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PP·FTA 타결 수출기지 '다시 뜨는 베트남'..삼성전자 20조 투자, 협력업체 동반진출 롯데·신세계는 현지 내수시장 공략 잰걸음매경이코노미박수호입력2015.12.31. 14:08수정2015.12.31. 16:18
아침 7시, 하노이 시내에서 거대한 오토바이 행렬을 겨우 뚫고 외곽으로 빠져나오자 제법 넓은 도로가 펼쳐진다. 시내에서 동쪽 박닌성 방향으로 접어드는 고속도로다. 더욱이 장관을 이루는 건 흰색 버스 대열이다. 수십 대의 흰색 버스가 한곳을 향해 줄짓다 시피 이동하고 있었다. 버스는 일제히 옌퐁공단 삼성전자 1공장(SEV)으로 총총히 사라진다. 인근 주민 옌란 도(Yen-Lan Do)씨는 “아침마다 버스 행렬을 보는 재미가 상당하다. 출퇴근 때 뿐만 아니라 하루 종일 공장 입구로 화물 차량이 오가고, 멀리서 보면 건물이 또 하나둘 늘어가는 모습도 신기하다”라고 말했다.
최근 베트남 북부 하이퐁에 문을 연 LG전자 공장은 해외공장 중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베트남 정부가 하이테크 산업 육성을 내건 이후 한국 기업들의 대규모 투자는 이처럼 줄을 잇고 있다.
내수시장 성장세에 주목하는 기업도 많다. 하노이에 백화점, 마트, 특급호텔 등이 들어간 롯데타운을 개장한 롯데그룹은 호찌민시에 2호점을 내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문을 연지 1년 여 정도 밖에 안된 롯데호텔의 경우 투숙율이 최근 월 90%를 넘길 정도로 성업 중이다. 신세계 그룹 역시 최근 이마트 1호점을 열면서 한국에 이어 베트남에서도 롯데와의 경쟁을 시작하려 하고 있다.
베트남이 중국을 대체하는 제2의 생산기지이자 한국의 또다른 내수시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미 누적 기준 대 베트남 최대 투자국은 일본(391억 달러, 2015년 10월 기준)에서 한국(453억 달러)으로 바뀌었으며 추가 예정투자 규모 역시 전년 대비 증가세다. 베트남의 매력은 무엇일까.
제조업 탈(脫) 중국 대안 1호 인건비 싸고 인프라 투자도 ‘착착’
20조원. 삼성전자가 2017년까지 베트남에 쏟아부을 투자금액이다.
옌퐁 공단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은 이미 25억 달러(약 2조7000억원)를 투입, 2009년부터 가동되면서 약 4만 명의 직간접 고용 인원이 상주하거나 출퇴근 중이다. 인근 하노이 북쪽 타이응웬성 공장(SEVT)까지 합하면 약 10만명이 삼성전자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호치민 TV와 모니터 등을 생산하는 ‘사이공 하이테크 파크’ 등에도 추가 투자하면서 베트남 전체 수출의 10% 이상을 담당하는 효자 외국계 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덩달아 협력업체의 동반 진출도 줄을 잇고 있다. 삼성
계열사인 삼성디스플레이, 삼성전기 등은 물론 인탑스, 알루코, 인지그룹 등 1, 2차 협력업체들이 삼성전자 복합단지 인근에 부품 공장을 지었거나
증설에 나서는 모양새다.
종전엔 TV 프레임 생산으로 삼성전자와 전체 매출의 5% 정도만 거래해오던 알루코의 경우 삼성전자의 베트남 진출 이후 베트남은 ‘기회의 땅’이 됐다.
전세계 스마트폰 외관이 플라스틱에서 스틸 형태로 바뀌는 추세에 따라 주문량이 폭주했기 때문. 따라서 알루코 역시 신규 투자액 상당수를 베트남으로 돌렸다. 하노이 남단 박닌 지역 1차 공장은 이미 풀가동 중이라 삼성전자 제2공장과 가까운 흥이옌 지역에 2차 공장을 새로 투자, 새해 가동을 앞두고 있다.
박닌성 알루코 공장에서 만난 박석봉 알루코 부회장은 “스마트폰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신제품 개발을 위해 협력업체에 오히려 삼성전자가 설비투자를 해주기도 한다. 최근에는 알루코가 압출 알루미늄 소재를 만들면 이를 직접 가공할 수 있는 삼성전자 소유의 CNC(컴퓨터정밀제어) 장비 수백 대를 알루코 공장에 놓아 생산 일정을 당기는 식이다. 여기에 흥이옌 제2공장이 본격 가동되면 폭주하는 주문량을 어느 정도 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사업 선전으로 알루코 그룹 전체 예상 매출액은
2015년 1조원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이테크 산업뿐만 아니다.
일찌감치 베트남에 진출해 봉제, 신발 등을 제조하는 1, 2차 제조업체 역시 요즘 콧노래를 부른다. 지난 12월 22일 한·베트남 FTA가 공식 발효된 데다 베트남이 포함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로 호기를 맞았기 때문. 2017년부터 베트남에 진출한 이들 기업은 미국, 일본 등 TPP 역내 지역 수출 시 12%인 관세가 즉시 철폐되기 때문이다. 더불어 최대 섬유ㆍ의류 수출국인 중국이 TPP에 참여하지 않아 중국산 제품에 비해서도 가격 경쟁력은 덤으로 생겼다.
나이키 등 글로벌 메이커에 납품하는 선두권 신발 OEM업체인 태광실업의 경우 2015년 예상 매출액은 1조 3000억원에 달할 정도. 동종 업계 국내 2위 업체 창신INC 역시 2015년 예상 매출액은 9000억원대로 2014년 7000억원대에 비해 급성장이 예상된다.
봉제업체 역시 순항중이다.
한세실업, 영원무역, 태평양물산, 형지CNM,
SG충남방적, 일신방직 등은 이미 TPP 발효에 대비, 공장 증설에 열을 올리는 분위기다. 한세실업의 경우 베트남에서만 매출액 1조원 돌파를
자신하는 분위기.
이용백 한세실업 대표(부회장)는 "베트남에서 봉제 인프라의 수직계열화가 완성되고 TPP 발효로 혜택을 보게 되면 2017~2018년까지 20억 달러 목표 매출액 중 절반이 베트남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현장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자는 지난해 봉제, 신발 업체가 밀집돼 있는 하노이 남단 박지앙(Bac Giang)성 산업단지 취재를 다녀온 바 있다. 약 1년 여 만에 다시 찾은 이곳은 또한번 변신을 하고 있었다. 2014년 당시 약 10만㎡ 터에 대형 건물 4개동, 근로자 수 3000여명이라던 태평양물산 VPW공장은 최근 2층 대형 신축 건물이 들어선 데다 추가 2000명을 고용, 총 5000명이 다운재킷, 바지, 점퍼 등을 제작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임석원 태평양물산 대표는 “인건비 상승, 숙련공 채용의 어려움 등으로 중국의 매력은 떨어지고 있다. 반면 베트남은 생산성도 높고 젊은 인력이 많아 생산기지로서의 매력이 더욱 커지고 있다. VPW공장에 신규로 청바지 가공을 위한 8개 라인이 조만간 가동에 들어가는 데다가 남은 공장터에는 우븐(직물로 짠 옷), 니트(실을 코로 꿰어 만든 옷) 제작을 위한 추가 공장 증설 계획도 잡혀있다. 하노이 북쪽 남딘지역에 추진 중인 니트 공장이 완공되면 추가로 3000명의 직원을 고용, 미국, 유럽에 수출할 의류를 생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형지CNM공장도 사정은 마찬가지. 까다롭기로 유명한 여성의류 생산으로 특화한 이 공장은 상의 약 20만 벌, 하의 26만 벌을 생산하는 직원 1600명대 중대형 규모다. 이곳 역시 TPP 발효 소식 이후 최근 캘빈클라인, 바나나리퍼블릭 등 미국, 유럽 브랜드의 사전 주문이 급증하면서 공장 내 직원 운동장으로 쓰던 공터를 신축 공장건물을 전환, 추가로 대규모 직원 채용을 할 계획이다.
공라묵 패션그룹형지 이사는 “TPP 발효 전 선점 효과를 누리려는 해외브랜드들의 주문이 늘어나고 있다. 이를 위해 공장을 계속 늘려나갈 계획이다. 생산직의 경우 매년 10% 포인트 이상 급여가 오르고 있다지만 숙련공도 월 230~250달러 선이면 확보할 수 있고 또 한국 본사로 우수 직원 파견 프로그램을 운영, 이제는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할 줄 아는 현지인 관리자도 보유하게 돼 자신 있다”라고 활짝 웃었다.
글로벌 생산기지가 중국에서 베트남으로 쏠리는 현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는 게 현지사업가, 전문가의 공통 의견이다. 특히 예전에 비해 개선되고 있는 사회간접 시설(인프라)은 제조업 안착에 기폭제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박동석 오리온 옌퐁공장 업무팀장은 “예전에는 전기가 수시로 끊겨 자체 발전기를 자주 돌렸는데 요즘엔 그런 경우가 잘 없을 정도로 상당히 전기 사정이 많이 개선됐다. 공단과 시내를 관통하는 고속도로는 계속 확장되고 있고 공항, 항구 역시 상당히 현대적으로 바뀌는 추세라 물류 환경도 좋아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KOTRA에 따르면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교통 인프라 개선을 위한 20개 총 5900㎞ 고속도로 건설에 500억 달러를 투자할 전망이다. 전력 사정 역시 추가 발전소 건립으로 상당 부분 해결해나가고 있다. 한국 업체 중에서는 포스코에너지에 이어 최근 태광실업이 박닌 화력발전소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박상협 KOTRA 호치민무역관장은 “정부 주도의 인프라 구축, 양질의 인력, 상대적으로 값싼 임금, 중국, 동남아는 물론 바다를 끼고 있어 미국, 유럽 등 해상 무역이 가능한 지리적 이점 등에서 베트남은 중국을 대체할 생산기지로서의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베트남 정부가 정보기술(IT), 부품소재, 바이오, 친환경 등 이른바 하이테크산업 육성전략에 따라 인센티브제가 각 지역마다 다른 만큼 업종에 따라 지역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2의 내수시장 ‘든든’ 초코파이 ‘대박’ 오리온 매출 2000억원
“신한베트남은행의 안정적 금융지원을 통한 택시사업 확장의
기회를 확보했을 뿐만 아니라, 신한베트남은행 고객사인 금호타이어의 제품을 소개받아 좋은 품질의 타이어를 저렴하게 공급받게 됐다. 신한베트남은행과
손 잡은 후 사업이 더욱 잘 된다”
베트남 1위 택시 업체 비나선 택시의 당 푸억탄 비나선택시 회장(Dang Phuoc Thanh)의 말이다. 당 회장은 시내에 돌아다니는 비나선 택시 중 350대에 신한베트남은행 로고 스티커를 부착해 광고를 대신 해줄 정도로 신한베트남은행의 열성팬이 됐다. 비나선 외에도 페트로베트남, THACO 등 굴지의 베트남 기업들이 신한베트남은행의 기업 고객이 되고 있다. 새해 초 기준 신한베트남은행의 현지인 고객 비중은 70%에 달한다.
지난 12월 16일 오전, 롯데하노이타운에 위치한 신한베트남은행에 들어서니 기아차 할부판매 상품 광고판은 물론 직장인 대출, 주택담보 대출 등 다양한 상품들이 고객을 반긴다. 흡사 한국 지점에 온 듯한 느낌이다.
신동민 신한베트남은행 북부지역 본부장은 “최근 삼성전자 등 하노이 인근 대형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이들 근로자를 대상으로 직장인 집단대출 상품을 새로 출시했는데 반응이 좋고 이익률도 높다. 한국에서 먹히던 특판 상품들을 현지화하니 새로운 수익원이 되고 있다. 금융한류가 멀리 있는 게 아니었다”라고 소개했다.
신한은행은 1992년 베트콤은행과 합작법인 신한비나은행(옛 조흥비나은행)이란 이름으로 베트남에 진출했다. 2009년엔 국내 은행 중 최초로 법인으로 승격, 베트남 내 외국계 은행 중 HSBC, 안즈(ANZ)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은행 등 또달리 승격된 6개 법인과 경쟁하고 있다. 2014년 총 대출액은 9억 3500만달러로 2010년 대비 2배 가량 늘렸으며 당기순이익 역시 3700만달러를 기록, 1위 HSBC(3800만달러)에 간발의 차로 외국계은행 순익 2위를 차지했다.
신동민 본부장은 “현지인의 은행 이용률이 20%대에 그치기 때문에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일단 한번 은행을 이용해본 사람이면 신용카드, 보험 등 여러 금융상품을 다양하게 이용하게 되므로 신한금융 계열사는 물론 손해보험은 최근 동부화재가 인수한 현지 법인 PVI와 연계하는 식으로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유통업계에서도 베트남은 제2의 내수시장 가능성을 엿보이고 있었다. 베트남 전역에 들어선 롯데마트는 어느덧 11호점을 계획 중이고, 일찌감치 진출한 롯데리아 역시 베트남에서 2011년 100호점 돌파, 2014년 8월 200호점 돌파에 이어 2014년 말에는 현지 최초 가맹 1호점 매장을 유치해 화제가 됐다. CJ CGV 역시 베트남에서 27개 극장, 178개 스크린을 보유해 1위 사업자로 떠올랐다. 한국계인 TNHH MINH HAN도 2002년 한국인삼 수입 유통 사업을 시작으로 현재 K-Mart(한국식품), K-FOOD(한국분식), StarKorea(한국인삼) 등 분야별 유통 매장을 현지화해 베트남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과 업계에선 단연 오리온이 돋보였다. 12월 18일엔 하노이 시내 베트남 굴지 기업 빈콤그룹이 운영하는 빈마트를 찾았다. 현지 기업이 운영하는 슈퍼마켓이라지만 입구부터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과자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크리스마스 트리 모양이며 집 모양을 모두 과자상자로 쌓아놔 현지 고객의 발길을 사로잡았다. 이런 조형물의 벽돌(?) 역할을 하는 과자는 초코파이, 구테(Goute, 한국명 고소미), 쿠스타스(한국명 카스타드), 마린보이(한국명 고래밥) 등 오리온 제품들이었다.
마트에서 만난 현지인 통 뚜이 린(tống thuỳ linh) 씨는 “초코파이는 다른 제품보다 다소 가격이 비싸지만 생일, 제사, 기념일 때 서로 주고 받는 선물로 인기가 좋다. 오리온 초코파이 TV CF에서 나오는 노래를 늘 흥얼거리게 되고 가족의 ‘띤’(Tinh, 한국의 정(情)과 유사한 개념)‘을 강조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라고 말했다.
오리온 베트남 법인은 베트남 제사상에 초코파이가 올라가는 사례를 포착, TV CF로 방영하며 현지인의 마음을 움직여 2010년 현지 제과업계 1위에 올라섰는가 하면 새해에는 현지 매출액 2000억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현지 마트에서는 오리온 외에도 샘표식품, 미원, 농심, 팔도라면, 뽀로로음료 등 친숙한 국내 브랜드가 대거 진출, 식음료 한류를 이어가고 있었다.
K뷰티 열풍은 베트남도 비켜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최고급을 지향하는 롯데백화점 하노이점에는 라네즈, 오휘, 더페이스샵, 토니모리 등 다양한 브랜드가 매출 상위권을 차지하며 선전하고 있는가 하면 일본계 대형쇼핑몰 이온몰에서도 더페이스샵, 스킨푸드 등 한국계 브랜드는 흔치않게 볼 수 있다.
이재훈 아모레퍼시픽 베트남 법인장은 “화장품(스킨케어와 메이크업) 시장은 약 2500억원 규모로 아직은 작지만 매년 15% 꾸준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매장 확장 외에도 아직 화장품 사용에 익숙지 않은 잠재고객을 위해 베트남 내 주요 기업 200곳을 방문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제품 샘플링, 뷰티 노하우 강좌 서비스를 제공하는 ‘Office Attack’이벤트 등 참신한 마케팅으로 매출성장률을 꾸준히 높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베트남서 기회 잡으려면 한류, 메이드인 코리아만 강조하면 필패
물론 베트남도 해외 시장인지라 호락호락하지만은 않다.
인프라가 많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여전히 베트남 곳곳은 ‘공사중’이라 사업 환경이 완벽하게 갖춰졌다고 보기 힘들다. 임금수준도 상대적으로 중국보다 낮다고 하지만 매년 12~15% 이상 인상을 바라는 노동자 입김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고급 인력 확보 역시 어려움은 여전하다.
박석봉 부회장은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약 4500여개 정도 된다는데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모두 잘하는 산업 인력 수요는 각 업체 당 한두 명씩만 잡아도 9000명 정도 된다. 하지만 이런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딜레마”라고 말했다.
중국보다 상대적으로 싸다 해도 베트남의 인건비 상승폭 역시 베트남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이라면 간과해선 안 되는 대목이다.
2016년 최저 임금은 호치민시 1급지 기준 월 350만동(약 155달러)이며, 이는 최근 10년 동안 약 4배가 오른 수준이다. 실질적으로 기업이 부담하는 인건비는 생산직 근로자 1인 초임을 기준으로 250~300달러에 이를 것이란 게 KOTRA 분석이다. 베트남의 2015년 GDP 상승률(ADB 6.5% 예상),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0.7%) 등을 감안하면 임금 인상폭은 매우 높은 상황이다.
내수 시장 역시 면밀한 시장 조사 없이 한류에 편승한 고가 전략을 펼치다가는 필패라는 게 현지 전문가 조언이다.
이성훈 롯데백화점 하노이점 팀장은 “백화점 내 입점돼 있는
한국 브랜드 중 고가 라인보다는 중저가 라인의 매출이 더 좋게 나온다. 부자가 늘어나고 있다지만 아직까지는 가격에 더 민감한 시장”이라고
말했다.
백화점, 대형쇼핑몰 등이 곳곳에 들어서지만 구매력이 아직 못 받쳐준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 하노이 최고층 건물 랜드마크 72에 입점했던 말레이시아계 팍슨(Parkson)백화점은 실적 부진으로 문을 닫았다. 빈 그룹 계열 로얄시티 지하쇼핑몰 역시 애초 개장 때보다 공실이 크게 늘어나는 분위기다.
윤휘 코웨이 베트남법인장은 “월급이 200달러(약 22만원)라도 100만원 짜리 아이폰은 무조건 사고 보는 식으로 남들에게 보이는 제품들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과시형 소비 풍토가 있다. 반면 생활용품에서는 1~2달러만 비싸도 안 사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들은 고급 시장에서는 현지 부자들이 인정하는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마케팅을, 일반 제품은 한국제지만 가격 경쟁력이 있는 제품 위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이재훈 법인장도 “베트남 사람들의 소비 특징 중 하나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품목에 대해서는 가격이 비싸더라고 구매를 한다. 베트남 시장에서 아직 화장품에 대한 필요도를 상대적으로 낮게 인식하는 이유는 베트남 대부분 사람들이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오토바이 때문이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보면 먼지가 얼굴에 고스란히 묻게 되고, 1년 내내 더운 날씨로 인해 땀을 흘리니 화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2020년 베트남 최초로 지하철 개통이 되면, 베트남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많이 바뀔 것이라 판단된다. 그전까지 화장품 업계에서 베트남은 인내심을 가지고 끊임 없이 준비하고 트렌드를 읽어야만 하는 시장이다.
아직 베트남 화장품 시장은 이웃 국가인 태국 화장품 시장의 10%도 안되는 작은 규모인데도, 정말 많은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이 들어와 있다. 신규 진입을 원하는 업체라면 이런 시장 특성을 적극 감안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조업체들의 경우 납품처 다변화 전략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이 삼성전자를 따라 대거 동반 진출 했다지만 언제든 삼성전자 전략이 글로벌 경쟁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어 삼성전자만 바라보면 안된다는 말이다. 최근 스마트폰 실적 부진으로 삼성전자 타이응웬성 4공장 추가 건설이 연기되면서 관련 협력업체 역시 생산량을 줄이고 있는 게 대표적인 예다.
유인석 네모파트너즈 베트남지사장은 “현지에서 미국, 일본 등 해외 거래처를 새로 확보한 한국계 부품회사는 계속 성장해나가지만 특정 업체만 바라보고 진출한 경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대기업 동반진출 시 납품처 다변화 전략을 반드시 복안으로 갖고 가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TPP 외에도 아세안경제공동체(AEC), FTA 등 무역환경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상혁 무역관장은 “AEC 출범으로 인해 베트남 내에서 점차 타 아세안 국가와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특히 가전 및 자동차 부분에서 타 아세안에 진출한 외국 브랜드와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를 예를 들자면, 태국으로부터 수입되는 차량의 경우 관세가 2015년 50%, 2016년 40%로 점차 감소하다가 2018년에는 0% 관세가 적용되는 반면, 한국으로부터의 수입차량은 70%의 고관세가 유지될 예정인데, 이럴 경우 태국에 진출해 있는 일본 브랜드의 베트남 진출은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당 업종 관련 업체라면 반드시 감안해야 할 사안”이라고 조언했다.
한편, 현지 여론이 한국을 바라보는 시각은 복합적이다.
현지 경제지 단찌(dantri.com.vn)의 지양 푸엉 증 기자는 "베트남 시장은 일본, 동남아 상품 위주였는데 한국 제품들이 속속 베트남에 들어오면서 보다 선택의 폭이 커졌다는 점에서 베트남 사람들이 좋아하고 있다"면서도 "다만 한국 제조업체의 경우 현지화를 꾀하지 않거나 기술 이전에 소극적인 업체라면 베트남 정부나 국민 정서가 호의적일 수 없다는 건 유념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베트남 = 박수호 기자 suhoz@mk.co.kr / 일러스트 : 정윤정]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839·신년호 (2016.01.01~01.05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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