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 똑 이렇게 해라
구조론연구소 김동렬슨생 2011.12.01
창의하는 방법
스마트폰은 컴퓨터일까 아니면 전화기일까? 라디오모자는 라디오일까 아니면 모자일까? 전자손목시계는 전자장치일까 아니면 그냥 시계일까? 나가사키짬뽕은 짬뽕일까 아니면 인스턴트 라면일까?
창의는 질≫입자≫힘≫운동≫량의 순서로 내려가며 마이너스를 행하는 것이다. 이때 한 단계씩 계급이 내려간다는 데 주의해야 한다. 말하자면 신분하락이다. 무조건 계급이 낮은 쪽을 찍어야 한다.
◎ 창의는 신분하락이다.
춘향전은 양반의 자제인 몽룡이 주인공일까 아니면 기생의 딸인 춘향이 주인공일까? 신데렐라 설화는 가난한 신데렐라가 주인공일까 아니면 잘난 왕자가 주인공일까? 신분이 낮은 쪽이 정답이다.
라디오와 모자를 결합한 제품은 라디오가게에서 팔아야 할까 아니면 모자가게에서 팔아야 할까? 모자가게에서 팔아야 한다. 모자라디오냐 아니면 라디오모자냐다. 우리말은 뒤에 오는게 주인공이다.
모자가 주인공이다. 모자라디오로 보면 라디오의 기능 중 일부가 마이너스 된 결함있는 라디오다. 야외에서만 쓸 수 있는 허접한 제품이다. 실패다. 그러나 모자로 보면 기능이 뛰어난 고급 모자다.
둘 이상을 결합했을 때는 신분이 낮은 쪽에 주목해야 한다. 스마트폰 시대에 즉석카메라는 인기없는 제품이다. 그러나 이 제품을 문구점에서 팬시상품과 함께 팔았더니 의외로 히트했다고 한다.
여성들이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인형이나 장식품과 같은 악세사리 관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이는 카메라의 진보가 아니라 첨단 전자제품이 동네 문구점으로 후퇴한 것이다. 마이너스다.
첨단 카메라 가게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애들 장난감으로 여겨져서 팔리지 않지만 팬시점에서는 고급 아이템이다. 예쁜 장식용 소품과 함께 잘 팔린다. 역시 마이너스로 성공한 예에 속한다.
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직급이 낮은 여직원이었는데 간부가 처음 아이디어를 듣고는 제품을 우습게 보고 무시한다며 화를 냈는데 뜻밖에 대히트를 해서 승진은 물론 두둑한 보너스를 안겼다고 한다.
나가사키 짬뽕의 성공과 신라면 블랙의 실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비싼 나가사키 짬뽕이 값싼 인스턴트 식품으로 신분이 마이너스 된 것이다. 그러나 신라면블랙은 라면 주제에 스스로 귀족선언을 했다.
아래에서 위로 자가발전 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전쟁을 해도 먼저 높은 고지를 차지한 다음 낮은 저지대의 적을 공격해야 한다. 반대로 낮은 곳을 차지하고 높은 곳을 올라가다가는 미끄러질 뿐이다.
◎ 컴퓨터≫자동차≫저울≫바퀴≫망치
상품의 계급이 있다. 무조건 계급이 낮은 쪽에 기준을 맞춰야 한다. 컴퓨터와 같은 인공지능 제품이 가장 계급이 높고, 그 다음 엔진이 있는 자동차, 그 다음은 제어장치가 있는 저울이다.
◎ 인공지능≫엔진≫제어장치≫관절≫막대
◎ 동력원≫동력발생≫동력제어≫동력전달≫동력효과
그 다음은 관절이 있는 바퀴이고 막대가 있는 망치가 맨 마지막에 해당한다. 한국식 지게에 바퀴를 달면 300키로까지 질 수 있다. 바퀴지게를 발명하여 후진국에 수출하려는 시도는 실패한다.
바퀴가 주고 지게는 종인데, 바퀴라면 수레와의 경쟁에 밀린다. 지게를 수출하겠다면 넌센스다. 실제로 어떤 박사가 바퀴지게를 발명하여 인도에 보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그 뒤로 소식이 없다.
작은 그릇에 큰 그릇을 담을 수 없다. 지게는 1차원이고 바퀴는 2차원이다. 1차원에 2차원을 붙이면 점에다 선을 넣는 셈이다. 점에다 선을 담을 수는 없으므로 실패다. 2차원에서 1차원으로 내려와야 한다.
자동차는 마차에 엔진을 달아놓은 것이 아니다. 엔진에다 마차를 단 것이다. 절대적으로 높은 차원에 낮은 차원을 달아야 한다. 바퀴에 막대를 달 수는 있어도 막대에 바퀴를 달 수는 없다.
지게는 막대에 해당되므로 바퀴지게는 실패다.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플러스 하려는 시도는 에너지의 낙차가 없으므로 실패한다. 항상 레벨이 높은 쪽을 먼저 달성하고 밑으로 한 걸음 내려와야 한다.
그래야 에너지의 낙차가 얻어진다. 컴퓨터는 높고 전화기는 낮다. 스티브 잡스는 컴퓨터에서 전화기로 한 계단 내려와서 성공했다. 이것이 아래로 내려간 것이므로 모르는 사람들은 잡스를 폄하한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어.’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양반인 몽룡이 평민인 춘향과 춤을 추면 ‘그 정도는 나도 할 수 있어.’ 하고 방자씨 겁도 없이 도전하지만 춘향에게 싸대기 맞고 물러 난다.
춤은 누구나 출 수 있지만 양반이 평민과 춤을 추기는 어렵다. 스마트폰은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컴퓨터 전문가인 스티브 잡스가 만들어야 진짜다. 전화기 만들던 사람이 스마트폰에 도전한다면 넌센스다.
동일한 제품이라도 어느 기준으로 보느냐에 따라 실적이 달라진다. 높은 컴퓨터 자리를 차지하고 낮은 전화기를 바라보면 성공한다. 반대로 낮은 전화기로 높은 컴퓨터를 바라보면 실패한다.
드라마에서는 신분이 낮은 주인공이 신분이 높은 왕자님을 바라보는 것으로 설정되지만 실제로는 인격적으로 넓은 주인공이 편협한 도련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먼저 산전수전 다 겪은 주인공이 탑 포지션을 차지했다.
*** 단기전으로 보면 몽룡이 높고 춘향이 낮지만 장기전으로 보면 춘향이 넓고 몽룡은 좁다. 그러므로 춘향이 주인공이다. 춘향전은 장편소설이기 때문이다. ***
본질로 보면 춘향이 몽룡보다 높다. 몽룡은 글이나 읽었을 뿐이지만 춘향은 산전수전공중전 다 겪었다. 피상적으로는 낮은 노무현이 높은 대통령으로 올라선 듯 보이지만 본질로 보면 그 반대다.
나폴레옹은 대관식에 교황을 불러놓고 왕관을 받아 스스로 머리에 관을 올려놓았다고 한다. 교황 피우스 7세는 뒤에서 뻘쭘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고. 낮은 데서 높은 쪽을 바라본 것이니 이게 망하는 공식이다.
명박스러운 짓이라 하겠다. 낮은 노가다 십장이나 하던 주제에 높은 대통령을 먹었으니 포지셔닝이 잘못된 것이다. 먼저 높은 지위에 오른 다음 낮은 대중을 바라보고 아래로 내려와야 성공한다.
창의는 마이너스 방향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먼저 질을 얻어야 한다. 질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존재가 같은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때 스트레스가 걸리므로 모두가 공간이 비좁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부터 사건은 일어난다. 김기덕 감독의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산 중의 절을 물 속에 빠뜨린 것이다. 고요한 산사에 물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개입한다. 그리고 모두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 서로 다른 둘을 하나의 공간에 집어넣어라.
◎ 마이너스를 행하여 방해자를 제거하라.
강한 스트레스가 걸렸다. 그 다음은 과감한 생략이다. 영화에서 절은 길도 없고 벽도 없다. 반드시 있어야 할 많은 것이 제거되었다. 마이너스다. 김기덕 감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너스를 행한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이라는 많은 식구들이 청송 주산지라는 좁은 공간에 갇혀 서로 불편해 하며 거듭 쟁투를 벌인다. 밀고 당기기가 시작되며 드라마의 긴장은 점차 첨예해진다. 이건 공식대로다.
서로 다른 것을 하나의 공간에 몰아넣고 마이너스를 행하는 것이 창의다. 대부분의 영화는 이런 구조를 가진다. 불청객 구영탄이 함부로 박은하의 공간에 침투하여 무리한 공존을 시도한다.
갈등을 일으키며 둘 사이의 벽들을 차례로 제거해 간다. 강용석과 최효종, 국회의원과 개그맨이라는 이질적인 존재가 하나의 공간에서 불편한 동거를 감내하며 웃기고 자빠진 스토리를 생산한다.
근대는 르네상스 시대의 원근법 발견으로부터 촉발되었다. 원과 근이 하나의 캔버스에 공존하는 것이다. 일본 판화 우키요에는 원경으로 후지산을 놓고 그리고 근경으로 사쿠라를 그리는 식이다.
이때 서로 다른 둘의 충돌에 의해 강한 인상이 일어난다. 그 다음은 마이너스다. 우키요에의 영향을 받은 인상주의 화가들은 과감하게 배경을 생략하기 시작했다. 그래야 질서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 대표적이다. 많은 것들을 없애고 핵심만을 남기며 강력한 충돌을 일으킨다. 걸작 풀밭위의 식사처럼 서로 간의 장벽을 제거해 버린 것이다. 예의도 매너도 사라졌다.
점잖은 신사와 매춘부의 정면충돌은 관객의 낯을 뜨겁게한다. 점잖은 전직 국회의원 정봉주와 졸라씨바 낯뜨거운 욕설전문 김어준의 나꼼수 동거는 빅뱅을 일으킨다. 거기서 예술은 시작된다.
불필요한 것을 제거하면 질서가 드러나며 그들은 마찰한다. 원근, 강약, 강유, 개폐, 경중, 경향, 시종, 인과, 고락, 고저, 곡직, 공사, 군신, 귀천, 고금, 길흉, 남북, 내외, 다소의 감추어진 내부서열을 드러낸다.
창의는 닫힌계에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이며 에너지는 갈등과 긴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안데스산에 있는 라마의 무리 중에 늑대 한 마리를 투입하면 어느 놈이 수컷이고 어느 쪽이 암컷인지 단박에 드러난다.
외곽에서 파수를 보던 수컷이 먼저 늑대를 발견하고 무리에 큰소리로 경계신호를 보낸다. 암컷들을 불러모아 도주하게 한 다음 되돌아와서 길목을 막아선다. 이때 질서가 드러나는 것이며 그것이 창의다.
수컷 라마는 맹수가 습격해도 도주하지 않고 용맹하게 저항한다. 여기서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는 상호작용의 메커니즘이 발견되며 이 메커니즘을 프레이즈로 삼아 높은 음역과 낮은 음역에, 혹은 길고 짧게, 혹은 넓고 좁게, 혹은 깊고 얕게 등등 다양한 환경에 놓아보는 것이 창작행위다.
◎ 상호작용의 메커니즘 – 이게 이렇게 되면 저게 저렇게 된다.
이쪽에서 이렇게 공격하면 저쪽에서 저렇게 방어하고를 반복하며 네트를 가운데 두고 랠리를 계속한다. 공격과 방어가 팽팽한 가운데 긴장을 연출하며 극을 끌고 간다. 작품에는 반드시 그러한 엔진이 있어야 한다.
메커니즘이 있어야 한다. 대칭구조가 있어야 한다. 쓰리랑부부의 김한국과 김미화처럼, 불청객시리즈의 구영탄과 마구만처럼 라이벌로 세팅되어 역할나누기가 되어야 한다. 구색이 맞아야 한다.
딴지일보나 나꼼수는 외부에서 이질적인 것이 새로 투입된 것이다. 이때 내부에서 대항행동을 시작하며 상호작용 과정에서 불필요한 것이 떨어져 나가는 형태로 창의는 일어난다.
나꼼수는 기존 언론에서 하던 많은 것을 버렸다. 뭐를 하면 안된다는 금지선을 깨뜨린 것이다. 대놓고 욕설을 한다. 마이너스를 실행한 것이다. 과거 김구라도 같은 방법을 썼다.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양아치가 욕설을 하면 단박에 배척된다. 좀 아는 사람이 스스로 신분을 낮추어 욕설을 하였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정치도 모르는 신정환이 그랬다면 바로 망했을 것이다. 유식한 김구라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 무식한 이명박이 욕을 하면 – 맞아죽어야 한다.
◎ 유식한 노무현 대통령이 욕을 하면 – 대중친화적인 겸손이다.
창의는 질서를 찾아내고 다시 그 질서를 해체한다. 그러므로 항상 고전주의가 먼저 오고 낭만주의가 나중 온다. 고전주의는 질서를 찾아내고 낭만주의는 다시 그 질서를 해체한다. 수직구조를 수평구조로 전환한다.
영화도 처음에는 고전주의적 형식미를 가지지만 속편에는 액션에만 치중한다. 전편에서 먹혔던 중요한 부분을 따옴표로 발췌하여 지루하게 반복한다. 혹은 양념을 대거 투입하여 불량식품을 제조한다.
속편은 마이너스를 자행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속편이 전편보다 낫기는 힘들다. 인류문명 자체가 속편에 속편을 쓰고 마이너스를 자행하는 것이다. 왕≫귀족≫기사≫평민≫노예의 5단구조에서 하나씩 불필요한 계급을 제거하는 형태로 역사는 진보한다. 세상이 원래 그렇다.
항상 클래식이 먼저 오고 팝이 나중에 오며 점차 격이 떨어지는 것이 예술의 진보다. 과감하게 격을 떨어뜨려야 한다. 판소리나 전통노래나 우리춤이 원래 격이 없었는데 최근에 우리 문화가 주목을 받으면서 갑자기 격이 생겨났다.
시골에서 찾아오는 나그네라면 누구나 환영하며 외롭게 전승하던 분이 갑자기 언론에 출연하고 제자를 받으면서 정부의 지원을 받게 되니 목에 힘을 주고 점점 편협한 길로 가고 있다. 이게 망하는 코스다. 그 반대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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