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동북아..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다
中 '강한 국가' vs 美 '대중국 포위'…日, 北에 전략적 접근 北, 中서 탈피 다변화 외교…韓, 한반도 문제 주도적 역할 필요
연합뉴스 | 입력 2014.07.03 19:55 | 수정 2014.07.04 09:41
中 '강한 국가' vs 美 '대중국 포위'…日, 北에 전략적 접근北, 中서 탈피 다변화 외교…韓, 한반도 문제 주도적 역할 필요
(서울=연합뉴스) 장용훈 기자 = 동북아시아 정세가 각국의 전략적 이해관계 속에 요동치고 있다. 이 지역에 더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친구'도 없는 양상이다.
중국은 G2(주요 2개국)로 부상하며 미국과 갈등하고 있고, 미국은 패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중국 위협론'을 내세우며 동북아의 동맹국들과 전열을 다지는 모양새다.
이 틈바구니에서 일본 아베 정권은 과거사를 부정하면서도 미국의 지지를 업고 집단자위권을 확보하는 한편 북한과도 납치 문제 해결에 적극 나서 한·미·일 대북 압박공조에 균열을 야기하고 있다.
북한은 장성택 숙청 이후 소원해진 중국과 관계를 러시아, 일본과의 관계개선으로 메우면서 남한에 대해는 '특별제안'과 단거리 로켓 발사로 관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한반도에서 동북아 관련국들이 국가 이익을 바탕으로 각축하면서 한국 정부에게는 갈수록 어려운 과제가 던져지는 셈이다.
◇ 中, '강한 중국' 실현 나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2012년 11월 공산당 총서기 취임 일성으로 "국제 지위에 걸맞고 국가 안보와 이익에 부응하는 강한 군대를 건설하는 것이 전략적 임무"라며 '강한 중국'을 선언했다.
중국의 국방 예산은 2011년 12.7%, 2012년 11.2%, 2013년 10.7%, 2014년 12.2% 등으로 두자릿수 증가율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신형대국 관계를 내세우며 '핵심 이익'의 상호 존중과 평등한 양자관계를 강조하면서 일본에는 센카쿠(댜오위다오) 영유권 분쟁, 역사 문제 등을 놓고 치열한 공세를 펴고 있다.
특히 작년 11월에는 동중국해에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하고 동중국해, 남중국해에 대한 순찰과 해상 훈련을 강화했다.
시 주석은 지난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 회의(CICA)' 정상회의에서 이 회의체를 아시아 지역의 안보협력기구로 만들자면서 "아시아의 일과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하며 아시아의 안보 역시 아시아인들이 수호해야 한다"며 아시아 국가의 대미 안보의존을 꼬집었다.
그는 3일 방한에 앞서 일부 국내언론에 보낸 특별기고문에서도 "중한 양국은 복잡한 안보환경의 도전에 함께 대처해야 한다"며 "지역안정의 대국(大局)에 손해를 끼치는 어떠한 행동도 반대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언급은 북한뿐 아니라 대중국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미국과 동맹국들도 함께 겨냥한 것으로 풀이된다.
시진핑 주석이 혈맹관계인 북한보다 남한을 먼저 찾는 것도 새로운 국제적 지위를 추구하는 중국의 국가전략에 입각한 것으로 보인다.
이희옥 성균관대 교수는 "중국이 북한에 대한 압박보다는 북중관계를 일반 양자관계로 가져가면서 한반도 상황 관리라는 목적에서 남한을 (먼저) 찾은 것으로 봐야할 것"이라며 "대국을 지향하는 시 주석은 이번 방한에서 아시아 문제에 대한 한국의 협력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 美, 동맹국에 역할 분담 요구
한때 국가부도 위기까지 몰리며 경제적 위상이 추락한 미국은 국제사회 영향력도 떨어지는 모양새다.
미국 국방부는 올해 3월 발표한 '4개년 국방전략 검토보고서'(QDR)에서 국방예산의 축소와 육군 감축 계획을 밝혔다.
보고서는 미국 정부의 아시아 중시 정책에 기여하기 위한 국방 정책의 핵심이 아·태 지역 국가들과의 안보 동맹을 강화하고 현대화하는 일이라며 한국과 더불어 호주, 일본, 필리핀, 태국을 동맹국으로,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베트남을 주요 협력국으로 각각 지목됐다.
결국 아시아 중시정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미국은 대중국 포위전략을 위해 동맹국들의 역할 분담을 강조한 셈이다.
미국이 최근 일본 아베 정권의 집단자위권 결정에 지지 입장을 밝힌 것도 아시아에서 군사적 공백을 일본이 대신해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또 미국은 한국에 대해서는 미사일방어(MD)체제 참여를 요구하고 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한미연합사령관은 고(高)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 문제와 관련해 "미측에서 추진을 하는 부분이고 제가 또 개인적으로 (미국 군당국에)사드의 전개에 대한 요청을 한 바 있다"고 밝혔다.
최종건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미동맹은 기본적으로 대북억제를 기반으로 해왔는데 대중국 억제로까지 확대를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라며 "(그럴 경우)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 日, 줄타기 외교로 국익 극대화
일본은 미국의 역할분담 요구를 수용하면서 반대급부로 전략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2013년도와 2014년도 2년 연속으로 방위예산을 전년대비 증액하며 미국이 요구하는 대중국 포위망의 첨병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러면서 집단자위권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를 끌어내 자위권을 갖지 못한 절름발이 국가에서 정상국가로 전환을 꾀하고 있다.
또 아베 총리는 지난 4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센카쿠 열도를 미·일 안보조약의 적용대상으로 명기한 미·일 정상회담 공동성명을 도출해 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베 정권은 일본 농업에 타격이 될 수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체결을 미루고 있다. 또 미국 정부의 우려에도 과거사 문제에 대해 보수적 기조를 유지하는 국내 정치를 하고 있다.
일본의 과거사 왜곡과 집단 자위권에 대해 한국과 중국 등 주변국의 우려가 나오고 있음에도 아베 정권은 정해놓은 길을 걷고 있고 미국은 이를 사실상 방관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지난 5월에는 북한과 당국간 협의를 갖고 북한의 납치 문제 재조사와 일본의 독자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주고받는 합의를 했고 시진핑 주석이 방한한 이날 전격적으로 일부 제재 해제결정을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취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재임 중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의지를 표명한 만큼 '약속을 이행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는 국내정치적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 北, 틈새 노려 새 '짝짓기' 시도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2013년 12월 장성택 처형으로 온전히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나라를 만든 북한은 동북아 지역에서 외교적 틈새를 파고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혈맹이라 불리던 북중관계는 소원해졌지만, 일본의 아베 정권과 납치문제 재조사에 합의하고 제재 일부 해제를 이끌어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유럽 가는 길'이 어려워진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북한의 최고지도자가 바뀐 효과라는 것이 일부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김 제1위원장의 입장에서는 일본인 납치문제나 지나치게 밀착된 북중관계가 부친인 김정일 위원장의 유산인 만큼 그 책임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시진핑 주석이 남한 방문을 먼저 선택하는 등 북중관계가 일반적인 양자관계로 변모하는 상황에서 북한은 러시아와 일본으로 외교노선을 다변화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올해 1월 김 제1위원장의 신년사와 국방위원회의 '중대제안', 2월 고위급 회담과 이산가족 상봉합의, 지난달 '특별제안' 등 남북관계 개선에 목을 매는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 이해할 수 있다.
북한의 입장을 대변해온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2일 "내년 분단 70돌을 맞아 조선의 최고수뇌부는 민족분열의 역사에 끝장을 내려는 단호한 결심이 이미 굳혔다고 전해지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 韓, 한반도 문제에 주도적 역할 필요
급변하는 동북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한국 정부는 그 어느 때보다 유연하고 창조적인 외교력을 요구받고 있다.
한국은 작년 수출액의 26.1%를 중국에 수출했고 대중 무역흑자 규모도 연간 600억 달러에 달한다. 여기에다 중국은 지리적으로도 바로 인접해 있다.
반면 미국은 사실상 MD체제 참여를 요구하며 한국 정부가 대중국 포위망의 한 축이 되기를 희망하는 신호를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는 지난달 18일 미국 워싱턴DC 우드로윌슨센터에서 동아시아 재단(이사장 공로명)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의 위협요인 평가' 세미나에서 "한·미 양국은 현존하고 점증하는 안보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준비태세와 상호운용성을 높이고자 지속적으로 협력하고 있다"며 "이것은 탄도 미사일 방어(MD) 및 정보 감시·정찰능력과 관련된 투자분담을 포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최종건 교수는 "한국의 MD 참여는 중국 정부가 생각하는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 될 것"이라며 "중국 정부의 잠재적 타격 리스트에 들어가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만큼 우리 정부의 지혜로운 대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북한 문제에서도 박근혜 정부의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시 주석이 한국을 먼저 찾기는 했지만 북중관계는 경제와 사화문화 교류를 바탕으로 꾸준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러시아가 북한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고 일본까지 납치문제 해결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대북접근을 가속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반도 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쥐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동북아 각국이 북한문제를 자국 이익을 바탕으로 접근하고 있는 만큼 유연성있는 대북정책이 필요하다"며 "핵문제로 근본적 해결책을 찾기는 어렵더라도 대화채널을 열고 소통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jyh@yna.co.kr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