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경철·리오단, LG서 인생역전 꿈꾼다
OSEN= 윤세호 기자 l 2014.07.16 06:19
[OSEN=윤세호 기자] 현대 사회와 마찬가지로 프로야구도 냉혹한 피라미드 구조로 이뤄졌다.
최상위에 자리한 소수 선수들이 엄청난 인기와 연봉을 독차지한다.
그라운드에는 수만 명 팬들이 그들의 유니폼을 입고 그들의
이름을 외친다.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며, TV·지면 광고에 얼굴이 실리기도 한다.
팀 성적과 개인 성적까지 좋다면 완벽하다. 이렇게 매일 매일이 즐거운 직업은 세상이 없을 것이다.
반대로 2군 선수들은 무거운 그림자에 갇혀 지낸다. 무관심 속에서 최저연봉을 받는다. 땡볕 아래서
경기가 열리고, 관중의 함성 소리 대신 생생한 타격음이 귀를 간지럽게 한다. 코칭스태프의 꾸짖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 때도 있다. 경기 후 수훈선수 인터뷰도 없고, 기사 한 줄도 당연히 없다. 물론 입단한 지
얼마 안 된 유망주들은 소수의 광팬들이 매일매일 성적을 챙겨준다. 그러나 이미 프로 6, 7년차를
넘긴 2군 선수들은 잘하든 못하든 똑같다. 이렇게 매일 매일 그만두는 것을 고민하게 만드는 직업도
세상에 없을 것이다.
LG 포수 최경철과 선발투수 코리 리오단은 후자에 속했던 선수다. 동의대 졸업 후 2003 SK에 입단한
최경철은 작년까지 단 한 시즌도 1군서 풀타임을 소화한 적이 없다. 언제나 팀의 세 번째 혹은 네 번째
포수였고, 누군가 부상당해야 1군에 오를 수 있었다. 남의 불행이 자신의 행복이었고 그 행복도 길어야
한 달 정도였다. 1군 포수가 회복하면 곧바로 2군으로 내려갔다. 누군가의 대타로 살았다.
국적은 다르지만 리오단의 처지도 최경철과 비슷했다. 리오단은 대학 졸업 후 2007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전체 6라운드서 콜로라도의 지명을 받았다. 이후 리오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한국프로야구 2군만큼이나
냉혹한 마이너리그였다. 특급 유망주가 아니었기에 별다른 관심도 받지 못한 채 6년을 보냈다.
구글에서 ‘Cory Riordan'을 검색하면, 리오단과 관련된 뉴스는 하나도 없다.
지난해 4월 최경철이 트레이드로 LG 유니폼을 입었을 때 최경철을 아는 많은 이들은 기대에 앞서
걱정부터 했다. “최경철이 정말 어울리지 않는 팀에 갔다”고 입을 모았다. 항상 조용했고,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최경철이 LG와는 전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트레이드는 선수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뤄진다. 최경철도 그랬다. 그냥 눈 뜨고 일어나니 연일 핫이슈인 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활약하면 뜨거운 찬사를 받지만, 실수라도 저지르면 몇 배의 냉혹함을 맛봐야한다. 실제로
2007시즌 내야 플라이를 잡지 못한 LG의 한 내야수는 날카로운 팬들의 비난 속에서 팀을 떠났고,
이듬해 은퇴했다.
지난 1월 코리 리오단의 LG 입단 소식이 알려지자 LG 팬들은 분노 가득한 탄식을 내뱉었다. 당시 LG를
제외한 8개 구단은 메이저리그 선수, 혹은 마이너리그 특급 유망주 출신과 계약했다. 반면 리오단은
2013시즌 트리플A서 평균자책점 6.75를 기록한 변변치 않은 투수였다. 탈삼진(56개)대비 볼넷(25개)이
적다는 것과 장신(193cm)인 것 외에는 주목할 부분이 하나도 없었다.
한 지도자는 최경철을 두고 “연습할 때는 최고의 포수다. 그런데 실전에선 연습할 때의 모습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전형적인 새가슴 과다. 위기에 몰리면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매번 똑같은 선택을
한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리오단의 마이너리거 시절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연속으로 안타를 맞는
경우가 빈번하다.
구위가 좋지만 한 번 흔들리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대량 실점한다. 마운드 위에서 강한 정신력이
필요하다”고 적혀있다.
프로야구 세계가 현대 사회와 또 비슷한 점은, 매 시즌 신데렐라맨이 탄생한다는 것이다. 많은
지도자들이 “1군 선수나 2군 선수 모두 같은 프로선수다. 기량만 놓고 보면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관건은 기회가 주어지느냐, 그리고 얼마나 자신과 맞는 환경에서 뛰느냐다. 실수했을 때 무겁게
다가오는 부담감, 실패 후 피할 수 없는 좌절감도 극복할 수 있어야한다.
최경철과 리오단 모두 올 시즌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얻었다. 최경철은 LG 포수진의 줄부상과 컨디션
난조로 대체 불가가 됐다. 리오단은 5경기 정도는 메이저리그만큼이나 시끄러운 무대서 선발 등판하는 게
보장됐다. 잘 하면 살아남고 못하면 짐을 싸야한다. 그래도 살아남으면 마이너리그 5년치 연봉을 1년
만에 벌 수 있다. 내년에 재계약이라도 하면, 준메이저리거 대우를 받는다.
시작은 불안했다. 주전포수 마스크를 쓴다고 잠재력이 갑자기 터지지는 않는다. 끝없는 자기반성을 통해
실수를 줄여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5월 초까지 장광호 배터리 코치, 이후에는 김정민 배터리
코치와 매번 지난 경기를 복기했다. LG 투수와 상대 타자들을 매일 연구했다. 포수는 잘해야 본전이다.
실수했을 때의 억울함도 가슴 깊은 곳에 누를 수 있어야 한다.
한 단계씩 진화했다. 최근 최경철은 주자가 있다고 투수에게 한 없이 피치아웃을 주문하지 않는다.
바깥쪽에 치우친 리드도 없다. 볼카운트가 유리하면 변화구를 요구하거나 스트라이크 존에서 한 참
빠진 공으로 투구수를 낭비하지도 않는다. 투수가 좋다면, 과감하게 삼구삼진을 머릿속에 그린다.
몸쪽을 요구하는 횟수도 부쩍 늘었다. 강약 조절을 통해 투수를 지휘하고 상대 타자를 괴롭힌다.
리오단은 지난 3월 22일 KIA와 시범경기서 잠실구장 만원관중에 완전히 압도당했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우렁찬 관중들의 함성에 위축됐고 3이닝 동안 5개의 볼넷을 범하며 2실점했다. 이날 부진으로 리오단의
시즌 개막전 선발등판도 취소됐다. 한 LG 선수는 리오단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한국에서 반드시 성공
해야만 한다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그 절실함이 주체할 수 없는 긴장감으로 바뀌는 듯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리오단은 시즌 초
까지도 실점하거나 득점권에 주자를 놓으면 ‘멘붕’에 빠진 채 빈번히 사인미스를 저질렀다. 그리고 이는
여지없이 폭투로 이어졌다.
5월 12일 양상문 감독 데뷔전을 하루 앞두고 리오단은 1군 엔트리서 말소됐다. 당시 리오단의 성적은
1승 5패 평균자책점 5.15였다. 7경기 중 3경기서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한 것 외에는 내세울 게 없는 성적
이었다. 당연히 퇴출을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하지만 양 감독은 “휴식기가 있어서 리오단을 엔트리서 뺐다. 절대 퇴출이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눈여겨본
투수고 좋아질 부분이 있기 때문에 몇 가지를 고쳐볼 것이다. 직접 지도하고 2군 등판까지 시킨 후 다시
올릴 계획이다” 고 밝혔다.
5월 22일 양 감독의 계획대로 리오단은 1군에 복귀했고 전혀 다른 투수가 됐다. 양 감독의 주문에 따라
리오단은 투구시 양쪽 어깨의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러자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향상되는 최상의 결과
를 얻었다. 투구수 100개가 넘어가도 145km 이상의 패스트볼을 던진다.
5월 22일 KIA전부터 리오단은 9경기서 56⅔이닝을 소화하며 5승 1패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 중이다.
지난 8일 두산전을 제외하면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를 달성, 극심한 타고투저 속에서 몇 안 되는 호투 보장
수표로 올라섰다.
최경철과 리오단은 지난 15일 리그 최강 삼성을 7-1로 완파하는 데 중심에 자리했다. 리오단은 단 한 차례만
득점권에 주자를 허용한 채 7이닝 1실점으로 시즌 6승을 거뒀다. 최경철은 2회말 만루에서 밀어내기 볼넷으로
팀의 선취 타점을 올렸고 8회 말에는 싹쓸이 2루타로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날 4타점은 최경철의 통산
한 경기 최다타점이다.
경기 후 리오단은 “최경철 포수의 리드가 좋았다. 몸쪽 공에 대해 최경철 포수와 꾸준히 이야기를 나눈다.
몸쪽 공으로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니 다른 부분도 살아난다”고 밝혔다. 최경철은 “리오단은 한 번만
잡아주면 그대로 길게 유지되는 경우가 많다.
오늘도 3회초에 볼넷을 범하며 불안했는데 그 때 리오단에게 침착하게 낮게 잘 던져보자고 한 게 주효했던
것 같다”며 “변화구보단 패스트볼의 제구가 좋았다. 패스트볼 위주로 적극적으로 리드한 게 잘 먹힌 것 같다”
고 말했다.
양 감독은 최근 최경철에 대해 “많이 좋아졌고 더 좋아지고 있다. 경철이가 내가 감독을 맡은 경기서 10년
만에 홈런을 쳤는데 아무래도 나와 경철이가 잘 맞는 것 같다”고 웃었다. 리오단의 마이너리그 성적과
무관한 대반전을 두고는 “사실 직접 마이너리그에 가서 보면 안타까운 투수들이 많았다.
‘조금만 손대면 훨씬 좋아질 텐데...’라고 느끼곤 했었다”며 “리오단도 이런 케이스가 아닌가 싶다.
제구가 잡히고 자신감이 생기면서 급격히 좋아졌다”고 밝혔다.
물론 이제 막 전반기가 끝났을 뿐이다. 최경철과 리오단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세 달 후, 49경기가 더
진행된 시점에서 해도 늦지 않다. 둘 다 아직은 과정에 있다. 그래도 둘은 지난 두 달 동안 수차례 수훈
선수로 선정됐다.
작년까지는 자신들과 무관했던 인터뷰 등의 스포트라이트를 꾸준히 경험하고 있다. 시즌 끝까지 지금의
모습이 유지된다면 둘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위치에 서 있을 것이다.
한편 둘 다 오는 17일부터 시작되는 프로야구 방학을 뜻 깊게 보낼 예정이다. 최경철은 양상문 감독의
추천에 힘입어 처음으로 올스타전에 출장한다. 리오단은 한국에 들어온 여자 친구와 함께 서울 투어에
나선다.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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