功業(공업)을 이루는 방법
2010.11.2 호호당의 김태규님
고등학교 2 학년 여름 방학 때의 얘기이다.
방학이 시작되던 날 밤, 나는 작심하고 엄청난 공부계획을 짰다. 가을 학기에 들어서자마자 성적을 급상승시켜 사람들을 놀라게 만들고 싶었다.
엄청난 공부 분량을 완수하려면 마음이 독해져야 할 것 같아, 나는 노트 한 장을 뜯어 커다랗게 ‘毒(독)’이라는 한 글자를 써서 책상머리 높은 곳에 붙인 후 잠에 들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도록 진도는 전혀 나가지 않았다. 늦은 밤 책상 앞 의자에 걸터앉아 이마로 방아를 찧고 있는데, 아버지가 방에 들어오셨다.
야, 그냥 자라, 새삼스럽게 무슨 공부니? 하고 비웃으시는 것이었다. 나는 졸리던 눈에 힘을 주면서 책상머리 위에 붙인 毒(독)이란 글자를 가리켰다. 그러자 ‘저게 무슨 글자지? 주인 主(주)에 어머니 母(모)라, 저런 말을 왜 썼지?’ 하시는 것이었다.
‘그건 主母(주모)가 아니라 毒(독)이예요’ 하고 항변했지만, 아버지는 픽- 웃으시고는 방을 나가셨다.
굴욕이었지만, 정확한 지적이었다. 일주일이 지나 공부계획표는 써 붙인 毒(독)자와 함께 구겨져 버려졌고, 여름 방학 내내 공부다운 공부를 전혀 하지 않은 상태에서 새 학기를 맞이해야 했다.
하지만 반성도 제법 했다. 계획대로라면 우등생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인데 왜 나는 작심한 것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것일까를 놓고 생각해보았다.
계획표가 너무 무리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차피 모든 계획은 무리를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굳이 계획이란 것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계획? 그거야 무협지 읽고 공상하느라 바쁜 나에게 실천 가능한 공부 계획이란 그 자체가 성립 불가능이었다. 그 이후로도 몇 번 나는 공부 계획표를 작성해보긴 했지만, 한 번도 제대로 해본 적은 없다.
나의 意志薄弱(의지박약)함을 자책했다. 그리고 강제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내가 주체적으로 꾸준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학교? 가지 않으면 난리가 나니 학교에 갔다. 무술도장? 안 가면 기합 받으니 가서 운동을 했고 한문공부도 했다. 직장? 안 가면 안 되니까 시간 맞추어 출근했다.
서른아홉의 나이에 직장을 그만 두고 사업을 하고 또 야인으로 살면서 나는 본의 아니게 ‘주체적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내가 가지 않으면 오라는 곳도 없었고 내가 하지 않으면 될 일도 없었다. 억지로 강제로 주체적인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러니 나는 내 인생을 改變(개변)시켜야 했던 것이다. 고통스럽게도 말이다.
직장 다니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그들은 ‘수평보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리면 영종 공항에 있는 그 편한 ‘수평보행기’ 말이다. 그냥 서있기만 하면 목적지로 이동해가는 그 편한 기계 있지 않은가.
수평보행기에 올라서 있기만 하면 월급 꼬박꼬박 받으며 맘 편하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툴툴거리고 있다니 참 팔자 좋다 싶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는 수평보행기를 타고 다니는 사람과는 다른 人種(인종)이 되어갔다. 같은 直立(직립) 인간이었지만, 그들처럼 수평보행기가 아니라 제 발로 걷는 인종이 되어간 셈이다.
제 발로 서고 제 발로 걷는다. 이거 예사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방향을 설정해야 하니 매 순간 창의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했다. 매 순간 창조적이고 창의적으로 산다는 거, 엄청 고통스런 일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예전의 고질적인 의지박약함이 矯正(교정)되었다.
그리고 이제 알게 되었다. 음양오행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얻어낸 통찰의 덕분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자신의 발로 서고 또 걸어야 하는 人種(인종)이 되었기에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을 알게 되었단 말인가? 功業(공업)을 이루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 공업을 이루는 방법을 애기해주어도 가령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직장인이라면 말을 이해는 해도 체득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직장인인 당신이 내 말을 듣고 체득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잘 될는지는 모르겠다만.
功業(공업)을 이루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목표를 설정하고 그를 향해 꾸준히 한 발 한 발 다가서는 것이다. 이론적으로야 엄청 간단하고 명료하다.
문제는 꾸준히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것이 무진장 어렵다는 점에 있다. 티끌 모아 태산이란 말을 모르는 것도 아닐 것이고,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愚公移山(우공이산)의 지혜를 모르지도 않는 당신이지만 실천은 전혀 다른 문제인 것이다.
문자 그대로 이론과 실천은 별개인 것이다. 그러니 내가 지금부터 알려주고자 하는 것은 그 실천에 관한 요령이다.
그럼 눈을 비비고 잘 읽어보시기 바란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의지를 믿어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意志(의지)를 믿지 말라니, 이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사실이 그렇다.
인간의 의지만큼 박약하고 가변적인 것도 드물다는 사실. 하루에도 내심으로 열두 번도 더 변하는 의지를 믿고서 먼 길을 갈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의지는 思考(사고)와 생각에 속하는 분야인데, 생각하는 능력이 탁월한 우리 인간은 자신의 사고와 생각을 아주 순식간에 변경할 수 있는 능력도 가지고 있기에 자신의 의지를 믿지 말라는 것이다.
決心(결심)이란 것 역시 의지에 속한다. 그러니 보통의 의지보다는 강도가 좀 센 의지에 속할 뿐 그게 별 것도 아니다.
내 열심히 해서 공부 잘하는 학생이 될 테야, 내 무진장 노력해서 부자가 되고야 말겠다고 수시로 의지를 다져보지만 결과는 언제나 그저 그렇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하고 반성을 하지만 또 그러는 것이 우리이고, 내심 각오를 다졌다가도 슬며시 철회하고 마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왜 우리의 의지나 결심은 이토록 허약한 것일까? 기본적으로 한 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몸이 건강할 때 먹은 생각, 몸이 불편해지면 바꾸게 되고, 이런 마음이 들 때 가진 생각은 저런 마음이 들면 없어지고 만다. 마치 봄날 부는 바람과도 같다. 독한 마음 품고 지켜나가려 하지만, 그것은 봄날의 바람을 움켜잡으려는 것과도 같아서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다.
따라서 시간을 두고 잘 생각해서 어떤 일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그 다음에는 생각과 의지를 모두 땅에 내려놓는 것이 우선이다.
예를 들면 제법 먼 저 곳으로 가기로 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곳을 향해 출발하게 될 것이다.
생각과 의지를 가지고 가다보면 금방 그 곳으로 가는 것이 불편하고 심지어는 어리석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그러니 그곳으로 가기로 했으면 다음부터는 아무런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판단도 금물이고, 느낌이나 생각도 모두 버려야 한다. 그저 그곳을 향해 가는 ‘행위’만이 오로지 필요하다.
가다가 한 눈을 팔아도 좋다, 실컷 딴 짓을 한 연후에는 다시 그곳을 향해 가는 행위만이 남기면 된다. 한 눈을 팔다가도 그 다음에 다른 생각을 하지 말고 해오던 행위, 즉 그곳을 행해 가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그곳을 향해 다가서다 보면 어느 순간 스스로의 행위는 머릿속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몸에 각인이 될 것이니 그것을 우리는 습관이라 부른다.
습관적인 행동에는 별 이유가 필요 없다. 왜 그렇게 하지? 하고 물어보면 응, 습관이야 그래서 하게 돼 하고 답변하면 된다.
목표를 정했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생각도 판단도 느낌도 고려할 필요가 없다. 그저 목표를 향하여 움직여가는 것만이 필요하고 그것이 드디어 습관이 되면 그것이야말로 앞서 얘기했던 수평보행기에 올라탄 셈이 된다.
직장인의 수평보행기는 직장에서 세팅해놓은 것이지만, 이번에는 얘기가 다르다. 내가 목표를 세팅해놓은 수평보행기에 올라선 것이니 시간이 지나면 마침내 세팅해놓은 그 목표에 도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것이다.
목표가 생겼다. 그러면 목표를 향한 의지나 판단 따위는 필요 없으니 버려라, 그리고 목표를 향해 다가서는 습관을 만들어라.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떤 일을 반복하는 사람을 두고 우리는 道(도)를 닦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습관이 되고 나면 그 다음은 자동, 오토마틱이다. 자동으로 마침내 功業(공업)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
나 好好堂(호호당)은 의지 여전히 薄弱(박약)하지만, 그것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 일주일에 이 블로그에 글 다섯 개를 올리기로 했고 그것을 내 습관으로 만들었다.
거리에 낙엽이 뒹굴기 시작했다. 햇살은 은빛으로 따갑지 않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의 시간을 아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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