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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권력의 치명적인 약점은 ‘노무현 콤플렉스’다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2. 3. 1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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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권력의 치명적인 약점은 ‘노무현 콤플렉스’다
(서프라이즈 / 안호용 / 2012-03-16)

 


노무현의 비극은 대한민국 정치의 막장을 보여주는 셰익스피어의 ‘타이터스 앤드러니커스’를 능가하는 일종의 잔혹극이었다. 기본적으로 좌·우익의 극단적인 이념의 도그마에 함몰된 상태에서, 부정부패 공작 음모 등의 부도덕성이 첨가되면서 광기란 괴물을 만들었으며, 그 괴물에게 희생된 인간이 바로 노무현이다. 결과적으로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병은 지독한 이념의 대립과 구린내 나는 부도덕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상 국민에 의해 처음으로 정권이 바뀐 것은 김대중 정부였다. 혁명과 쿠데타로 정권이 바뀐 적은 있지만 국민에 의한 정권교체는 김대중 정권이 처음이다. 그만큼 국민의 정부는 대한민국에서 역사성과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야당이 여당으로 바뀌는 최초의 권력이동이기 때문에 우여곡절이 많을 수뿐이 없었다.

 

그래서 이름 붙여진 것이 국민의 정부다.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뛰어넘는 역사적 업그레이드라고 보면 타당하다. 물론 상대방에서 보면 빨갱이가 나라를 접수했다고 보겠지만 그건 그들만의 고유한 정서이기에 보편적으로 부각시킬 가치가 없다.

 

70~80년대 야당의 역사는 김대중의 수난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독재시절에는 중앙정보부에 의해 바다에 빠져 죽임을 당할 뻔 했으며, 전두환 시절에는 무고하게 국가 내란죄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해방 후 현대 역사에서 김대중만큼 정권에 의해 고초를 겪은 정치인은 찾아볼 수 없다. 틀림없는 사실은 권력으로부터 가장 많은 탄압을 받은 사람이 김대중이었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대통령이 된다. 역사는 아이러니하고 믿을 게 못 된다. 역사의 물은 순리대로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상대편에서 보면 역류하기도 한다. 역사는 예측 가능하지 못하는 사건들로 인해 격랑을 맞으며 그러므로서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여튼 빨갱이로 불리던 김대중이 강력한 권력에의 의지와 집념으로 그 많은 비토세력을 물리치고 드디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는, 역사의 반란에 대한민국은 무방비 상태에 놓인다. 누란에 처한 대한민국은 떨고 있었다. 그를 빨갱이라고 비토하던 보수우파는 애꿎은 세상을 원망하고 있었다. 세상은 뒤집어지고 빨갱이 세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김대중은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을 지독스럽게 박해하던 박정희를 부관참시를 하기는 커녕 오히려 기념관을 세워주려고 했으며, 9족을 멸해도 부족할 전두환과 그 정권의 주요 인물들을 개인적인 감정을 내세워 처단하지도 않았다. 자신을 그토록 미워하고 잔인하게 핍박하던 그들은 그는 용서했다. 그는 세상과 화해를 원했으며 그렇게 만들었다. 보복은 보복은 낳는 법, 그는 용서함으로써 평화를 얻었고 진정한 승자가 되었다.

 

예를 들어 영원한 정적이며 물러난 권력인 김영삼의 검은돈 비리를 캐내려고 마음만 먹었다면, 대립과 갈등으로 대한민국은 한바탕 토네이노가 지나갔을 것이다.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말이다. 정치란 진흙탕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들은 알고 보면 같은 종족이기 때문에 마지막 예우를 해주어야 하는 게 종족으로서의 도리이다. 완전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명박은 보복을 함으로써 갈등을 키웠고 진정한 패자가 되었다.

 

 

김대중 정권을 이어받은 노무현도 민주화운동 시절 자신을 탄압하던 옛 권력자에게 보복의 칼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도 김대중처럼 용서와 화해를 원했고 그렇게 실행에 옮겼다. 물론 대척점의 세력들은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그것이 노무현의 죽음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하여튼, 그는 더 나아가 권력을 국민과 나누어 가졌다. 권력자로서 권위를 지우기 위해 그는 시스템을 고쳤고, 대통령답지 않은 언행을 함으로서 체통 머리 없다는 욕도 많이 얻어먹었다. 권력은 지도자로서 행사하는 데만 사용하는 최소한의 힘이며, 국민과 가까운 데서 함께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별로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동네 이장처럼 가깝게 존재하는 대통령을 진정으로 그는 원했다. 상식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그는 꿈꾸었다. 역으로 생각해보면 그는 대한민국에서는 대통령감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 나라의 대통령은 제왕이어야 하며 권력을 소유하는 일인이 돼야 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자가 이끌어 가는 법,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명박이 드디어 권력을 이양받는다. 그리고 곧바로 노무현을 겨냥한 저주의 표적 수사가 시작된다. 그전에 대통령 기록관 사건과 아방궁 발언 등으로 치졸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던 권력은 그것이 예고편이었음을 곧 알게 해준다.

 

권력을 내려놓고서 오히려 더 많은 존경을 받은 봉하마을의 노무현은 사이버에서는 영원한 노통이었다. 봉하마을에서의 평화로운 그의 일상 사진은 매일 업데이트되어 인터넷을 달구었고, 연일 찾아오는 방문객과 대화하는 모습은 진기한 현상으로서, 대한민국은 물론 외국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풍경이 아닐 수 없었다. 권력을 내려놓은 이에게 열광하는 이런 기현상을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분명한 건 세상을 평론하는 먹물들을 괴롭히기에 충분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런 봉하마을의 풍경은 아마도 우리에겐 영원히 보여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각 살아 있는 권력은 죽은 권력을 손보기 위해 시퍼런 칼을 갈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살했다. 세상은 순간 정적에 쌓였다. 김대중의 눈물, 세상의 분노, 권력의 광기…

 

 

전두환, 노태우는 정치보복이 아니라 역사의 단죄였다. 대한민국의 현대사에서 유일하게 ‘정치보복’을 당한 전 대통령은 노무현이었고, 유일하게 ‘정치보복’을 한 현 대통령은 이명박이었다. 왜 이 권력은 노무현을 철저하게 냉혹하게 잔인하게 손을 보았을까.

 

감히 자신을 손보려고 했던 그를 검찰은 가족의 비리를 내세워 쥐 잡듯이 잘근잘근 씹어가며 압박했고, 권력의 핵심은 검찰이 행하고 있는 이런 상황을 보며 즐기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왜 그들은 노무현을 제거하려고 했을까? 그들은 왜 노무현을 부도덕하게 만들려고 혈안이 되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했을까? 도덕적 콤플렉스일까? 질투심일까? 이유없이 무조건 싫어서일까? 미치도록 그를 저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부터 권불십년 화무백일홍이라고 했다. 권력의 능력은 전지전능하지만 결코 길지는 않다. 권력은 덧없는 것이다. 일 년 후 대한민국은 어떤 힘에 의해 소용돌이칠지 아무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권력은 상식이며 원칙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이 되면 그들이 한 짓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그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그것은 역사가 될 것이다. 그리고 현 권력에게 노무현의 죽음은 원죄로 남아, 하나의 정신적 현상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카인의 후예가 우리인 것처럼, 이명박의 후예는 새누리당이며, 이번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은 그래서 중요한지 모른다.

 

 

안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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