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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5. 4. 1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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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더멘털에 의한 주가 분석 펀더멘털에 의한 주가 분석

 

中시장 특성에 비춰 본 주가 전망

2015.04.17

주식시장은 역사성이 있는 곳이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의 행태는 오랜 시간 조금씩 바뀔 수는 있어도 어느 날 갑자기 변하진 않는다. 이런 점에서 중국 주식시장이 경제와 함께 어떻게 변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이 과정을 통해 최근 급등하고 있는 중국 주식시장이 앞으로 어떻게 될지 가늠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5년 동안 중국 주식시장은 30배 넘게 올랐다. 주가 움직임은 중요 시점을 전후해 급등한 후 오랜 시간 하락과 횡보하는 형태였다. 이머징 마켓에서 많이 나타나는 계단식 상승을 한 것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중국 시장 행태 분석은 특정 시점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이 시점에 모든 특징적인 행태가 다 드러나기 때문이다. 분석을 위해 세 국면을 정했다.

첫째는 중국에서 시장 경제 개념이 확립되기 시작한 1992년,

 

두 번째는 WTO가입이 이루어진 2001년,

 

마지막은 경제가 최고 호황을 누렸던 2006~2007년이다.


  

   

 

 

 

1992년 : 개혁 개방 본격화로 주가 급등. 버블 붕괴로 다시 하락
 
1992년에 장이모어(張藝謨)감독이 ‘귀주 이야기’라는 영화로 베니스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소작농 분쟁을 다룬 영화인데, 과거 같으면 체념했을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정부에 공정한 판단을 요구했다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중국 경제 개혁은 이런 관념의 변화로부터 시작됐다. 특정 지역 사람들이 솔선해 계획경제의 속박에서 벗어나면 그곳이 빠르게 발전하고 富가 끊임없이 흘러 들어오는 형태였다. 많은 개혁이 불법으로 시작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합법이 됐다.
 

1992년은 중국의 내부 에너지가 새로운 형태로 발전해 나가는 출발점이기도 했다. 시장 경제라는 개념이 확립된 후 불분명하던 경제 개혁 방향이 확정됐고, 개혁의 동력으로 제도 혁신이 선택됐다. 이전까지는 중국이 낙후한 이유가 과학기술에 있다고 생각해 생산라인과 신기술만 도입하면 된다고 믿었지만, 이 때부터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 발전은 토대가 약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중국이 관념이 지배하던 나라에서 이익이 지배하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덩샤오핑의 남순강화(南巡講話)가 변화를 촉발시킨 계기였다. 1월 18일~2월 21일까지 우창,선전, 상하이를 시찰 하는 동안 덩은
 
‘기본 노선은 100년을 관리해야 하는 것이므로 동요해서는 안된다.’
 
‘계획경제와 시장 경제는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차이가 아니다.’
 
‘두 가지 문명을 건설하는 것이야 말로 중국적인 사회주의다.’라고 얘기해 개혁개방을 둘러싼 모든 논쟁을 정리했다.
 
체제가 정리되자 경제 목표도 높아졌다. 1992년 중국 정부는 과거 최고 과열기였던 1988년보다 높은 12% 성장, 공업생산 증가율 20%, 사회고정투자율 36% 증가를 목표로 내걸었다. 1988년 이들 지표는 각각 11.2%, 17.7%, 25.2% 였다.
 
성장이 가속화된 데에는 기업 설립을 중심으로 한 민간의 역할이 컸다. 2월 이후 베이징에서는 매달 2,000개가 넘는 신규 기업이 설립됐는데, 과거에 비해 두세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이런 창업 열풍으로 8월 22일 베이징시가 보유하고 있던 사업자등록증이 바닥나 텐진시로부터 1만장을 빌려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중관촌에 입주해 있는 IT기업 수 역시 1991년 2,600개에서 1992년에 5,180개로 늘어났다.
  
남순강화 기간 덩샤오핑이 주식시장을 도입해 실험해 보고, 문제가 있으면 고치자는 얘기를 함으로써 증시 붐이 일어났다. 당시 상하이 거래소의 기록을 보면
  
‘5월 20일 616P 였던 주가가 25일에 1,420P로 치솟았다. 투자자들이 매일 끝없이 몰려들어 왔다. 어쩔 수 없이 축구장 크기의 절반에 해당하는 문화 광장을 임대해 천막을 치고 임시 거래소로 사용했다. 신주를 발행할 때 추첨표를 받기 위해 전국에서 거래소로 배달돼 오는 신분증이 눈발보다 많았다. 백만명이 이틀 밤을 새웠지만 빈손으로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고, 분노한 사람들이 시내 도로에 몰려나와 상점을 무너뜨리고 경찰차에 불을 질렀다.’
 
문제는 그 이후다. 버블이 터지고 난 후 주가가 끝없이 하락해 11월말에는 오르기 전 수준으로 내려왔다. 1992년 5월에 기록했던 고점을 다시 넘을 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1년 : WTO가입으로 세계 경제에 편입. 중국 주식시장 역사상 최장기 상승이 끝나
 

2001년 11월 10일 WTO 4차 장관급 회의에서 중국의 WTO가입이 결정됐다. 중국이 세계 경제에 본격 편입된 것이다.
 
WTO가입을 계기로 중국 경제 미래에 대한 예측이 난무했다. 일본 통산성은 중국이 이미 세계의 공장이 됐다고 얘기했다. 경제 학자들은 더 나아가 1980년대 일본과 같이 중국 기업이 전세계를 정복할거라고 전망했다. 긍정적 얘기만 나온 건 아니다. 장쟈둔은 ‘중국 붕괴론’이란 책에서 WTO 가입이란 강력한 충격으로 중국의 경제 제도가 5년을 버티지 못하고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WTO가입 이후 중국이 수 년간 두 자리 성장을 계속하고,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난 걸 감안하면 결과적으론 긍정적 시각이 맞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당시 우려했던 ‘대규모 투입-저생산성’이란 경제 모델과 저가 노동력 및 에너지를 과다하게 투입하는 형태는 아직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
 
WTO가입은 중국 경제가 대외로 뻗어나가는 과정에서 이정표가 된 사건이다. 이 때부터 2010년까지 중국 경제는 마지막 두 자리 수 성장을 기록했고, 효율성 떨어지는 거대 국유기업이란 골치 아픈 과제도 상당 부분 치유해 나갔다.
 
WTO가입 발표 전에 중국 주식시장은 최장기 상승을 기록했다. ‘96년 2월 536P를 바닥으로 상승하기 시작해 WTO 가입 직전에 2,000P를 돌파했다. WTO가입에 대한 기대와 함께 ‘92~94년 사이에 주가가 급락해 절대 가격이 낮아진 점 그리고 해당 기간에 중국 경제가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있었다는 점이 주가를 끌어올린 요인이었다.
 
들뜸이 너무 컸던 탓인지 주식시장은 WTO 가입을 몇 달 앞둔 2001년 7월 2,200P를 고점으로 하락하기 시작해 2005년까지 4년반 동안 약세를 면치 못했다. 더 없이 좋은 경제 상황에도 불구하고, WTO가입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국유기업 주식이 시장에 풀리고, 잠재돼 있는 물량까지 출회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시장을 끌어내린 것이다. 2004년부터 중국 경제가 조정국면에 들어간 것도 하락의 빌미가 됐다.

 

 

 

 

 

 

 

2006~2007년 : 최고 호황기. 주가 단기에 600% 상승 이후 1년만에 제자리로
 

2006~2007년 중국은 경제 펀드멘탈과 유동성 모두에서 최고 절정기였다.
 
중국 경제는 3~5년에 한번씩 ‘治理整頓(치리정돈)’이란 조정 과정을 겪는데, 2006년은 2004년 시작된 정돈 과정이 마무리되는 때였다. 이 정돈 과정은 경제뿐만 아니라 기업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줬다. 민영기업의 ‘중형화 운동’이 활발히 진행돼 경기 과열 우려를 불러 일으킬 정도였고, 행정 간섭을 통해 독점 업종에서 국유기업의 지위를 확고하게 다지도록 조치했다.
   
주식시장 내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네 가지로 정리되는데 우선 소액주주 활성화를 위한 주주권 개혁이 일어났다. 국유기업 주식의 민간 불하를 통해 주식보유 인원을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둘째 주가 상승으로 유동성이 자본시장으로 본격 유입되기 시작했다. 중국내 자금 이동으로 2006년 10월에 사상 최초로 은행 저축액이 줄어들었고, 외환보유고가 1조 달러를 넘자 해외 투자자들 사이에서 중국투자 붐이 일었다.
 
셋째 대형 국유기업의 실적이 개선되기 시작했다. 2004년 이후 3년간 매출이 연평균 21.4% 늘었고, 이익 증가율은 33.8%를 기록했다. 수익 증가의 상당 부분이 대형 국유기업의 독점력에서 나왔지만 증가율이 높아 이를 문제 삼는 투자자가 별로 없었다.
 
넷째 해외로부터 자본 유입이 늘어났다. 국유 은행의 지분 매각이 주요 대상인데, 2003년 450억달러, 2005년 150억 달러의 자금이 조성돼 4대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이 8%까지 올리는데 기여했다. 이 조치 이후 2006년과 2007년에 주요 은행의 상장이 이루어졌다. 시장 일각에서는 ‘국민의 자산으로 은행을 세탁하고, 외국인이라는 전략투자자를 끌어들이면서 내자의 진입을 거부하는 것’이 맞는 것인가에 대한 반발이 있었지만, ‘주주권을 이용해 경험을 산다’라는 공산당의 방침 하나에 모든 논란이 사라져 버렸다.

 

 

 

 

 

 

2005년 7월 1020P로 바닥을 찍은 중국 시장은 2006년 1월부터 본격 상승에 들어갔다. 그리고 2007년 10월에 6,000P를 넘었다. 상승이 시작되고 2년 3개월 만에 600% 넘게 오른 셈이다. 지금과 비슷하게 선진국 시장이 오르는 동안에는 조용히 있다가, 특정 계기를 만나 응집돼 있던 에너지가 한꺼번에 분출되면서 빠르게 주가가 오르는 형태였다.
 
하락도 변화무쌍했다.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1년전인 2007년 10월 6,124P 까지 올라갔던 중국시장은 2008년 10월에 1,664P로 내려왔다. 1년 사이에 주가가 73%가 떨어진 것이다. 미국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중국시장이 바닥에 접근하고 있었던 걸 감안하면 금융위기가 중국 주가를 끌어내리는 결정적 요인이었다고 보기 힘들다. 유통되지 않고 있는 국유기업 주식을 시장에 풀지 모른다는 우려가 하락의 빌미가 됐다는 분석이 많지만,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주가 급등에 따른 차익 매물 출회가 아닐까 싶다. 

 
   

 

 

 

 

중국 주식시장 후강통을 계기로 다시 급등. 추가 상승 여력이 있으나 상승이 마무리된 후에는 급락 전망
 
중국시장이 또다시 뜨겁게 달궈지고 있다, 작년 7월 이후 주가가 배 이상 오를 정도인데 최근에 상승 속도가 더 빨라져 하루 1~2% 정도 오르는 건 얘기 거리도 안 될 정도다.
 
상승 동력은 두 개다.
 
하나는 오랜 횡보조정 동안 힘을 비축했다가 특정 사건을 계기로 에너지 분출을 통해 주가가 급등하는 중국시장의 특징 때문이다. 앞에서 여러 번 살펴봤는데 이번에는 후강통이란 개방 조치를 매개로 상승이 시작됐다. 그동안 급등이 한번 시작되면 버블이 생길 때까지 계속되는 경우가 많았고, 전체 상승 폭이 작을 때는 2~3배, 많을 때에는 4배 이상이었던 걸 감안하면 아직 중국시장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높아진 건 아니다.
 
다른 하나는 중국 시장의 가격 메리트다. 지난 6년 사이 많은 선진국 주가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동안에도 중국시장은 2,000P대에 머물러 있었다. 6,000P에서 형성됐던 버블이 다 사라졌고, 지금은 7년간 조정을 거치면서 축적됐던 에너지를 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동성이 핵심 상승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주가 상승은 빠르게 진행될 수 밖에 없다.
 
중국 시장이 좀 더 상승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단기 급등이 부담이 될 뿐 바닥대비 상승 폭은 선진국에 비해 높지 않다. 한번 상승을 시작하면 버블이 만들어지고 난 후에야 상승이 끝나는 특징도 무시할 수 없다.
 
문제는 급등 이후다. 상승이 마무리되고 나서 급격한 하락이 나올 수도 있다. 과거 주가 행태가 이를 보여주고 있고, 중국의 경제 펀드멘탈이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주가가 갑자기 높아져 부담을 견뎌낼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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