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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부리지 않는 코미디 영화, 이게 얼마만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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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3. 2. 17.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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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부리지 않는 코미디 영화, 이게 얼마만이냐!

'B급 정서'에 충실했기에 A급이 된 <남자사용설명서>
오마이뉴스  2013.02.17 10:55l   임동현(lovewi19)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어설프게 최고를 흉내내다가는 손해는 물론 망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의 말이다. 이것은 몇몇 한국 코미디 영화를 보면서 느낀 내 생각이기도 하다.

어떻게든 웃기려고 억지로 상황을 만들고 억지로 연기한다. 여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코미디니까, 웃겨야하니까. 그런데 이번에는 감동까지 억지로 요구한다. 처음의 발랄함은 간데없고 심각하게 감동을 주려고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란. 어설프게 재미와 감동을 주겠다고 나섰다가 결국 혹평과 외면 속에 사라져야했던 영화들을 우리는 종종 봐왔다.

화장실 유머나 욕설, 혹은 촌스러운 상황 등을 웃음의 주로 내세우는 영화들을 종종 우리는 'B급 정서'의 영화라고 표현한다. B급은 말 그대로 B급의 정서를 유지할 때 비로소 A급의 영예를 누릴 수 있다.

 

그런데 몇몇 B급 영화를 내세우는 영화들은 자신의 본분을 잊고 A급의 스타일을 따라가려한다. 그 결과는? 결국 D급도 따지 못하는 굴욕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B급은 B급의 정서를 유지할 때 비로소 A급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살아있는 영화 속 캐릭터들이 자칫 진부해질 수 있는 스토리를 살린다.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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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석 감독의 <남자사용설명서>는 그래서 재미있다. 배우들의 억지와 오버를 사전에 차단한 연출력, 억지 감동을 이끌기보다는 코미디의 재미를 계속 유지하려는 노력, 거기에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B급의 정서까지. 맘껏 재미있게 웃으며 볼 수 있는 영화라고 평가할 만한 작품이다.

 


목표를 잃은 여성들의 백일몽을 그리다

사실 줄거리는 정말 판에 박혀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지 못한채 실력없는 광고감독 밑에서 계속 조감독 생활을 하는 서른 한 살의 여자 최보나(이시영 분)가 어느날 바닷가 노점상에서 구한 '남자사용설명서'라는 비디오테이프(웬 1990년대 유물이란 말인가!)를 통해 자신을 바꾸면서 인정받는 '훈녀'가 되고 온갖 해프닝 끝에 '한류스타' 이승재(오정세 분)와 사랑을 이루게 된다는 이야기다.

당연한 주제, 그리고 당연한 결말. 분명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그런데, 모든 것을 다 알고 보는데도 이 영화, 참 재밌다.

 



 '훈녀'로 변해가는 최보나를 연기한 이시영의 매력이 돋보인다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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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매력은 자신의 목표를 잃어버린 채 일에 얽매여 살아야하는 여성이라면 한번쯤 머리 속에 그려봤을 백일몽을 담아냈다는 데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남자들에게 차별받고 일에 미치면 '잘 꾸미지 않는다'며 핀잔을 듣는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바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남자사용설명서>의 중심이 된다.

이 백일몽이 공감을 얻게 된 것에는 최보나를 연기한 이시영의 공이 크다. 그는 자신을 영화 속 최보나의 캐릭터에 완벽하게 맞춘다. 초반 촌스러운 모습에서 점점 변화되어가는 모습까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녀의 연기가 웃음을 준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큰 장점이다.

오정세가 연기한 '한류스타' 이승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스타의 이미지와 완전히 다르다. 그가 '한류스타'가 된 것은 연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출연한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를 얻었기 때문에 얼결에 얻은 인기다. 게다가 평소의 그를 보면 인기배우라기 보다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찌질남'에 더 가깝다. 이 '언밸런스한' 캐릭터가 주는 재미도 놓치기 어렵다. 물론 이 캐릭터를 소화한 오정세의 연기도 좋다.

 



 '한류스타'로 불리는 이승재(오정세 분, 왼쪽). 그러나 그는 스타보다는 '찌질남'에 더 가깝다. 그것이 공감을 더 불러일으킨다.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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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사용설명서' 속에 등장하는 닥터 스왈스키는 배우 박영규를 통해 '느끼한' 중년 작업남의 모습으로 탄생한다. 영화 속 재미있는 캐릭터들은 그 캐릭터를 맡은 배우들과 오묘하게 조화를 이루면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드는 일등 공신 역할을 한다. 오버를 하지 않고 오직 캐릭터의 매력만으로 웃음을 이끌어내는 감독과 배우의 뚝심이 영화를 살린다.

 


재미있는 코미디를 봤는데도 궁금해지는 것

또한 이 영화는 여타 코미디 영화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 억지로 감동을 주려 하지도 않고 '심각 모드'로 갑자기 빠지지도 않는다. 감독은 '그럴 시간 있으면 한 번이라도 더 웃기지'라고 생각한 것같다.

 

'비디오 테이프'와 '쭈뼛 서는 솜털' 등으로 대표되는, B급 정서를 대표하는 소품과 CG 효과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관객에게 재미를 주겠다는 일념 하나만으로도 이처럼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 억지가 없는 코미디 영화, 정말 얼마만에 보는 것이냐?

 



 '남자사용설명서' 에 등장하는 닥터 스왈스키(박영규 분)
ⓒ 데이지 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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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남자사용설명서>는 한 여자의 유쾌한 백일몽을 그저 지켜보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군더더기를 제거한 재미있는 영화를 봤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마음 편하게 보고 넘어가도 좋다는 것이 이 영화를 칭찬하는 이유다.

그럼에도 문득 드는 생각. 결국 여자의 성공은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이 전부일까? 능력을 인정받고 일류가 되는 것도 좋지만 결국 최후의 성공은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잘 사는 것일까? 이런 쓸데없는(?) 걱정만 하지 않는다면 'B급으로 똘똘 뭉쳤기에 A급이 된' 영화를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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