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식 정원의 진수 ‘센간엔’
‘센간엔(仙巌園)’은 가고시마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시마즈’ 가문의 별장이었습니다. 과거에 가고시마의 서쪽지방인 ‘사쓰마’를 약 700년간 통치한 시마즈 가문은 가고시마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서양의 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던 시마즈 가문은 가고시마를 근대화시키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고, 더 나아가 일본의 근대화를 이룬 ‘메이지 유신’을 있게 한 시초를 제공한 인물에 가까운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시마즈 가문이 1658년부터 별장으로 사용한 센간엔에서는 당대의 권력가가 누렸을 위세와 함께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맛볼 수 있습니다.
센간엔으로 가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시티뷰’ 버스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시티뷰 버스는 센간엔을 비롯한 가고시마의 주요 명승지를 코스로 하여 운행하기 때문에 여행자에게는 아주 편리한 이동수단입니다.
1회 탑승요금은 180엔인데 가급적이면 600엔짜리 1일 승차권의 구매를 추천합니다. 1일 승차권이 있으면 시티뷰 버스뿐만 아니라 노면전차, 일반버스를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구입은 관광 안내소 또는 시티뷰 버스와 노면전차 내에서 가능합니다.
출처 : 가고시마현 관광안내 사이트
참고 : 일찌감치 움직이실 분은 시티뷰 버스의 첫 운행이 약 9시부터임을 감안하고 일정을 짜도록 하세요. 그리고 각각 시로야마-이소 코스와 워터프론트 코스를 도는 두 가지가 있으니 자신이 원하는 버스를 선택하시기 바랍니다. 보다 시티뷰 버스에 대한 보다 자세한 정보 및 운행시각은 여기를 참고하세요. (어도비 리더가 필요합니다)
센간엔의 입구에 다다르면 직원분들이 나와서 친절하게 맞아줍니다.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위 사진에 보이는 자판기에서 입장권을 구입하면 됩니다.
- 요금 정보 -
정원 코스 : 성인 1,000엔 중학생 이하 500엔
저택 코스 : 성인 1,500엔 중학생 이하 750엔
(저택 코스는 센간엔 내 이소저택의 가이드 투어와 말차, 과자를 포함합니다.)
연중무휴이며 개원시간은 오전 8시 30분 ~ 오후 5시 30분입니다.
“센간엔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입구 정면에서 보이는 시마즈 가문의 갑옷과 무기입니다.
마치 센간엔을 지키는 호위무사인 것만 같습니다.
곳곳에 있는 원형 십자가는 시마즈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입니다.
일본의 사무라이는 투구에 특이한 장식을 하고 기괴한 마스크도 착용합니다.
이는 보호의 목적과 함께 적에게 위협적으로 보이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나 보던 걸 눈앞에서 직접 보니 이 또한 신기하기 짝이 없더군요.
사무라이의 영(靈)이 깃들여있는 갑옷의 환대를 받고 나면
곧장 녹음이 우거진 센간엔의 비경이 펼쳐집니다.
걸어 들어가는 길의 곳곳에 하늘 높이 치솟은 나무와 낮게 깔린 푸르른 잔디
그리고 형형색색의 꽃들이 방문객을 향해 화사한 미소를 보냅니다.
봄만이 아니라 센간엔에는 다양한 식물이 있어
사계절의 풍경이 각기 다르다고 합니다.
센간엔의 정경은 수줍음을 많이 타고 조용한 일본인을 닮았습니다.
널찍한 공간만큼이나 고즈넉한 풍경을 가지고 있어
날씨가 화창한 날에 따스한 햇살을 벗삼아 거닐다 보면 마음까지 차분해집니다.
제게는 성수기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은 것이 천만 다행이었습니다.
이렇게 평화로운 곳이 인파로 북적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습니다.
조금 이기적인 생각인가요? ^^;
50,000m²(15,124평)에 달하는 규모는 웬만한 공원에 필적합니다.
개인의 별장과 정원이라고 하기엔 어마무지할 정도니
과거 시마즈 가문의 권세가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센간엔의 명물인 ‘잔보모치’를 판매하는 ‘잔보야’입니다.
비극적이게도 전 이곳에서 잔보모치를 먹지 못했습니다.
먹기는커녕 구경도 못하고 돌아와서 깊은 여한을 남겼습니다.
그 구구절절한 사연인즉슨 다음과 같습니다.
한껏 정취를 느끼며 센간엔을 한바퀴 둘러본 후에 일행들과 따로 떨어졌습니다.
전 버스 시각까지 여유가 있어서 사진을 좀 더 찍다가 내려갈 참이었고
나머지 네 명은 잠보모치를 먹으러 간다고 하더군요.
나중에 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자고 하면서 헤어졌는데…
자기들끼리 다 먹어치우고 제 몫은 전혀 남겨두질 않았더라는 슬픈 전설입니다. -_-+
그 네 명이 누군지 여기서 낱낱이 공개하고 인민재판을 유도하려고 하다가
한 살이라도 더 나이 먹은 제가 참습니다 ㅋㅋㅋ
센간엔은 가고시마의 벚꽃놀이 명소로도 꼽힙니다.
제가 갔을 때는 만개하는 시기가 지나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진 않았더군요.
바닥에 휘날리던 꽃잎의 개수만큼이나 아쉬움이 컸습니다.
이건 일본의 정원에서 흔하게 볼 수 있죠?
‘쓰쿠바이’라고 해서 다실에 들어가기 전에
손을 씻을 수 있는 물을 받아 놓은 돌그릇입니다.
이걸 보니 쿠엔틴 타란티노의 걸작 <킬 빌>이 생각나네요.
마지막에 눈으로 뒤덮인 청엽정의 정원에서 결투를 벌이기 전에
오렌이 브라이드의 칼에 대해 묻습니다.
브라이드가 전설의 명인인 핫토리 한조가 하사한 칼이라고 답하자
오렌은 믿을 수 없어 하며 거짓말이라고 일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이들이 대화를 나눌 때 대나무가 퉁퉁거리며 울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어떤 소리인지는 아마 다들 아실 거에요.
물이 차면 아래로 내려가서 쏟아낸 다음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대나무 통…
‘Don’t Let Me Be Misunderstood’의 경쾌한 박자에 맞춰 최후의 대결을 펼치다가
잠시 멈추는 순간에도 이 대나무의 소리가 정적을 깹니다.
1,500엔의 입장권을 구입하면 안내와 함께
내부를 볼 수 있는 ‘이소저택(磯御殿)’입니다.
말차와 화과자도 접대한다고 해서 구미가 당기긴 했지만
일본어를 몰라 전혀 알아듣지 못할 게 뻔해서 500엔을 절약했습니다. ^^;
센간엔을 조성할 당시로는 드물게
주석(朱錫)으로 기와를 이은 ‘스즈몬(錫門)’입니다.
초창기에 정문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번주(藩主)와
적자만이 지나다닐 수 있었다고 합니다.
‘번’은 에도 시대 일본의 작은 행정구역입니다.
시즈마 가문이 다스린 사쓰마도 번이죠.
센간엔이 일본식 정원의 진수를 넘어 국가명승지로 지정될 만큼 극찬을 받는 데는
‘사쿠라지마(桜島)’와 ‘긴코만(錦江湾)’을 활용한 공이 큽니다.
일본식 정원은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인공적으로 꾸미는 것이 특색이라고 합니다.
이를테면 자신의 정원에 자연을 소유하고픈 욕구의 발현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인공적으로 조성한 ‘쓰키야마(築山)’가 산을, 연못은 강이나 바다를 나타냅니다.
센간엔은, 정확히 말해 이소저택에서 바라보는 앞뜰은
가고시마의 상징인 사쿠라지마와 긴코만을 각각 산과 연못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을 차경(借景)이라고 하며,
정원을 조성할 때 쓰이는 기법 중 하나입니다.
동양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특히 일본에서 두드러진다고 하는군요.
차경은 단어 그대로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입니다.
즉 자연의 경치를 인공적으로 꾸민 정원의 일부로 사용한다는 것이죠.
쉽게 말해서 마루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고로 센간엔은 더 없이 훌륭한 차경을 두어 일본식 정원의 특색을 살린 것입니다.
이런 곳을 거니노라면 정갈한 분위기에 취할 수 밖에 없겠죠? ^^
2008년에는 일본에서 큰 인기를 얻었던 <아쓰히메>가 센간엔에서 촬영됐습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야자키 아오이가 이 드라마의 주인공
아쓰히메를 연기하여 찬사를 받기도 했습니다.
아쓰히메는 일본이 막부 시대를 거쳐
메이지 유신을 맞이하는 과정을 지켜본 풍운의 여인입니다.
에도 막부 말기에 ‘도쿠가와 이에사다’의 부인이 되기 이전에는
가고시마의 근대화를 추진한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양녀였습니다.
이처럼 센간엔은 미적인 면 외에도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곳입니다.
일본의 남단에 위치한 가고시마는
바다와 인접하고 있어 외국과의 접촉이 용이했습니다.
센간엔의 주인이었던 시마즈 가문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였고,
그들이 통치한 가고시마는 일본에서도 빠르게 근대화를 도모한 지역에 속합니다.
당시에는 서양과 함께 중국의 문화도 유입되었는데
그로 인한 영향이 센간엔의 도처에 서려있습니다.
센간엔이라는 이름부터가 기암괴석이 많아
중국 용호산의 선암(仙巌)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것입니다.
참고로 센간엔은 ‘이소테이엔(이소 정원, 磯庭園)’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의 국왕으로부터 받은
‘보가쿠로(望嶽楼)’는 중국풍의 건물입니다.
‘교쿠수이정원(曲水の庭)’에서는 중국의 의례를 기원으로 한 연회가 열렸으며
센간엔에서 일본 각지로 퍼진 ‘맹종죽(孟宗竹)’은 중국에서 건너온 대나무종입니다.
수령이 족히 몇백 년은 된 것으로 보이는 백송 ‘야쿠타네고요’입니다.
이 백송의 원산지 또한 중국입니다.
서양의 문물이 미친 영향이야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단적인 예로 위 사진에 보이는 모형의 모델인 ‘쇼헤이마루(昇平丸)‘가 있습니다.
이 쇼헤이마루는 서구의 열강들이 전면적인 개방을 요구하며 위협을 가하자
시마즈 가문이 일본에서 최초로 건조에 들어간 서양식 군함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쇼헤이마루를 일본 최초의 서양식 군함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쇼헤이마루가 서양의 배와 헷갈리지 않도록 깃발을 내건 것이
현재 일본의 국기인 ‘히노마루(日の丸 )’의 원형으로 알려졌습니다.
일본판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는 사실과 일부 다르다고 합니다.
쇼헤이마루가 최초로 건조에 들어간 것은 맞습니다만
최초로 완성된 것은 ‘鳳凰丸’입니다.
히노마루의 원형이 된 깃발 또한 이 배에서 먼저 사용한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일본의 역사이고 출처까지 밝힌 걸 보면 이쪽이 더 신빙성이 있어 보입니다.
한편 일본의 국가인 ‘기미가요’의 발생지도 사쓰마라고 하니
역시 가고시마를 일본 근대화의 초석을 이룬 지방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사쓰마는 가고시마 서쪽지역의 옛 이름입니다)
아쓰히메의 양부였던 시마즈 나리아키라는
특히 가고시마의 근대화에 앞장 섰던 인물입니다.
조부의 영향으로 서양의 문물을 일찍이 접하여 정통했던 그는
끊임없이 이어지던 열강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부국강병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시마즈 나리아키는 조선, 대포 제조, 제철, 방적, 유리, 인쇄 등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집성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재도 센간엔의 옆에 위치하고 있는
‘상고집성관’에서 과거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쇼헤이마루 또한 스마즈 나리아키라가 건조를 주도했습니다.
센간엔 내에 있는 ‘사쓰마 기리코(薩摩切子)’도 근대화의 영향으로 태어났습니다.
일본에서 사랑받는 유리 공예품으로 꼽히는 사쓰마 기리코는
처음에 해외와의 교역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습니다.
이 또한 시마즈 나리아키라가 일군 집성관 사업의 하나였으며
지금까지도 유리 공예품의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사쓰마 기리코는 예전에 스웨덴에서 들렀던 ‘코스타 보다’와 흡사하더군요.
장인의 손길을 거친 작품은 제조자의 사진과 함께 전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가격도 비싸서 위 사진의 주전자는 우리 돈으로 자그마치 1천만 원이 넘습니다.
센간엔은 분명 미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장소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아름답고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으로만
상존할 수는 없는 곳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메이지 유신과 더불어
일본의 근대화는 필연적으로 조선 침략을 가져왔습니다.
실제로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기도 다카요시와 함께 유신삼걸로 꼽히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를 가고시마,
그중에서도 사쓰마가 배출하였습니다.
아울러 두 사람은 시마즈 나리아키라를 섬기던 인물입니다.
따라서 이들이 시마즈 나리아키라의 근대화 운동으로부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단언해도 결코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는 ‘정한론(征韓議論)’
즉 조선을 정벌해야 한다고 주장한 장본인입니다.
이러니 일본에게는 근대화의 물결을 앞세우고
유신을 일으킨 위인쯤으로 간주될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게는 뼈아픈 역사의 씨앗을 뿌린 자에 다름 아닙니다.
와츠키 노부히로의 만화 <바람의 검심>을 보다 보면 이런 모순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메이지 유신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작품이라 오쿠보 도시미치가 종종 나타나는데
굉장히 근엄하고 인자한 인물로 묘사됩니다.
하긴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이렇게 충돌하는 인물관은 부지기수겠죠.
지금도 가고시마의 역사자료관인 ‘레이메이칸(黎明館)’에는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가 정한론을 주제로 의견을 나누고 있는
‘정한의논도’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말했다시피 개인적으로 일본의 문화를 좋아하고
센간엔에서도 잊지 못할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도저히 따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역사 때문에
일본은 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원히 애증의 대상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하나투어 규슈원정대는
하나투어 및 규슈관광추진기구의 지원으로 진행됐습니다.
규슈관광추진기구 홈페이지 : http://www.welcomekyush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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