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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남자의 환타지>>>

◆자연운명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3. 6.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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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남자의 환타지   

2011.3.5  호호당의 김태규님

 


‘맨 케이브’라는 미국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저거 뭐지 하며 보니 말 그대로 Man Cave, 남자의 동굴이었다.

 

마음 느긋한 토요일 정오, 지금 내가 글을 쓰는 이곳도 역시 洞窟(동굴)이다. 강남 교보문고 근처의 낡고 허름한 오피스텔을 나는 ‘서초 동굴’이라 부른다.

 

武俠(무협)소설에는 으레 동굴이 등장한다. 무협의 환상 세계를 동경하는 내가 이곳을 서초 동굴이라 부르는 것은 따라서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저 서양 수컷들도 동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니 수컷은 동서양이 같구나 하는 동질감을 느낀다.

 

여자들이 자신만의 동굴에 대한 환상이 있는지 그건 잘 모르겠다. 경험으로 볼 때 남자들의 동굴에 대한 환상보다는 약한 것 같다.

 

서초 동굴, 내가 얼마나 이 동굴을 사랑하는지, 매달 적지 않은 월세를 내면서도 전혀 아깝지 않은 이 동굴이다.

 

洞窟(동굴)이 있다, 고로 나는 存在(존재)한다.

 

재미난 것은 내 동굴에 다른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내가 싫어한다는 사실을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운명을 상담해주었기에 지금 상담을 하지 않아도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동굴을 찾고자 한다. 어쩔 수 없어서 入洞(입동)을 허락할 때도 있지만, 실은 무척이나 불편해한다.

 

내가 까칠해서가 아니라, 동굴이 싫어하는 탓이라 여긴다.

 

동굴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있고,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이 있다. 담배를 마음 놓고 피워댈 수 있으며, 인터넷이란 수정구슬이 있어 바깥세상을 살피기에 아무런 불편이 없다.

 

나는 동굴 안에서 동굴과 한 몸으로 존재하는 동굴의 精靈(정령)이며, 수정구슬로 세상을 훔쳐보는 魔法師(마법사)이기도 하다.

 

선생님, 동굴은 深山幽谷(심산유곡)이나 높은 낭떠러지 벼랑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하고 예전에 어떤 후배가 질문해온 적이 있다.

 

나는 너 잘 걸렸다 싶어 기다렸다는 듯이 까칠하게 쏘아주었다.

 

야, 동굴은 강남역처럼 시끌벅적한 곳에 그러나 의외로 후미지고 窮僻(궁벽)진 곳에 있어야 제대로 된 동굴이지, 심산유곡 동굴은 진짜가 아니지!

 

이보게, 흔히들 혼탁한 세상을 떠나 도원으로 찾아든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실은 저잣거리 속 의외로 고요한 곳에 있어야 진짜 동굴이란 말씀.

 

‘문자를 좀 쓰자면 말이야, 桃源避世(도원피세)보다는 城市山林(성시산림)이 더 진짜라는 얘기이지’ 하고 중국 풍자소설인 儒林外史(유림외사)에 나오는 한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다.

 

‘아니, 유림외사는 또 무슨 책입니까?’ 하는 후배의 말에 ‘하기야 자네가 그런 책을 알 리가 있겠니?’ 하고 건방을 마구 떨었다. 나는 엄청 잘난 척을 했고, 그 후배는 참으로 내 비위를 잘 긁어준 셈이니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살다보면 이런 맛도 있어야지!)

 

어릴 적 중학교 시절 ‘동주 열국지’를 읽으면서 鬼谷子(귀곡자) 얘기에 흠뻑 매료되었던 나였다.

 

鬼谷子(귀곡자), 이 얼마나 섹쉬-한 이름인가!

 

鬼氣(귀기)서린 음침한 계곡 동굴에 사는 현인 또는 마법사, 그 귀곡자는 위로는 天文(천문)에 통하고 밑으로는 地理(지리)에 통달, 즉 ‘상통천문 하달지리’의 도사였다.

 

방연과 손빈의 스승인 그는 아주 어마어마하게 매력적이었다.

 

으흐흑 하고 빠져들었던 나였고, 그로부터 40 년이 지난 오늘에 와서 내가 바로 그 귀곡자 비스무리한 사람이 되어있으니, ‘꿈은 이루어지는 법’임을 절감하고 실감한다.

 

온몸으로 꾸는 간절한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 까닭 또한 자명하다.

 

진실로 간절한 꿈이라면 그 꿈은 이루어질 때까지 꿀 것이니 그렇다. 도중에 꿈을 접는다? 그건 진정한 꿈이 아니라 迷妄(미망)이었을 뿐이니 그렇다.

 

제가 이 다음에 무엇이 될까요? 하고 아이가 묻는다면 ‘그건 쉽지, 네가 지금 꾸는 꿈이 무엇인지만 안다면 말이지’ 하고 답해주곤 한다.

 

또는 ‘지금까지 네가 오래 간직해온 꿈이 어떤 것인지 한 번 정리해보렴, 이왕이면 말로 소리 내어서 말이야, 그러면 미래의 네 모습이 그 속에 들어있단다’ 하고 얘기해주기도 한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은 眞實(진실)하고도 不虛(불허)하다.

 

 

대학 시절, 중국 唐詩(당시) 3백편 정도는 암송해야만 기초가 선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외웠다. 법대생이 그러고 다녔으니 考試(고시)와는 이미 인연이 멀었다.

 

당시를 애송하다보니 자연 위대한 시인들이 다녔던 곳을 나도 한 번쯤 가보고 싶었다. 그러나 1975 년 무렵이니 당시 중국은 中共(중공)이었다.

 

당연히 가볼 수 없는 곳이었다. 홍콩을 통해 밀입국하면 되지 않을까도 싶었지만, 외아들인 몸으로서 그런 모험을 감행할 순 없어 그냥 아쉬워했다. 하지만 언젠가 꼭 가보리라 마음을 먹었다.

 

세월이 흘렀고, 나는 은행을 다니다가 덜컥 사표를 내었다. 이대로 살다가는 진짜 후회할 것 같은 마음이었다. 1993 년 겨울의 일이었다.

 

사표를 내고 무작정 간 곳이 중국이었다. 1994 년 봄의 일이었다.

 

중국을 혼자 여행하다가 양자강 중류의 대도시인 武漢(무한)을 찾게 되었고, 당연히 명승지인 黃鶴樓(황학루)에 올랐다.

 

해질 녘 멀리 흐린 長江(장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스쳐가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아니 이거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지녔던 꿈이 아니었던가 싶었다.

 

황학루는 이태백이 노래했던 바로 그 장소이고, 눈앞의 저 강 또한 바로 그강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黃鶴樓中吹玉笛(황학루중취옥적) 江城五月落梅花(강성오월낙매화)란 絶後(절후)의 詩句(시귀)에 나오는 황학루였고, 눈앞의 장강은 孤帆遠影碧空盡(고범원영벽공진), 唯見長江天際流(유견장강천제류)를 일필휘지했던 바로 그 강이었다.

 

이백과 두보의 발자취를 따라 다녀보고픈 간절한 마음이 그 사이 잊고 있었더니만, 어느 새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간직했던 꿈은 나로 하여금 사표를 내게 만들고, 낯선 중국 대륙의 양자강 기슭에 세워진 황학루로 나를 인도했구나 생각하니 절로 터져 나오는 탄성이었다.

 

당장 앞일의 생활 걱정은 뒤로 하고 흠뻑 詩情(시정)에 취해 중국을 여행하고 다녔으니 나는 참 철없는 가장이기도 했지만, 아무튼 꿈은 이룬 셈이었다.

 

가끔 부귀영화나 영달에 관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길을 묻는 수컷들이 찾아온다.

 

그러면 그 수컷의 얼굴을 보아가며 솔직한 속내를 말해줄 때도 있다.

 

솔직한 속내란 것은 이런 얘기이다.

 

그냥 하고픈 대로 하시오, 꿈이 있다면 그 꿈을 찾아서 가시오, 이렇게 답해준다.

 

그러면 먹고 사는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하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그게 걱정이면 하지 말든가, 꼭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 어디 의무규정이라 합디까, 뭐 법에 정해져 있습디까?’ 하고 퉁명스럽게 말해준다.

 

그리고 토닥여준다, ‘다만 열심히 꿈길을 좆다보면 어디선가 반드시 당신만의 동굴을 발견하게 될 것’이라고 말이다.

 

봄날이 제법 온화하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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