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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張良) -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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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3. 30.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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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張良) -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세상을 바꾸다

2011.02.28. 1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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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량(張良)은 '장자방'이라는 호로 더 많이 알려져있는 인물입니다.


몇가지 일화를 잘 설명해 놓은 블로그가 있어서 그 글중의 일부를 옮겨서 보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글의 말미에 장량에 대한 제 생각을 적겠습니다. (불필요한 부분은 빼기도 했고, 보라색으로 제 주해를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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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나라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나 망국의 한을 품다>

 

장량은 전국시대 韓나라 명문가 출신이다. 그의 할아버지 희개지(장량 집안의 본래 성은 희(姬)였다.그러나 장량이 진시황 암살에 실패한 후 성을 張으로 바꾸고 숨어 살았다)는 韓나라 소후, 선혜왕, 양애왕 밑에서 재상을 지냈고, 부친 희평은 희왕, 도혜왕 밑에서 재상을 지냈다. 부친은 도혜왕 23년에 세상을 떠났고 20년이 지나서 韓나라는 진(秦)나라에 멸망당했다.

 

나이가 어렸던 장량은 가까스로 망국의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 한(韓)나라가 멸망할 당시 장량의 집안은 부리는 사람만 해도 3백 명에 이를 정도로 큰 가문이었는데, 장량은 그 많은 재산을 아낌없이 처분하면서 전국의 소문난 자객들을 모았다. 그의 조부로부터 시작하여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재상을 지낸 조국 한나라를 일으키기 위해서, 진시황을 암살하고 조상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다.

 

시황제가 동방을 순행한다는 소식을 들은 그는, 회양으로 달려가서 그 지역 출신 장사들을 구하고 다녔다. 드디어 적절한 사람을 구하자, 장량은 그와 함께 무게 1백 20근의 쇠몽둥이를 만들어 들고 시황제의 뒤를 밟았다. 이윽고 순행의 행렬이 박랑사에 다다랐을 때, 잠복하고 잇던 두 사람은 쇠몽둥이를 시황제의 수레를 향해 던졌다. 그러나 쇠몽둥이는 아쉽게도 빗나가 수행원의 수레에 맞고 말앗다. 크게 노한 시황제는 범인 색출을 위해 전국에 대대적인 수색령을 내렸다.

 


주석(드루킹): 장자방의 명식은 자미두수로 '인궁의 자미천부'인데 보통 이러한 명식은 인생의 중반까지 고난을 겪습니다. 장자방이 유력한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망국으로 집안이 몰락하고 진시황의 암살에 실패한뒤 이름을 감추고, 변장한채(장량은 이쁘장하게 생겨서 주로 여장을 하고 피했다함) 떠돌았던것도 어찌보면 이러한 운과 일치합니다.

 

 


 

<신선에게 병법을 전수받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하비의 다리 근처를 무료하게 서성거리고 있는 장량을 향해 초라한 몰골의 한 노인이 다리 저쪽으로부터 걸어오는 것이었다. 장량 앞에까지 온 노인은 갑자기 신을 벗어 다리 밑으로 떨어뜨리곤 그를 불러 세웠다. "이봐, 내려가서 저것 좀 주워 오게." 화가 치민 장량은 주먹을 불끈 쥐었으나 상대가 노인이므로 꾹 참고 신발을 주워 왔다. 그런데 노인은 또다시 이렇게 명령하는 것이었다. "신겨라." 어차피 참기로 했으니 그냥 참자고 생각한 장량은 허리를 굽혀 노인에게 신을 신겼다. 노인은 발을 내뻗고 신을 신기는 장량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빙그레 웃고는 가 버렸다.

 

어처구니가 없었던 장량은 그저 쳐다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백여 발자국 남짓 걸어 갔던 노인이 다시 되돌아와 장량 앞에 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장래성이 있는 놈이야. 닷새 후 새벽에 이 자리에 다시 오도록 해라......." 영문을 모르는 장량은 엉겁결에 무릎을 꿇고 "예!" 하고 대답했다.

 

약속한 날이 되어 장량이 다리에 가자 그 노인이 벌써 와 있다가 고함부터 질렀다. "늙은이를 기다리게 하다니 무슨 버르장머리야!" 그리고 획 돌아서서, "닷새 후 새벽에 다시 한 번 와!" 하고는 가 버리는 것이었다. 닷새 후 장량은 첫닭 우는 소리와 동시에 그 곳에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노인이 와 있었다. "또 늦었어! 닷새 후에 또 한번 오라구." 이번에도 노인은 그냥 돌아가 버렸다. 다시 닷새가 지났다. 이번만은 어디 보자 하며 장량은 한밤중에 일어나 그 곳으로 갔다.

 

잠시 후 나타난 노인은 싱글거리며, "사나이가 약속을 했으면 진작 그럴 일이지."하고는 품 속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는 것이었다. "이 책을 공부하면 훗날에 남을 도와 제왕(帝王)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네. 13년 후에 자네는 필경 세상을 뒤흔드는 인물이 되어 있을 터이니, 그 때 우리 다시 만나자고. 곡성산 기슭에 있는 황색 바위, 그것이 바로 나이니라." 말을 끝낸 노인은 장량이 반문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는 것이 아닌가. 노인이 떠난 자리에는 스산한 바람만이 언뜻 부는 것이었다. 그 책을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온 장량은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날이 새자 책을 열어 본 즉 강태공의 병법서였다.그 순간부터 책의 내용에 흠뻑 빠진 장량은 항상 머리맡에 놓고 읽게 되었다. 

 


주석 : 이부분은 흔히 나오는 레파토리처럼 장량에게 신비감을 주기위해서 역사에서 미화된 부분으로 보기 쉬우나, 실제로 조금 다르지만 인궁(寅宮) 자미천부(紫微天府)의 명식인 제 경우에도 30세에 우연한 기회에 스승을 만나서 '자미두수'를 전수받은것을 생각해보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이든간에 장량이 비급을 받았다는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비슷한 명식구조를 (물론 장량의 명식이 훨씬좋지만)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가 장량을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韓을 재건하려고 노력하다>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진나라 말엽, 진승의 반란군이 봉기하자 장량도 백여 명의 젊은이를 거느리고 가담하게 되었다. 그 무렵 장량은 우연히 유방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유방은 수천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하비의 서쪽 일대를 공략하는 중이었다. 유방을 만나 몇 마디 말을 나눈 후 그의 사람됨에 반해 버린 장량은 즉시 유방 진영에 가담하기로 작정하였다. 그 후 장량은 그가 배운 병법을 자주 유방에게 제안하였는데, 그 때 마다 채택되곤 하였다. 그 때 까지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리 좋은 계획을 말해도 채택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량은, '유방이야말로 타고난 인물임에 틀림없다.' 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후 유방이 설 땅에 진군하여 항량의 군대와 합류하게 되었고, 이후 항량이 회왕을 옹립하자 장량은 항량에게 진언하고 나섰다. "초왕의 후계자를 결정하셨으니 이번에는 한왕(韓王)에 대해서도 배려가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한나라 제후 가운데에는 성(成)이 걸출한 인물입니다. 그분을 한왕으로 세우신다면 우리 세력은 보다 강화되리라고 믿습니다." 

 

항량은 장량으로 하여금 성(成)이 어디있는지 수소문하도록 하고 그를 한왕에 옹립한 후 장량을 재상에 임명했다. 장량은 한왕과 함께 천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한(韓) 나라의 옛 땅을 공략하여 여러 성을 함락시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진나라에 도로 빼앗기고 말았다. 하지만 장량은 계속 버티기로 하고 영천 일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며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리고 낙양에서 남진한 유방이 환원에 이르렀을 때, 장량은 이들과 합류하여 한(韓)나라의 10여 개 성을 점령하고 진나라 양웅의 군대를 격파하기에 이르렀다.

 

유방은 한왕 성에게 양책의 수비를 맡기고 장량과 더불어 다시 남하, 완을 함락시킨 후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무관을 제압하고 내친김에 2만 군사를 몰아 진나라 군대를 단숨에 격멸 시키려고 했다. 그 때 장량이 만류하고 나섰다. "적은 아직도 강하니 함부로 업신여길 일이 아닙니다. 제가 들은 바로는 적장이 푸줏간집 아들이라고 합니다. 장사꾼이란 원래 재물에 약한 법입니다. 패공께서는 이대로 성 안에 머물러 계십시오. 그리고 선발대를 보내서 근처 산등성이마다 깃발과 장대를 수없이 세워 군대가 많은 것처럼 꾸미십시오. 그 다음에 역이기를 파견하여 적장을 금품으로 매수하면서 눈치를 떠보시지요."

 

그렇게 하자 과연 진나라 장군은, 유방과 손을 잡고 서진을 하여 함양을 치고 싶다고 전해 왔다. 유방이 이를 받아들이려고 하자 또다시 장량이 반대하며 나섰다. "진을 배반하겠다고 말하는 자는 그 쪽의 장군뿐이며 부하들은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그들이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서 쳐들어가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의 의견을 받아들인 유방이 일거에 진나라 군대를 기습하니, 진의 군대는 크게 패하여 달아나기에 바빴다. 유방의 군대는 도망치는 적군을 맹추격하여 남전에 이르러 다시 한 번 진군을 대파하였다.

 

결국 진군은 괴멸 상태에 빠졌고 유방은 마침내 함양에 입성했다. 또한 진왕 자영의 항복도 받게 되었다. 유방이 진나라 궁전에 들어가 보니 궁전은 물론이고 장막,보물, 심지어 개와 말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엄청나게 화려하고 또한 풍성했다. 특히 후궁의 미녀들이 수천 명도 넘어 완전히 얼이 빠져 버리고 말았다. 3천의 절세미녀! 절로 입맛이 다셔졌다. 유방은 무슨 일이 있어도 궁전 안에서 머무르고자 했다. 번쾌가 몇 번이나 말렸지만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때 옆에서 장량이 정중히 충고하고 나섰다. "이제까지 진나라가 무도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우리가 이 곳까지 쉽게 올 수 있었습니다. 아직 천하가 평정되지도 않았고 진나라를 완전히 격파하려면, 진나라와 반대로 공께서는 마땅히 검소하게 입고 먹는 것으로 만족하셔야 합니다. 함양을 빼앗았다고 해서 보물과 미녀에 눈이 멀어 음란에 빠진다면 걸왕(桀王)보다 더 포악한 짓을 했다고 욕할 사람도 생길 것입니다.

 

 

충언(忠言)은 귀에는 거슬리나 실행함에 이로우며, 좋은 약은 입에 쓰나 병을 고친다고 말합니다.(忠言逆於耳:충언역어이,良藥苦於口:양약고어구) 제발 번쾌의 권유에 따르십시오." 유방은 하는 수 없이 패상까지 되돌아와서 군사들과 함께 들판에서 야영을 했다.

 

 

그 후 장량은 한(韓)나라로 돌아갔다. 항우는 장량이 유방과 행동을 같이 해 왔기 때문에 한(漢)과 한(韓)이 연합할까 두려워한 나머지 한왕(韓王) 성(成)의 귀국을 허락지 않고, 자기 군대와 함께 동쪽으로 끌고 가 버렸다. 그러자 장량은 항우에게, "한왕(漢王)은 길을 모두 불태워 없앴습니다. 그가 다시 관중 지방으로 회군할 의사는 전혀 없어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또한 제나라왕 전영의 모반 사실을 알리는 서한을 보내어 항우의 주의가 북쪽으로 쏠리게 하였다. 과연 항우는 서쪽 한왕(漢王)에 대한 경계심을 풀고 제나라를 토벌하기 위해 북으로 출병하였다.

 

그러나 한왕 성의 귀국은 끝내 허락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왕에서 후(后)로 신분을 떨어뜨린 후에 마침내 팽성에서 죽여 버렸다.

 


 

주석 : 스토리가 꽤 깁니다. 그러나 중요한 맥락을 놓치지 않으면 안되는데 장량은 처음부터 유방의 모사로 활약한것이 아니었습니다. 장량이 유방을 도왔던 이유는 망한 韓나라를 재건하기 위해서였고, 韓왕을 옹립한후 최대한 보필하여 한나라의 재건을 위해서 노력합니다. 그러나 결국은 항우에 의해서 살해됩니다.

 


 

韓을 재건하려는 시도가 항우에 의해서 수포로 돌아가자, 이제 장량은 유방을 도와서 원수인 항우를 제거하려고 하게 됩니다. 유방은 인간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성격이 급하고 좋아하고 싫어함이 분명한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역사서를 살펴볼때 유방은 또한 조조처럼 대단히 명민한 머리를 갖고 있는 인물이었던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장량은 이렇게 똑똑하고 성격급한 유방을 다루어서 천하를 제패하는 계획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깁니다.

 


 

< 유방과 한배를 타다>

 

가까스로 몸을 피한 장량은 어떻게든 항우에게 복수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한왕(漢王) 유방을 찾아가게 되었다. 그 무렵 한왕(漢王) 유방은 동쪽으로 군사를 되돌려 3진(三秦)을 평정하는 중이었다. 장량은 한왕을 따라 초군을 공격, 항우의 본거지 팽성을 점령했다.

 

그러나 한군(漢軍)은 급히 되돌아온 항우의 군사에게 패하여 하읍까지 달아나게 되었다. 한왕은 말에서 내려서기는 하였으나 걸터앉을 자리조차 없어 안장을 끌어내린 후 그 위에 앉아 이렇게 탄식했다. "이제 함곡관 동쪽의 땅은 포기할 수 밖에 없게 되었군. 이왕 포기할 바에야 힘을 합쳐 초를 격파한 자에게 양도하고 싶은데, 누가 적당하겠소?"

 

이에 장량이 말했다. "구강왕 경포는 초나라의 맹장이지만 하웅과의 마찰이 심합니다. 그리고 팽월은 제나라 전영과 호응하여 양나라에서 반란의 깃발을 들었습니다. 우선 이 두 사람에게 사자를 급히 보내십시오. 그리고 우리 장군 가운데 큰일을 맡아 한몫 할 장수를 선발한다면 한신 한 사람뿐입니다. 이 세 사람에게 함곡관 동쪽의 땅을 양도하시면 초나라를 격파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한왕은 수하를 파견하여 구강왕 경포를 설득케 하고, 팽월에게도 사자를 보내어 동맹을 체결하였다. 또한 위왕 표(항우의 논공행상에서 서위왕에 임명되었다. 이후 유방이 3진을 평정한 후 한나라에 투항하였는데, 팽성 싸움에서 한나라가 패하자 다시 초나라와 화의를 맺었다. 후에 한신에게 사로잡혔으며 주가에게 살해되었다.)가 배반하자 즉시 한신에게 군사를 주어 위나라를 치게 했으며, 유방을 배신했던 연,대,제,조의 네 나라에도 한신을 보내 제압했다. 결국 한왕이 초나라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이 세 사람의 힘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장량 자신은 병약한 몸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장군에 오른 적이 없고 늘 참모로서 한왕 옆에 머물렀을 뿐이다.

 

드루킹 : 이처럼 유방이 천하를 제패하는 데에는 한신등의 협력이 지대한 공헌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나라를 건국하는데 있어서 3걸을 따진다면 소하,한신,장량을 치는데 이안에 한신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문제는 유방이 자기세력을 일으킨 근거지는 '풍읍'과 '패현'인데 주로 이 소하와 같은 '패(沛)' 출신들이 권력을 잡습니다. 훗날 한신과 같은 공신들은 이 패(沛)마피아들을 빼고 모두 왕권의 강화를 위해서 도륙을 당하는데 유일하게 이 마피아들에 속하지 않고도 살아남은것은 '장량'이었습니다.


 

 

즉 병약했기때문에 나서지 않은것이 아니라, 병약함을 핑계로(장량의 외모는 여성스러웠다하므로) 뒤로 물러서 후환을 없앤것입니다.


 

 

<옹치도 벼슬을 받았는데>

 

한나라 6년 정월, 공로를 따져 상을 주는 논공행상이 실시되었다. 장량은 전공(戰功)이라고는 세운 것이 없었지만 고조는 장량의 전공을 높이 평가했다.

 

"장막 속에서 작전을 세워 천 리 밖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은 모두 장량의 공이오. 제나라 땅 3만 호의 영지를 줄 테니 희망하는 장소를 말해 보시오."

 

이에 장량이 공손히 아뢰고 나섰다.

 

"소신은 하비에서 군사를 일으켰고 유(留)지방에서 폐하를 처음 뵈었습니다. 그것은 하늘이 마련해 준 인연이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소신의 보잘것없는 작전을 자주 채택해 주셨습니다만 그것이 성공한 것은 오로지 요행 때문이었습니다. 소신은 유(留)땅만으로 족합니다. 3만 호를 주신다니 분에 넘칩니다."

 

이렇게 하여 고조는 장량을 유후(留侯)에 봉했다. 같은 해에 큰 공이있는 신하 20여 명에게 포상을 했는데, 그 밖의 공신들에 대해서는 상호 경쟁이 심하여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고조가 낙양에 머물던 어느 날 대궐에서 문득 내려다보니 여기저기 무리 지어 앉은 장군들끼리 무슨 말인지 쑥덕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고조가 유후에게 물었다. "지금 저 자들은 무슨 얘기를 나누고 있는 거요?"

 

"폐하께서는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중입니다."

 

"아니! 천하가 안정됐는데 반란은 또 뭐요?"

 

그러자 장량이 설명하였다.

 

"폐하께서는 한낱 서민으로부터 일어나서 저 사람들을 부려 천하를 장악하셨습니다. 그런데 폐하께서 천자가 되신 지금, 땅을 하사받은 자들은 소하나 조참과 같이 옛날부터 폐하의 마음에 있던 사람들인 반면에 벌을 받은 자는 평소부터 폐하의 미움을 샀던 사람들입니다. 현재 각 개인의 공적을 평가하고 있는 중입니다만, 필요한 땅을 모두 계산하면 천하의 땅덩어리를 다 내주어도 오히려 모자랄 지경입니다.

 

 

저 사람들은 폐하께서 '자기들 모두에게 땅을 내리시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과거의 과실을 들추어내어 오히려 주벌을 도모하시는 것은 아닐까' 두려워하여 저렇게들 모여 앉아 반란을 모의하고 있는 것 입니다." 

 

이 말을 들은 고조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겠소?"

 

"폐하께서 평소에 가장 못마땅해 하셨고, 그 사실을 남들이 다 인정하는 인물이 있는지요?"

 

"그야 옹치지. 그 자는 나를 여러 번 골탕 먹였거든.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은데 공적이 크기 때문에 참고 있는 중이오."

 

 

"그러시다면 우선 옹치에게 벼슬을 내리시고 여러 신하가 모인 자리에서 그것을 발표하셔야 합니다. 옹치가 벼슬을 받았다고 하면 다른 사람들도 저절로 조용해질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고조는 술자리를 베풀고 옹치에게 벼슬을 내렸다. 이에 군신들은 술잔을 부딪치며 환성을 울렸다.

 

"옹치도 벼슬을 받았는데 우리야 기다리기만 하면 돼요."

 


드루킹: 장량의 뛰어남이 잘 나타나 있는 대목입니다. 위에서도 설명을 했지만 장량은 韓나라 사람으로 유방과 같은 지연이 있는 패거리가 아니었습니다. 한마디로 아웃사이더였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한계를 장량은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때문에 일부러 적은 땅을 받는등 조심스럽게 행동합니다.


 

 

천하가 통일된 뒤에는 권력내부에서의 숙청이 있을것임을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 고로 이 옹치라는 인물에 대해서 설명을 하자면 패(沛)군의 호족으로 유력자였으므로 유방이 풍읍과 패현을 거점으로하여 거병한뒤 '풍읍'을 옹치에게 맡기게 됩니다. 그러나 옹치는 위왕에게 항복하고 풍읍을 바쳐서 뒤에 유방이 거병초기에 엄청난 고생을 하게 만듭니다.

 


 

또 초한전쟁의 시기에 옹치는 항우에게 항복하여 유방을 죽일뻔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유방에게 다시 항복하여 공로를 세우게 됩니다. 그러니 밉지 않을 수가 없는 인물인 것이죠. 그러나 같은 동향사람이니 유방의 성격으로는 아마 미워도 죽일 수 없는 그런 관계였을 것입니다.

 


 

유방은 명민한 사람이었으므로 장수들이 쑥덕거리는 것을 보고 한눈에 '모반을 의심'하게 되었을것입니다. 그러니까 대화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장량은 유방의 마음을 읽고 대뜸 '역적모의 중입니다'하고 답변을 한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유방의 놀람과 관심을 이끌어낸뒤에는 원만한 수습책을 내놓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량이 뛰어난 점입니다.


 

 

책략만을 잘 세우는 자라면, 똑똑한 유방에게 충고를 해서 마음을 바꾸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장량은 이렇게 똑똑한 유방의 마음을 뒤흔들어서 자신이 세운 그림대로 나라를 만들어 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지 참모라고 평가할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상을 재단하고 운명을 개척한 인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뛰어난 모사란 사람의 마음까지도 먼저 헤아려서 그것을 이용하고 자신의 책략을 택하도록 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입니다.


 

 

 


 


자료출처 :

http://blog.daum.net/itswiz/24226

http://ko.wikipedia.org/wiki/%EC%9E%A5%EB%9F%89 -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wiki/%EC%98%B9%EC%B9%98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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