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에 나도는 ‘7월 위기설
<뷰스칼럼> 靑의 ‘정무감각 마비’ 그리고 시작된 ‘레임덕’
(뷰스앤뉴스 / 박태견 / 2011-01-11)
“박정희 대통령 때는 중앙정보부가 직접 나서 시골 마을마다 양수기가 몇 대씩 준비돼 있는가까지 챙겼다. 부족하다 싶으면 어떻게 공급할 것인가, 대안까지 만들었다. 예기치 못한 가뭄이 들면 민심이 요동치면서 심각한 통치 장애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정보 당국의 한 관계자가 한 말이다. ‘강권 통치’를 해온 박정희 정권도 내심 얼마나 ‘민심 이반’을 두려워했는가를 엿볼 수 있는 증언이다.
‘정무감각 마비’ 상태
“지금 선거를 치르면 한나라당은 수도권은 말할 것도 없고 텃밭인 농촌에서도 떼초상이 날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이 한 말이다. 재앙적 차원으로 발전한 ‘구제역’ 때문이다.
살처분한 소·돼지 숫자가 전국 소·돼지의 10%를 넘어섰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소·돼지를 더 생매장해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전국 축산농은 ‘이러다가 축산업 자체가 아예 붕괴되는 게 아닌가’, 말 그대로 공포에 떨고 있다.
축산농은 부농(富農)에 속한다. 물론 많은 축산농들이 농협 빚을 지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농촌지대에선 부농으로 분류된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다. 그런데 이들이 지금 이명박 정권의 무능함에 전율하고 있고, 따라서 오늘 선거를 치른다면 아무리 한나라당 텃밭인 영남 산골에서도 한나라당은 떼초상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는 게 한나라 의원의 탄식 어린 설명이다.
이처럼 삼엄한 마당에 이 대통령 내외가 주말인 8일에 유인촌 문화부장관 및 청와대 수석들과 뮤지컬을 관람한 뒤 장충동 족발 집에서 막걸리까지 마셨다는 ‘청와대발 보도’가 나오자, 한나라당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또 다른 한나라당 의원은 “이건 완전히 ‘정무 불감증’ 상태”라며 “전국 농민들이 비명을 지르고 수많은 공무원들이 엄동설한에 집에도 못 가고 구제역과 전쟁을 하고 있는데, 한량하게 뮤지컬 구경이라니. 더욱이 정무수석이란 사람이 이 사실을 자랑하듯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비난을 자초하다니….”라고 개탄했다.
10일 한나라당 수뇌부가 ‘정동기 불가’라는 선상반란을 일으킨 것도 이 같은 청와대의 ‘정무감각 마비’, 즉 ‘민심파악 능력 마비’에 절망했기 때문이라는 게 한나라당 안팎의 정설이다.
靑 “대통령 탈당하란 말이냐”
10일 아침, 한나라당 최고위원들은 만장일치로 ‘정동기 불가’ 당론을 확정했다. 이어 원희룡 사무총장이 정진석 청와대 정무수석에게 전화로 이 사실을 통고했다.
당황한 정 수석은 원 총장에게 “발표를 30분만 늦춰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원 총장은 이를 묵살하고 즉각 최고위원회의 결과를 발표했다. ‘30분의 시간’을 줬다간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선상반란을 진압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분명한 한나라당의 선상반란이고, 레임덕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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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두언 최고위원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
<조선일보>는 11일 1면에 다음 같은 짧은 관전평을 썼다.
“여당, ‘정동기 후보 사퇴해야’에 청와대 ‘대통령 탈당하란 말이냐’. 1년 이상 빨라진 진도.”
당·청 충돌이 격화되다간, 역대 정권이 그러했듯 한나라당에서 ‘이명박 탈당’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올 것이란 전망인 셈이다. 이미 레임덕이 시작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실제로 이명박 정권의 절대 우호세력이던 조중동 분위기도 올 들어 빠르게 바뀌는 양상이다. 가장 우호적이던 <동아일보>조차 정동기 파동과 관련, “정말 절망스러운 것은 이 정부가 인사 때마다 국민적 공분(公憤)을 일으키고도 같은 인사 행태를 반복한다는 사실”이라고 이명박에게 매몰찬 독설을 퍼부었을 정도다. 혹자는 ‘종편 선정’이 끝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하나, 드디어 ‘임기 4년차’가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풍경이다.
‘임기 4년차’ 맞아 예민해진 이명박
이 대통령은 한 측근은 요즘 대통령이 상당히 예민해져 있다고 전했다. “되는 게 없다”는 초조감을 느끼는 것 같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대통령은 연초 참모들이 ‘임기 4년차’를 준비해야 한다는 일부 참모들의 조언에 벌컥 성을 내며 “내 사전에 레임덕이란 없다”는 지론을 다시 편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처럼 예민한 반응을 보인 것 자체가 이 대통령이 임기가 끝나가는 데 대한 초조감을 느끼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증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람에게 나이가 있듯, 권력에도 나이가 있는 법이다. 권력도 결코 생로병사의 법칙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임기 4년차’는 ‘생’에서 ‘노’로 접어드는 시기다. 상황 전개에 따라선 ‘병’과 ‘사’가 거의 동시적으로 발생할 수도 있다. 과거에 그런 예가 수없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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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사진 가운데)이 지난해 12월 20일 법무부 새해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 정동기(사진 오른쪽) 감사원장 후보자도 앉아 있다. 사진 출처-청와대 |
‘7월 위기설’
“4월쯤 되면 물가 등 경제가 심상치 않을 것 같다.”
김종인 전 경제수석의 전망이다. 물가가 새해 벽두부터 폭등하고 있다. 국제 원자재값 폭등에다가 정부의 고환율-저금리 정책이 맞물린 결과다. 정부는 물가를 잡겠다고 동분서주하고 있으나, ‘5% 고성장’ 목표를 바꿀 생각이 없는 게 확실한 만큼 4월쯤 되면 공산품 물가까지 폭등하면서 물가폭등이 정점에 달할 것 같다는 게 김 전 수석의 진단이다.
4월에는 4·27 재보선이 기다리고 있다. 가뜩이나 민심이반이 심각한 판에 물가까지 폭등하면 선거는 치르나마나다. 한나라당에선 ‘참패’를 거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때부터 정치권은 크게 요동칠 것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7월 위기설’이 나돌고 있다. 4월 재보선 참패를 전제로 한 가설이다. 요지는 이렇다.
“4월 재보선에 한나라당이 참패한다. 당 지도부 교체론이 비등한다. 안상수 대표체제가 붕괴되고 7월 전당대회가 열린다. 당권, 특히 차기총선 공천권을 놓고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격돌한다. ‘이명박당’으로 총선을 치를 거냐, ‘박근혜당’으로 총선을 치를 거냐, 의원들은 양자택일을 강요당한다. 한나라당은 두 쪽 날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한 재계 인사는 자신이 세간에서 들은 또 다른 ‘7~8월 위기설’을 전했다.
“MB는 속도전으로 6월까지 4대강 공사를 반드시 마치려 한다. 할 것이다. 그리고 7~8월에 장마철이 시작된다. 저지대가 잠기는 등 간단치 않은 일들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고 4대강 사업에 반대해온 민심이 폭발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처럼 정·재계가 느끼는 위기감은 크다. 이는 밑바닥 민심이 흉흉하다는 의미기도 하다.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은 “민심이 나빠지는 게 몸으로 느껴진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청와대가 이 같은 정무감각을 갖고 있느냐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게 지배적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