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전술' 최대 피해자는 북한
경제대북 리스크에도 한국 금융시장 평온…짐 로저스 ‘대박론’도 체제 붕괴 염두
한경비즈니스 | 입력 2014.03.28 15:40 | 수정 2014.03.28 15:42
전통적인 게임 이론에서 '죄수의 딜레마'는 널리 알려져 있다. 다른 참가자들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 최대 이익이 되는 경우의 수를 선택하면 최악의 게임 결과를 낳는 것이 이 법칙의 골자다.주변국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시소게임을 벌이듯 계속되고 있는 북한의 외줄 타기 전략으로 지금까지 국제·남한·북한 시장에 미친 영향을 본다면 당사국인 북한이 가장 큰 것을 나타나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는 모습이다.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 북한이 연이어 미사일을 발사하고 있지만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의 시각엔 큰 변화가 없다.
북한 사태에 따라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경향(flight to quality)'이 뚜렷하게 심해지는 것도 아니다. 달러 평가 지수는 '80' 내외에서 큰 변화가 없다. 세계 금 수요의 30%를 차지하는 인도의 수입 억제책 등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지만 국제 금값은 1400달러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 국채 가격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남한 금융시장은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번 북한 사태의 심각성에 비해 그 정도가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원화 가치와 코스피 지수의 하락 폭은 5% 내외에 그치고 있다. 이마저도 북한 사태에 따른 영향으로 볼 수 없다. 아베 정부의 극우적인 엔저 정책 등에 한국은행의 소극적인 대응이 더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하지만 북한의 사정은 다르다. 이미 북한에 대한 외국인 투자와 각종 국제사회 지원 등이 중단돼 경제 고립화 현상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남북한 간의 관계 진전이 있을 때마다 간헐적으로 형성됐던 북한 채권 거래도 실종됐고 가격도 한낱 '휴지 조각'에 불과할 수준까지 떨어졌다.북한 돈인 원화의 가치도 폭락하고 있다. 공식적인 북한 원의 환율은 달러당 100원이다. 하지만 암 시장(black market)에서는 9000선에 거래되고 있다. 공식적으로 100원에 환전한 1달러를 암 시장에 내다 팔면 9000원을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공식 시장 접근이 가능한 북한의 권력층들이 엄청난 환차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요즘 북한의 외환시장이다.공식적인 환율과의 괴리를 더 벌어지게 하기 위해서는 암 시장에 유입되는 외화(미국 달러화)를 차단해야 한다. 이번 사태 이후 중국을 포함한 대외무역과 외국인 관광, 심지어는 개성공단을 차단하는 것을 국제 금융시장에서 이런 측면에서 보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조만간 북한 원화는 1만 원 밑으로 떨어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외화 조달의 험난한 역사북한의 외화 공급을 차단해 나가면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조달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여러 가지 견해가 있지만 북한이 체제 유지를 위한 최소 외화 가득액은 1년에 50억 달러는 돼야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때문에 암시장에서 누릴 수 있는 환차익만 겨냥해 외화 공급을 무기한 차단할 수는 없다.북한의 역사는 체제 유지를 위한 외화 조달의 험난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서방에 대해 '디폴트(default·국가채무 불이행)를 선언한 1970년대 중반 이전에는 자체 신용으로 채권을 발행해 외화를 조달했다. 그 후 거래되는 북한 채권은 1970년대 중반 이전에 발행했거나 상환 불능 처리된 북한 채무를 바탕으로 BNP파리바 등이 발행한 세컨더리 채권이다.1970년대 중반 이후 1990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는 북한의 외화 조달은 구소련 등 동맹국에 전전으로 의존했다. 이른바 냉전 시대에 구소련은 공산주의 체제 결속을 위해 북한에 외화를 지원할 필요가 있었다. 이 시기에 북한도 시베리아 지역 등에 벌목공 파견 등이 왕성하게 이뤄졌다.냉전 시대가 종식된 이후 북한의 외화 조달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궁여지책 속에 고안해 낸 것이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orld Bank)·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금융 기구에 가입하는 길이다. 이들 기구에 가입하면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느냐와 상관없이 인류 공영 차원에서 지원되는 '저개발국의 성장 촉진을 위한 외화 자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종 국제금융 기구에 최대 의결권을 갖고 있는 미국의 반대로 무산됐다.2000년대 들어 북한의 외화 조달이 얼마나 어려워졌는지 외화 가득원을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슈퍼 노트(100달러 위조지폐 발행), 마약 밀거래 등은 국제사회에서 문제가 될 정도로 많아졌다. 심지어 '베이징 컨센서스'의 일환으로 해외 자원 확보를 통해 세를 확장하려는 중국의 전략과 맞물려 북한이 부존자원을 매각해 외화를 조달했다. 결국 이런 사태에 따른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고 어느 순간 남한을 포함해 서방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낙관론이 고개를 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북한 사태가 지속되는 속에 한국 경제에 대한 해외의 시각에는 큰 변화가 없고 이를 토대로 외국인들이 들어오는 것도 종전처럼 '하이에나형 환투기'로 볼 수 없다.세계적 상품 투자의 귀재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미얀마·앙골라와 함께 차기 투자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했던 것도 동일한 이유에서다. 쉽게 이해할 수 없어 일부에서는 '로저스의 궤변'이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이 때문에 북한 투자에서 '얼마나 돈을 벌 수 있는가'보다 '그 숨은 의도가 무엇인가'에 투자자의 관심이 더 쏠리고 있다.드문 일이긴 하지만 이전에도 북한 관련 자산이 투자 대상으로 관심을 끈 적이 있었다. 첫째 시기는 1990년대 중반이다. 당시 북한은 심각한 식량 위기에 몰리면서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는 소문이 확산됐다. 이 때문에 체제 붕괴에 대한 기대로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10센트를 밑도는 북한 채권 가격이 달러당(액면가) 60센트까지 치솟았다.조만간 남북 관계 획기적 개선 기대로저스 회장이 차세대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한 직후에는 상품 미개발국이기 때문에 유망하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해석하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종전의 북한 채권이 관심을 끌었을 때를 감안한다면 '김정은 체제가 외화를 비롯한 경제 사정이 어렵고 조만간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쪽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늘고 있다.결국 김정은 체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남한에 유연한 자세로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시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남북 관계에서 남한이 주도해 오고 있다. 로저스 회장이 차기 투자 유망처로 북한을 지목한 것도 김정은 체제 붕괴 등의 숨은 의도가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시각이 설득력을 얻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상춘 한국경제 객원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