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산업 경쟁력 어디까지 왔나]강도 높은 구조조정 '위기이자 기회'
매경이코노미 | 입력 2014.07.04 15:13
한류 열풍 활용해 소비재 시장 적극 진출, 한국적 브랜드 잘 살려야 부품·소재 역량 강화 필수, 중국을 경쟁자로만 바라보는 인식은 위험
"기회는 단지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중국의 유명한 속담이다.
지금 중국은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지난 10년간 중국 산업 경쟁력은 더할 나위 없이 강해졌다는 평가다. 수출과 내수,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좇아온 중국은 거대 인구를 기반으로 양적 성장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도 잇따랐다. 지방정부 간 과다한 경쟁은 무분별한 중복투자로 이어졌다. 이는 과잉투자로 연결되면서 생산성 하락을 불러왔다. 전반적인 제조 경쟁력은 상승했지만 품질 관리, 서비스 역량 등에서는 허점을 보였다. 주요 기업 브랜드 가치도 글로벌 기업과 비교하면 아직 낮은 수준이다. 최근 불거진 '그림자금융(잠깐용어 참조)', 지방정부 부채 증가 등 여러 위협도 도사린다.
중국 정부는 내수 개발에 눈을 돌리면서 전 분야에 걸쳐 강도 높은 산업 구조조정을 하는 중이다. 이런 변화는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다.
부품·소재·장비 분야 기술 키울 때 FTA 통해 전략적 틈새 시장 발굴 인간중심 디자인·아이디어 주목해야
지금까지 중국은 철저히 정부 주도 아래 산업 발전 전략을 세웠다. 2011년부터 시작해 내년에 마무리되는 '12차 5개년 계획'이 대표적이다. 이번 계획의 핵심은 고성장에서 벗어나 도시와 농촌 간의 빈부격차 해소 등 포용적인 성장을 강조하며 각종 불균형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는 그동안 중국 정부가 추진해온 산업 육성 전략과 분명 차이가 있었다. 기존 양적 확장 전략에서 벗어나 산업 체질 개선에 중점을 맞춘 계획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구조조정' 중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계획이 중국의 문제점을 제대로 파악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성공 가능성에 대해선 '반신반의'한다. 과도한 산업 구조조정은 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있다. 속도 조절이 필수란 얘기다.
국유 기업 중심 산업구조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그야말로 치명타다. 최근 중국은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판유리, 조선 등 국유 중심 기간산업의 과잉투자를 줄이고 민영화를 추진 중이다. 근본적 체제 개혁 없는 구조조정은 실패할 가능성도 높다.
홍창표 코트라 중국사업단장은 "산업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전체 산업구조가 발전할 수 있다. 국유 기업 개혁은 필수지만 공산당 간부 등 기득권 반발이 만만찮다.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향후 신성장동력으로 '7대 신흥 산업 개발 계획'을 발표했다. 신재생에너지, 친환경 자동차, 신소재, 생물, 에너지 절약과 환경보호, 첨단장비, 차세대 정보기술 등 7개 분야를 중점적으로 키우겠다는 전략이다. 2020년까지 이들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2015년 8%에서 2020년 1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한상완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총괄본부장은 "양적이 아닌 질적 성장에 초점을 맞추면서 산업구조도 멀리 보면 환경, 신재생에너지 등 신흥 산업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정부가 발표한 7대 신흥 산업은 우리의 신성장동력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향후 중국과의 경쟁은 필연적"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하지만 중국 전문가들은 한·중 관계를 '산업 경쟁자'로만 바라보는 시각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산학연 공동 R&D(연구개발)를 활성화하고 기술 협력을 강화하면 한·중 양국이 세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박승찬 중국경영연구소 소장은 "신산업은 위험이 크고 독자적인 힘으로는 한계가 있다. 양국의 적극적 교류를 통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협력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중국 내수 시장은 '세계의 큰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2008년 이후 중국 내수 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이는 중이다. 근로자 임금이 계속 상승하면서 구매력 또한 증가 추세다. 각종 기술과 콘텐츠 소비도 늘고 있다. 2020년까지 중국 내륙 지역 도시화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스마트시티 건설, 통신망 구축 등 중국 내 인프라 산업 공략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면 중국 내 인프라 투자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곤란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국 정부는 1차적으로 자국 기업에 기회를 주기 때문에 우리 기업 입장에선 소비재나 IT 부품 같은 자본재 틈새 시장을 노려야 한다"는 게 임형록 한양대 경영학과 교수 생각이다.
중국인 생활수준 향상으로 각종 소비재나 의료, 관광, 교육 등 서비스 분야 기대치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좋은 기회지만 아직까지 준비 상황은 미흡한 편이다.
조용준 하나대투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연예, 영화 같은 문화 산업은 중국이 가장 중요한 시장으로 떠올랐다. 우리는 한류 열풍을 등에 업고 있으면서도 체계적으로 진출하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코트라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 상품 중 내수 시장을 겨냥한 제품 비중은 전체의 33.7%에 불과하다. 반면 가공무역 비중은 지난해 중국 수출에서 절반(47.6%)에 달했다. 가공무역이란 다른 나라에서 원재료나 반제품을 수입한 뒤 가공·제조해 만든 완제품을 다시 수출하는 형태를 말한다.
현재 중국 정부는 가공무역품 관세 혜택을 줄이고 있다. 가공무역 중심의 중국 수출구조를 하루빨리 최종 소비재 위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한·중 FTA를 통해 중국 소비 시장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이준엽 인하대 국제통상학부 교수는 "중국에서 건강, 의료 서비스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 이들 제품 품질과 브랜드 가치를 올려야 중국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업은 보통 조립 → 부품 → 소재 순서로 발달한다. 전문가들은 현재 중국의 산업 수준이 조립 초기 단계라고 분석한다. TV, 냉장고, 에어컨 등 가전제품의 조립 경쟁력은 세계적이다. 스마트폰, 태블릿PC 등도 선진국 수준을 많이 따라왔다. 결국 우리가 제조업에서 중국과 차별화된 경쟁력을 보이려면 부품·소재 산업 육성이 필수적이다. 중국 역시 주력 산업 구조를 부품과 소재 쪽으로 바꾸고 체질을 개선하는 데 힘쓰는 중이다.
이봉걸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연구위원은 "조립완성품 시장에서는 중국이 결국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핵심 부품과 소재, 장비 분야 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부품·소재 중소·중견기업을 새로운 산업주체로 만드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조철 산업연구원 국제협력실장도 비슷한 의견이다. "중국 소비재가 고급화되면서 일정 수준 이상 품질을 가진 부품이나 소재, 장비 수요가 늘고 있다. 우리도 취약한 부분인 만큼 하루빨리 부품·소재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이를 위해선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장기 산업구조 고도화 전략과 장기 로드맵을 구축해 '제조업 업그레이드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부 전문가들은 주요 산업마다 '한국적 브랜드'부터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본력이 탄탄한 중국이 따라 할 수 없는 우리만의 상품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것. 기업은 매번 엄청난 과학적 발견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건 아니다. 애플 아이폰처럼 인간 중심적이지만 작은 혁신들은 언제든 시장에서 환영받는다.
"대규모 설비 투자가 아닌 새로운 아이디어와 디자인에 역량을 쏟고 한국적 특색을 살리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앞으론 인간 중심 디자인과 아이디어, 감성적 접근에 주목해야 중국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은종학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의 분석이다.
잠깐용어*그림자금융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면서도 은행과 같은 엄격한 건전성 규제를 받지 않는 금융기관과 이들 금융기관 사이의 거래.
[강승태 기자 kangst@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1764호(07.02~07.08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