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의 희망꽃밭… 꽃을 심는 마음
(서프라이즈 / e-마당 / 2010-05-01)
봄이다. 새싹이 돋고, 새잎이 나고… 그리고 꽃도 핀다.
참 좋은 계절이다. 꽃을 심고 가꾸고 싶어질 때다.
지난해 11월, 노무현재단에서 ‘사랑의 쌀 나누기’ 행사를 했다. 그때 나는 자원봉사자로 참여하여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소재 ‘나눔의 집’에 가게 되었다. 알다시피 ‘나눔의 집’은 일본군의 침략전쟁 중 ‘종군 위안부’로 동원되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할머니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그때 정말 마음 아팠다. 이럴 수가 있을까 싶었다. 매스컴으로 들을 때는 막연한 얘기였지만 직접 찾아가 만나보니 그 느낌부터가 달랐다.
일본군의 침략전쟁에 동원되어 이분들이 겪은 그 참담한 전쟁의 피해와 수난의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는 양심의 가책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았다. 정말 미안했고, 또 미안했다. 뭔가를 하고 싶었다. 어떻게든 이 치욕의 역사와 무참히 짓밟힌 인권의 문제를 가슴에 담아 작은 속죄의 몸짓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고… 빈 허공에라도 대고 가해자들을 향해 욕질이라고 하고 싶었다. ‘너희들은 나쁜 놈들’이라고…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 때는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많이 했다. 철저히 묻히고 뒤틀려 무엇이 진실인지 조차 알 수 없게 된 과거사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었다. 하지만, 누구나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는 일마다 방해꾼들의 저항이 있었고 그 저항의 크기 또한 만만찮았다.
일제에 부역한 소위 말하는 친일파들이 형성하고 있는 기득권의 벽은 그만큼 높고 견고했다. 입신출세와 일신과 가족의 안일을 위해 침략전쟁에 편승하거나 부당한 권력에 기생했던 그들은 지금 대한민국 각 분야 도처에서 튼실한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을 감당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그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얻은 성과는 기대에 미칠 수가 없었다.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내가 느낀 것은 나라를 경영했던 위정자들의 잘못으로 국권을 상실했던 그 오욕의 역사,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한 모든 피해에 대해서 국가가 철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거다. 그러나… 현실은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았다.
‘나눔의 집’은 국가 차원의 보살핌보다는 올바른 역사의식과 선의를 가진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유지되고 있는 듯했다. 그런 현실을 보면서 나는 솔직히 국가에 대한 배신감과 큰 실망을 느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원망이 앞섰다. 그러나 그게 우리 현실이었다.
다만,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 때보다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사실 하나만이라도 분명히 밝히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할 일을 생각했었다. 유시민님이 말했듯이 영원히 ‘꿈많은 청년’이셨던 노무현 대통령님… 그분이 못다 이룬 사람사는 세상… 그 세상을 만드는 데에 있어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거다.
노무현 대통령은 퇴임 후까지도 생태, 환경, 자연 그리고 사회 복지문제에 큰 관심을 유지하셨다. 생태하천인 화포천과 친환경농업 그리고 환경 가꾸기 분야에서 할 일을 찾으시기도 하셨고, 한편으로는 재임 중에 사회 복지 문제를 많이 개선하기는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을 아쉬워하셨다.
그런 점을 생각해서… 나는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지에 따라 환경 가꾸기 사업의 일환으로 ‘나눔의 집’에 야생화 꽃밭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꽃을 심고 나무를 가꾸어… 사람이 찾고 싶어하는 역사의 현장이 되게 하고 싶었다. 전쟁 피해자 할머니들께 조금이라도 안락한 환경을 만들어 주고 싶었고, 잊어서는 안 될 역사관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도록 뭔가 작은 보탬이라도 되고 싶었다. 그것이 퇴임 후에도 계속된 노무현 대통령의 관심사항이었고 유지인 것이다.
나는 비록 영세한 규모지만 야생화 농장을 하고 있다. 현재의 내 직업은 꽃과 식물을 기르고 가꾸는 일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손쉬운 일이다. 이 일을 시작으로 나는 몇 가지 노짱님의 유지를 받드는 일을 해야 할 것 같다. 노짱님의 유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보편적 삶의 원칙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있어 꼭 필요한 합리적 질서 내지는 규범이기 때문이다.
‘나눔의 집’에는 이제 두 번에 걸쳐 무상으로 야생화 식재작업을 했고 앞으로도 계속할 것 같다. 최소한 3년 동안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나눔의 집’뿐만 아니라 좋은 취지를 가진 사회복지시설에도 필요한 환경 가꾸기 작업을 하게 될 것 같다. 하지만, 생각은 앞서기 쉽고, 현실은 따르기 어렵다. 일이란 늘 그렇다.
첫날과 두 번째 날은 앵초, 매발톱, 송엽국, 패랭이, 조팝, 산머루 등등의 야생화를 심어 화단을 꾸몄고, 오늘은 ‘나눔의 집’ 소장님의 부탁을 받아 작은 텃밭을 하나 만들어 상추와 오크린을 비롯한 삼채와 고추 등을 심었다. 다른 자원봉사자들도 함께 참여했는데 참 즐거운 작업이었다. 요즘은 이런 자원봉사에 참여하는 것은 특별하고 딱딱한 의무감 때문이라기보다 함께 즐기며 소통하는 여가선용의 기회일 수도 있어 더 좋다.
야생화 식재 작업이 대충 마무리되어 꽃밭이 어느 정도 모양을 갖추게 되면… 그 안에 작은 비석 하나를 세우게 된다. 그 비석의 이름은 ‘노무현의 희망꽃밭’이다. 그 내용으로는 자연, 생태, 환경… 그리고 사회복지에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노무현 대통령님의 유지를 담을 생각이다. 결국, 이 일은 노짱님의 유지를 받드는 작업의 일환인 것이다. 이렇게 작은 곳부터 하나씩 노무현의 사람사는 세상을 넓혀가고 싶고, 그것이 우리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효과로 나타나기를 바라는 거다.
자, 그런데… 이 일을 왜 이렇게 소문을 낼까? 그것은 자랑하고 싶어서도 아니고 공치사를 하고 싶어서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은 ‘사람사는 세상’이고 그 세상은 누구 한 사람이나 몇 사람의 힘이나 노력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특정한 분야만 앞서간다고 해서 사회가 개선되고 더 나은 사회가 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란 각 분야들이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각 분야가 골고루 발전해야 한다. 달리 말하면 어떤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거다. 정치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발전과 성숙도 민주주의 발전에 꼭 필요하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님은 세상을 바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어서 대통령이 되셨지만, 권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다는 것을 절감하시고 시민주권운동을 말씀하셨다. 성숙한 민주 사회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도개선도 중요하지만,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이 보다 합리적으로 성숙해지는 것도 그만큼 중요한 일인 거다. 이것은 달리 얘기하면 민주주의는 소극적인 의미에서 정치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폭넓은 의미에서 문화라는 얘기다.
노무현의 희망꽃밭… 나는 이 야생화 꽃밭에서 노무현의 ‘영원한 청년의 꿈’이 꽃피기를 바란다. 그리고 사람사는 세상의 향기가 피어나기를 바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 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되기를 바라면서… 다른 분들도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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