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事安逸(무사안일)의 소중함
< 2010.12.2 호호당의 김태규님 >
우리들은 무사안일하다고 하면 대개는 否定(부정)적인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이는 우리 사회가 무사안일을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고 단어의 뜻 자체는 상당히 좋은 의미를 담고 있다.
無事(무사)하다는 말은 ‘별다른 일 없다 즉 골치 아픈 일 없다’는 뜻이고 安逸(안일)은 ‘편안 또는 평안하다’는 뜻이니 이야말로 좋은 말인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어휘 자체는 아무런 죄가 없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면서 무사하고 안일하기만을 바란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는 것인데, 이는 사실 ‘무사안일’만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그 무엇이든 치우치고 偏重(편중)되면 그 어떤 생각과 자세도 모두 문제가 된다.
‘무사안일주의’을 영어 사전에서 찾아보면 어떤 代價(대가)를 치르더라도 평화만을 고집하는 원칙, a peace-at-any-price principle 이라 되어 있다.
‘어떤 主義(주의)’란 어떤 것을 爲主(위주)로 한다는 것이니 우선시한다는 것인데 그 또한 정도 나름이라 하겠다. 마치 공부 엄청 안 하는 아이가 한 시간만 해도 엄청 공부한 것이고 공부 엄청 하는 아이가 한 시간만 놀아도 농땡이를 쳤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그러나 오늘 하고자 하는 얘기는 무사안일의 소중함과 유용함에 대한 것이다.
企業(기업)이라고 하자. 우리들은 늘 경영혁신과 같은 말들을 듣고 사는지라 항상 혁신하지 않으면 기업은 망하는 것이라 여긴다.
자칭 타칭 ‘경영의 道士(도사)’들은 언제나 당장 뭔가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그 결과 우리 모두는 변화 또는 혁신 강박증 증세에 빠져 지낸다.
요즘 보면 미디어들 사이에 무슨 포럼 같은 것을 주최하는 유행 풍조가 있다. 경영의 도사들이나 크게 성공한 사람들을 초빙해서 한 말씀 들어보자는 것인데, 실제 경영에서 크게 성공한 사람일지라도 이미 그런 곳에 와서 떠들고 다닐 정도로 시간이 많다면 이미 맛이 반 정도는 간 상태인 경우가 많다.
내 경우 워렌 버핏이나 빌 게이츠의 말 따위는 아예 들어볼 흥미조차 없다, 그들이 예전에 했던 말이라면 그 속에 알맹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 그들의 ‘날’은 이미 무뎌지고 녹이 슨 상태이기 때문이다.
성공한 기업이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혁신에 관심이 있는 척 하는 것 나쁘지 않다. 하지만 성공한 기업이 내심 정말로 혁신에만 관심이 가 있다면 그 기업 얼마 가지 않아 사고치거나 망하게 된다.
늘 깨어 있어라!
참 멋진 말이고 좋은 말 같지만 그게 바로 말장난이다.
정말로 늘 깨어있는 자는 불면증 환자이고 신경증 환자일 뿐이다.
세상 변화를 감지하고 남보다 한 발 앞서서 흐름을 예측하려면 한다면 시시각각 정보를 전하는 인터넷이나 신문 같은 것을 대하고 있으면 아니 된다.
리얼타임 정보, 시시각각의 정보는 시시각각 동안, 즉 아주 짧은 시간 범위 내에서만 그 효용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세상 변화를 감지하려면 리얼타임 ‘아닌’ 것이 더 좋다. 시시각각의 정보에 눈이 가다보면 큰 흐름을 놓치기 딱 좋다.
정말로 흐름의 변화를 감지하고 싶다면 신문은 보름에 한 번 정도 살펴보는 것이 좋고 인터넷 포털 같은 것에는 신경을 아예 끄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
더 바람직한 것은 계절이 바뀔 때 지난 신문들을 한 번 들쳐보는 방법이다. 세상이 변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이처럼 세상은 역설로 가득하다.
그러니 무사안일 역시 그 속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 담겨져 있다.
기업의 임원 구성이 만일 모두가 다 적극적이고 변화 지향적이라면 그런 기업 얼마 가지 못하고 문을 닫게 될 것이다.
누군가는 하는 일 별로 없이 높은 연봉 받아가며 사무실에서 난초에 스프레이로 물이나 뿌리고 있는 영감탱이 같은 임원이 무게를 잡고 앉아 있어야만 그 기업이 안정되고 오래 간다. 남산 위의 저 소나무처럼 말이다.
물론 그 무사안일한 임원 역시 과거에는 당연히 힘을 쓰고 회사에 크게 기여했던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그냥 낙하산으로 날아와 꽂힌 사람이라면 곤란하고 말이다.
백전노장의 임원이 무사안일한 자세를 보이는 거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든든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사람의 무사안일함은 무디고 둔함이 아니라 그 逆(역)이라 하겠다. 오랜 세월 속에서 다져진 날카로운 실전 감각과 통찰력이 있기에 작은 변화나 쓸데없는 변화의 필요성을 태연히 무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리얼타임으로 전해지는 소소한 변화를 그저 무심한 눈으로 넘길 수 있음이다.
적극적이고 힘찬 젊은 경영진은 당연히 경험이 일천하기에 작은 변화에 민감할 것이며 단칼에 승부를 보려는 호연지기도 있는 법이니, 이를 나쁘다 할 수 없다. 다만 이를 경험 많은 경영진이 있어서 안정시켜줄 수 있어야 조화를 이룰 것임은 당연지사가 아닌가.
그래서 고액 연봉을 받고 온갖 호사함을 떨어가며 하는 일이라곤 난초에 물이나 주고 점심에 어디 맛있는 집 없나 하고 찾아다니는 무사안일한 임원이 있다 해도 그 내막은 아는 자만이 아는 것이고 월급 값을 충분히 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이를 생산성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런 임원 모조리 정리해야만 할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합리성 근본주의’의 폐단이 되는 것이다.
가령 집안에 노부모가 계신다고 하자.
그런 노부모님들을 일도 하지 않고 사실 밥이나 축내고 있는 無用之物(무용지물)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왜 그런가? 생산성의 관점에서 본다면 분명 정리 대상일 터인데 말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인간의 도리가 아니라서 그렇게는 못 한다는 대답도 있겠지만, 그런 대답으로는 불충분하다.
노부모님들은 무용지물이 아니다.
인생 살아가다보면 책에도 없고 사회 윤리적으로도 또 철학자들도 답해주지 않는 많은 문제점들과 만나기 마련이다. 인생과 세상은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난처한 문제점이 생겼을 경우 나이 드신 부모님에게 한 번 여쭈어보라, 가장 좋은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이 변화했고 노부모님들은 당연히 모를 것이라 지레 짐작하지 말고 골치 아픈 내용을 천천히 말씀 드리면 시간이 좀 걸려서 그렇지 그야말로 최고의 지혜가 담긴 해법을 제시해주실 것이다.
무사안일한 사람들은 욕심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무사안일할 수 있는 것이다. 욕심 없는 눈으로 그리고 세상 살아온 경륜의 눈으로 문제를 보면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 해도 아주 단순하게 파악할 수 있기에 그렇다.
기업의 할 일 없는 늙은 임원이 그렇고 집안에는 손자들과 놀아주시는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바로 그런 값어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간단히 정리하자. 많이 놀아본 사람은 어지간한 경우를 당해도 그다지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다. 그러니 쓸데없이 혁신이니 변화니 하는 소리에 그저 ‘일 없어!’ 할 뿐이다.
세상은 힘찬 젊은이도 할 일 없는 늙은이도 모두 필요하다. 일러서 陰陽(음양)의 調和(조화)라 하겠다.
무사안일도 삶에 있어 대단히 소중한 가치인 것이다.
포근한 겨울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뭔가 재미난 일을 도모해야 할 것 같다. 아직 뒷방 늙은이가 되기는 빠른 나이임이 확실하다.
오늘도 무사하고 안일하시기를. 나아가서 즐거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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