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란 무엇인가?
정의(正義)의 정은 바를 정(正)자 글자의 생긴 모양으로 알 수 있듯이 천칭저울의 수평이 맞는 것이다. 의(義)는 공동체의 공동선을 의미한다. 의(義)는 옳음인데 옳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원으로 보면 영어로 right는 위로 올라간다는 뜻이고 left는 아래로 쳐져서 남는다는 뜻이다.
이는 우리말 옳다/외다도 마찬가지다. 올라간다는 것은 토너먼트에서 살아남아 8강 4강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고 왼 것은 올라가지 못하고 남는 것이다. (어원으로 보면 바르다/그르다, 옳다/외다가 된다.)
옛날식 전쟁에서 팔랑크스식으로 밀집대형을 이루고 싸우는데 오른 손에 무기를 들어야 동료를 찌르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는다. 왼손잡이가 왼손에 창을 들면 동료를 찌르는 수가 있기 때문에, 전투에서 무기를 들어올리는 손이 오른손이요 무기를 들지 않고 남는 손이 왼손으로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의는 천칭저울이 직선으로 뻗어 수평을 이룸으로써 합격판정을 받아 단상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 것이요, 불의는 천칭저울이 기울어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밑으로 내쳐져서 남은 것이다. 거래를 할때 조건이 맞아 합격판정을 받으면 위로 올리고 불합격이 되면 아래로 던져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승부의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이기는 것이 옳은 것이요 지는 것이 왼 것이다. 정의라는 말에는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는 신념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또 물을 수 있다. 과연 정의는 항상 승리하는가?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국소적으로 보면 반드시 정의가 승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인류의 집단인격 개념으로 보면, 그리고 역사의 진보 개념으로 보면, 인류문명의 긴 호흡으로 보면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 인류의 집단지성을 하나의 독립적인 인격체로 보았을 때, 그 인격은 정의의 승리가 집적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옳은 것은 올라가고 왼 것은 내려간다고 했다. 인류의 집단인격에 포함되는 것은 옳은 것이고 배제되는 것은 왼 것이다. 불의가 때로 승리할 수도 있지만 불의한 승리는 인류의 집단인격에 올라가지 않고 내던져진다. 반칙으로 승리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인류의 집단인격 경쟁에서 반칙승은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인류의 집단인격 개념을 인정할 것인가가 관건으로 된다. 곧 공동체의 공동선 개념을 인정할 것인가이다. 과연 공동체는 존재하며 그 공동체는 지속적으로 진보하는가이다. 위로 올라가는 것이 정의고 밑으로 내팽겨쳐지는 것은 불의다. 공동체가 진보한다는 것은 계속 위로 올라간다는 의미다.
과연 공동체는 계속 위로 올라가는가? 월드컵 토너먼트처럼 16강, 8강, 4, 결승으로 계속 올라가는가? 인류의 공동체가 더 이상 진보하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정의를 부인해도 좋다. 그러나 역사를 배운 사람이라면, 인류의 공동체가 존재하며 그 공동체는 진보한다고 말할 것이다.
결론은, 인류는 과연 공동체적 존재인가에서 내려진다. 이에 대한 필자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근거는? 필자의 ‘마음의 구조’를 참고할 수 있다. 인류는 겉으로 행복을 추구하지만, 실제로는 존엄을 추구한다. 왜냐하면 행복을 얻으려면 성취가, 성취를 얻으려면 사랑이, 사랑을 얻으려면 자유가, 자유를 얻으려면 존엄이 필요하며, 존엄은 언제라도 개인을 공동체의 중심으로 이끌기 때문이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공동체의 진보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인격이 설계되어 있다. 마음은 언제라도 당신을 공동체의 중심에 세우려고 하며, 그럴 때라야 인간의 마음은 큰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선장의 마음처럼 편안해진다. 인간이 겉으로는 행복을 원하는듯 하지만, 가슴 밑바닥 깊은 곳에서는 존엄을 갈망하기 때문에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인 것이며, 따라서 공동체의 공동선 개념으로서의 정의가 기능하는 것이다.
그렇다.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 또는 우리가 그런 사회를 만들어가야 한다. 정의가 승리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것이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내려와서 지상에 처음 발을 디디면서부터의 약속이었다.
이에 대해서는 현대전의 창시자 구스타프 아돌프가 확실히 입증해 보였다고 말할 수 있다. 구스타프 아돌프의 개혁에 대해서는 필자가 구조론 게시판(현대의 조직전)에 써놓은 것을 참고할 수 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한 마디로 ’개혁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한 사람이다.
너도나도 개혁을 말하곤 하는데, 말은 좋은데, 그런데 개혁이 뭐지? 구스타프 아돌프가 무엇을 했는지를 보면 ‘아 이게 개혁이구나’ 하고 알 수 있다. 감이 딱 오는 거다. 개혁이라고 하면 진시황의 도량형 통일이라든가 왕안석의 신법 따위를 교과서에서 배우게 되지만 대개 미심쩍은 거고, 마르크스가 여러가지를 줏어섬겼지만 대개 관념적 태도이고, 개혁의 성과를 실제로 입증해 보인 사람이 구스타프 아돌프다.
누구라도 ‘아 이거 되는구나’ 하고 납득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실전에서도 확실히 먹혔다. 어떤 보수꼴통이라도 구스타프 아돌프의 개혁내막을 들어보면 ‘아 맞구나’ 하고 납득할 수 밖에 없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굉장히 많은 것을 바꾸었는데, 이후 다른 나라들도 구스타프 아돌프의 전술을 모방하는 바람에 유럽의 면모가 완전히 일신되었다. 말하자면 거의 혼자 힘으로 봉건시대를 끝막고 근대를 끌어낸 것이다. 이후로 프랑스 혁명을 비롯해서 많은 사건들이 있었지만 대개 구스타프 아돌프의 개혁한 아우라로 볼 수 있다.
유럽인들은 개혁에 성공하여 재미 본 경험을 얻은 것이다. 제도와 시스템을 바꾸니 되네. 이거 먹히네. 이 좋은걸 왜 안해? 개혁해서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뭘 망설여? 구스타프 아돌프가 해냈듯이 우리도 해보는 거다. 유럽이 총체적으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옛날에는 주로 용병을 동원해서 전쟁을 했다. 용병을 동원하려면 많은 돈이 있어야 한다. 황제가 다스리는 큰 나라가 절대 유리하다. 그런데 스웨덴은 인구 150만의 소국이다. 30년 전쟁으로 신교와 구교가 붙었다. 신성로마제국의 합스부르크 왕가를 상대로 싸워서 이기는 것은 불능이다. 게다가 신성로마제국의 배후에는 같은 구교도 국가인 스페인과 프랑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타프 아돌프는 시종일관 공세적으로 나왔고 그의 사후에도 스웨덴은 독일을 다 집어삼킬듯이 공격적으로 나왔으며, 나중 신교쪽으로 돌아선 프랑스와 손잡고 30년 전쟁을 종결시키고 베스트팔렌 조약을 유리하게 이끌었다. 이후 신성로마제국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게 되었다.
모든 것은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금속활자가 보급되자 독일어가 생겨나고 개신교가 탄생했다. 30년 전쟁은 겉으로 보면 종교전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금속활자 덕분에 똑똑해진 위그노들이 카톨릭의 압제를 피해 대거 북쪽으로 올라가서 그냥 제 하고싶은 것을 맘대로 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구스타프 아돌프의 현대전이 징병제에 의해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점이다. 시골에 사는 농노들에게 ‘당신은 전쟁에 나가야 해’ 하고 꼬드기면 말을 들어먹을 리가 없다. 왜? 누구를 위해 싸우지? ‘조국이 당신을 부르니까’ 하고 꼬드겨봤자 먹히지 않는다. 당시 사람들은 조국이 뭔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요즘이야 독일, 프랑스, 영국으로 국가가 나누어져 있지만 당시에는 상당히 복잡했다. 국가보다 종교가 더 윗길이었다. ‘나는 독일사람이야’ 하는 개념이 주입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한 개념은 나중 프로이센에 와서 나폴레옹과 전쟁을 치루면서 생겨난 것이고 그 당시는 지방의 봉건영주가 날뛰는데다 합스부르크 왕가니 뭐니 해서 하여간 구조가 매우 복잡했다.
결론적으로 구스타프 아돌프는 전쟁에서 계속 이겨나갔다. 실제로 정의가 승리한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압도적으로 승리함으로써 시민들에게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왜 전쟁에 나가야 하는지 그 이유를 납득시킨 것이다.
여기서 과연 정의가 승리하는가 아니면 승리하는 쪽이 정의인가 하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항상 정의가 승리한다. 무엇을 근거로? 구스타프 아돌프가 실천한 무수한 개혁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국가의 자원을 있는대로 총동원했다. 대부분의 봉건 영주들은 약탈을 내세운다. 전쟁에 가자. 까짓거 인생은 도박 아닌가? 이기면 신나게 약탈해서 한 재산 만드는 거고, 지면 까짓거 천국가면 되고. 가난한 농노라면 이런 유혹이 솔깃할 수 있다. 그래 전쟁 나가서 한 재산 만드는 거야. 까짓거 지면 죽으면 그만이지. 어차피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인데 뭐 어때.
중요한 것은 그런 식으로 농노를 꼬드겨서 전쟁터로 내몬 불의의 군대는 패배했다는 사실이다. 무엇인가? 금속활자가 보급되었다. 농민도 글자를 알게 되었다. 시민이 총을 손에 쥐게 되었다. 신분상승이 가능해졌다. 굉장히 많은 것이 바뀐 것이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모든 시스템을 현대화 했으며 이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존중해야만 돌아가는 시스템이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국민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도박판으로 꼬드기는 방법과 상대방이 자발적 동의를 끌어내는 방법이다. 봉건영주들은 도박판으로 꼬드기는 불의한 방법을 썼다. 신나는 약탈을 기대한 떨거지 군대가 만들어졌다. 구스타프 아돌프는 자발적 동의를 거친 정의의 군대를 만들었다. 정의가 불의를 이겼다.
왜 정의는 불의를 이길 수 있었는가? 전쟁이란 목숨을 내놓는 것이다. 그런 고도의 스트레스를 오래 견딜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일확천금의 유혹이 따라야 한다. 전쟁은 순전히 깡패짓이다. 그러므로 병사들에게 고된 훈련을 강요하면 안 된다. 군기는 개판이고 그저 탐욕에 눈이 멀어 총들고 싸우는 거다.
무엇인가? 구스타프 아돌프는 군율에는 무려 40여개의 사형조항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행군이 빡세기로 유명했다. 보통 한차례 회전을 하고 승리하면 휴식을 하는데 이놈의 군대는 하루에 대여섯개의 요새를 점령하고도 계속 전진하는 거다. 게다가 이 영감쟁이가 참호전을 개발해서 맨날 삽질을 하라고 한다. 누가 이런 빡센 군대에서 병정노릇을 하고 싶겠는가?
◎ 봉건영주-일확천금이다. 멋지게 한 탕 하고 튀자. 훈련은 없다. 약탈은 무제한이다. 전투는 크게 한 번만 하고 끝나면 바로 집에 간다.
◎ 구스타프-봉급은 짜다. 군율은 엄격하다. 날마다 행군해야 하고 매번 작업해야 한다. 엄청 빡세다. 전투는 끝없이 계속 된다. 집에 못 간다.
다들 봉건영주의 군대에 가려고 하고 구스타프의 군대에는 아무도 안 가려고 할 것이다. 그렇지 않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스타프의 군대가 이겼다는 거다. 뭐 그래서 졌다면 할말없는 거고.
무엇인가? 정의는 구성원 모두의 자발적인 동의를 끌어내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 모두가 가진 지혜와 힘의 총합이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갈수록 강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결국 승리하는 것이다.
최근의 복지논쟁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관점을 도입할 수 있다. 상식대로라면 복지를 안하는 군대가 이긴다. 작업 빡세고 행군은 날마다 해야하고 군율 엄격한 군대는 아무도 지망하지 않아 망하는 거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다.
복지를 해야 강군이 탄생한다. 나라를 위해 자발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자본의 요체는 신용이다. 복지가 국가의 총신용도를 끌어올린다. 복지가 국방이고 복지가 국력이다. 이는 구스타프에 의해 이미 입증되었다.
구스타프 이전에는 아무도 구스타프와 같은 생각을 못했을까? 천만에. 다들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러나 작업 빡세고, 군기 엄하고, 행군 많은 군대는 아무도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아서 곧 망할 것으로 봤기 때문에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했더니 먹혔다. 뜻밖이다.
이는 상식과 맞지 않는다. 상식적으로 전쟁은 순전히 깡패짓인데, 다른거 없고 신나게 약탈하자. 큰거 한 탕 먹고 튀자고 해야 먹힌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였다. 시민은 자원을 총동원하는 전쟁, 모두의 힘과 지혜를 합치는 전쟁, 병사의 마지막 남은 최후의 힘까지 끌어내는 정의의 전쟁에 동의했고 승리했다.
유럽사람들은 이런 경험이 있다. 우리는 그 경험이 없다. 유럽은 경험이 있기 때문에 복지에 찬성하고, 우리는 경험이 없기 때문에 복지를 무서워 한다. 순전히 그 차이다. 정의가 불의를 이겨본 경험이 우리 역사에 많지 않다. 왜? 동양에서는 그저 머릿수로 해결보기 때문이다. 중국인구가 13억인데 정의가 어디에 있고 불의가 어디에 있어. 무조건 대가리 숫자만 많으면 장땡이지.
그러나 더 길게 보고 더 크게 보아야 한다. 누가 인류가 가진 지혜의 총합을 끌어낼 수 있을까? 스웨덴은 소국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지혜의 총합을 도출해내는데 성공했다. 그것은 가능한 목표다.
정의는 항상 승리하는가? 구스타프 아돌프처럼만 하면 정의는 항상 승리한다. 그 결과가 복지대국 북유럽이다. 북유럽의 복지는 실상 구스타프 아돌프 때부터의 ‘해보니 되네’ 하는 경험이 축적되어 이루어진 것이다.
###
정의란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납득하고 수긍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이는 시민의 자발적 동의에 의한 동원시스템을 가동하는 것이며, 그 방법으로 국민이 가진 자원을 최대한 현장에 동원하는 것이고, 이 시스템 하에서는 장기적으로 국민이 가진 지적, 물적 에너지가 최대한 결집하므로 경쟁에서는 항상 이길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정의는 반드시 승리하는 것이다.
정의가 무조건 승리하는 것이 아니고, 구스타프 아돌프가 300년 전에 이미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되는 것이며, 이제는 이 시스템에 힘입어 정의가 승리하는 시대가 되어버린 것이며, 이제 상황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좋은 시스템이 있는데 왜 그걸 이용 안해? 미쳤어?
1과 2가 싸우면 2가 이긴다. 하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언제나 정의가 불의보다 더 많은 자원을 동원한다. 불의는 물리적 힘만 동원하지만 정의는 밑바닥 마음까지 동원하고, 감추어진 지혜까지 동원한다. 제한적으로 동원하는 불의가 1이고 최대한 동원하는 정의가 2이므로 정의가 승리한다. 이러한 본질은 시대를 뛰어넘어 동서양을 막론하고 변하지 않는다. 1+1=2가 납득되는 사람은 모두 동의해야 한다. 그렇지 않나?
http://gujoron.com
∑
최고은님은 굶어 죽지 않았다 (0) | 2011.02.09 |
---|---|
김태동 “MB, IMF 상황 2년 이상 감춰와” (0) | 2011.02.09 |
왜 미국은 도요타 자동차를 손봤을까? (리콜 사태의 본 내막) (0) | 2011.02.05 |
옛날 옛적 소돔에선… (0) | 2011.02.01 |
<<주목받는 신호(114)- 영국과 일본, 재정붕괴로 가는 중입니다>> (0) | 2011.01.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