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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키워 경제를 살리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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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8. 31.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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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투기를 키워 경제를 살리겠다고?
(서프라이즈 / 권종상 / 2010-08-30)

 


미국, 더 정확히 말하면 제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에서부터 시작된 부동산 전문 사이트로서 zillow.com이란 곳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이 지역 부동산 가격을 업데이트 해 주고 매매를 성사시켜 주는 일종의 온라인 복덕방인 셈인데, 2년 전 이 사이트를 통해 본 저희 집 가격과 오늘 다시 이 사이트를 통해 본 집 가격은 무려 9만 달러가 떨어졌습니다. 그래도 처음에 집 살 때보다는 몇만 달러가 오른 상태여서 우리 같은 경우는 그다지 손해 본 경우는 아닙니다.

 

윗집 데이먼은 자기 집을 40만 달러가 넘는 가격으로 팔고 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정점을 달릴 때 운 좋게 집을 판 것이지요. 데이먼은 그 후 65만 달러짜리 집을 사서 이사를 했습니다. 그 데이먼의 집을 오늘 검색해보니 42만 달러. 무려 20만 달러가 넘는 손해를 본 셈입니다. 데이먼은 과거 이웃들과 함께 모인 자리에서 푸념을 했습니다. 그때 집을 팔고 나가지 않았다면, 그냥 모기지 부담 같은 것 없이 편안한 이웃들과 함께 잘살고 있을 거란, 그런 말이었습니다.

 

집값이 이렇게 떨어졌는데도 집을 사겠다는 원매자는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직도 우리 동네를 산책하다 보면 빈집들은 여기저기 보입니다. 부동산 광고가 달려 있는 말뚝들이 여기저기 박혀 있는 것은 아마 거의 집값 거품이 정점에 달했을 때 막차를 탄 사람들이 결국 자기 집을 내던져야만 했던 상황의 반증일 것입니다.

 

무리를 해서 빚을 내어 집을 샀지만, 결국 집값은 지난 수년간 계속 하락세를 보였습니다. 처음 서브프라임 사태가 시작됐을 때부터 지금까지 달라진 상황은 별로 없습니다. 몇몇 집들이 팔린 것을 보았는데, 그 경우는 정말 과거에 이 집값이 이랬었단 말인가 싶을 정도의 가격으로 나간 것입니다. 은행들이 원금을 회수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담보로 가지고 있던 매물들을 경매 등의 과정을 통해 처분한 것이지요.

 

차압된 매물, 그러니까 ‘포어클러저’나, 혹은 숏세일 같은 것들이 지금 주택 매매의 주요 물건들이고, 실제로 제값 주고 집사는 ‘바보’는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제가 일하고 있는 캐피틀 힐의 콘도미니엄(우리나라의 아파트 개념)이 밀집한 지역에서는 더욱 심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때 50만 달러 이상을 불렀던 콘도미니엄 가격들이 30만 달러 선으로 떨어진 것은 예사입니다. 임대아파트를 개조해 매매가 가능한 콘도미니엄으로 바꾸는 공사들이 한참이었던 몇 년 전, 이곳은 건설 경기로 북적거리고, 또 이 기회에 내집 장만하겠다는 사람들의 열기가 한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허상’들이 화장빨과 조명빨을 빼고 나자 허상이었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셈입니다. 어딜 가나 쉽게 볼 수 있는 ‘Price Reduced (가격 인하)’의 푯말들은 지금 미국 부동산 경기가 허상이 빠지고 있는 상태라는 것을 쉽게 짐작게 합니다.

 

실제적인 경제적 밑받침 없이 이렇게 숫자만 키워 소비력을 자극하려 했던 미국의 경제기조는 자기모순의 무게를 못 이기고 이렇게 맥없이 무너졌고, 이 과정에서 실제로 돈이 필요했고, 구매력이 필요했던 많은 회사들은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해 문을 닫거나, 대량해고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대량해고는 결국 구매력을 약화시켜 사회 전반의 경기 침체를 유도했습니다. 거품을 키우기 위해 아무에게나 대출을 허가하고 집을 사게 만들었던 규제의 완화는 결국 실물경제 기반의 상실로 이어지고, 그나마 그 기반조차 약했던 미국은 지금 ‘샴페인 값’을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중입니다.

 

결국 다시 규제를 강화하고 생산 기반을 미국으로 들여오는 것이 오로지 남은 해결책인 셈인데, 이미 규제가 완화됐던 시절부터 노동 없이 쉬운 돈맛을 봤던 기업들은 그것을 꺼리고 있습니다. 결국 정부는 이래저래 돈 찍어내어 이를 해결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가장 쉬운 해결책인 셈이고, 그러다 보니 국내에서의 인플레와 국가신용도의 추락 등 온갖 악재들이 함정이 되어 미국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의 상황을 대략 추려봐도 이렇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정부에서 부동산 구입 대출에 필요한 규제를 모두 풀었다는 뉴스를 듣고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빚내어 부동산 살린다면, 그것이 실물경제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허수의 경제는 결국 허상일 뿐입니다.

 

건강한 경제는 건전한 생산기반과 이를 통한 이윤창출, 그리고 그 이윤의 공정한 분배와 분배된 이윤이 구매력이 되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것도 아니고 ‘부동산’에 대한 규제를 풀고, 건설업에 올인하겠다고요? 배가 부른 데 맛있는 반찬이 있다고 해서 계속 먹는 상태를 생각해봅시다. 포화상태에서 과포화를 만들면, 인체는 당뇨병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사회도 그런 모습에서 그다지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부동산 투기는 한국의 망국병의 하나였습니다. 그것은 건전한 부의 축적 방법이 아니고, 고용을 늘려주는 것도 아닙니다. 제대로 된 일자리들을 마련해주고 임금노동을 통한 부의 공정한 재분배를 통해 개개인이 삶에 가치를 둘 수 있고, 그렇게 마련된 가치 속에서 소비생활을 영위하며 기업들에 생산의 준거를 마련해주는 내수의 확보.

 

이런 것들은 모두 젖혀두고 투기를 통해 거품을 키워 경제를 살리겠다는 것은 결국 죽어가는 환자들에게 링거와 강심제만을 투여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투기를 키워서 경제를, 그것도 ‘나라 경제’를 살리는 게 가능할까요? 투기 경제가 ‘건강한 경제’라고 인식될 정도라면 도대체 지금 당국의 정신줄은 어디가 있는 겁니까?


시애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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