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으로 간 노무현
(서프라이즈 / 초모룽마 / 2010-07-30)
예수에 대해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게 되지. 예수의 삶을 알면 알수록 자연스럽게 노무현이 떠오르거든. 양자 간에 다른 점도 많아. 예수가 하느님의 나라를 마음속에 세우고자 했다면 노무현은 그것을 땅에 이뤄내고자 했지. 발을 땅에 딛고.
하지만 둘 다 ‘실패’했다는 것을 포함, 공통점이 더 많아. 공교롭게도 그 ‘실패’가 한반도에서만큼 도드라진 곳도 없어. 비극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말로 하면, 할 일이 남아있다는 말도 돼.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꿈틀하는 거 아니겠어?
죽은 지 천오백 년 후 예수가 돌연 세비야에 나타났다네? 지금이야 관광객들이나 나댕기는 고적한 스페인의 도시지만 중세 때는 무시무시한 곳이었지. 그곳에 불쑥 나타난 예수를, ‘신실’한 세비야 사람들은 곧바로 알아봤지. 그는 길거리 설교를 시작했어.
당시 세비야는 대심문관 추기경(토르케마다)이 지휘하는 이단-마녀 사냥이 거의 오르가즘의 수준에 올랐던, 하루에도 몇 번씩 사냥감이 화형주에 불태워지고 있었던 때였지. 토르케마다의 힘은 당대의 세속 권력을 훨씬 넘어서고 있었어. 그의 말 한마디에 국왕마저 자기 신하 수백 명을 화형주에 내줄 정도였거든.
이런 때 예수가 나타나, 예수 vs 대심문관 간의 빅 매치가 성사된 거지. 관전 포인트가 뭐겠어? ‘독실’한 세비야 사람들이 누구의 말을 따르겠느냐, 이거 아니겠어?…… 예수가 졌어. 토르케마다가 명령하자,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가 예수를 체포했지.
죄목은? 이단이 아니고 뭐겠어. “너는 인간들에게 자유를 설파했지…. 오히려 그들을 두렵게 만드는 자유를…. 내일이면 저 온순한 무리들이 네가 올라가게 될 장작더미 위에 숯불을 가져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대심문관은 예수를 차마 화형주에는 올리지는 못하고 도시 밖으로 추방해버렸어.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고 하면서 말이야.
예수는 유대교의 개혁 - 그것도 거의 전복수준에 가까운 - 을 원했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잖아? 어떻게 해야겠어? 완전을 지향해야 할 율법을 좀 먹는 그 무엇을 뒤집을 필요가 있겠지. 그게 예루살렘이고 그곳의 성전이야. 자기 제자 외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예수가 극도의 분노를 나타낸 유일한 사례가 바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돈놀이하던 환전상들의 좌판을 걷어찬 거지. “이 성전을 허물라….”
예루살렘은 낡은 유대교의 폐해와 모순이 모두 집결된 곳이지. 예수는 시골 갈릴리에서 즐거운 설교 활동을 했을 게 분명해. 사람들은 순박하고 믿음이 곧았지. 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있다”고 가르치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거야. 그가 말한 율법을 완전케 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전락의 상태가 아니라 완성의 과정으로 이해되는 삶…. 갈릴리에는 소박한 유대공동체의 삶이 있었어. 이런 갈릴리와 예루살렘은 극적으로 대비되는 곳이지.
예루살렘은 명절마다 유대인들이 순례하는 성지이자 롤모델인데, 거기엔 이젠 돈과 권력, 거대한 욕망만이 흘러넘치고 있었거든. 거기를 뒤집지 않고서는 율법이 완성될 수 없지. 위대한 개혁 교사, 게다가 젊기까지 한 예수가 갈릴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간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어. 예루살렘을 마냥 놔둘 수 없었기에, 작심하고 입성한 거야.
예루살렘이 변질되었던 거라. 사제계급인 사두개인들은 정치권력과 흘레붙고, 바리새 율법학자들은 옛것에만 매달려 안식일을 지켜야 되느네 마느네 하면서 틀려먹은 율법에만 목매고 있었던 거지. 이런 것들 모두가, 예수가 보기에, 민중들의 올바른 하느님 바라기를 옥죄었던 거야.
예수는 제도화된 교회, 교리, 의식, 죽은 지식=율법, 즉 각자가 자유롭게 하나님하고 만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무너뜨리려 했어. 예루살렘에 우뚝 서 있는 그 성전을 말이야. 그는 교회가 아니라 하느님의 나라를 세우려 했지.
노무현은 왜 그 즐거웠던 고향 봉하 그리고 부산을 버리고 서울로 올라왔을 것 같아? 부산에서 잘 나가는 변호사, 아님 인권운동가로서 만족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야. 부산에서 출마한 것은 뭐냐고? 그때 ‘즐거운 부산’에 내려왔건 게 아니야. 부산에 내려올 때 그는 서울을 고스란히 어깨에 메고 왔어.
서울=예루살렘이야. 돈과 권력이 성지 예루살렘을 누대의 세월을 두고 갉아먹었듯이 역동적 진보, 민주화 성지였던 서울은 이제 어떤 ‘이단’의 침입도 허용치 않는 공고한 성을 쌓았어. 예루살렘의 성전이 가난한 유대인들의 피를 대가로 언덕 위에 우뚝 솟았듯이 서울은 빚더미 위에 쌓아올린 바벨탑이지.
예루살렘이나 서울이나 빼앗아 쌓아올린 것을 결코 내놓으려 하지 않아. 관습헌법, 용산 주상복합 타워, 가카의 분신을 보라는 듯 뽑아제낀 뉴타운 은평, 강남 불패…. 그리고 공구리 삽질 청계천은 ‘신화’로 불리지 아마? 새 세상을 내건 노무현은, 이 괴물을 그냥 놔둘 수가 없었던 거지. 균형발전론이 괜히 나온 게 아냐. 서울이 어느 순간부터 제 기능을 못하니 서울뿐 아니라 전국이 개판됐잖아.
그가 서울에 나타나자 일찍이 보지 못한 파란이 일었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가카들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을 가리지 않고 노무현을 경계했지. 율법학자 계급인 바리새들은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지식인들’이지. 예수와 주로 충돌한 게 그리고 결국 그를 죽게 만든 게 바리새인들이라는 점은 굉장한 시사점이야.
노무현과 ‘진보지식인’들의 관계가 정확히 이거였지. 예수가 율법을 완전케 하러 왔듯이, 노무현은 민주주의를 (폐하러 온 게 아니라) 완성하러 왔어.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말씀이 통하게 되면 바리새 율법학자들이 어찌 되겠어? 사람들이 노무현의 새로운 민주주의를 알게 되면 교조 민주주의의 낡은 교리와 의식에 집착하는 가짜 진보지식인들의 밥줄은 어찌 되겠냐구?
예수는 예루살렘으로부터 추방당했지. 골고다 언덕이 성 밖에 있으니 추방이야. 세비야에서의 추방이 낯설지는 않았을 거야. 예수가 로마 교황청에 나타났더라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을걸? 한 블록 건너 교회가 있는 서울에서도 나타나자마자 이단 판정을 받을 거야. 노무현은 그 서울에서 추방당했어. 그에게도 추방은 그리 낯선 게 아니야. 부산에서도 몇 번씩 추방당했었으니까.
퇴임 후 노무현은 고향에 내려왔어. 그것도 서울에 대한 도전의 하나지. 하지만 서울이 그를 그림자마냥 따라왔지. 가카들, 떡찰들, 찌라시들만이 따라온 게 아니야. 걔들과 은근슬쩍 같이 묻어 들어온 자들이 있어. 이른바 진보장사꾼들이지. 예수가 죽지 않고 고향 나사렛으로 추방당했다고 치자고. 무서운 예루살렘의 그림자가 따라오지 않았겠어?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이 나란히 손잡고 말이야.
예수에게서, 나중에 무수히 덧씌워진 신성을 모조리 빼 봐. 뭐가 남겠어? 예루살렘이라는 아성에 아무 두려움 없이 도전한 젊은 개혁자의 이미지가 올곧게 드러날 거야. 이런 예수를 읽으면서 관습적 권력, 서울에 도전한 노무현이 떠오르는 건 자연스런 거야.
예수와 노무현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 천만에, 나중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봐야 하는 거야. 예수가 죽은 지 불과 30여 년 만에 예루살렘이 붕괴됐지 아마? 서울도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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