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청춘 기자상] 밴쿠버에서 처칠로.. 일주일간 기차 타고 이동한 끝에 만난 오로라
오마이뉴스채상희입력2016.01.03 18:32
[오마이뉴스 글·사진:채상희, 편집:박혜경]
▲ 꽁꽁 언 사진 처음 접한 영하 30도의 강추위는 속눈썹마저도 꽁꽁 얼려버렸다. 영화 <히말라야>의 포스터를 연상시킨다. |
ⓒ 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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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비아레일(via-rail)은 다양한 구간들로 나눠져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서쪽의 밴쿠버와 동쪽의 토론토를 잇는 코스다. 쉬지 않고 꼬박 달려도 3일은 족히 걸리기에 바쁜 현대인들은 이 기차보다는 비행기를 선호한단다.
그럼에도 캐나다 횡단 열차의 인기는 굉장하다. 비성수기인 지금도 예약이 꽉 차 비는 좌석이 없을 정도랄까. 기차 안에서 와이파이 없이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즐길 뿐 아니라, 아름다운 캐나다의 자연까지 눈으로 담을 수 있는 좀 더 느긋한 여행이라는 느낌 때문이다.
▲ 기차 사진 믿거나 말거나 영화 <설국열차>의 모델이 됐다는 비아레일 기차의 그 위용은 대단하다. |
ⓒ 채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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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해야 지난 1년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내게 친구들은 말했다.
"무조건 여행이지!"
여행을 떠나야 겠다는 결심이 섰다. 그럼 어디로 떠나야 할까? 열정이 가득한 쌈바가 떠오르는 남미, 많은 여행객들의 단골 코스인 유럽, 저렴한 물가로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동남아시아 등. 여행하기 좋은 나라들이 셀 수 없이 많고, 각각의 메리트도 굉장하기에 행복한 고민이 나를 괴롭혔다.
한참 여행 관련 인터넷 서핑 중, 어떤 글 하나가 다른 나라에 대한 관심을 날려버렸다. 가장 극한의 추위에서 태양광의 반사에 의해 하늘에 피어나는 꽃, '오로라'에 대한 글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영하 30~40도의 '준북극' 처칠로 떠나다
내가 지난 1년간 생활한 드넓은 캐나다 땅에는 오로라로 유명한 지역이 세 곳이나 있었다. 옐로 나이프(Yellow knife), 유콘(Ukon) 그리고 처칠(Churchill)이라는 곳이다. 이 중 가장 유명한 곳이 옐로 나이프인데, 이곳은 여행사를 통하면 365일 손쉽게 갈 수 있다. 매년 겨울 시즌 여행사 광고의 주력 항목이 바로 이곳이란다. 유콘 역시 밴쿠버에서 항공을 통해 비교적 편리하게 방문할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오로라의 명소 중,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마지막 장소 '처칠'이었다. 이곳은 허드슨 베이 근처, 마니토바주의 최북단 근처에 위치해 준북극이라고 불리는 지역이다. 북극에 준한다는 곳답게 영하 30~40도의 살벌한 추위가 함께하는 곳이란다. 육로 교통수단은 기차뿐이다. 밴쿠버에서 기본 일주일은 걸리는 쉽지 않은 교통에 처칠과 연계된 여행사는 전혀 없다고 한다.
처칠은 겨우 400명 남짓한 주민들이 살고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그 때문인지 내가 캐나다인 친구들에게 처칠에 대해 물었을 때, 다들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이었다. 캐나다 사람들도 잘 모르는 작은 마을이지만, 1년에 250일 이상 오로라 관측이 가능하다는 점이 참 매력적이다.
처칠로 향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 산더미였다. 실제로 처칠에 방문했던 한국여행객들이 많지 않기에 정보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해야 했다. 여행 블로그 나와있는 단편적인 정보도 충분하지는 않았다. 숙소 예약도, 장비 구매도 온전히 여행자의 몫이었다.
세계 최고의 검색엔진 구글을 통해 영어 사이트를 번역하며, 나는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갔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차'였다. 오로라 뿐 아니라 교통수단이 기차인 점 역시 크나큰 매력이었다. 총 12일간의 여행으로 그중 7일을 기차 안에서 보낸다는 점이 참 흥미롭다. 2015년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고, 다가올 2016을 준비할 시간으로는 충분할 것이라는 기대가 차올랐다. 지나온 연말들은 송년회 등의 빽빽한 만남과 술자리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시간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올해는 조금 더 뜻깊은 연말로 잘 마무리할 수 있지 않을까.
와이파이도 없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했던 걱정은 약간 있었다.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 받을 메신저도, 재미있는 콘텐츠들로 가득찬 SNS도, 매일 매일 새롭게 올라오는 웹툰도 이곳 기차에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작은 스마트폰 액정 안의 세계에서 벗어나 창 밖의 실제 세상에 오랜만에 집중해 볼 수 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런지!
▲ 기차 안에서 바라본 설경 설경의 아름다움에 승객들은 연신 황홀한 감탄을 터뜨렸다. 기차 안에서 보냈던 일주일간은 신선놀음과 다름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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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산을 통과해서 지나는 이 기차여행은 승객의 마음을 편안케한다. 와이파이도 되지 않고, 변변찮은 놀이시설도 없는 이 비아레일은 그저 묵묵히 달릴 뿐이고, 하얀 겨울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승객들은 그저 입을 헤벌리고 창밖을 계속해서 응시할 뿐이다.
가식없이 말하면, 기차를 이용한 오로라 여행은 의지와 체력이 준비되지 않고서는 감히 도전하기 힘들다. 이코노미 자유석에 쪼그려 누워 잠을 청하고, 샤워는 꿈도 못 꾸고, 기차 안에서의 식비를 아끼기 위해 잔뜩 들고온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말 하나로 힘든 걸 견뎌내 버린다.
"다 추억이 되겠지!"
기차 안에서 이틀째 밤을 맞게 됐을 때, 문득 이 기차가 졸업이 두렵고 취업이 무서워 도망친 늦깎이 휴학생과 참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캐나다 전역에 켜켜이 쌓인 눈을 헤치며 달려야 하기에 기차는 강한 엔진을 3칸 정도 연결하고 달린다. 지난 3년간 대학생활을 하며 대외활동, 학점관리, 공모전에 정신을 쏟고, 스펙관리에 힘쓰며 미친듯이 달려온 내 모습이 떠오른다. 밤낮으로 아무도 살지 않는 눈덮인 황야를 달리는 그 외로운 모습은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준비를 하며 혼자만의 외로운 싸움을 할 미래의 나로 비쳐보였다.
그렇게 굳센 엔진에도 불구하고, 가끔 기차는 교통혼선이나 날씨 때문에 광야 한복판에서 오래오래 멈춰있곤 한다. 정차 시간 때문에 도착이 늦어진다고 불평하는 승객은 없다. 그저 멈춘 기차 안에서의 또다른 휴식을 즐길 뿐이다. 그 여유로운 순간이 나에게 말해주는 듯했다. 조금은 쉬어가도 된다고, 항상 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극한의 추위에서 꽃봉오리 틔운 초록빛 오로라
▲ 허드슨베이 북극 탐험 사진 북극곰이 먹이를 구하러 자주 내려온다는 허드슨베이를 탐험했다. 무릎 이상까지 푹푹 빠질 정도로 엄청난 양의 눈이 쌓여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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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라는 쉽게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첫날 오로라 관측에 실패하고, 둘째날 밤이 되길 기다렸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마저도 오로라를 가릴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꽁꽁 얼어버린 북극의 바닷가, 허드슨베이로 향했다. 해가 없어 추위가 더욱 강했기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몇 분 쯤 지났을까. '앗' 하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하늘에서 넘실대고 있는 오로라가 보였다. 세상의 가장 큰 커튼, 가장 큰 꽃이 하늘에서 피어났다. 추위에 온 몸이 아려 몸둘 바를 모르던 여행객들은 바람에 따라 넘실거리는 빛 조각에 눈을 빼앗겼다.
오직 극한의 추위에서 꽃봉오리를 틔우는 초록빛 오로라를 나는 마침내 보고만 것이다.
▲ 오로라 사진 하늘 위 초록 불빛이 다가와 가슴 한 구석의 씨앗에 보드라운 희망 한 줌을 덮어주고 이내 그 종적을 감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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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의 선물, 오로라를 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그리고 용기를 얻자고 기획한 여행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그 옛말처럼 취업준비에 힘쓰며 어두운 날을 견디다보면 오로라같은 환상적인 보상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이제 반 오십, 스물 다섯이라는 늦깎이 복학생이어도 괜찮다. 그 흔한 토익 점수 하나 없어도 괜찮다. 동기들은 하나 둘 벌써 취업해 나와 다른 길을 달리고 있어도 괜찮다.
그 꽃은 그렇게 속삭이는 듯했다. 그것처럼 나 역시 이 추운 세상에서 언젠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오로라 빛은 한참동안 강해졌다 약해졌다 하면서 나를 희롱했다. 오로라가 사라질 때는 아아 하면서 아쉬워했고, 빛이 한층 밝아지면 오오 하면서 탄성을 질렀다. 그 모습은 강렬한 불꽃 같기도 하고, 넘실거리며 춤추는 천 조각 같기도 했다.
오로라를 볼 수 있을 거라 확신도, 보장도 없었지만 나는 묵묵히 발걸음을 옮겼을 뿐이다. 설사 오로라를 보지 못한다 해도 괜찮았다. 보고 못보고 보다는 그저 도전이 중요했다.
나의 노력을, 나의 열정을 누군가 알아주지 못해도 괜찮다.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희망을 갖고 갈 길을 가면 된다. 언젠가는 작은 꽃 하나가 피어나지 않으랴.
이틀간 기차를 타고 위니펙이라는 도시로 향했다. 기차 안의 나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다.
넘치던 음식 보따리 세 개는 어느새 쇼핑백 하나도 못 채울 정도로 줄었으며, 낑낑거리며 걷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던 여러 개의 짐 역시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침마다 화장하지 않고, 밖에 나갈 때나 가볍게 선크림과 립밤을 바르는 '쌩얼'에 익숙해졌으며, 쪼그려 자던 기차 좌석 역시 첫날만큼 불편하지는 않다.
이것저것 껴입고 기차 안에서의 생활을 약간 심심해하던 첫날의 나는, 가벼운 옷차림에 여유롭게 창 밖 세상을 즐기는 여행객이 됐다. 와이파이를 쓰는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됐으며 펜을 들고 글을 쓰고 아이패드로 기록을 남기는 삶의 여유를 찾았다.
이젠 더이상 영하 30도의 추위에 살이 아리는 고통을 맛볼 일도 없고, 눈 빼고는 단 한 점의 맨살도 노출하지 않으려 꽁꽁 싸매는 무장도 필요치 않다. 두꺼운 패딩을 여러겹 겹쳐 입고, 입김에 눈썹이 얼어 장갑 낀 손으로 살살 털어낼 순간도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지난 열흘의 여행을 통해 나는 영하 20도 쯤은 씩 웃으며 별 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대범함을 갖게 됐고, 인스턴트 음식도 감사하며 먹을 줄 아는 관대함을 얻었으며,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틱한 감성을 조금 더 즐길 줄 아는 감성적인 사람이 됐다.
SNS를 하며 남들 소식을 쫓기보다는 내 삶에 집중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이 젊음을 만끽할 수 있는 그런 여행이었다.
열흘동안 기차로 여행한다고, 준북극을 간다고 당장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그 도전은, 어려움을 향했던 그것은 내게 알려주었다. 나의 아름다운 청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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