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로써 1을 이겨라.
승부의 요체는 2로 1을 이기는 것이다. 상대편이 1이면 아군은 2를 동원하거나, 혹은 2의 우세가 되는 시공간의 지점을 찾아내야 한다. 좁은 길목을 막아서면 그 지점에서는 적은 병력으로도 2의 우세를 이룰 수 있다. 거기서 승기를 잡고 여세를 몰아 승리할 수 있다.
나폴레옹 전쟁사에서 재미있는 점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피아간의 전력이 대등했다는 점이다. 나폴레옹이 3만을 동원하면 상대편도 3만을 동원하고, 나폴레옹이 10만을 동원하면 상대편도 10만을 동원하는 식이었다. 상대편은 총병력에서 우세하면서도 단일 전투에서는 나폴레옹군을 압도하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나폴레옹군의 침략정보를 입수한 상대편이 나폴레옹군의 병력규모를 판단하고 ‘한번 싸워볼만하다’고 생각되는 숫자까지 병력을 끌어모았기 때문이다. 싸우나마나 나폴레옹의 승리다.
나폴레옹은 무장을 가볍게 하고 행군속도를 빠르게 하여 상대편이 전장에 병력을 집결시키기 전에 각개격파 해버린다. 상대편은 상당한 병력을 보유하고도 머뭇거리다가 붕괴되고 만다. 같은 패턴의 승부가 반복된다. 물론 최후의 워털루 전투에서는 그 반대로 되었다.
중요한 것은 합리성이다. 기본적으로 산수가 되어야 한다. 1+1=2만 되어도 승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엉뚱한 생각을 한다. 동전을 던지면 앞면이 나오거나 아니면 뒷면이 나온다. 확률은 50퍼센트다.
싸우면 이기거나 아니면 지거나 둘 중의 하나다. 이 경우에도 확률은 50퍼센트다? 천만에. 백 번 싸우면 백 번 다 나폴레옹 이긴다. 나폴레옹은 싸우는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은 무조건 2로 1을 이기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전력의 우위를 이루어야 한다. 상당한 병력을 보유하고도 겁이 나서 조금씩 병력을 투입하다가 계속 깨지는 것이 축차투입이다. 겁쟁이들이 흔히 이런 짓을 저지른다.
그런데 대개 겁쟁이다. 나폴레옹과 돌아가면서 한 차례씩 싸운 무수히 많은 장군들이 다 겁쟁이였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겁쟁이다. 그냥 자연스롭게 판단하면 자연스럽게 오판한다. 이 점에 주의해야 한다. 자연스러운 심리의 흐름을 따르지 말고 냉철하게 산수하는 것이 합리적인 태도다.
그들은 나폴레옹군이 10만이면 일단 20만을 소집한다. 그러나 불안해 하며 우선 나폴레옹군과 같은 숫자인 10만을 전장에 투입해보고, 나머지 10만은 자기 자신을 보호하게 하며 뒤에서 지켜본다. 첫싸움에 져서 10만을 잃고, 다시 남은 10만을 투입해보지만 이미 승기를 놓쳤다. 두 번 싸우면 두 번 패배할 뿐이다.
축차투입은 일단 1만을 보내서 지면 2만을 넣어보고, 또 패배하면 4만을 넣어버고, 또 패배하면 8만을 투입하는 식으로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전멸을 면할 수 없다.
2차대전때 일본군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병력을 축차투입했다가 전멸했고, 영국의 처칠과 터키의 케말 파샤가 대결한 1차대전의 갈리폴리 전투도 그렇다. 겁쟁이 처칠은 역사상 최악의 장군 중의 하나였다. 쫄아서 머뭇거리다가 영국군 20만이 죽게 만들었다.
왜 축차투입을 할까? 상대의 반응을 보고 자기 행동을 결정하려 하기 때문이다. 무조건 나쁜 길을 가게 되는 법칙이다. 애초에 자신이 주도권을 잡고 주도적으로 싸워서 이길 생각이 없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나폴레옹군이 10만이면 처음부터 20만을 투입해야 한다. 이때 나폴레옹군은 자신이 숫적으로 불리하다는 사실을 알고 싸우려들지 않을 것이므로 테크닉을 구사해야 한다. 그 방법은 예비병력의 운용이다.
3 대 7의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만약 나폴레옹군이 10만인데 이쪽에 20만이 있다면 일단 6만을 투입하여 좁은 길목에서 적을 막아서게 하고 남은 16만으로 뒤를 받치게 해야 한다. 싸움이 벌어지면 결정적인 타이밍에 전군을 투입하여 초전에 박살내야 한다.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많은 병력을 좁은 전장에 집결시키기는 쉽지 않은데다 나폴레옹군이 어디로 쳐들어 올지 모르므로 여러부대로 나누어 띄엄띄엄 흩어 놓는다. 나폴레옹은 신속하게 행군하여 하나씩 잡아먹는다.
이때 여러 부대로 나누어진 방어군은 아군이 당하는 것을 보고도 구경만 한다. 겁이 나서 머뭇거리는 것이다. 제발 나폴레옹군이 자기네 진지 쪽으로는 오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한다. 물론 자기편 중의 하나가 운좋게 이기면 자신도 달려들어 승리를 나눠먹을 꼼수는 생각하고 있다.
국군도 625때 동두천에서 30대 애송이 친일파 참모총장 채병덕이 2사단을 무리하게 투입하여 전멸하게 만든 적이 있다. 동전을 던지면 승리확률이 50퍼센트라고 믿기 때문이다.
미친 짓을 두 번 하면 운좋게 한 번은 성공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친 짓은 백번 해도 다 실패한다. 이는 비합리적인 사고다.
이러한 심리의 저변에는 막연한 행운을 기대하며 시간을 끌다보면 기적이 일어나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다. 문제는 이게 합리적인 생각이 아니라 인간의 무의식적인 본능이라는 점이다.
머리를 쓴게 아니다. 본능이 이끄는대로 그냥 따라간 것이다. 자연스럽게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본능을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파멸한다. 본능의 개입을 인정하고 훈련하여 의식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그들은 병력을 분산해서 여러 번 싸워보고 그 중 한 번이라도 운좋게 이기면 그 방법을 계속 적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승리를 이끌 대책은 없이 일단 지켜보겠다는 거다. 열 번을 싸우면 못해도 한 번은 안 이기겠나 하는 식이다.
전멸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원초적으로 자격이 없다. 심리적으로 지고 들어간 거다.
10의 병력이 있다면 일단 3으로 막고 7을 예비로 돌렸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7을 투입하여 전황을 역전시켜야 한다. 이는 정해진 공식이다. 공식대로 해야 한다. 이때 가진 역량을 남김없이 쏟아부어야 한다. 그때 심리적 긴장은 최고조에 달한다. 왜? 승부처가 되는 타이밍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예비병력 7을 투입하는 시점이 조금 빠르거나 늦으면 아군이 전멸할 수도 있다. 그 심리적 긴장을 이기지 못하므로 주저하다가 타이밍을 놓친다. 혹은 전투의 결을 모르므로 그 타이밍을 읽는 방법을 모른다. 막연히 어떻게 되겠지 하고 심리적으로 도피하며 주변의 눈치를 본다.
단 한시라도 전황에서 눈을 떼면 전멸할 뿐이다. 나폴레옹이 워털루에서 패배한 것도 위장병에 따른 복통 때문에 잠시 전장에서 눈을 떼고 부하에게 지휘를 맡겼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
전군을 투입하여 승기를 잡아챌 승부처는 한 순간에 지나가 버린다. 눈을 뗄 생각 때문에 시간벌기로 축차투입을 하는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다. 자신의 심리적 긴장을 잘 통제하여 잠시도 전황에서 눈을 떼지 않는 자가 승리한다. 인간의 본능을 극복해야 한다. 본능은 인간을 극도의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도록 유도하며 패배의 길로 이끈다.
나폴레옹군이 연전연승을 거둘 때도 오스트리아에서 한 번 패배한 적이 있다. 다뉴브강을 건너 비인으로 진격할 때다. 다뉴브강은 넓어서 많은 지류들이 있다. 강 사이의 섬에서 숙영해야 했다. 이때 오스트리아군이 앞을 막아선 것이다.
오스트리아군은 초반에 적은 병력을 투입하여 막아서게 하고 예비병력을 뒤로 빼놓았다. 3으로 막고 7로 대기한 것이다. 상대의 숫자가 적은 것을 보고 안심한 나폴레옹군이 강을 반쯤 건너서 빼도박도 못하게 되었을 때 예비병력을 투입하여 승리를 얻어냈다. 물론 나폴레옹군에게 1패를 안겼을 뿐 나폴레옹군은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기어코 비인을 함락시켰다.
그 나폴레옹도 러시아에서는 고전했다. 왜? 러시아는 오랫동안 몽골의 지배를 받았다. 로마노프 왕조 시절에도 몽골족이 타타르 이름으로 러시아의 내정에 간여했다. 그들은 동양식 전쟁을 알고 있었다. 연개소문이 당나라를 쳐부수던 전술 말이다.
동양식 전쟁에서는 3으로 막고 7로 들이치는게 공식으로 되어 있다. 예컨대 교과서에 당나라군이 백만대군을 일으켰다면 실제로는 30만이 국경을 넘은 것이다.
이는 고려나 조선도 마찬가지여서 윤관장군이 16만을 동원하여 여진을 쳤을 때도 실제로는 5만병력이 두만강을 건넌 것이며, 이성계가 5만으로 요동을 칠 때도 실제로는 최영장군이 20만을 동원한 것이다. 임진왜란때 일본군도 오사카에 50만을 동원했고 15만이 바다를 건넜다. 나머지는 짐꾼이거나 중간중간에 병력을 떨어뜨린다.
최영장군이 동원한 20만이 개경에 모였다가 그 중 10만은 개경에 남고 나머지 5만은 짐꾼으로 따라가거나 중간의 주요 거점에 남고 최종적으로 5만이 압록강을 건너는 식이다. 반드시 예비병력이 뒤를 받치게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배후가 불안해서 싸울 수 없다. 내부에서 반란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동양식 전쟁의 기본 개념은 절대적인 숫적 우위에 있다. 숫자가 적으면 후퇴하면서 추격해오는 적의 선두를 뾰족하게 만든다. 뾰족한 돌출부가 만들어지면 그 부분을 잘라먹는다. 이 방법으로 몽골군은 동유럽을 빗질하듯 쓸었다.
경무장의 몽골군이 적은 숫자로 중무장한 독일폴란드 연합군을 이긴 것이다. 평원에서 양군이 대치하는데 독일군이 진격하면 몽골군은 흩어져서 무질서하게 후퇴한다.
몽골군이 완전히 붕괴된 줄로 알고 추격한 독일군의 일대가 뾰족한 돌출부를 이루어 언덕너머로 쫓아가면 그 뾰족한 부분을 싹 잘라먹는다. 언덕을 넘어간 부대는 소식이 없다. 이 방법을 반복하여 독일군의 자원을 소모시킨다.
숫자가 적으면 전선을 길게 만들어서 선두를 잘라먹는 전술을 러시아군은 몽골군에게 배워서 잘 알고 있었다. 나폴레옹이 60만 대군을 동원했으나 모스크바까지 갔을 때는 점차 가늘어져서 10만으로 줄어들었다.
러시아군 주력 10만은 숫적으로 열세였으나 후퇴하며 잘라먹기 수법으로 나폴레옹군을 약화시켰다. 나폴레옹군은 겨우 5만이 프랑스로 되돌아갈 수 있었다.
전쟁은 무조건 2로 1을 이기는 것이며 그 방법은 아군의 10을 3 대 7로 나누어 3으로 막고 7로 덥치는 것이다. 절대적으로 숫적 우세를 이루어야 한다. 우세를 이루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후퇴하면서 적을 가늘게 만드는 것은 기본이다. 지형지물을 이용하기도 하고, 행군속도를 빠르게 하기도 한다.
어떻게든 적이 1일 때 아군이 2를 이루지 못하고 이긴 전쟁은 없다. 전쟁 전체에서 숫적 우세를 확보하기는 어렵지만 결정적인 장소에서 한 순간의 우세만 확보하면 승기를 잡고 여세를 몰아 승리를 얻어낼 수 있다.
대부분은 심리적으로 진다. 적의 결정을 보고 자신의 결정을 내리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 아군을 여럿으로 나누어 지는 싸움에 조금씩 투입하여 조금씩 전멸한다. 결국 전군이 파멸한다.
겁쟁이들은 아군을 3 대 7로 나누지 않는다. 무조건 뭉치려고만 한다. 숫자만 많으면 적이 겁먹고 도망치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운이 좋아서 바보 적을 만나면 이 방법으로 이길 수 있다. 문제는 적이 나폴레옹이라는 거다.
무조건 대통합만 줄기차게 떠드는 사람이 있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당을 하나로 합쳐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 말이다. 이는 겁먹은 것이다. 우리쪽이 뭉친다고 적이 쫄아서 저절로 붕괴되겠나? 천만에.
그렇게 큰소리만 치다가 정작 전투가 벌어지면 전군을 투입하지는 않는다. 불리할 때는 후퇴하면서 적을 길목으로 유인해야 한다. 3으로 막고 7로 들이쳐야 한다. 이때는 적의 중앙에 남김없이 화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두려워하며 승기를 놓쳐버린다.
이는 지난 지자체 선거에서 노회찬이 한명숙을 돕지 않은 것과 같다. 노회찬은 겁쟁이라는 사실을 들켜버린 것이다. 힘을 합칠 때는 주저없이 합쳐야 한다. 자기 목숨부터 내던져야 한다. 의인과 불의한 자가 그렇게 가려진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 전투의 결을 읽어야 한다. 타이밍과 승부처를 판단하는 눈을 얻어야 한다. 주도적으로 판을 이끌어야 한다. 계속 긴장을 고조시켜야 한다. 끝없이 적에게 스트레스를 가해야 한다.
올인할 듯 하면서 3만 내밀고 7을 뒤로 감추어야 한다. 적이 멋모르고 올인하면 숨겨둔 7을 내밀어 단숨에 박살내야 한다. 승리하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자기를 이기는 자가 최후에 이긴다. 무심하게 산수를 해야 한다. 1+1=2만 알아도 승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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