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호가 말하는 MLB와 4번 그리고 ‘국거박’
기사입력 2015-02-07 10:33 |최종수정 2015-02-07 10:58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넥센 스프링캠프에서 자전거를 타고 저녁식사 장소로 이동하는 박병호. 그는 슈퍼스타가 됐지만, 자만과는 거리가 먼 이다. 그는 여전히 초심과 겸손을 유지하는 '이승엽류'의 선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인간의 최고 미덕은 인내다. 넥센 1루수 박병호는 그 말이 허언(虛言)이 아님을 현실에서 증명했다.
성남고 시절 최고 유망주 소릴 들었지만, 박병호는 2005년 LG에 1차 지명을 받은 이후 2010년까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LG 시절 통산 타율 1할9푼이 그걸 말해준다. 하지만, 박병호는 현실에 실망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을 단련하며 언젠가 찾아올 ‘때’를 기다렸다. 그 ‘때’가 찾아온 건 2011년이었다.
그해 넥센으로 트레이드된 박병호는 이전의 그와는 전혀 다른 ‘박병호’가 됐고, 단 3시즌 만에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부동의 4번 타자로 등극했다. 중요한 건 최고 스타가 됐음에도 박병호는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애리조나 서프라이즈 넥센 스프링캠프에서 박병호는 팀 내 어느 선수보다 많은
땀을 흘리며 새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미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를 놓고 많은 예상이 쏟아지고 있지만, 박병호는 특유의 인내로 훈련에만 집중한
상태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금부터 시작이다.
캠프에서 박병호가 3루 수비훈련을 하는 장면(동영상=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캠프 훈련 진행 상황은 어떤가.
생각보다 잘 진행되고 있다. 컨디션 조절도 문제 없고(웃음).
지난해 엄청난 활약을 펼쳤다. 그럼에도 캠프에서 정말 열심히 훈련하더라. 염경엽 넥센 감독이 “박병호는 홈런수만큼의 땀을 흘리는 선수”라고 하던데. 그게 과장이 아니란 생각이다.
지난 시즌 52홈런을 치면서 많은 분으로부터 ‘이제 타격에 물이 올랐다’는 칭찬을 받았다. 하지만, 그런 칭찬을 받을 때마다 난 속으로 다르게 생각했다.
다르게 생각?
아직 부족한 게 많다는 생각뿐이었다.
지나친 겸손 아닌가?
(고갤 흔들며) 절대 아니다. 지난해 타석에 설 때마다 ‘내 타격 메커니즘에서 이건 안되는구나’하는 작은 한계를 느끼곤 했다. 그래서 캠프 시작 때부터 ‘내 단점을 극복하자’라는 데 포커스를 맞췄다. ‘열심히 훈련한다’고 말씀하셨는데 내 단점을 극복하려면 훈련량을 늘리는 길밖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내 타격메커니즘에서 이건 안되는구나’하는 작은 한계를 느끼곤 했다고 말했는데. ‘이건 안되는구나’의 정체는 뭐였나.
(신중한 표정으로)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 공에 힘이 느껴지는 투수, 공의 무브먼트가 심한 투수를 상대할 때마다 그 투수들의 공에 배트가 조금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뭔가 생각난 듯) 자세히 보시면 아시겠지만, 타격할 때 간혹 상체가 뒤로 넘어가곤 한다.
강한 공을 치기 위한 자세 아닌가.
맞다. 상체를 조금 뒤로 빼면 반대로 팔을 앞으로 ‘쭉’ 뻗을 수 있다. 강한 공을 던지는 투수를 상대하기 위한 나만의 대처법이다. 그런데 정말 강한 공을 뿌리는 투수와 상대할 때 간혹 타격 타이밍이 늦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그 투수들의 공에 배트가 다소 밀린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 그 투수들을 어떻게 공략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그에 맞는 훈련법을 찾았다. 그 훈련법으로 현재 타격훈련을 진행 중이다.
강한 투수들에게 배트가 밀렸던 대표적 기억이 있다면 그게 언제였을지 궁금하다.
지난해 삼성에서 뛰었던 릭 벤덴헐크가 대표적이지 않을까? 홈런을 뽑아내기도 했지만, 밴덴헐크와 상대할 때마다 내가 더 강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NC 외국인 투수 찰리 쉬렉과 에릭 해커 같은 좋은 투수들과 상대할 때도 마찬가지 생각이 들었고.
박병호가 말하는 ‘국거박’씨
박병호가 잠실구장에서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도는 장면. 박병호는 '국거박'씨에 대해 매우 프로다운 '쿨'한 생각을 나타냈다(사진=넥센) |
지난해 타율 3할3리, 52홈런, 124타점, 96볼넷, 출루율 4할3푼3리, 장타율 6할8푼6리를 기록했다. 홈런·타점·볼넷은 리그 1위, 장타율은 3위, 출루율은 5위였다. 특히나 52홈런은 2003년 이후 11년 만에 나온 ‘한 시즌 50홈런 이상’이라 큰 의미가 있었다.
열심히 뛴 결과라고 본다. 다만, 내 홈런과 관련해 여러 의견이 공존하는 것 같다. 내가 봐도 홈과 어웨이 경기에서의 홈런 차이가 컸다(웃음).
지난해 52홈런 가운데 목동구장에서 때린 홈런이 35개였다. 반면 16경기를 치른 잠실구장에선 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이처럼 홈구장인 목동구장에서 많은 홈런을 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나. 기자가 만나본 기상학자, 심리학자, 야구 데이터 분석가들은 당신이 목동구장에서 홈런을 많이 친 이유로 물리적 조건보단 심리적 안정감을 먼저 꼽는 분위기다.
홈 경기는 경기를 차분히 준비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잘 조성돼 있다. 내 라커룸도 있고. 2, 3경기마다 구장이 바뀌는 원정경기보단 홈 경기에서 느끼는 심리적 안정감이 확실히 큰 게 사실이다. 이는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일 거다. 여기다 홈 경기엔 홈팬들이 많이 찾아와주시다 보니 홈런을 쳐야겠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집중력도 더 높아지는 것 같다.
슈퍼컴퓨터로 목동구장 시뮬레이션을 진행 중이다. 시즌 시작을 앞두고 ‘과학적인 목동구장 파크펙터’가 나오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결과가 나와도 여러 의견은 계속 존재할 테지만.
52홈런을 순전히 목동구장 덕분으로 판단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다. 내 생각은 그분들과 다르다. 하지만, 중요한 건 내가 그분들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점이다. 홈런질에 대한 평가는 내가 하는 게 아니다. 난 앞으로도 어느 구장이 됐든 팀이 필요할 때 더 많은 홈런을 치기 위해 노력할 거다. 그게 내가 신경 써야 할 일 같다.
‘국거박이’ 누군가?
(활짝 웃으며) 포털사이트 야구 기사에 댓글 다시는 분으로 알고 있다.
처음에 ‘국거박’ 하기에 ‘국민거성 박명수’의 준말인지 알았다. 그런데 주변에서 아니라고 하더라. 박병호와 관련된 닉네임이라고 했다. 순간 ‘국민거포 박병호’를 떠올렸다. 나중에 알고 보니 ‘국민거품 박병호’의 준말이었다. 혹시 누군지 알아봤나?
전혀. 지금은 나도 그분을 알지만, 우리 팀 선수들과 직원들은 그전부터 알고 있던 모양이더라(웃음).
가끔 ‘국거박’씨의 댓글은 보나?
원래 기사 댓글을 거의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듣자하니 내 기사엔 무조건 댓글을 다신다고 하더라. 그것도 가장 먼저(웃음).
간혹 그 댓글을 보고 화가 나거나 실망감을 느끼진 않나.
왜 그렇지 않겠나. 하지만, 난 프로 선수다. 우리 구단이 내게 연봉을 줄 땐 그라운드 안에서의 활약만 계산하진 않았을 거다. 그라운드 밖에서의 활약도 염두에 뒀을 거다. 내 이름이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하면 할수록 어쨌거나 우리 팀이 더 많은 팬에게 다가가지 않겠나 싶다. 화가 나고, 실망감을 느껴도 내게 관심을 표명해주시는 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 난 그게 프로 선수의 자세라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국거박’님이 됐든 어느 분이 됐든 그분들의 자유로운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 물론 그분 생각엔 동의하지 않지만(웃음).
“강정호가 빠졌으니 투수들이 날 피해? 피하면 1루로 걸어나가면 된다.”
향후 한국프로야구사에서 오랫동안 회자할 '4번 박병호-5번 강정호' 라인. 박병호는 강정호처럼 국외리그 진출을 시도해도 구단과의 긴밀한 협의 아래 무리없이 진행할 계획이다(사진=넥센) |
지난해 ‘3년 연속 30홈런·100타점 이상’을 기록했다. 그 기록만큼이나 값진 성과가 바로 ‘2년 연속 90볼넷 이상’이 아니었나 싶다. 많은 야구전문가는 당신의 뛰어난 선구안에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도 2년 연속 리그 볼넷 1위에 오른 걸 뿌듯하게 생각한다. 만약 볼넷으로 자주 출루하지 못했다면 타율도 3할 이하로 떨어졌을 거다. 사실 내 볼넷 가운데 고의사구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맞다. 96볼넷 가운데 고의사구는 단 3개였다. 이유가 뭐였다고 보나?
간단하다. 다음 타자가 (강)정호였으니까(웃음). 투수들이 날 쉽게 거르기 어려웠을 거다.
쉽게 거르지 못하니 더 집중해 던졌을 거다. 제구에도 더 각별히 신경 썼을 것이고. 실제로 박병호와 상대하는 투수들은 유인구 하나를 던져도 정말 정성껏 던졌다. 투수가 그렇게 나오면 타자는 타격하기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웬만한 유인구는 다 참으려고 했다. (물 한 모금을 마신 뒤) 2011년 넥센으로 트레이드됐을 때부터 볼카운트에 적절히 대응하는 법을 배웠다. 그게 지금 큰 도움이 되고 있다. 확실히 선수는 경기를 치르면서 깨닫는 거 같다. 내가 계속 풀타임으로 출전하지 못했다면 지금만큼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을 거다.
볼넷도 많았지만, 홈런 타자답게 삼진도 많았다. 지난 시즌 삼진 142개로 부동의 1위에 올랐다. 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삼진 가운데 헛스윙 삼진 비율이 높았다는 것이다.
헛스윙 비율이 왜 높은지 차분히 분석해봤다. 만약 유인구에 헛스윙이 많았다면 내 한계를 인정했을 거다. 그런데 유인구보단 속구에 헛스윙이 많았다.
속구 헛스윙이 많았다?
(고갤 끄덕이며) 그렇다. 스윙 타이밍이 늦었던 거다. 나름 집중 분석해 보니까 하체 중심이동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늦었기 때문이었다. 왼 다리에 체중이 전달돼 오는 느낌이 들 때 스윙 발동이 걸려야 하는데 오른 다리에 계속 체중이 실려 있다 보니 스윙 스타트가 늦어지고, 그 때문에 헛스윙이 많았던 거였다. 그래서 캠프에서 체중 중심 이동과 관련해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앞에서 강정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묻겠다. 기자가 봤을 땐 두 선수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뭐랄까, 시너지 효과가 뛰어났었다고나 할까.
맞다. 내가 4번, 정호가 5번을 치면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 게 분명하다.
그래선지 몇몇 야구전문가는 “강정호의 부재(不在)가 박병호의 타격에 어떤 형태로든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 상대 투수가 박병호와의 정면 승부를 피할 것이고, 그 횟수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박병호의 인내심이 무너지고, 자칫 타격 페이스마저 흔들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런 질문 자주 받는데…음, 일단 정호 공백은…시즌 시작하고, 중반은 돼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만약 올 시즌 내 성적이 좋지 못했을 때 ‘강정호가 없어서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면. (잠시 생각하다가) 음, 굳이 변명 같은 건 하고 싶지 않다. 올 시즌 투수들이 계속 볼을 던지면, 복잡하게 생각할 거 없이 그냥 1루로 걸어나갈 생각이다.
강정호는 올 시즌부터 메이저리그에서 뛴다. 후배의 메이저리그행을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으로 본다. 강정호의 미국 진출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 동료 입장에선 무엇이었다고 보나?
정호는 타격과 수비 양쪽 모두 능한 선수다. 일본인 빅리그 내야수들과 비교한다면 확실히 공격력에서 앞선다. 원체 파워가 있다 보니까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도 그 부분에 높은 점수를 준 것 같다.
만약 당신이 강정호였다면,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이 어떤 점을 집중해 봤을 것 같나?
메이저리그 무대에서 뛴 적이 없어서 감히 미국야구에 대해 말씀드리기 어려울 것 같다. 다만, KBO리그에서 뛰는 외국인 타자들과 비교했을 때 내가 그 선수들보다 파워에서 떨어진다고는 보지 않는다. 내 최대 강점이 파워라 믿기 때문에 그게 더 부각될 수 있도록 노력했을 것이고, 빅리그 스카우트들도 그 점에 주목하지 않았을까 싶다.
메이저리그는 세계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모이는 ‘꿈의 무대’다. 어느 선수라도 그 꿈의 무대에서 뛰고 싶을 텐데. 당신도 예외는 아닐 것으로 믿는다.
지난해 추신수 선배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다. 제 마인드를 잠시 말씀드리면 (짧게 숨을 토해내고서) 난 그렇게 생각한다. 미국야구는 돈 주고도 뛸 수 없는 무대다. 세계 각지에서 몰린 최고의 야구선수들이 뛰는 곳이다. 내가 평생 야구인으로 살아야 한다면 돈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그 최고의 무대를 직접 경험해보고 싶다. 성공 여부는 나중 문제라 생각한다. 성공하면 좋겠지만, 실패해도 빅리그에서 뛰었던 경험이 내 남은 선수생활에 도움이 되고, 거기서 배운 노하우가 후배들에게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난 FA 최고액 경신 같은 것엔 관심 없다. 만약 미국 진출 기회가 찾아온다면 한번 도전해보고 싶다. 그게 내 관심사다.
“내 꿈 이루겠다고 구단을 압박하거나 떼를 쓸 생각 전혀 없다.”
박병호의 타격장면을 보기 위해 넥센 캠프에 몰린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 철망 뒤에 있는 이들이 각 구단에서 파견한 빅리그 스카우트들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문제는 포지션이다. 잘 알겠지만, 요즘 메이저리그엔 파워 넘치는 유격수는 부족해도 1루수나 지명타자는 대개 파워 히터들이다. 1루수인 당신의 빅리그 진출이 ‘어려운 도전’이라 불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정확한 지적이다. 나도 고민하는 부분이다. 메이저리그를 보면 1루수나 지명타자들은 죄다 뛰어난 파워를 자랑하는 선수들이다. 그런 선수들과 날 비교했을 때 ‘1루수 박병호’가 얼마나 매리트가 있을지 나 역시 궁금하다. 내가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선수들보다 조금은 빠른 발이 아닐까 싶다(웃음). 어느 분이 그러시더라. “빅리그에서 20홈런은 쳐야 아시아 1루수로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내가 20홈런을 칠 수 있을진 감히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20홈런을 칠 수 있다는 자신감만은 충분하다는 건 말씀드릴 수 있을 거 같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일본인 선수들은 진출하기 1, 2년 전부터 나름 빅리그 적응을 위한 나만의 훈련법을 진행한다. 메이저리그 공인구로 투구, 타격을 해본다든가 빅리그 선수들의 성향을 고려한 수비연습을 한다든가. 혹시 빅리그 진출을 대비해 따로 준비하는 게 있나?
따로 없다. 그냥 티배팅할 때 외국인 투수들이 잘 던지는 투심패스트볼, 컷패스트볼에 대비해 나름의 연구를 하는 게 전부다. 뭐 그것도 빅리그 진출 대비 훈련이라기보단 원래 하던 훈련이고.
메이저리그는 자주 보나?
자주 보는 편이다. 메이저리그 하이라이트는 꼭 챙겨보고 있다.
확실히 KBO 투수들과는 다른 것 같나?
당연하다.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달라 보이나?
공격적인 투수가 많다. KBO리그 외국인 투수들만 봐도 볼넷 내주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공의 움직임이 확실히 다른 것 같다. 힘 좋기로 소문난 메이저리그 타자들이 짧고 간결한 스윙을 하는 것도 원체 빅리그 투수들의 공이 빠르고, 무브먼트가 좋기 때문이다. 타격 시 최대한 몸을 움직이지 않는 것. 그게 빅리그 타자들이 살아남는 길 같다.
그 때문에 강정호의 타격에 우려를 나타내는 이가 적지 않다.
타격할 때 다리 드는 것 때문에? 나도 여기저기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정호 성격이라면 일단 부딪힌 다음에 고민할 거 같다. 그리고 반드시 대처 방안을 찾아낼 거다. 주변에서 아시는 것보다 더 좋은 타자니까.
지난해 이맘때 강정호는 이미 메이저리그 진출을 위해 구단과의 합의로 에이전트를 선임하고, 그 에이전트를 통해 활발한 ‘쇼케이스’를 진행했다. 당신은 어떤가.
내가 FA(자유계약선수)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난 국외 진출을 하려면 포스팅 시스템을 거쳐야 하고, 무엇보다 구단 동의가 필요하다. 에이전트 선임은 차후 문제다. 구단과 그 문제로 논의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특히나.
특히나?
지금은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이다. 구단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하겠나? 내 개인적 꿈 때문에 구단을 압박하거나 떼쓸 생각이 전혀 없다.
음.
(담담한 목소리로) 내가 한창 LG에서 방황할 때 내 가능성을 보고 ‘트레이드’라는 도박을 한 팀이 바로 넥센이다. 내가 지금껏 성장한 것도 넥센 지도자분들이 부족한 내게 기회를 주고, 중용해줬기 때문이다. 특히나 넥센 동료와 팬이 없었다면 지금의 박병호는 예전의 박병호와 다를 게 없었을지 모른다. 내 꿈도 중요하지만, 우리 팀의 꿈도 중요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문제는 구단 뜻을 존중할 생각이다.
'대한민국 프로야구 4번 타자' 박병호의 부담과 책임감
한국 프로야구 대표 4번 타자 박병호(사진=도현석 작가) |
많은 이가 올 시즌 또다시 박병호가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궁금해하고 있다. 올 시즌 목표로 하는 게 있다면 그게 무엇인지 궁금하다.
올 시즌 개인적 목표는 지난해 부족했던 면을 보강하는 거다. 팀을 위한 목표는 역시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지만, 4번 타자로서 보여 드린 게 없었다. 지난해 우승 문턱에서 내가 하나씩만 쳤어도 그 문턱을 넘을 수 있었을 거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가 끝났을 때 주변에서 “아쉽겠다”고 했을 때 정작 난 “아쉽습니다”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건 무슨 뜻인가.
내가 잘하지 못했는데 ‘아쉽다’라니.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서 “아쉽습니다” 대신 “책임감 때문에 괴롭습니다”라고 했던 거다. 팀 동료와 팬들께 정말 죄송했으니까. 메이저리그 진출 여부보다 중요한 건 올 시즌 4번 타자로서 정말 내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거다. 그러다 보면 우리 팀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할 수 있을 거다.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이끈다면 국외 진출 추진 시에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질 것 같다.
그보단 우승이 어떤 느낌인지 정말 나도 한 번 느끼고, 경험해보고 싶다.
꼭 한번 물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혹시 4번 타자에 대한 부담을 느끼나?
부담? 없다.
그럼?
책임감이 느껴진다. 팽팽한 접전일 때 ‘내가 뭔가 해야 하는데’하는 강한 책임감만 느낄 뿐이다.
많은 이가 당신을 가리켜 ‘대한민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4번 타자’라고 칭한다. 그런 소릴 들을 때도 책임감을 느끼나?
반대다. 그런 수식어가 붙으면 책임감 대신 부담감이 느껴진다. 시즌이 끝날 때마다 항상 하는 게 있다.
그게 뭔가?
시즌이 끝나면 머릿속에서 그해 시즌을 완전 리셋하고, 초심으로 돌아가는 거다. 요즘도 인터뷰 때마다 내가 ‘초심, 초심’하는 건 그래야 전해 기억을 잊을 수 있고, 그래야 노력하는 마음, 야구하는 걸 행복해하는 마음이 다시 생겨나기 때문이다.
당신처럼 유명한 프로야구 선수에겐 그라운드 밖의 책임감도 강하게 요구된다.
많이 느끼고 있다. 정말 많은 분이 날 알아봐 주신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도 조심하게 된다. 우리 팀 후배 (서)건창이, (김)민성이를 보면 나이는 어리지만, 야구 외적인 태도가 참 좋다는 걸 느낀다. 덕분에 나도 더 책임감 있게 생활할 수 있는 거 같다.
올 시즌 팀과 팬들께 전달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지 궁금하다.
만족하지 않고, 해마다 발전하는 박병호를 보여 드리고 싶다. 난 지금의 성공을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성공을 향해 해마다 발전하고 있을 뿐이다. 52홈런을 쳤지만, 개인적으론 지난해가 가장 스트레스가 심했던 해였다.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 자신을 위해 계속 발전하고 싶다.
(인터뷰가 끝나고서) 기부활동은 계속하고 있나?
인터뷰 기사에 쓰실 건가?
글쎄. 그냥 생각 나 묻는 거다.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다.
왜?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괜히 생색내는 것 같아서 싫다.
생색? 프로야구 선수가 기부활동에 나서는 게 어째서 생색내기인가? 되레 ‘박병호 같은 대스타가 기부활동에 열심히’라는 이야기가 전해져야 더 많은 야구인이 기부활동에 참가하지 않겠나? 기자가 알기로 20살 때부터 모교 중학교 후배들을 위해 도움을 준 것으로 안다. 최근엔 야구 저개발국에 야구가 전파될 수 있도록 후원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고.
난 야구 덕분에 많은 걸 받은 사람이다. 지금 인터뷰하는 것도 내가 야구를 했기 때문이다. 나처럼 이런 기회를 제공받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요즘 나같은 기회를 제공받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을 위해 내가 어떤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수줍게 웃으며) 그 고민이 홈런 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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