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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은 왜 영화 레미제라블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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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3. 1. 6.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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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층은 왜 영화 레미제라블에 열광하는가

주간경향 | 입력 2013.01.02 11:10

 

 

 

대선 뒤 절망 빠진 20~30대 치유해주는 듯… 특히 마지막 합창 장면서 카타르시스

12월 25일 오전 신촌의 한 영화관 앞은 전날 내린 눈으로 질척거렸다. 이 길을 헤치고 도착한 관객들이 9시30분에 시작하는 영화상영관을 가득 채웠다. 상영시간 2시간 38분에 달하는 이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오르자 객석에서 잔잔한 박수가 나왔다. 관객들은 대부분 20~30대를 주축으로 한 젊은층이었다.

12월 19일 정식으로 개봉한 영화 < 레미제라블 > 이 12월 27일까지 전국에서 220만 관객을 모으며 순항하고 있다. 영화는 1980년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동명 뮤지컬을 스크린에 옮긴 것이다. 원작은 잘 알려져 있듯 프랑스 소설가 빅토르 위고의 1862년작 장편소설이다.






뮤지컬 영화 < 레미제라블 > 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리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배경으로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를 합창하고 있다. | UPI 코리아 제공

영국 제작사가 휴 잭맨, 앤 해서웨이, 러셀 크로, 아만다 사이프리드 등 할리우드 특급 배우들을 대거 기용해 만든 연말연시용 블록버스터에 관객들이 몰리는 일이 새삼스러운 현상은 아니다. 12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은 이 영화는 연말 분위기를 즐기려는 연인들과 술자리 대신 영화 관람을 선택한 직장인들을 모두 끌어모을 수 있는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배우들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나무랄 데 없는 연기력을 보여주며, 노래와 스토리의 대중적 호소력은 초연 이후 지난 30년간 원작 뮤지컬이 거둔 성공을 통해 이미 입증된 것이다.

< 레미제라블 > 의 흥행에서 주목할 점은 흥행 그 자체라기보다는 이 영화가 2012년 대선에서 야권 후보에게 표를 준 시민들에게 일종의 '힐링 무비'로 소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영화 홍보를 맡고 있는 레몬트리 박주석 실장은 "연말에 어울리는 소재와 대선 이슈가 맞물리면서 20~30대를 중심으로 흥행을 견인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선 직후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의 반응은 이 영화가 정치적 좌절을 맛본 이들에게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또렷하게 보여준다.

남성 커뮤니티 'MLB파크'의 한 네티즌(아이디 'mitchthewiz')은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 게시판에 ' < 레미제라블 > , 그리고 힐링'이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이 네티즌은 "작품 중간에 나오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은 이렇게 끝난다.

 

'내일이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 (19일) 오후 5시 40분쯤까지 우리 모두의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 내일은 오지 않았고 우리는 새로운 삶을 꿈꿨다는 죄로 크든 작든 '멘붕'을 겪어야 했다"고 썼다.

 


단기간에 전국서 220만 관객 동원

여성 커뮤니티 '82쿡닷컴'의 한 네티즌(아이디 '감동')은 12월 22일 자유게시판에 "끝장면에 저 노래(Do you hear the people sing)가 다시 나올 때 남들은 극장에서 나가는데 주저앉아 대성통곡했다. 출구조사 발표 때부터 꾹꾹 눈물을 참았는데 (울고나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고 다시 시작할 힘이 났다"고 썼다.

트위터에서도 " < 레미제라블 > 에서처럼 많은 국민들이 개혁과 변화를 바라지 않았나 보다. 앞으로 5년 동안 '국민'이 '백성'이 되지 않아야 할 텐데. 희망을 가져도 될까" "오늘 < 레미제라블 > 보면서 무기만 안 들었지 지금이랑 별다를 바 없다고 느끼고 눈물을 흘렸다" " < 레미제라블 > 의 실패한 혁명에서 어느 정도 치유받았다.

 

멀고 먼 여정이니 지치지 말자" 같은 관람 후기들이 쏟아졌다. 대선 직전 '합리적 보수'를 자처하며 문재인 후보를 공개 지지해 주목받은 표창원 전 경찰대 교수는 트위터를 통해 '12월 30일 시민들과 함께 < 레미제라블 > 을 관람하고 관람 후 프리허그를 하겠다'고 알리기도 했다. 영화를 매개로 선거 후유증을 함께 달래보자는 얘기다.

영화의 시공간적 무대는 '1815년 딘느', '1823년 몽트레이유-쉬르-메르', '1823년 몽페르뫼이유', '1832년 파리' 등 4부로 나뉜다. 선거에서 '멘붕'을 겪은 이들에게 특별히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것은 1832년 파리를 배경으로 하는 4부다. 4부의 스토리는 빅토르 위고가 1832년 파리에서 목격했고 영화에도 등장하는 실제의 역사적 사건을 무대로 펼쳐진다.

 

1832년 6월 5일 파리의 급진적 공화파 청년들은 라마르크 장군의 장례식을 기점으로 혁명을 일으킨다. 그러나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가전을 벌이던 이들은 파리 시민들의 지원을 받지 못해 이틀 만에 군대에 의해 진압된다. 이 사건으로 혁명에 가담했던 이들 93명이 사망하고 291명이 부상당했다.

 

요컨대 실패한 혁명이다. 코제트(장발장이 입양한 판틴의 딸)의 연인 마리우스는 혁명을 주도한 세력의 일원으로 그려지는데, 장발장은 혁명세력에 체포된 자신의 숙적 자베르 경감을 풀어주고 총상을 입은 마리우스를 구출해 코제트와 맺어준다.

그러나 이 미완의 혁명은 영화 엔딩에서 상상적인 보상을 받는다. 영화의 마지막은 파리 한복판을 장악한 압도적인 규모의 바리케이드 위에서 주요 등장인물들이 거리로 쏟아져나온 수많은 시민들과 함께 '민중의 노랫소리가 들리는가'를 합창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선동적이면서도 낭만적인 선율과 웅장함이 인상적인 이 노래의 후반부 가사는 이렇다. "너는 듣고 있느냐/분노한 민중의 노랫소리를/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민중의 음악을/너의 심장소리가 북소리와 하나 되어 울릴 때/내일이 오면 새로운 삶이 시작되리라."

 

야권 후보를 지지한 시민들이 '지금 당장은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마침내 승리할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기에 충분한 지점이다. 1989년 중국 톈안먼 광장의 시위대도 이 노래를 불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뮤지컬 < 레미제라블 > 이 프랑스에서 초연된 1980년은 프랑스 좌파 대통령의 집권 가능성이 현실화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듬해인 1981년 마침내 프랑스 사회당 미테랑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했다. 미테랑은 1958년 헌법개정으로 프랑스에 제5공화정이 들어선 이래 첫 사회당 출신 대통령이다.

 

1871년 루이 보나파르트의 제2제정이 무너진 후 프랑스에서는 100여년 동안 세 차례 공화정이 이어졌지만 미테랑 이전에는 좌파가 정권을 잡지 못했다. 이 때문에 프랑스 사회당원들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완성된 시점을 1981년으로 보기도 한다.( < 프랑스 뮤지컬의 이해 > ·2008)






영화 < 레미제라블 > 의 주인공 장발장(오른쪽·휴 잭맨)과 끝까지 그를 뒤쫓는 자베르 경감(왼쪽·러셀 크로) | UPI 코리아 제공

 

중국 텐안먼 시위대도 불렀던 노래

< 레미제라블 > 이 일종의 신드롬을 일으키면서 트위터에서는 프랑스 혁명사에 관한 트윗을 올리는 트위터 사용자들도 생겨났다. 프랑스 혁명사로 시선을 돌리면 < 레미제라블 > 의 정치적 메시지는 더욱 증폭된다. 1789년 이후 프랑스 혁명사는 혁명과 반동이 끊임없이 순환하는 역사였다.

 

1789년 프랑스 혁명으로 1792년에 공화정이 선포됐으나 혁명세력의 공포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권력은 총재정부를 거쳐 1799년 나폴레옹의 손으로 넘어갔다. 10년간의 혁명이 군사쿠데타로 종말을 맞은 것이다. 이후의 상황은 더욱 암울하다. 나폴레옹의 집권은 1789년 혁명의 원인 제공자인 구 부르봉 왕가의 복귀를 막았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이 유럽과의 전쟁에서 패배하면서 프랑스혁명이 일어난 지 26년 만인 1815년, 루이 16세의 동생 루이 18세가 복귀한다. 이른바 '왕정복고'다. 1815년은 영화 < 레미제라블 > 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출발점이다.

루이 18세와 샤를 10세로 이어진 왕정복고기는 15년을 버티다가 1830년, 샤를 10세가 선거 무효, 공공집회 금지, 검열 강화 등의 조처를 취한 데 분노한 파리 시민들이 혁명을 일으키면서 종식됐다. 이것이 '1830년 7월혁명'이다. 그러나 7월혁명은 공화정으로 이어지지 않고 또 다른 왕가인 오를레앙 왕족 루이 필리프가 권력을 잡는 것으로 귀결됐다.

 

영화 < 레미제라블 > 에서 묘사되는 1832년 6월의 혁명 시도는 이 같은 7월혁명의 결과에 대한 불만, 당시 프랑스에 닥친 경제적 어려움, 콜레라로 파리에서만 1만8000여명이 사망하는 재난 등이 뒤섞인 상황에서 일어난 민중봉기였다. 7월혁명이 남긴 미완의 과제는 결국 1848년 2월혁명에 의해 완수되지만,

 

이 또한 1년을 버티지 못하고 나폴레오의 조카 루이 나폴레옹이 권력을 잡는 것으로 끝난다. < 레미제라블 > 의 마지막은 1848년 2월혁명의 성공을 암시하는 장면이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이 또한 실패로 끝난 것이다.

김민아 경향신문 논설위원은 2012년 12월 25일자 '여적' 칼럼에서 < 레미제라블 > 열풍을 언급하며 "그러나 힐링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위로하고 달래주는 일, 딱 거기까지다. 털고 일어나 다시 시작하는 건 개개인의 몫이다. 힐링에 기대는 건 올해까지였으면 좋겠다.

 

2013년엔 모두 좀 더 단단해지길"이라고 말했다. 2012년 10월 사망한 영국의 좌파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이라면 어떨까. 그의 자서전 < 미완의 시대 > 는 이렇게 끝난다. "그렇지만 시대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더라도 아직은 무기를 놓지 말자. 사회 불의는 여전히 규탄하고 맞서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

 

 

 

대선 멘붕 후, 이보다 좋은 위로가 있을까

[리뷰] 빅토르 위고의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erables)>
오마이뉴스  12.12.29 10:34l최종 업데이트 12.12.29 10:34l   윤찬영(ilssin)

 

 

"헤겔은 어디에선가 모든 거대한 세계사적 사건과 인물들은 두 번 나타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첫 번째는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

 



 영화 <레 미제라블>
ⓒ 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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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말이다. 그러나 그도 굵은 글씨로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그렇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역사의 수레는 다만 더딜뿐이니까.

그야말로 쓴웃음을 짓게 한 이번 대통령 선거 탓이겠지만, 영화 <레 미제라블(Les Misérables, 비참한 사람들)>을 보고서 떠오른 생각이다. 그렇다. 역사의 수레는 참으로 더디게 나아간다.

 


격동의 혁명기를 살았던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

'비참한 사람들', 빅토르 위고의 눈에 비친 프랑스 민중의 모습이었다. 차별과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들불처럼 일어나 전제 군주의 목을 자른 지 벌써 50여 년이 지났지만 그들의 삶은 여전히 비참했다. 스스로 세운 첫 공화정이 힘없이 무너진 뒤에도 다시 몇 번의 크고 작은 봉기가 있었고 그때마다 나라의 주인은 바뀌었지만 정작 민중의 삶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보다 못한 그는 이 '비참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기로 마음먹었다. 몇 해 뒤인 1848년 2월, 이들은 다시 일어나 두 번째 공화정을 세우지만 이번에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리하여 프랑스는 다시 두 번째 황제 앞에 엎드리게 되는데, 그가 바로 첫 공화정을 무너뜨렸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의 조카 루이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였다. 마르크스가 조롱했던 바로 그 희극의 주인공이다.

새 황제에게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던 빅토르 위고는 프랑스를 떠나 망명길에 올라야 했고 한참 뒤인 1861년에야 글을 끝낼 수 있었다.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온 것은 이듬해였으니 무려 17년 만이었다. 그러나 프랑스 민중의 처지는 아직도 그대로였다. 이 '비참한 사람들'을 실은 역사의 수레는 너무도 더뎠다.

At the end of the day you''re another day colder, and the shirt on your back doesn''t keep out the chill.
하루가 끝날 때쯤, 날은 더욱 추워지고 등에 걸친 옷으로는 추위를 버텨낼 수가 없네.
And the righteous hurry past, they don''t hear the little ones crying.
귀하신 분들은 서둘러 길을 떠나고, 그들은 어린 아이들의 절규를 듣지 않는다네.
And the plague is coming on fast ready to kill, one day nearer to dying.
겨울은 우리를 죽일 장적을 한 듯 맹렬히 다가오고, 하루하루 죽음에 가까워지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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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발장, 판틴, 코제트, 마리우스


영화는 1815년 어느 날에서 시작한다. 굶주리던 누이와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치다 감옥에 갇힌 장발장(휴 잭맨)은 벌써 19년째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1789년 파리의 거리를 가득 메우며 마침내 바스티유 감옥의 벽을 허물었던 거센 혁명의 물결도 장발장의 어린 조카들에게 빵을 가져다주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는 굶주리고 있을 누이와 어린 조카들에게 돌아가야 했지만 힘없는 이들에게 법은 여전히 가혹하기만 했다. 그의 죄는 점점 불어났고 꼬박 19년을 채운 뒤에야 그는 가석방 되어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사이 잠시 시민의 품에 안겼던 프랑스는 황제의 손을 거쳐 다시 국왕의 발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결국 그는 살기 위해 스스로 장발장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에게 비참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그것뿐이었다.


다시 8년이 흘렀다. 세상은 여전히 국왕과 귀족 그리고 부르주아지들의 것이었다. 도시는 하루하루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야 하는 비참한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나마 일터를 가진 노동자들도 일터에서 쫓겨나면 그만이었다. 판틴(앤 해서웨이)도 그랬다.

 

가진 것이라곤 맨 몸뚱이뿐이던 그녀는 일터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뒤 어린 딸을 위해 살고자 몸부림쳐 보지만 아무리 해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녀에게는 이곳이 지옥이다.


다시 9년 뒤, 이제 장발장은 판틴의 어린 딸 코제트(아만다 사이프리드)와 함께 파리에 머물고 있다. 탐욕스런 국왕을 끌어내리려던 또 한 번의 봉기(1830년 7월 혁명)로 파리 시내가 피로 물든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지만, 피 끓는 청년들은 포기를 몰랐다.

 

마리우스(에디 레드메인)도 그 가운데 끼어 있었다. 그들은 국왕의 군대에 맞서 시내 한 복판에 바리케이드를 쌓아 올리고서 다시 민중들이 일어나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바리케이드는 밀려드는 국왕의 군대 앞에서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지 어느덧 43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Do you hear the people sing, singing the song of angry men?
민중의 노래가 들리는가, 성난 사람들의 노래가?
It is the music of a people who will not be slaves again.
다시는 노예가 되지 않을 사람들의 노래라네.
When the beating of your heart, echoes the beating of the drums.
심장 박동 소리가 울려 퍼져 북을 울리고
There is a life about to start when tomorrow comes.
내일이 밝으면 새로운 삶이 있으리라.



ⓒ 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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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


영화는 다시 16년 뒤로 건너뛴다. 바로 1848년이다. 거리는 또 한 번 거대한 혁명의 물결로 꿈틀대고 사람들은 희망에 들떠 소리 높여 노래한다. 자유와 평등의 노래를. 하지만 우리는 이미 그들 앞에 어떤 운명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고 있다. 머지않아 삼촌의 가면을 뒤집어 쓴 조카가 나타나 그들이 세운 공화국을 무너뜨리고 황제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It is the future that they bring, when tomorrow comes(내일이 오면 새 삶이 시작되리니)'라고 소리 높여 노래하던 이들에겐 안된 얘기지만, 그 예고된 희극이 내 마음을 놓이게 했다.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던 것이다.

1789년 대혁명으로 무너지는 줄 알았던 앙시앙 레짐은 그 뒤로도 100년 동안이나 이어졌다. 몇 번의 크고 작은 민중 봉기와 혁명을 거치면서 프랑스는 두 명의 황제와 세 명의 국왕을 새롭게 맞아야 했고,

 

손에 잡힐 것만 같던 새 시대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 뒤로도 한참을 수많은 장발장과 판틴과 코제트들이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쳐야 했다.


그리고 1870년 마침내 세 번째 공화정이 들어서게 된다. 하지만 이 무렵 파리 곳곳이 또 다시 수만 명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사실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아무튼 여기까지 오는 데 자그마치 100년이 걸렸다.

2012년 18대 대통령선거가 끝난 지 일주일이 지난 오늘, 아직도 곳곳에서 사람들의 한숨이 들린다. 아마도 새 시대가 손에 잡힐 듯 가까워보였던 탓이리라. 하필 아버지의 가면을 뒤집어 쓴 딸을 새 대통령으로 맞아야 하는 탓일지도 모른다. 무너진 줄 알았던 낡은 체제가 다시 우리의 삶을 덮칠까 두려워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실망도 절망도 하지 말자. 우리 앞에는 아직 얼마일지 모르는 긴 시간이 놓여있다. 이 영화와, 이 영화가 놓인 19세기 프랑스 민중의 삶이 보여주듯 역사의 수레는 그 긴 시간을 더디게 나아갈뿐 뒷걸음질 치는 법이 없으니까.

영화 <레 미제라블>이 오늘 우리에게 그렇게 위로를 건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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