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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도요타 자동차를 손봤을까? (리콜 사태의 본 내막)

◆경제지혜·미래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11. 2. 5.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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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미국은 도요타 자동차를 손봤을까? (리콜 사태의 본 내막)

2011.2.2 호호당의 김태규님

 

 

2009 년 9월 말 시작되어 11월 380 만대의 렉서스 모델의 리콜로 본격화된 도요타 자동차의 리콜 사건은 2010 년 2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정점에 달했다가 이후 그럭저럭 무마되었다.

 

이제 사건이 마무리된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렀으니, 이 사건의 본 내막에 대해 얘기해도 될 때가 된 것 같다. 도요타 자동차 리콜 사태는 한마디로 미국이 엉겨 붙으려 하는 일본을 상대로 제대로 본때를 한 번 보여준 사건이었다.

 

국내 미디어들은 좌든 우든 이 사건의 본질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해설을 하지 않았기에 오늘 이 글은 그런 면에서 상당히 흥미로울 수 있겠다. (나 호호당은 음모론자가 아니다. 따라서 이 글도 음모론이 아니라 국제정치역학에 대한 해설일 뿐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의 시발점은 2009 년 8월 30일에 있었던 일본 중의원 선거였다. (일본은 양원제이고 중의원은 미국의 하원, 참의원은 미국의 상원이라 보면 된다.)

 

이 선거의 결과는 대단히 놀라웠다. 하토야마가 이끄는 야당 민주당이 전체 의석 480 석 중에서 무려 308 석을 차지하면서 수십년간 일본을 이끌어온 자민당을 격패시킨 것이다.

 

왜 일본 유권자들이 민주당을 대거 지지했는지는 또 다른 주제이니 생략하겠지만, 아무튼 민주당의 압승은 일본 국민들의 ‘선거 혁명’이었다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하토야마가 선거 유세를 통해 미국에게 엉기고 개겼다는 점이었다.

 

일본은 제2차 대전에서 미국에게 패배한 이래 다시 부흥하는 과정에서 미국에게는 철저한 복종의 자세를 보여 왔다. 그러나 하토야마는 이제 미국 일변도의 정책 관행에서 벗어나 아시아 쪽으로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다. 다시 말해 미국에 대해 ‘NO’ 라고 말할 것은 하겠다는 사람이었다.

 

마치 노무현 대통령의 초기 모습과 같았다. 하토야마는 미국의 이라크 전쟁과 2008 년 금융위기에 대해 몹시 비판적인 시각을 지녔던 사람으로서 자신이 정권을 잡으면 결코 일방적으로 미국을 추종하지는 않겠다고 공언했다.

 

이에 하토야마는 구체적인 정책의 하나로서 오키나와 미군기지 특히 ‘후텐마’ 기지를 축출하겠다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었다.

 

그러나 오키나와 미군 기지는 서태평양 전체를 통제할 수 있는 핵심적 전략 요충이다. 미국은 오키나와 기지를 통해 중국은 물론 북한과 동남아시아 전체를 감제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개입전략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군이 일본에 주둔하고 있지만, 그냥 오키나와에 주둔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하토야마는 그 시범 케이스로서 ‘후텐마’ 기지의 이전을 들고 나온 것이니 미국 입장에선 여간 난감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 오마바 대통령은 즉각 관련자를 소집하여 작전을 짰던 모양이다.

 

총리가 된 하토야마에게 여러 채널을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을 것이고, 이에 여전히 강경한 자세임을 확인하자 바로 경고성 조치에 들어갔던 것으로 추산된다.

 

일본 중의원 선거가 있었던 8월 30 일로부터 한 달도 채 못가서 급작스럽게 불거진 사건이 9월 26 일 도요타 자동차인 캠리 모델 5만5천대에 대한 리콜 조치였다. 캠리는 미국시장에서 8 년 동안 ‘베스트 셀링카’의 지위를 굳히고 있던 최고 인기차종이었다.

 

(이때만 해도 나는 이것이 하토야마의 후텐마 기지 이전과 관련된 사건인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조금 시간이 지나자 절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이로서 미일 양국 간에는 그 이후 치열하고도 凶險(흉험)한 외교전이 비밀리에 전개되었을 것이다. 그 외교전의 클라이막스는 2009 년 11월의 오마바 대통령의 일본 방문 건이었다.

 

11월 2일 도요타는 캠리에 비해 더 대규모인 380 만대의 렉서스 자동차 리콜을 발표해야 하는 사태를 맞이해야 했고, 이로서 오바마는 일본 방문을 앞두고 충분한 위협을 하토야마에게 주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오바마의 일본 방문은 11월 13일에 있었다. 원래 12일에 방일할 예정이었는데 마지막까지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러나 양 정상의 회담에서 후텐마 기지 이전에 관해 어떠한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았고, 심지어 하토야마는 다음 날 방일중인 오바마를 뒤로 한 채 APEC 회담에 지각하지 말아야 하면서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훌쩍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한마디로 하토야마가 오바마에게 모욕을 준 셈이다. 이러자 일본 언론은 ‘미일 동맹의 중층적 심화에 두 정상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重層(중층)적 심화? 이 말이 도대체 무슨 말일까? 멀티 레벨의 심화라는 말인데 이런 말이 바로 외교적 발림말의 좋은 사례라 하겠다.

 

마치 겹겹으로 미일이 동맹을 심화한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이런 면은 갈등이 있고 저런 면은 협조하는 동맹이란 말이고 따라서 양국 간에 不和(불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에두른 표현이다.

 

나는 전례 없는 외교 해프닝으로 일관된 오바마의 방일 사건을 통해  도요타 자동타 사건이 미일 간의 힘겨루기에 관련되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건이 동시 진행형이었기에 이른바 눈치를 깠다.) 미일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되었고, 덕분에 덕을 본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었고 우리 대한민국이었다.

 

하토야마로부터 바람을 맞은 오바마는 기분이 엄청 더러웠을 것인데, 이어 며칠 뒤인 11월 18-19 양일간 서울을 방문해서 이명박 대통령과 일부러라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회담을 진행했기에 그렇다.

 

두 정상은 한미 동맹의 미래 비전에 대해 돈독한 우정을 과시했고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를 최우선적으로 반영하는 선에서 처리할 것을 약속해주었다.(나 호호당은 이때 오바마의 표정을 텔레비전을 통해 관찰하면서 씩 하고 웃었다. 아무튼 우리에겐 좋은 일이지 뭐 하면서, 또 하토야마 이 양반 조만간 훅 가는 거 아냐? 하면서.)

 

그리고 정말 내 생각대로 하토야마는 훅 하고 한 방에 날아갔다. 작년 2010 년 6월, 사면초가에 몰린 하토야마는 엄청난 퇴진 압력을 받고 그만 辭任(사임)하고 말았다.

 

이에 미국 백악관은 ‘일본의 정치절차와 하토야마 총리의 사임결정을 존중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마치 마피아 영화처럼 지들이 죽여놓고 애도를 표하는 장면과도 같았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과 일본의 관계는 매우 강하고 공동의 이해관계와 가치에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다. 양국 동맹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일본의 총리와 미국의 대통령이 누구였든 발전해 왔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어 ‘미국은 일본 정부, 차기 총리와 더불어 양국이 직면해 있는 광범위한 이슈들에 대해 긴밀히 협력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이면서 ‘하토야마 총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제2차 대전 이후 처음으로 엉겨붙어본 일본의 완전하고도 철저한 굴복이었다. 거의 인조 임금의 ‘삼전도 굴욕’에 버금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간 나오토가 6월 4일 총리직에 추대되었다. 간 나오토는 6월 6일 오바마로부터 걸려온 전화에서 ‘양국간 합의를 기본으로 확실히 대처하겠다’고 하면서 더 이상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미국과 불화를 일으키지 않겠다는 내용을 확인해주었다. 계속 충성하겠슴돠! 였다.

 

이에 오바마 대통령은 의젓하고도 인자한 목소리로 ‘대등한(?) 파트너십으로 협력을 강화하고 싶다’고 응대 멘트를 날렸다. ‘응 그래야지 앞으로 잘 해’였다. (이처럼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곧잘 등장하는 ‘대등한 파트너십’이란 말은 알아서 기는 자세를 뜻한다.) l

 

이에 간 나오토는 이어 9월 14일 2년 임기의 민주당 대표에 재선되었고 총리직 재신임을 받았다. 물론 도요타 리콜 사태도 그 이후 8월을 고비로 유야무야 종결되고 말았다.

 

이러니 내가 도요타 리콜 사태와 하토야마 사건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억지 음모론이 아니라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것을 읽는 독자도 능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 남아있다.어찌하여 하토야마는 초장 기세를 살리지 못하고 그만 어느 순간 깨갱하면서 퇴진해야만 했던 것일까? 제2차 대전 이후 최초로 ‘아니거든요’ 라고 말하겠다던 기백의 하토아먀였고 일본의 對美(대미) 의사표현이었는데 말이다.

 

지금부터 그 이유에 대해 좀 더 설명을 하고자 한다. 도요타 자동차는 우리 대한민국으로 치면 삼성전자라 할 수 있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이자 수출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 일본 경제의 버팀목이다.

 

그런데 이 도요타 자동차의 수출 시장은 주로 미국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도요타를 포함해서 일본의 수출시장은 최근 중국이 커지면서 달라지긴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주로 미국이었고 지금 역시도 이윤이 나는 수출은 주로 미국 시장 쪽이다.

 

따라서 일본에게 있어 미국 시장이야말로 일본 경제의 사활을 쥐고 있다 할 것이다. 그러니 만일 미국이 일본을 골탕 먹이고자 할 경우 이번 사건처럼 일차적으로 도요타를 공략했지만, 이건 시범 케이스에 불과하고 줄줄이 사탕 격으로 얼마든지 일본 경제의 숨통을 쥐어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 바로 도요타 자동타 리콜 사태였던 것이다.

 

이에 앗 뜨거 하면서 일본 기업이나 정치인들은 황급히 제 정신을 차렸고, 눈치가 좀 있는 일본 국민들도 덩달아 고개를 숙이며 아 이거 실수했네 하면서 부랴부랴 하토야마에게 사임 압력을 가하니, 초보 총리 하토야마가 견딜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대중을 선동해서 표를 얻는 것과 국가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을 하토야마는 몰랐던 것이다. 도요타 리콜 사태의 내용을 보면서 실로 웃기는 일이 하나 있으니, 말썽이 된 자동차 부품의 제조사는 일본 기업이 아니라 미국 기업이었다는 점이다.

 

이처럼 여전히 미국의 손에 사활을 맡기고 있는 일본이다. 세계 경제규모 제2위, 최근 중국에 밀리면서 제3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生死(생사)는 미국 손에 달려 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준 사건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초기 미국에게 할 말은 하겠다고 하다가 어느 순간 미국 부시 대통령과의 전화 한 통으로 갑자기 자세를 바꾼 적이 있다.

 

그때가 2003 년 3월 17일의 일이었는데 그 직전 무렵에 대충 무슨 말이 오갔는지 구체적으로 알 순 없지만 능히 짐작할 수 있다. 그냥 ‘한국 니네들 죽고 잡냐?’ 였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을 두고 좌파 성향의 지지자들이 엄청 실망히던 기억이 새롭다. 앞서의 하토야마와 같이 대중 정치가의 역할과 국가 통치자의 역할은 다를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이라 본다.

 

오늘 글은 후텐마 기지로 상징되는 일본의 미국에 대한 도전과 도요타 리콜로 상징되는 미국의 응전과 응징을 살펴보았다.

 

그간 이 사건을 지켜봐오면서 혼자서만 관전하는 것이 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한가한 설날 연휴를 이용하여 정리해보았다. 일종의 심층 보도이자 해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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