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준(AP=연합뉴스 DB)
(서울=연합뉴스) 이 율 기자 = 올해 세계경제 성장세가 2009년 이후 최악인 상태인데도 미국과 영국, 인도 경제가 '선방'을 하고 있다.
미국과 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일찌감치 대대적인 돈풀기에 나섰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달러화와 파운드화가 기축통화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작년 하반기 이후 국제유가 급락은 인도 경제가 경상수지 적자를 줄이고 물가를 잡는데 도움을 줬다.
◇ 미국 경제 성장률, 한국과 맞먹는다
23일 한국은행과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미국 경제는 지난 2009년 6월을 저점으로 6.5년(78개월)째 경기확장국면을 지속하고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두 11차례의 경기확장기 평균 지속기간인 4.9년(58개월)을 훨씬 넘는다.
미국 경제가 장기간 완만한 성장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시행한 대대적인 '돈풀기'가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2007년 9월부터 기준금리인 연방기금금리를 서서히 떨어뜨려 사실상 제로(0) 수준인 0∼0.25%까지 낮췄다. 또 2008년 11월부터 3차에 걸친 양적완화를 통해 채권을 사들였다. 이런 양적 완화 과정에서 모두 2조9천억 달러를 풀었다.
이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과 2011년 본격화된 셰일오일 붐에 이은 국제유가 폭락은 2013년 4분기 이후 미국인들의 지갑을 본격적으로 열었다.
미국경제는 민간소비 개선에 힘입어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다. 민간소비의 미국경제 성장 기여율은 올들어 1분기 198%, 2분기 62%, 3분기 97.6%에 이를 정도로 상당히 크다.
실업률 하락과 개인소득 증대, 주택가격 상승, 가계부채 감소, 소비심리 개선 등도 뒷받침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12년 2.2%, 2013년 1.5%, 작년 2.4%에 이어 올해와 내년 모두 2.5%를 나타낼 전망이다.
런던 최고가 주택(EPA=연합뉴스 DB)
한국은행 관계자는 "최근 미국 경제는 민간소비 성장세가 꾸준하고 설비투자나 신규주택투자 지표도 괜찮다"면서 "달러화 강세가 계속되면 수출이 안돼 제조업 부진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내년까지는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윤경 국제금융센터 북미팀장은 "미국의 잠재성장률은 의회에 제출한 연방정부 예산안을 기준으로 했을 때 올해 1.7%, 내년에는 2%"라면서 "미국은 올해와 내년 모두 잠재성장률 이상의 성장을 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성장률은 한국과 맞먹는 수준이다. 한국 경제는 올해 2.6%에 이어 내년에도 2%대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올해나 내년 한국 경제성장률이 미국을 밑돈다면 이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한국 -5.5%, 미국 4.5%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 돈풀고 주택가격 부양…정점 찍은 영국 경제
미국과 비슷하게 2009년 금융위기 이후 완만한 성장세를 기록해온 영국 경제는 작년과 올해에 걸쳐 정점을 찍고 완만하게 둔화되는 추세지만, 여전히 견조한 성장세 뽐내고 있다.
영국경제가 미국경제와 함께 선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역시 돈풀기가 있다. 영란은행은 미국이 2008년 11월 양적완화에 돌입한 이후 5개월 만인 2009년 3월 금리를 0.5%로 내리고, 3천759억 파운드 규모의 양적완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거의 동시에 시행한 대대적인 돈풀기와 주택가격 부양 덕택에 영국 경제는 최근 3년간 활황에 가까웠다.
특히, 영국 경제의 핵심인 주택가격 부양을 위해 집을 살 때 정부가 15∼20%까지 무이자로 보증을 서주는 '헬프 투 바이' 정책이 주효했다. 이 정책이 부동산 경기를 살리면서 부동산 관련 서비스업과 금융업이 살아났다.
이에 따라 영국의 주택가격은 런던이 있는 남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 수준까지 상승한 상태다.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2012년 1.2%, 2013년 2.2%, 2014년 2.9%에 이어 올해 2.4%, 내년 2.3%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김위대 유럽팀장은 "영국 경제의 경우 전통적인 선진국형 경제구조여서 소비, 내수 위주로 돌아간다"면서 "노동생산성이 높기 때문에 성장률이 2%가 넘어가면 활황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영국은 다른 유럽연합(EU) 국가들과 달리 미국처럼 해고와 고용이 쉬운 경제구조여서 위기가 터졌을 때 대대적인 해고로 기업의 부담을 줄여줬다가 기업의 수익이 쌓이면 고용하도록 하는 시스템"이라면서 "이에 따라 영국 실업률은 위기가 진정되자 급속히 하락해 소비확대에 기여했다"고 덧붙였다.
◇ 중국 성장률 따라잡은 신흥국의 '떠오르는 별' 인도
나렌드라 모디 총리(AP=연합뉴스 DB)
올들어 신흥시장이 중국발 경기둔화로 신음하는 가운데, 인도가 신흥국의 떠오르는 별로 부상했다.
인도의 올해 회계연도 경제성장률은 블룸버그 집계 기준 7.4%로 중국의 6.9%를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인도는 2013년 미 연준의 양적완화 축소 가능성이 대두됐을 때 브라질, 인도네시아, 터키, 남아프리카공화국과 함께 5대 취약국(fragile 5) 중 하나로 꼽히면서 타격을 입었다.
이에 따라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13회계연도에 4.7%로 바닥을 찍었다.
인도경제가 이후 고속성장세로 전환하게 된 배경에는 작년 나렌드라 모디 정부의 출범 이후 추진한 대대적인 경제개혁 정책이 있다.
모디 정부는 제조업 비중이 17%로 중국(31.8%)이나 태국(32.9%) 등 주요 신흥국에 비해 크게 낮은 인도의 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해 대대적인 기업규제 완화와 세금인하 등 제조업 육성정책(Make in India)을 펼쳤다.
다른 신흥국에 비해 부진한 외국인 직접투자 촉진을 위해 철도, 국방, 보험산업의 외국인 투자지분 한도 확대, 투자 인허가 절차 간소화, 세일즈 외교 등도 추진했다.
아울러 세계 최저 수준인 인프라 개선을 위해 전력, 도로, 철도 항만 개발에 적극 나섰다. 수력발전시설 완공과 태양광 발전소 건설 착공, 주변지역으로 송전시스템 구축, 일본 신칸센 도입 결정 등이 주된 성과다.
마침 작년 하반기 이후 이어진 국제유가와 원자재가격 급락이 맞물리면서 인도의 경상수지 적자는 2012년 915억 달러에서 작년 274억 달러로 급감했고, 10%에 가깝던 물가도 목표치(6.0%)를 밑돌고 있다.
인도의 경제성장률은 2014 회계연도에 6.9%로 치솟은 뒤 2015 회계연도에 7.4%, 2016회계연도에 7.8%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는 등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추세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인도 수입시장에서 한국의 점유율은 4.5% 안팎에서 정체되고 일본은 3.9%에서 3.4%로 소폭 하락한 반면, 중국의 점유율은 10.4%에서 20.3%로 높아졌다"면서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는 품목을 중심으로 인도로의 수출경쟁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yuls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