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공정 행태 로이엔터 공정위 신고..야당 등 함께 '문화예술용역거래 공정화' 법안도 추진
시사저널 고재석 기자 입력 2016.09.23. 14:55 수정 2016.09.23. 15:15
문화를 사고파는 게 창조경제로 불리는 시대다. 하지만 수면 아래서는 ‘갑질’의 그림자가 곳곳에 아른거린다. 산발적으로 터져 나오던 예술가들의 고발은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에 ‘을’이 뭉쳤다.
한 방송음악 외주제작사로부터 피해를 입은 ‘을’이 먼저 나섰다. 또 ‘을’과 시민단체, 야당 정치인들은 문화예술용역거래 공정화 법안 발의도 함께 준비하기로 했다. 이들은 방송문화계 제작관행과 해외저작권 유통체계 등 문화예술계 불공정관행 개선운동도 펼쳐갈 계획이다.
23일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유은혜, 조승래 의원실과 예술인소셜유니온, 로이대응모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전국을살리기 국민운동본부, 문화연대 등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예술계 불공정관행 개선운동의 일환으로 방송불공정기업 로이엔터테인먼트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겠다”고 밝혔다.
로이엔터테인먼트(이하 로이)는 ‘응답하라 1994, 1997’, ‘삼시세끼’, ‘프로듀사’ 등 예능‧드라마 방송음악을 제작한 방송음악 외주제작사다. 로이 피해자들과 손아람 소설가 등이 활동하는 로이대응모임에 따르면 “‘로이’는 작곡가들에게 월 평균 80만원의 임금을 주며 매월 20곡 가량을 작곡하게 했고, 저작권을 포괄적으로 양도하는 불공정한 계약서 체결을 강요하면서 작곡가들의 크레딧을 명기하지 않는 등 다양한 불공정관행을 자행해왔다"는 것이다.
로이를 둘러싼 논란은 지난해부터 이어졌다. 앞서 로이대응모임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은 로이를 상대로 3월 서울남부지검에 사문서위조, 지적재산권 침해 등 6가지 혐의로 형사고소장을 제출했다.
당시 기자 역시 관련 내용을 상세히 보도한 바 있다.(관련기사: 로이엔터, 월 80만원 주고 저작권 영구 독점) 로이대응모임이 이때 공개한 ‘저작물 제작 계약서’를 보면 불공정 거래의 혐의가 짙게 배어있다.
당시 보도내용 중 일부를 요약하면 계약서 중 갑의 권리와 의무를 명시한 4조 1항은 “갑은 본 계약과 관련하여 저작물과 음원에 대한 독점적인 지위를 가지며, 저작물에 대한 독점적 관리의 지위를 가진다”고 적혀있다. 이어 “저작물을 통해 제작된 음원은 갑에게 귀속한다”고 적혀있다. 또 “갑은 필요시 저작물의 증감을 포함한 모든 변형을 할 수 있다”는 표현도 쓰였다.
5항에서는 “창작된 저작물에 대한 저작권은 독점적으로 영구히 갑이 관리하며, 저작인격권의 행사는 영구히 갑이 행사하며 관리한다”고 나온다. 저작인격권은 저작권자만 가질 수 있는 고유 권리다. 즉 유통업체에 해당하는 로이는 계약서를 활용해 제작부터 수익분배까지 절대적 권리를 행사한 셈이다.
3월 형사고소 기자회견에 이어 23일 공정위 신고 기자회견에도 참석한 김종휘 변호사(민변)는 “공정위 신고는 크게 두가지”라며 “계약서를 약관으로 판단해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상 사업자가 거래상 지위를 남용한 점, 저작인격권을 박탈하고 2차적 저작권도 마음대로 양도했으며 부당한 수익배분비율을 강제한 점”이라고 설명했다. 이성원 전국을살리기 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도 “이미 공정위에 신고했지만 조속한 조사가 이뤄지고 있지 않아 2차로 신고한 것”이라고 밝혔다.
로이 측은 라이브러리 CD와 드라마 OST 발매, 해외 드라마 판매 과정에서도 창작자에게 사전 통지하거나 동의를 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 소속이었다가 지금은 로이대응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인영 작곡가는 “5년 간 작곡가로 일했다. 김한조 로이 대표는 저작권 침해는 물론 노동력 착취, 불공정 계약서 강제체결도 요구했다”며 “이를 거부하자 계약해지를 당했다. 아직도 음원수익을 비롯한 권리를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1년 여름부터 로이에서 일했던 김 작곡가는 지난해 9월 해고됐다.
공정위 신고 당사자로 나선 하장호 예술인소셜유니온 사무처장은 “예술인 복지법이 만들어졌지만 달라진 게 없다”며 “로이 신고는 단순히 한 기업을 대상으로 싸우는 게 아니라 문화예술계에 팽배한 불공정 관행을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이라고 설명했다.
예술인 복지법은 2011년 11월 제정됐다. 한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이 계기가 됐다. 이 법은 작가의 이름을 따 일명 ‘최고은법’으로 불린다. 하지만 증빙방식과 현실과의 괴리 탓에 실효성이 없다는 일각의 비판도 있어 왔다.(관련기사: 현실과 괴리 비판받던 예술인 복지법, 개정안 시행)
이에 야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새로운 법안으로 돌파구를 모색하려는 모습이다. 강신하 변호사(민변)는 기자들에게 “예술인 복지법은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게 취지인데 여기에 불공정 행위에 대한 법을 끼워놓았다”며 “이를 따로 떼어서 문화예술용역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 강 변호사는 “저작권 대리 중개업자는 유통업체인데 이들이 저작권을 양도받아 저작자인 것처럼 저작물을 판매하고 수익도 다 가로챈다”며 “이들은 신고제로 활동하는데 이를 허가제로 바꾸는 저작권법 개정도 하려 한다”고 덧붙였다.
국내업계에서 해외저작권은 음악저작권협회가 포괄적 신탁관리를 대리해 관리해야한다. 하지만 저작권 수익의 상당 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하는 방송음악의 경우, 대리중개업자 난립으로 창작자 저작권을 무단 도용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이에 야당이 화답한 모양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제주 을·초선)은 “국정감사에서 문화예술 창작자 고통과 갑질피해를 규명하겠다”며 “문화예술용역거래 공정화 입법 내용도 착실히 같이 논의하며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당 유은혜 의원(경기 고양 병·재선)과 조승래 의원(대전 유성 갑·초선)도 “국정감사와 입법활동을 통해 불공정 관행을 근본적으로 뿌리뽑겠다”고 한 목소리로 다짐했다.
실제 기자회견에 앞서 미리 배포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예술인소셜유니온 등과 야당 의원들은 국정감사에서 김한조 로이 대표 증인채택, 음악저작권협회와 KBS에 대한 국정감사를 추진하기로 했다. KBS의 경우 자회사 ‘몬스터 유니온’ 설립으로 외주제작 시장 황폐화에 일조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관련기사: 콘텐츠 제작 뛰어든 KBS, 외주제작사들 반발) 이에 KBS는 중국자본 침탈 견제용이라며 반박했었다.
고재석 기자 jayko@sisapr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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