일에는 과반을 훌쩍 넘긴 290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228명의 클린턴을 압도했다.
불가능에 가까워 보였던 대선을 승리로 이끌자 트럼프에 대한 평가마저 달라지고 있다.
미국 CNN방송은 "유명 방송인이자 사업가인 트럼프의 스타성이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정치력을 압도했다"며 "언론 노출에 익숙한 트럼프는 어떻게 하면 대중의 주목을 받는지 잘 알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트럼프는 기성 정치로부터 소외됐다고 느끼는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고 오롯이 이들을 대변했다"며 "기득권에 대한 반감이 심한 유권자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시한 트럼프에게 표를 줬다"고 덧붙였다.
마커스 놀랜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수석부소장은 "미국 중장년 세대들은 외모와 언어가 다른 외국인 이웃들이 점점 늘어나는데 대한 우려와 불만이 컸다"며 "트럼프는 '정치 기업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러한 대중들의 심리를 잘 파악했고 소위 막말 파문에도 불구하고 백인 남성뿐 아니라 여성, 히스패닉(중남미계의 미국 이주민)의 지지까지 끌어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의 '전략가적 면모', 경제 정책에서도 발휘될까?
중구난방식으로 자극적인 얘기들을 떠벌린 것 같지만 사실 트럼프의 경제 정책은 명확하다.
경제 성장의 원동력으로 대규모 인프라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추진하고, 그동안 아웃소싱과 불법체류자 유입 등으로 잃어버린 일자리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반이민·반자유주의 정책을 앞세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게 핵심이다.
트럼프는 이를 통해 향후 10년간 2500만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연평균 3.5% 성장 촉진·잠재성장률 4%에 도달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첫 국빈 방문 요청자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를 꼽은 것도 반이민·반자유주의 정책과 결을 같이 한다.
영국 데일리메일에 따르면 트럼프는 메이 총리와의 전화 통화에서 "영국은 미국에 매우 특별한 국가이며 메이가 워싱턴에 와준다면 가장 큰 영광이 될 것"이라면서 "로널드 레이건-마가릿 대처 시대 연대를 되살리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은 이민자와의 갈등, 경제 침체, 일자리 부족, 중산층 붕괴 등의 문제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했다. 브렉시트로 가는 과정이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
영국의 브렉시트 결정 당시 "영국은 스스로 나라를 되찾았으며 그것은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한 바 있는 트럼프는 영국을 첫 초청국 지위에 올림으로써 세계적인 화두로 떠오른 신(新)고립주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겠다는 방침이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트럼프가 내세운 감세, 공급 중심의 경제 정책은 향후 미국경제와 세계경제를 부양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며 "미국이 고립주의적인 정책을 편다면 교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 큰 타격이 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트럼프가 말한 인프라 투자에 시멘트나 굴착기 뿐만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각종 IT 장비들도 포함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관련 기술력이 높은)아시아 국가에도 긍정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상과 달리 금융시장에서도 트럼프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당초 월가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뉴욕증시가 폭락하는 등 '트럼프 쇼크'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우였다. 트럼프 당선이 확정된 이후 뉴욕증시는 2거래일 연속 급등했다.
지난 9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우량주 중심의 다우존스 30 산업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256.95포인트(1.40%) 상승한 1만8589.69로 마감했다. 대형주 중심의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23.70포인트(1.11%) 오른 2163.26, 나스닥지수는 57.58포인트(1.11%) 상승한 5251.07에 각각 장을 마쳤다.
10일에도 다우지수는 전장보다 218.19포인트(1.17%) 상승하면서 사상 최고치인 1만8807.88에 거래를 마쳤다. S&P 500 지수는 전장보다 4.22포인트(0.20%) 오른 2167.48, 나스닥 지수는 42.27포인트(0.80%) 낮은 5208.80에 장을 마감했다.
트럼프의 당선 이후 안전자산 선호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뉴욕상품거래소에서 12월 물 금 가격은 전날보다 7.10달러(0.6%) 내린 온스당 1,266.40달러로 마감됐다.
투자자들은 트럼프의 재정투자, 감세 정책 등이 미국의 투자를 활성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미국의 거시전망 분석기관 매크로이코노믹 어드바이저스의 벤 허존 이코노미스트는 "공화당이 백악관은 물론 상원과 하원까지 모두 장악함에 따라 트럼프의 감세안과 재정투자 확대 정책들이 의회를 통과할 것으로 보인다"며 "트럼프의 경제정책들이 의회의 지원 아래 효율적으로 추진된다면 단기적 성장과 인플레이션, 이자율 및 달러가치 상승 등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