驚蟄(경칩), 그 각성의 때에 대하여
2011.3.2 호호당의 김태규님
올해의 첫 봄비는 雨水(우수)로부터 일주일이 늦었다. 늦은 밤 시간의 산책, 얼굴을 적시는 보슬비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 늦으셨네요, 하지만 뭐 잊지 않고 내리시니 그저 반가울 따름이지요.’ 고즈넉한 숲길에 돌개바람이 일어 잠시 강아지들을 불안하게 했지만, 젖은 흙길은 걸음마다 폭신했고, 흠뻑 젖은 나무들은 곁을 지나칠 때마다 가로등 불에 번질대며 웃음을 지어왔다.
오는 3월 6일이면 驚蟄(경칩)이다.
그래서 오늘은 경칩의 놀라운 秘密(비밀)에 대해 알려 드리겠다.
경칩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覺醒(각성)이다. 좀 덧붙이면 ‘참담한 각성’이다.
당신이 조선 시대 말의 농부라고 가정하자. 지난 가을에 걷었던 곡식, 처음엔 부자가 된 느낌이라 추석에 한판 잘 차려먹었지만, 정작 이리저리 떼어주고 빚 갚고 나니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冬將軍(동장군) 물러가는 우수 무렵이 되니 봄소식이 반갑긴 한데 정작 식량이 걱정이다. 보리 철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그때까지 끼니를 이어가기 만만치 않아 시름 깊은 당신이다.
그렇다고 헛간 광주리에 보관해둔 볍씨로 밥해먹을 순 없는 노릇, 이에 시름 깊어진 당신 앞에 驚蟄(경칩)이 다가온다. 고구마나 감자 등으로 끼니를 이으면서 슬슬 농사지을 준비에 나서야 한다. 추위 방금 가신 들판에 나서니 땅은 여전히 차갑고 소원하기만 하다. 멀리 연무가 슬쩍 서리는 저편을 바라보면서 절로 큰 한숨을 내어 쉬는 당신이다.
‘아, 지난 가을 난 왜 야무지게 하지 못하고 들뜬 기분이었던 것일까?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건만’ 하고 반성하고 각성하는 농부가 당신이다.
생경한 들판을 밟으며 그래 어찌 되었던 또 다시 이 땅위에 서서 힘겨운 씨름을 해야 한다고 다짐할 수밖에 없는 당신이다. 이것이 경칩의 마음이다.
경칩이 되면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만물이 그렇다.
땅속의 개구리는 冬眠(동면)에서 깨어나 이제 땅위로 나올 준비를 하지만 그렇다고 땅위 세상은 여전히 쌀쌀한 날씨, 결코 좋고 편한 마음 아니다. 땅속의 지렁이도 겨울잠에서 깨어 차가운 흙속을 헤치고 다닐 채비를 해야 하니 역시 그렇다.
나무 역시 그렇다. 어쩔 수 없이 밑으로부터 물이 올라오니 슬슬 순을 낼 준비를 해야 하는데, 뭐 앞날에 해가 마냥 비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불안한 마음이다.
경칩에 이르러 세상 만물이 모두 불안하고 걱정스런 마음인 것이다.
아이들도 개학철이라 학교에 가야한다. 올 한해 또 어떻게 지긋지긋한 공부에 시달려야 하지? 하고 벌써부터 걱정스런 마음이다.그런가 하면 상급 학교로 진학한 학생들은 마음이 더 싱숭생숭하다. 입학식날 꽃샘추위로 눈발이라도 날리는 교정에서 교장 선생님 훈화를 듣자니 내가 여기에 왜 서있지? 하는 마음도 든다. (물론 요즘에는 입학식도 강당에서 진행하지만.)
회사 다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 이제 새해도 익었으니 뭔가 좀 더 구체적으로 시작해볼 때가 된 거 아닌가요? 하고 상사가 압박을 해온다. 물론 그 상사는 경영주에게 똑 같은 압력을 받을 것이고.
경칩으로서 만물은 일제히 또 다시 낯이 설고 모르는 세계로 한 발을 내어딛는 것이니 그 마음 편하지가 않다. 에이, 하지만 조금 지나면 따뜻한 봄날이 올 텐데요 하고 당신이 반문한다면, 난 이렇게 반문하겠다. 그러는 당신은 자신의 앞날을 한치 앞이라도 내다보고 있는가요?
경칩으로서 이처럼 만물이 각성하고 반성한다. 그 시름이 결코 가볍지 아니하다.
놀랄 驚(경)에 칩거할 蟄(칩)이 驚蟄(경칩)이다.
蟄居(칩거)를 마치고 나오자니 뒤숭숭 불안한 마음이라서 경칩이다.
경칩에 이르러 모든 것들은 어지간하면 그냥 이불 속에서 그대로 동면을 이어가고 싶어 한다. 우리 몸도 물론 그렇다. 계속 자고 싶은 것이니 춘곤증이 마구 밀려온다.
그러나 농부인 당신은 들에 서야 한다.
당장 먹을 것 떨어져가는 형편이고, 지금 농사를 시작한다고 당장 쌀이 나오는 것도 아니지만, 어찌 되었건 간에 나중에라도 처자식 굶기지 않으려면 들판에 설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
살다보면 먹고 사는 것 참 구차하고 치사하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을 수 없는 때가 있다. 바로 驚蟄(경칩)이 그런 민망한 때인 것이다.
이제 경칩이 어떤 때인가를 이해하시겠는가?
일어나기 싫지만 일어나야 하는 때, 참담한 각성의 때, 보이는 것 없고 잡히는 것 없지만 뭔가 보아야 하고 허공이라도 움켜잡아야 하는 때, 하지만 마음은 뒤숭숭하기 이를 데 없는 때, 휴면에서 깨어나 엔진을 다시 가동해야 하는 때라는 것에 대해 이제 감이 올 것이다.
우리 삶의 전체 과정 속에도 그런 때가 있다. 나는 그것을 그 사람의 運(운)이 지금 경칩을 맞이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 호호당은 2002 년으로서 경칩을 맞이했었다. 내 나이 마흔 하고도 일곱이었다.
당시 내 마음은 실로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참 이거 민망하고 한심해서 어쩌지 하는 마음이었다. 한창 날고 기고 해도 성이 차지 않을 나이에 이게 뭐람 싶었다. 머리 속에 든 것만 해도 5 톤 트럭 분량인 내가 어쩌다 이런 처지에까지 왔을까 하는 自歎(자탄)의 마음이었다.
살아온 삶 전체를 통해 가장 초라하고 한심한 때가 2002 년이었다. 오십을 앞둔 나이에 지난 모든 삶을 잘못 되었다고 否定(부정)해야 했다. 뭐 어디 탓을 할 거나 있어야지 탓이라도 하지, 그저 아주 민망할 따름이었다.
용납만 된다면 그냥 세상에서 조용히 퇴장하고 싶었던 내 인생의 경칩이 2002 년이었다.
그러나 알게 되었다.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그런 때가 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제법 위안이 되었다. 운명을 재미삼아 연구해온 내가 자연에 존재하는 24 절기의 순환이 우리 인생에도 그대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꽤나 시간이 지난 뒤였다.
해마다 경칩이 찾아오지만, 커다란 주기를 통해서도 찾아온다는 사실, 나라에도 경칩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나는 마침내 秘密(비밀)의 문을 열고 들어선 느낌이었다.
자연 속에 오롯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순환의 비밀에 대해 알게 된 기쁨은 실로 컸다. 망하고 나니 새로운 기쁨을 가져다주는 자연과 삶의 오묘한 이치였다.
내가 이 비밀의 전모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된 것은 2007 년이었으니 그것은 마치 양력 4월에 맞이하는 淸明(청명)의 때와 같았다. 여기에서 내 개인의 얘기를 하는 것은 까닭이 있다.
1955 년생인 나는 나이가 쉰 하고도 여섯이다. 60 년을 하나의 큰 주기로 하는 운의 흐름에 있어 이제 대충 모든 과정을 겪어보았다는 것이고, 그로 해서 이제 사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경험이 쌓였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그간 보니 운의 흐름이 한창 여름으로 치닫는 사람은 겨울로 드는 사람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반대도 그렇다는 것을 알았다.
운이 여름을 향해 가는 사람은 그간의 성취가 쌓여가는 과정에서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지, 열심히 해도 일이 어려워져가는 사람의 정서를 이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한 번 사람이 흐름을 타면 모든 것들이 웬만하면 이루어진다. 그러나 한 번 흐름이 꺾이면 아무리 노력해도 이상하게도 일이 더 어려워진다.
지금 이글을 읽는 사람 중에도 인생의 경칩 부근에 섰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니 공감이 클 것이다. 그런 분들에게 내 개인의 경험을 들려드림으로써 작은 위안을 드리기 위함이다.
글이 꽤 길어졌지만 한 번에 마칠 생각이다.
우리 국운의 경칩에 관해 좀 더 얘기하고자 한다.
1969 己酉(기유)년이 우리 대한민국의 경칩이었다.
당시 제법 세상물정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다 민망해했다. 우리가 왜 이리도 못 살고 가진 것이 없는지 참 스스로 부끄러워했다.
그러나 1969 년은 이제와 돌이켜보면 실로 위대한 改革(개혁)의 해였다.
국민주택을 보급하기 위한 주택은행 설립, 의료보험 제도의 활성화, 경부 고속도로, 포항제철, 조선소 건립을 포함한 각종 산업화 추진, 향토예비군 제도 등등 오늘날 우리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모든 것들이 그 무렵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당시로선 어려서 세상 모르고 자란 세대들은 훗날에 와서 박정희를 일방적으로 매도했지만, 독재자 박정희야말로 당시 모든 국민들과 함께 개혁을 추진하면서 우리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진정한 영도자였음을 훗날 역사는 평가하리라 본다. 過(과)가 없지 않았지만 그 功(공)이 너무나도 혁혁했기 때문이다.
독일이 일어섬에 있어 鐵血(철혈)의 비스마르크가 있어야 했고, 그처럼 영국에는 독재자 크롬웰, 러시아에는 피터 대제, 일본에는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이토 히로부미를 포함한 여러 인물들이 있어야 했듯 우리에게는 독재자 박정희가 있어야 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중국 역시 천안문 사태를 무력 진압토록 한 등소평이 없었다면 오늘의 중국은 없었을 것이다.
흥기한 역사를 보면 예외 없이 모두가 그런 힘겨운 과정을 통해 미래의 도약을 위한 힘의 축적 과정을 밟았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1969 년으로부터 60 년이 지난 2029 년이면 우리는 또 다시 민망해할 것이다. 그 때 역시 또 한 번 경칩의 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저번처럼 강압에 의한 과정은 없을 것이다. 역사의 단계가 한 계단 올라서있을 것이기에 그렇다. 하지만 그 역시 대단히 어려울 것임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올해가 2011 년, 이제 18 년이 남은 셈이다. 그리고 우리는 착실히 모두가 민망해할 때를 향하여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그 때가 지나면서 우리는 또 다시 힘차게 일어설 것이다.
역사는 너무나도 많은 서로간의 오해로 얼룩져 있다. 내가 이 블로그를 하는 이유 중에 큰 하나로서 조금이라도 그 오해를 풀어주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알고 나면 실로 세상과 우리는 모두 하나인데 말이다. 사랑하기도 바쁜 세상에 미워하다니 그게 무슨 일인가! 이제 보름이면 生動(생동)의 개나리 피어올 것이니 그 실로 반가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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