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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의 의미 >>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2. 1. 1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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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의미

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2012. 01.14

 

 

영화 ‘300’에는 아시아인에 대한 서구인의 편견이 바닥에 깔려 있습니다. 그것도 모르고 헤헤거리는 한국인들은 뭐랄까? 하여간 좀 깝깝한 거죠.

 

그들은 자유인이고 아시아 전제국가 사람들은 노예라는 거죠. 아시아 국가에서 귀족이든 평민이든 그들의 눈에는 노예로 보입니다. (사실은 스파르타도 빌어먹을 귀족국가.) 어쨌든 영화의 시선은 그렇습니다.

 

마찬가지. 한국인이 중국인을 보는 시선도 한 수 아래로 깔아보는 것이며 이 사태는 중국이 민주화될 때까지 계속 갑니다. 그들의 신분은 결코 한국인과 대등할 수 없습니다. 겉으로 존중해도 무의식 중에 나타납니다.

 

왕조시절에는 부자노예도 많았습니다.(노예제도가 실상은 복잡한 구조) 명동에서 물건을 싹슬이 하는 중국 부자를 보는 시선은 조선시대에 가난한 양반이 부자노예를 보는 시선과 같습니다. 절대 대등하지 않습니다.

 

문화가 존재하는 이유가 뭘까요? 인간차별하기 위해섭니다. 문화는 계급없는 시대의 계급입니다.(전에도 여러번 말했지만.) 문화는 인간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이며, 그 동기는 공동체 안에서의 신분상승입니다.

 

제가 왜 한비야 기사를 링크했을까요? 그러한 차이를 드러내기 위해섭니다. 의도적인 겁니다. 이 사이트는 인류의 0.00001퍼센트를 위한 사이트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사이트를 방문해야 합니다.

 

타인의 단점이 눈에 띄면 실패입니다. 감독의 시선으로 보아야 합니다. 결함있는 선수를 불러모아 최고의 팀을 구축한 ‘머니 볼’의 빌리 빈처럼 타인의 장점을 보는 눈을 얻어야 합니다. 금과 돌이 섞여 있으면 금만 보여야 합니다.

 

왜 누군가의 단점이 먼저 보일까요? 왜 진중권의 눈에는 나꼼수의 단점이 도드라져 보일까요? 노예의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노예는 완벽한 주인을 찾아서 봉사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비야는 완벽하지 않아. 나의 주인으로 삼기에는 부족해.”

 

이거죠. 감독 관점에서는 당연히 한비야 선수를 스카웃 해야 합니다. 최희섭이 멘탈에 문제가 많아도 연봉만 싸다면 이장석이 넥센에 데려가는게 맞습니다. 문제있는 멘탈은 코칭스태프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그게 머니 볼 정신.

 

제가 추천하고 있는 김기덕 선수, 낸시랭 선수, 강의석 선수, 한비야 선수 다 네티즌에게 욕 먹는 캐릭터입니다. 제가 일부러 그런 사람을 찾아냅니다. 인격이 훌륭해서? 천만에. 내가 감독이면 연봉대비 저평가된 그런 선수만 불러모아 최고의 팀을 구성합니다.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금은 챙긴다.’ 이건 나의 신조.

 

왜?

 

평범한 당신이야말로 예수를 고발한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섭니다. 나폴레옹을 차례로 상대한 20여명의 장군이 모두 1+1=2가 안되었습니다. 우리는 산수 시간에 1+1=2를 배웠고 다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만약 당신이 1+1=2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폴레옹은 갑자기 나타났고 평범한 다수는 평범하게 자살골을 넣었습니다. 제가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평범한 사람의 자연스러운 판단은 오판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깨달음이 있는 겁니다. 평범한 당신의 평범한 생각은 당연히 틀렸고, 그래서 인간은 깨달아야 하는 겁니다. 그래도 이 사회가 그럭저럭 굴러가는 것은 상황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일은 누구나 잘 대응합니다.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고 돌발상황이 나타나면 백퍼센트 인간은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인터넷이 새로 나타났고 스마트폰이 새로 나타났는데 한나라당은 백퍼센트 잘못 대응합니다. 젊은이들만 바로 대응합니다. 왜? 그들은 익숙하니까.

 

익숙하지 않으면 백퍼센트 잘못 판단합니다. 원래 잘못 판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식적인 판단은 당연히 틀립니다.

 

평범한 당신이 로마시대로 돌아가면 당연히 앞장서서 예수를 고발합니다. 예수는 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왜? 자신을 구해줄 구세주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자기를 개입시킨 겁니다. '에고'가 방해한 겁니다.

 

왜 한비야를 씹을까요? 단순한 이유입니다. 한비야가 팀이 아니고 세력이 아니고 개인이기 때문입니다. 노무현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아무도 노무현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왜? 세력이 있으니까. 못건듭니다.

 

지금은 오마이뉴스나 프레시안도 노무현을 씹지 않습니다. 태도를 바꾼 겁니다. 세력이 있으면 갑자기 듬직해 보이고 신뢰가 가고 무언가 있어 보입니다. 자기 마음이 살살 변합니다. 왜? 믿음이 가니까. 듬직하니까. 있어 보이니까.

 

중요한 것은 한비야, 강의석, 낸시랭, 김기덕, 공지영, 김미화가 팀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김어준은 팀을 이루었기 때문에 칭찬을 듣고 있는 겁니다.

 

지금이라도 한비야, 강의석, 낸시랭, 김기덕, 공지영 등이 팀을 이루어 같이 다니면 당신도 그 사람들을 달리 봅니다. 이건 백 퍼센트입니다.

 

당신은 갑자기 한비야가 믿음직스럽게 느껴지고, 뭔가 신뢰가 가고, 뭔가 있어보이고, 얼굴도 더 잘생겨 보이고, 뭔가 때깔이 나고, 갑자기 뒤에서 후광이 비치는 것 같고 그럴 겁니다. 인간은 그만치 간사합니다. 한 순간에 변합니다.

 

늘 만나던 남자가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말을 들으면 갑자기 잘생겨 보입니다. 그 남자는 달라진게 없는데 실제로 달라져 보인다는게 중요합니다. 안그럴거 같습니까? 천만에. 실제로 변합니다. 자기 내부에서 호르몬이 변합니다.

 

왜? 뇌 안에는 이미 정보가 입력되어 있습니다. 뇌는 취직했다는 정보가 들어오면 호르몬을 분비하도록 이미 세팅되어 있습니다. 호르몬이 변하면 감정이 변하고, 감정이 변하면 생각이 변하고 갑자기 미남으로 보입니다.

 

뇌가 평소에 놀고있을 거 같습니까? 생각할때만 뇌가 움직일까요? 천만에. 뇌는 평소에 이것저것 세팅해 놓습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머리로 생각하여 판단한다고 믿습니다. 천만에. 1+1=2를 산수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저 본능의 명령을 따르며, 그 명령은 인간으로 하여금 오판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인의 문제를 집단에 전가시키는 것이 인류의 진화 메커니즘과 맞기 때문입니다.

 

좋은 회사에 취직했다는 것은 세력이 생겼다는 의미입니다. 왕자와 공주가 왕자이고 공주인 이유는 배후에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도 모르게 그 사람의 장점을 보려고 노력합니다. 뇌가 그렇게 세팅해놓고 있답니다.

 

유럽이라면 어떨까요? 한비야를 욕하지 않습니다. 왜 유럽인들은 한비야를 씹지 않을까요? 유럽인들이 똑똑해서? 서구인들이 잘나서? 백인들이 많이 배워서? 아닙니다.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은 15억 백인인구가 시스템을 잘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세력이 항상 뒤를 받치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문화인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고, 문화인을 건드리지 않는 관습이 존재하고, 문화인이 이상한 행동을 해도.. ‘원래 문화인에게는 저게 허용되어 있지’.. 하고 긍정적으로 봅니다.

 

미친 짓을 해도.. 그래도 뭔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의도일거야 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당신도 유럽에 살면 그렇게 됩니다. 그리고 실제로 문화인들의 뻘짓은 사회를 이롭게 합니다.

 

왜?

 

상호작용을 높이기 때문입니다. 연예인이 스캔들을 일으키면 손가락질 하지만 그게 사회에 기여합니다. 연예인은 끝없이 대중들이 수다 떨 꺼리를 생산해야 합니다. 대중들이 쓸데없이 이러쿵 저러쿵 할 소스를 던져주어야 하며 그것이 실제로 사회에 보탬이 됩니다. 상호작용이 높으면 무조건 플러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연예인들에게 손가락질이나 하며 사는 그저 그런 사람은 이 사이트에 오면 안 되죠. 저는 일관되게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을 옹호해 왔습니다. 그들이 사고를 쳐도 우리를 대신해서 사고쳐 주는 겁니다.

 

연예인, 문화인들은 인간에게 허용되는 바운더리의 한계선을 탐색하고 오는 임무입니다. 그 한계선에서 아슬아슬하게 살아야 하며 그냥 보통사람처럼 평범하게 살며 국민배우 소리나 들으면 자격 없습니다. 국민배우? 국민가수? 똥입니다.

 

인간들은 비겁합니다. 조선일보가 귀귀를 괴롭혔는데 리플들 보세요. 다들 귀귀 욕합니다. 조선일보 나쁘지만 귀귀도 맞을만 하다는 식입니다. 거기에서 비겁을 보아야 합니다. 만화 때문에 어린이들이 폭력적으로 변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시스템을 바꾸어야 사회가 진보합니다. 만만한 만화가나 씹는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일본은 우리보다 덜 폭력적이어서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시장을 다 먹었을까요?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는 힘드니까 쉬운 목표를 선택한 거죠. 가장 적게 힘들이고 가장 크게 생색내는 것은 전봇대 뽑는 거죠.

 

귀귀가 폭력만화를 그려서 청소년을 해쳐도 청소년들이 바른 길로 가는 그런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내부의 상호작용 밀도를 높이는 구조론의 방법입니다. 연예인이 사고쳐도 사회는 더 발달해야 합니다. 미국에도 또라이짓 하는 연예인 많지만 사회는 잘 굴러갑니다.

 

아무도 사고치지 않는 조용한 공동묘지 같은 사회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하부구조가 아닌 상부구조를 고치는게 맞습니다. 귀귀를 욕할게 아니라 학교를 뜯어고쳐야 합니다. 북한에 김정일만 세습할까요? 천만에. 북한에는 당 간부들 뿐 아니라 말단 기업소까지 다 세습합니다. 위가 하면 아래도 합니다. 명박이 비리하면 말단 공무원도 비리합니다.

 

왜 소련이 먼저 시작하고도 우주개발에 실패했을 까요? 스탈린만 독재한게 아닙니다. 소련은 과학자들도 독재했습니다. 팀플레이가 안 되고 한 명의 독재자 과학자가 다 먹는 시스템입니다. 그래서 망한 겁니다.

 

위를 고쳐야 아래가 깨끗해집니다. 좋은 사회는 밑에서 국민들이 개판치는데도 잘 돌아갑니다. 네덜란드는 마리화나 피워도 잘 돌아갑니다. 한국은 국민들이 술이나 퍼먹고 있는데도 잘 돌아가고 아랍은 술 한 방울도 안먹는데도 망합니다.

 

깨달음이 달리 깨달음이 아닙니다. 어디를 보느냐입니다. 노예의 시선으로 아래에서 위를 보느냐 아니면 주인의 시선으로 위에서 아래를 보느냐입니다. 깨달음은 쉽습니다. 단지 보는 방향만 바꾸면 됩니다. 그것이 돈오돈수입니다.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
時時勤佛拭  莫使有塵埃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와 같으니
늘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리.
(신수)

 

菩提本無樹  明鏡亦無臺
佛性常淸淨  何處有塵埃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가 없네.
불성은 항상 청정하거늘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가 있으리오.
(혜능)

 

신수는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자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누가 물어봤냐고요.”

 

궁금한건 진리지 당신이 아니라고요. 언제라도 대화의 중심은 진리여야 하오. 그것만이 대화이오.

 

한비야를 만났으면 한비야 레벨에서 이야기해야 하고, 자기 이야기 하면 몽둥이로 쫓아버려야 하오.

 

언제든지 인류의 대표자 입장에서 말해야 하오. 한비야는 자기 생각을 말한게 아니라 인류팀의 선수로 우리 생각을 말한 것이며, 우리는 선수 중 한명이 개발질을 했어도 우리팀이라는 사실을 의식해야 하오.

 

나의 꿈 같은건 없소. 인류의 꿈이 있을 뿐. 7살 아이도 꿈은 대통령이 정답이라고 외고 다니는 세상이오.

 

7급공무원이 되겠다.’ 이건 그냥 계획이지 꿈이 아니오. 누가 물어봤냐구요. 당신의 개인적 관심사를. 인류의 꿈이 아니면 꿈이 아니오.

 

어떤 노숙자가 이명박에 대해 이야기 하는데 “너 이명박만큼 잘났냐? 노숙자 주제에. 이명박은 내곡동에 집도 있단다. 넌 없잖아.” 이러면 대화가 안 되죠. 신에 대해서 말할 때는 신의 레벨이어야 하며 신의 레벨이 아니면 말하지 마세요.

 

고흐의 그림을 볼 때는 고흐가 되어야 하고, 메시의 드리블을 볼 때는 메시가 되어야 하고, 잡스에 대해 씨부릴때는 잡스가 되어야 하고, 베토벤을 들을 때는 베토벤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자격이 없습니다. 그건 대화가 아닌 거죠.

 

돈오돈수.. 단지 위에서 아래를 보기만 하면 됩니다. 두 말 하는 자는 내쫓아 버려야 합니다. 왜? 모두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기에. 60억 모두가 할 수 있는 미션은? 그저 고개를 살짝 트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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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은 원근법과 같다. 그냥 보면 보인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5천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 5천년 동안 눈 감고 다녔다. 중국에서는 서양인이 와서 가르쳐 줬는데도 제대로 알아먹지 못했다. 무려 300년 동안.

 

왜? 쓸모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거 몰라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다. 

 

요즘 애들 5분 만에 원근법 배운다. 깨달음도 같다. 5분 만에 배울 수 있어야 하고 5분이 넘으면 가짜다. 여전히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이유는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돈 안 된다. 아직은 깨달음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아니다.

 

여전히 산업이 가치를 창출한다. 그러나 세상은 변한다. 우리가 목격해 왔듯이.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했지만 한글이 쓸모있게 된 것은 5백년이 지나서였다. 필자의 주장은 깨달음이 쓸모있게 되는 시대, 미학이 가치를 창출하고 돈이 되는 시대가 곧 온다는 것이다. 깨달음의 쓸모가 찾아진다는 거다.


요즘 강남 아지매들도 렉서스 안 타고 재규어 탄다. 무엇이 다른가? 렉서스는 헤벌레 해서 퍼져 있고 재규어는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안목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온다. 렉서스보다 재규어가 낫다는 것은 1초만에 판단할 수 있다. 


필자는 일관되게 '사고치는' 연예인을 지지해 왔다. 왜?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미 한 팀을 이루고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팀이 있고 세력이 있고 이해관계의 일치가 있다. 연예인과 나 사이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이건 세상을 어떻게 볼것인가 하는 시선의 문제, 관점의 문제, 방향성의 문제, 태도의 문제, 포지션의 문제다. 그 포지션이 잘못되면 영원히 렉서스가 좋아보이고 세상 앞에서 자기 포지션을 바꾸면 바로 똥으로 보인다. 

 

자기 마음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으면, 역시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는 재규어와 반응한다. 자기 마음이 헤벌레 해 있으면 헤벌레 해 있는 렉서스와 반응한다. 이건 0초도 안 걸린다. 태도를 바꾸고 자세를 바꾸면 답 나와준다. 

 

결론.. 신수와 혜능의 차이는 1초만에 알 수 있다. 딱 보면 감 온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이유는 연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많은 부분들과. 전부 연결되어 있다면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면 바로 반응이 온다. 

 

거미줄에 곤충이 걸리면 거미가 바로 알아챈다. 거미가 시력이 나쁘지만 거미줄의 떨림을 보고 안다. 거미줄처럼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을때 그냥 알게 된다. 꼬맹이들이 유행을 금방 알아채듯 바로 안다. 어른은 영 모른다.

 

원근법은 그림 안의 제 요소가 마치 거미줄처럼 하나의 소실점과 팽팽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세상과 당신 사이게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반응이 온다. 자연과 반응하고 세상과 반응하는 것이 깨달음이다.


왜 깨닫지 못할까? 왜 반응하지 않을까? 아직은 사회 자체가 덜 팽팽하게 당겨져 있기 때문이다. 미학이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되면 이 라인이 타이트하게 조여진다. 그 때가 되면 누가 안 시켜도 이미 반응하고 있다.

 

  ◎ 원근법은 소실점에 의해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 팽팽하므로  반응한다.

  ◎ 깨달음은 자연과 당신이 한 줄에 꿰어진 채 팽팽하게 긴장되어 반응한다.

  ◎ 사회 전체가 한 줄에 꿰어져 팽팽해질 때 미학의 시대가 열린다.

 

 

 

강희제는 독일 사신이 가져온 첨단 시계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 '서양 원숭이들 재주도 좋군. 짜식들 까불고 있어.' 하고 웃어 넘겼다. 사회 자체가 타이트하게 조여지지 않은 것이다. 아편전쟁에 한 방맞고 중일전쟁에 한방 더맞았다. 그래도 아직 덜 조여졌다. 아직 민주주의 안 하고 있다. 제대로 반응하지 않고 있다. 말하자면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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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꺼비 같던 강남 아지매들이 비로소 반응을 시작했다. 눈을 꿈벅이기 시작했다. 이건 좋은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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