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거지는 차이나 리스크_수출 부진] 수출 먹구름에 '중국 모델 종말론' 부상
대홍콩 역기저 효과로 1분기 ‘우울’…선진국 경기 회복이 관건
한경비즈니스 | 입력 2014.06.02 14:57
2년 전 미국의 유명 펀드매니저 리처드 던컨은 자신의 저서와 여러 인터뷰에서 "중국 모델은 끝났다. 물건을 사 주는 사람이 없는 상황에서 중국은 성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며 "향후 10년간 연평균 3%대 성장에 그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정말 중국의 물건을 사 줄 나라들이 사라진 것일까. 올 들어 중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해 온 수출에 빨간불이 켜졌다. 중국의 수출은 지난 2월에 이어 3월에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4월 수출은 3개월 만에 플러스로 돌아서긴 했지만 세계의 성장 엔진이 꺼지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은 시장에 여전하다.
홍콩 수출 제외하면 전체 수출 '증가'
중국 해관총서(세관)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 2월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18.1%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3월의 수출도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6.6% 감소해 2개월 연속 부진했다. 2월 수출이 워낙 급감했던 때문에 3월엔 적게나마 수출이 증가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 하지만 4.8% 증가할 것이란 시장 전망치와 반대로 중국의 수출은 또다시 곤두박질쳤고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중국의 수출과 수입이 모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국제 교역에서 중국이 과거의 에너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 초 중국은 수출 강국의 지위가 흔들릴 뿐만 아니라 수입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3월 중국의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1.3% 감소해 수출과 내수가 동시에 부진했다. 전반적으로 올해 1분기 수출과 수입 증가율이 각각 마이너스 3.5%, 2.0%로 작년 1분기 증가율인 27.3%, 16.2%에 비해 크게 부진했다. 그나마 4월 수출액이 1885억4000만 달러(193조 원)로 전년 동월 대비 0.9% 성장해 경착륙 우려가 다소 줄었지만 수출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더디다는 게 글로벌 경기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그러면 1분기 중국의 수출은 왜 부진의 늪에 빠졌을까. 가장 큰 요인은 대홍콩 수출 감소 때문이다. 중국의 전체 수출 중 홍콩이 차지하는 비율은 18%로, 유럽 전체 19.6%, 북미 18.7% 등과 맞먹을 정도다.
그런데 올 들어 중국의 대홍콩 수출은 1월 마이너스 18.3%, 2월 마이너스 24.3%, 3월 마이너스 43.6%, 4월 마이너스 31.4% 등 전년 동월에 비해 큰 폭으로 감소했다. 이는 '가짜 무역'과 관련이 있다.
그동안 위안화 절상에 따른 환차익 투자 매력 상승으로 청구서 부풀리기 등과 같은 불법 루트를 통해 홍콩에서 중국으로 불법 자금이 유입됐던 것이다. 이 검은 뭉칫돈은 중국의 부동산 투기 등으로 흘러들었다. 하지만 지난해 중국 정부가 '핫머니(투기성 단기자금)와의 전쟁'을 선포하자 올 들어 대홍콩 수출이 급격이 줄어든 것이다.
윤항진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작년 3월 중국의 대홍콩 수출 증가율은 전년 동월 대비 93%까지 급증했다. 다만 5월부터 감독 당국이 단속을 강화하며 대홍콩 수출이 크게 감소해 기저 효과로 증가율이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최근의 이러한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의 수출 경기가 크게 위축됐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실제에 가까운 중국의 수출 경기를 파악하려면 전체 수출보다 홍콩을 제외한 수출 지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홍콩을 제외한 중국 수출은 6.8% 증가, 4월에도 9.5% 증가했으며 1분기 수출 증가율도 3.8%로 오히려 전년 동기 대비 상승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 수출 부진의 또 다른 요인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 속도 둔화다. 올 초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 폭설 등의 영향으로 선진국의 회복이 예상만큼 빠르지 못해 중국에서 많은 물건을 사들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3월 대미국 수출 증가율은 1.2%로 2월의 마이너스 11.3%보다 개선됐지만 상승 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이 밖에 지난해 6월 시보금리(상하이은행 간 금리) 급등과 올해 회사채 디폴트 등으로 중소기업의 자금난이 심해지면서 해외 수출이 감소했다는 분석도 있다.
그렇다면 2분기 중국 수출을 낙관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중국의 수출 개선은 선진국의 경기 회복과 정부의 정책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았다.
천용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선진국 경기 회복이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2분기부터는 중국 수출 경기가 점진적인 회복 추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천 연구위원은 "4월 수출 실적에서 대미국·대유럽연합(EU) 수출 증가율이 3월의 1.2%, 8.8%보다 확대된 12%, 15.1%를 기록했다"며 "이는 선진국에 대한 수출 경기가 점차 회복세를 보인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미국과 EU에 대한 수출이 중국 전체 수출의 30% 이상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이 같은 회복세가 중국의 수출 회복을 이끌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일본이나 신흥국의 경제 둔화가 제약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 기업에 대한 중국 당국의 조세 지원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다는 점 또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통관 절차를 간소화하고 수출 기업의 세관 검사 품목 축소, 수출 지원금 제공 등의 다양한 수출 활성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본격적인 회복세를 판단하기엔 아직 이르다. 지난 5월 13일 중국 국가통계국 통계에 따르면 4월 중국 산업 생산액은 전년 동기 대비 8.7% 증가하며 전달의 8.8%에서 0.1% 포인트 감소했다. 2013년 9~10%대 증가율을 기록했던 것을 볼 때 올해 제조 기업 활동은 아직 큰 활기를 보여주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수출 둔화에 국내 기업도 '휘청'
또한 홍콩상하이은행(HSBC)은 중국의 4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8.1로 집계됐다고 5월 5일 밝혔다. 이는 전달에 비해 0.1포인트 오른 것으로 약 6개월 만에 상승 반전이지만 전문가들은 제조업 경기 회복을 논하기엔 오름세가 너무 미미하다고 지적했다. PMI는 50을 기준으로 그 이상이면 경기 확장을, 이하면 위축을 의미한다.
중국의 수출 부진은 전 세계의 경기 회복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만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치훈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지난해 중국의 무역 규모는 4조2000억 달러로, 3조9000억 달러의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로 부상했다"며 "중국 경제는 무역이나 투자, 원자재 등에서 세계적으로 비중이 높고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글로벌 경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은 대중국 수출·투자 등 실물경제를 비롯해 금융시장 투자에서도 중국과의 연관성이 더욱 높아지고 있기 때문에 중국 경제의 변화 트렌드를 감안한 대중 전략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한국은행도 지난 4월 보고서를 통해 "지난해 세계경제에서 중국이 차지한 비중이 15.4%, 한국의 수출에서는 26.1%를 차지하는 만큼 중국의 성장률 급락이나 금융 불안 가능성에 대해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중국 성장률이 1% 포인트 하락하면 한국의 성장률을 0.14% 포인트 끌어내릴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천 연구위원은 "중국 수출의 상당 부분은 한국을 포함한 기타 국가들로부터 소재나 부품을 수입해 조립·가공한 후 재수출하는 형태이기 때문에 중국의 수출이 지속적으로 둔화되면 한국의 대중국 소재·부품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수출이 경우 대중국 소재 수출의 67.8%를 차지하는 화학제품과 대중국 부품 수출의 59.6%를 차지하는 전자 제품의 타격이 가장 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