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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수난곡

노짱, 문프

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4. 27.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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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수난곡
(서프라이즈 / 개곰 / 2010-04-26)

 


지난 4월 21일 수요일 세계적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의 아들 제임스 머독이 인디펜던트지 편집국으로 상기된 얼굴로 들어와 사이먼 켈너 주필에게 “지금 뭐 하자는 짓이냐고?” 하면서 고함을 질렀다. 그의 손에는 그날 나온 인디펜던트지 특별호가 들려 있었다. 특별호 1면에는 “이번 선거는 루퍼트 머독이 아니라 당신이 결정한다”는 문구가 적힌 광고가 대문짝만 하게 실려 있었다. 인디펜던트지는 그날 이런 특별호 30만 부를 무료로 배포했다.

 

인디펜던트지가 특별호를 긴급 제작한 것은 보수 언론의 총공세에 맞서기 위해서였다. 전주 목요일에 있었던 총리 후보 1차 토론회에서 자유민주당의 닉 클레그가 압승을 거두면서 당초 낙승이 예상되었던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의 우세가 흔들리자 보수당은 4월 19일 월요일 데일리텔리그라프, 데일리메일, 선 등 영국의 보수지 편집인들을 모아놓고 대책을 숙의했다. 그리고 다음날부터 이들 신문은 닉 클레그를 일제히 물어뜯었다.

 

데일리메일은 닉 클레그가 8년 전 독일은 과거를 반성하고 번영을 구가하는데 영국은 과거의 허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은 글을 찾아내서 클레그가 영국 국민과 참전 용사를 모독했다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같은 기사 하단에는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이 아프간에서 돌아온 영국 군인의 가족과 조깅을 하는 사진을 실었다. 노골적인 보수당 지지 유도 작전이었다.

 

데일리메일은 일찍이 1924년 총선에서 보수당이 예상을 뒤엎고 압승을 거두는 데도 혁혁한 공을 세운 신문이었다. 데일리메일은 총선을 나흘 앞두고 영국 노동자들에게 총봉기하여 혁명을 일으키라고 지시를 내리는 소련 공산당의 지령이라는 일명 지노비에프 편지를 실었다.

 

영국의 중산층 유권자들이 위기감을 느끼고 자유민주당에서 보수당으로 지지 정당을 바꾸는 바람에 보수당은 무려 154석을 더 얻어 412석을 얻었고 자유민주당은 118석을 잃어 겨우 40석을 얻는 데 그쳤다. 그 뒤로 자유민주당은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다. 데일리메일은 자유민주당 몰락의 일등 공신이었다.

 

그런데 지노비에프 편지는 날조된 것으로 무려 70여 년이 지난 1998년에야 밝혀졌다. 러시아혁명으로 해외로 망명한 귀족들이 가짜 편지를 만들어 영국 외무부로 전했고 이것이 다시 데일리메일로 흘러들어 간 것이다. 영국 첩보부는 이 편지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는 사실을 내부적으로는 알았으면서도 외부적으로는 이 지령이 틀림없이 모스크바에서 나온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보수당에게 유리한 정국을 만들었고 데일리메일 같은 신문은 여기에 바람을 넣었다.

 

지금 영국에서 판매 부수가 가장 많은 신문 1위와 2위는 선과 데일리메일인데 이 두 신문은 모두 호주의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 소유다. 두 신문은 매일 각각 200만 부 안팎씩 팔려나간다. 정치적 영향력이 그만큼 클 수밖에 없고 선거에 임박해서는 특히 그렇다.

 

이런 신문들은 선거를 앞두고는 지지 정당을 밝히는데 그것은 사주인 머독의 생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토니 블레어가 1997년, 2001년, 2005년 총선에서 잇따라 압승을 거둔 데는 대중지 선의 노동당 지지 선언이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선도 데일리메일도 보수당을 밀면서 여당인 노동당은 물론이거니와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자유민주당까지도 거칠게 몰아세우고 있다.

 

그러나 노동당도 자유민주당도 외롭지는 않다. 같이 싸워주는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노동당에게는 가디언이 있고 자유민주당에게는 인디펜던트가 있다. 가디언은 평소에는 노동당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싣기도 하지만 노동당이 부당한 공격을 받을 때는 역공을 퍼붓는다.

 

얼마 전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후보가 자신이 총리가 되면 공공 부문 조직 임직원의 연봉이 해당 조직 최저 연봉의 20배를 넘지 못하게 상한선을 정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유력 대기업들의 지지 선언을 이끌어내면서 세를 과시하자,

 

가디언은 실업자가 쏟아지는 어려운 경제 사정은 외면하고 수백만 파운드의 보너스를 챙겨가는 해당 대기업 경영진에게도 똑같은 20배 상한선 잣대를 적용하면 7,500백만 파운드의 연봉을 뱉어내야 할 것이라고 쏘아붙였다. 자유민주당도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대변하고 옹호해주는 인디펜던트지라는 우군이 있다는 사실을 지난 수요일 인디펜던트 편집국으로 들이닥친 루퍼트 머독의 아들이 증명해주었다.

 

한국의 정당에게도 막강한 우군이 있다. 조중동을 비롯하여 한국의 거의 모든 보수 언론은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던져주는 떡밥을 나눠 먹으면서 한나라당의 억지와 생떼를 결사 방어한다.

 

부모 없는 고아 여배우가 죽음으로 밝힌 족벌 사주의 더러운 행각도, 4대강 사업으로 떼죽음 당하는 물고기떼도, 독도를 제 섬이라고 못박겠다는 타국 총리의 발언 앞에서 “지금은 때가 아니니 기다려달라”고 한 자국 대통령의 망발도, 46명의 장병이 수몰된 천안함 사고 당시의 동영상과 교신 기록을 공개하지 않고 버티는 어이없는 국방부와 정부의 행태도 일심동체가 된 언론정치복합체의 기득권 결사 옹위 작전은 가볍게 덮어버린다.

 

스폰서한테서 술과 밥은 기본이고 여자에다가 용돈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은 검사는 이런 힘을 믿고서, 사실 관계를 확인하는 MBC PD 수첩의 피디에게 오히려 협박을 한다.

 

민주당과 진보신당에게도 기댈 언덕이 있다. 텃세 진보와 가분수 진보에게 장악당한 한겨레, 경향, 오마이뉴스가 밀어주기 때문이다. 6.2 지방선거에서는 이 정부가 더 이상 나라를 결딴내지 않도록 한나라당을 심판해야 한다. 그러나 보수 언론정치복합체의 총공세 앞에서 야권이 후보를 단일화하지 않으면 앞날은 어둡다. 진보신당은 일찌감치 단일화 합류를 거부했지만, 진보신당을 비판하는 진보 언론은 찾기 힘들다.

 

민주당은 경기 지사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여론과 지명도, 그리고 지방선거의 분수령이 될 젊은 층의 투표 참여 흡인력에서 유리한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를 낙마시키려고 자신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조건만을 고수하면서 배짱을 부리고,

 

중재에 나선 시민단체도 설득에 지쳐서 조직동원력이 강한 민주당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고 노무현의 계승자 유시민이 뜨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나라당 성향 지지자의 역선택을 방지하지 못하여 국민참여당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조건을 국민참여당에게 받아들이라면서 시민단체의 상식적 판단을 믿고 백지위임을 한 국민참여당에게 약속대로 시민단체의 중재안을 받아들이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이른바 진보 언론도 협상 결렬의 책임을 국민참여당과 유시민에게 뒤집어씌우고 있다. 누가 턱없이 무리한 요구를 했고 무엇이 사실 관계인지에 대한 책임 있고 균형잡힌 보도는 눈을 씻고 보아도 없다.

 

돌이켜보면 노무현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도 사실 관계 규명보다는 제 기득권과 고정관념을 뒷받침하는 주장만을 폭력적으로 양산하던 한국 언론의 광기였다.

 

노무현 대통령을 옥죄기 위해 뇌종양에 걸린 후원자를 구치소에 가둬두고 닦달을 하는 만행을 한국 검찰이 저질렀을 때, 전직 대통령의 엄연한 권리인 대통령 기록물 열람권이 거부되었을 때,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한국 언론은 어느 누구도 보편적 상식의 원칙에서 그 부당성을 준엄하게 꾸짖지 않았다.

 

끝까지 상식과 원칙의 길을 걸어가려던 노무현의 정신을 정치에서 이어가려는 사람들이 모인 국민참여당의 창당도 물론 중요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렇게 원칙과 상식을 따르려는 사람들을 지켜주고 감싸줄 수 있는 언론을 만드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안 그러면 언제든지 상식과 원칙을 뒤집고 얼버무리는 무리들에게 또다시 사정하고 구걸해야 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정신이 짓밟혔을 때, 내 일처럼 분노하고 아파하고 눈물을 흘려줄 수 있는 언론이 없는 한 한국에서 노무현 수난곡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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