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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21세기 나의조국 2010. 2. 19.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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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상군의 일화 - 평등심이 사람을 쓰는 최고의 방법

2010.12.19.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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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상군의 인재 등용책 - 수하 문객들의 활약

 

인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인재가 가정의 근본이라는 말은 그다지 익숙하지 않을 것이다. 실제로 가정과 나라에는 그 이치가 마찬가지로 적용되는 것이니, 작으면 가정이고 크면 나라이다. 즉, 나라는 가정의 연장으로서 인재가 나라의 근본이라면 역시 가정의 근본도 될 수 있다. 이는 옛날 사람들이 관용적으로 쓰던 인재 등용정책으로서 우리에게 전형적인 모범을 남겨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풍부하고 성숙한 경험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영역에서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아마 전국시대의 '사공자(四公子)'일 것이다.

 

즉, 제나라의 맹상군, 조나라의 평원군, 위나라의 신릉군, 초나라의 춘신군이다.

 


사진출처 : 영화스틸컷(孔子)

 

 

그 중에서 가장 특별한 사람은 맹상군이다.

 

맹상군의 성은 전(田)씨이고 이름은 문(文)이다. 그의 부친 전영(田嬰)은 제위왕(齊威王)의 작은아들로서 장군 출신이었다. 후에 전기(田忌), 손빈(孫臏)과 함께 마릉(馬陵) 전투에서 위(魏)나라 군을 대패시켰으며, 그 결과 위나라 장군 방연(龐涓)을 자살케 하고 위나라 태자 신(申)을 포로로 잡음으로써 제나라에 찬란한 승리를 가져다주었다.

 

얼마 후 전영은 재상이 되어서 팽성(彭城)을 책봉 받았다. 제위왕 35년(기원전 322년). 다시 설(薛) 땅을 책봉 받아서 사람들에게 설공(薛公)으로 불렸고 호는 정곽군(靖郭君)이었다.

 

전영에게는 모두 40여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전문은 전영의 첩 소생이었다. 전문의 생일은 5월 초 닷새인데, 전영은 그 것이 불길하다고 해서 전문의 생모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애를 키우지 말라. 가족에게 누가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생모는 차마 그렇게 하지 못하고 은밀히 그를 길렀다.

 

후에 모친이 그의 형제를 통해서 아들을 전영과 만나게 하자, 전영이 크게 화를 내면서 그의 모친에게 말했다.

 

"내가 버리라고 명했는데 왜 키웠느냐? 네가 어찌 나를 거역한단 말이냐?"

 

전문의 모친은 감히 대꾸도 하지 못한 채 한쪽에서 눈물만 흘렸다. 전문은 태연자약하게 전영에게 절을 하면서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아주 예의 있게 전영에게 물었다.

 

"부친께서 5월 초닷새에 난 아들을 키우지 못하고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전영이 대답했다.

 

"제나라 풍습에 5월 초닷새에 태어난 자식은 키가 문설주와 같아서 남자는 부친을 해치고 여자는 어머니를 해친다고 했다."

 

"사람의 운명은 하늘에서 타고나는 것인가요, 아니면 문설주에서 얻는 것인가요?"

 

전영은 그의 물음에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었다. 전문이 다시 물었다.

 

"인간의 운명이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면 부친께서는 왜 종일 우울하게 지내고 있습니까? 또 인간의 운명이 문설주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라면 대문을 더 높이면 되죠. 어느 누가 그토록 높은 곳까지 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사람의 키가 문설주와 같아서 부모에게 피해가 된다는 설은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전영은 전문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만해라!"

 

그리하여 이 부자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졌다.

 

전문이 살펴보니, 집안에 부자 출신이 제후들이나 노복은 많았지만 현명하고 능력 있는 자는 별로 없었다. 이런 상황이 나라나 가정에 모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그는 부친에게 유능한 문객을 불러들이자고 요청하기로 마음먹었다.

 

어느 날 전영이 집에 들어오자 그는 일부로 물었다.

 

"아들의 아들을 무엇이라고 부르죠?"

 

"손자라고 하지."

 


"손자의 아들은 무엇이라고 부릅니까?"

 


"현손(玄孫)이라 부르지."

 

"손자의 손자는 무엇이라고 부르죠?"

 

전영이 모른다고 하자, 전문은 그 기회를 타서 얼른 말했다.

 

"부친께서는 재상으로 이미 3대째 임금을 보좌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나라의 영토는 조금도 확장되지 않았고 오히려 집에는 만금이 쌓이고 있습니다. 당신의 첩들은 모두 비단 옷을 걸치고 있는데 선비들은 남루한 옷조차 없는 자가 있죠. 당신의 노비들은 모두 감미로운 음식을 먹고 어육(漁肉)도 찌꺼기로 버리지만, 변변찮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선비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축적하고 저장하고 있는데, 현손까지 전해주고 나면 또 누구한테 전해주겠습니까?

 

제가 듣건대 '장군의 집에서는 반드시 장군이 나고, 재상의 집에서는 반드시 재상이 난다'고 하더군요. 지금 문중에 유능한 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이토록 부만 축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집은 점점 부유해지고 있지만 국력은 점차 쇠퇴하고 있으니, 제가 부친을 위해서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전영은 대단히 옳은 말이라고 하면서 전문을 연신 칭찬했다. 전문은 이때부터 전영의 총애를 받으면서 모든 집안일과 빈객을 맞이하는 일을 맡았다.

 

전문은 설(薛) 땅에서 빈객을 널리 모았는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이든, 도망친 난민이든 모두 후하게 대접하고 돈과 자금을 대주면서 정착하여 살도록 도와주었다. 그리하여 천하의 유능한 자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는데, 맹상군 스스로 자기 문하에 식객이 3천 명이라고 할 정도였다.

 

그의 문하에 모인 자들은 여러 부류였는데, 사회의 여러 계층을 망라한 어중이떠중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맹상군은 그들을 평등하고 진솔하게 대하였으며 문객들도 그에게 모두 충성했다.

 

한번은 맹상군이 자신의 영지인 설 땅에서 문객들과 같이 식사하는데, 식객이 너무 많아서 거두어들인 세금으로는 지출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이 때문에 밥을 지은 쌀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할 때는 불빛마저 어두웠는데, 그나마 기둥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다. 한 식객은 맹상군이 매우 맛있게 먹는 것을 쳐다보더니 자신의 그릇에 담긴 조잡한 밥과 비교해보고는 맹상군이 좋은 음식을 혼자 먹는다고 생각하여 크게 화를 냈다.

 

"우린 그래도 맹상군을 천하에서 가장 현명하고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소. 그런데 이제 보니 식사에서 조차 불평등한 대우를 하고 있으니 떠나는 게 낫겠소!"

 

그러고는 밥그릇을 내려놓고 떠나려 했다.

 

그런데 맹상군이 자신의 밥그릇을 그에게 보여주자, 그 문객은 너무나 창피한 나머지 검을 빼어서 자살하고 말았다. 이 일로 인하여 맹상군의 명성은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더욱 많은 유능한 인사들이 몰려왔다.

 

맹상군은 문객들과 이야기를 할 때는 반드시 병풍 뒤에 기록하는 사람을 두었다. 그래서 문객들의 가정 상황 등을 모두 기록했는데, 나중에 사람을 파견해서 그의 식구나 친척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것으로 인심을 샀다. 또 문객들의 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자신과 똑같은 식사를 하게 함으로써 천하의 선비들이 자신에게 기울어지도록 만들었다.

 

맹상군의 명성이 점차 커지게 되자, 진왕조차 부러워하는 한편 두려움을 느끼게 되었다. 어느 날 진왕은 대부 향수(向壽)와 이 일을 의논하면서 맹상군을 진나라로 초청하기로 했다. 향수가 말했다.

 

"그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대왕께서 자신의 아들을 제나라에 인질로 보낸다면, 맹상군이 오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왕께서 만약 맹상군을 진나라의 승상으로 등용할 수 있다면, 제나라 또한 대왕의 자제를 승상으로 삼을 것이니, 그때가 되면 진나라와 제나라는 연합해서 다른 제후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왕은 향수의 말에 따라서 자신의 동생 경양군(涇陽君)을 제나라에 보냈는데, 경양군과 맹상군은 만나자마자 늦게 알게 된 것을 한탄하면서 며칠 만에 매우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당시 맹상군이 진나라로 가려고 하였지만, 문객들이 진나라는 승냥이 같은 나라이니 경솔히 갈 수 없다고 하였다. 하지만 맹상군은 그들의 권고를 마다하고 기어코 가겠다 고집했다.

 

나중에 소진(蘇秦)이 밖에서 돌아와서 맹상군에게 말했다.

 

"오늘 아침, 제가 밖에 나갔다 돌아오다가 흙으로 빚은 인형과 나무로 깎은 인형이 다투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무로 된 자가 흙으로 된 자에게 '하늘에서 비가 오면 너는 흙덩이가 되고 말 것이다'라고 하니, 흙으로 된 자가 나무로 된 자에게 '나는 본디 흙으로 빚어졌으니 흙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지만, 너는 나무로 되었으니 비가 오면 물 위에 떠서 어디로 갈지도 모른다'고 하더군요.

 

 

지금의 진나라는 호랑이와 같은 심보를 갖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가서 돌아오지 못한다면, 흙으로 된 인형이 나무로 만든 인형을 비웃는 꼴이 되지 않겠습니까?"

 

맹상군은 그 말을 듣고 깨닫는 바가 있어 진나라로 가지 않았다.

 

얼마 후 제선왕(齊宣王)이 별세하고 그의 아들이 즉위하였는데, 진나라가 매우 두려워했다.

 

그리하여 맹상군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나라로 가도록 독촉했다. 결국 맹상군은 어쩔 수 없이 진나라로 가게 되었다. 아울러 제나라 왕은 진정으로 진왕과 우정을 맺으려면 인질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하면서 경양군을 진나라로 돌려보냈다.

 

맹상군이 진나라에 가자, 진소왕(秦昭王)은 매우 성대하게 환영 의식을 베풀었다. 맹상군 또한 매우 귀중한 은색 여우가죽 두루마기를 진소왕에게 선물로 드렸다. 진소왕이 맹상군을 승상으로 삼으려고 하자 대신들 중에서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다.

 

"맹상군은 제나라의 귀족이니, 승상이 된다면 반드시 제나라 이익을 위해 계산할 것입니다. 그의 수하에는 문객도 많고 명망도 높기 때문에 만약 대권을 그에게 맡긴다면 진나라가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결국 진소왕은 그를 돌려보내려고 하였으나, 그가 진나라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많아서 걱정이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이는 것도 마땅하지 않아서 결국 그를 연금하고 말았다.

 

맹상군과 매우 절친한 사이인 경양군이 도움을 주려고 나섰다. 경양군은 앞으로 임금이 될 사람인지라 여러 나라의 세력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했기 때문에 맹상군을 등한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양군은 진소왕이 가장 총애하는 왕비 연희(燕?)를 찾아가서 맹상군을 놓아주도록 권해달라고 부탁했다. 연희는 진소왕에게 준 여우 두루마기가 탐이 나서 만약 일이 성사되면 그와 똑같은 은색의 여우가죽 두루마기로 답례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 두루마기는 하나 뿐이어서 맹상군은 매우 난처했다.

 

이때 문객 중에서 개 짖는 소리를 잘 내면서 도둑질에 능한 자가 있었는데, 자기가 이 일을 책임지겠노라고 장담하고 나섰다. 그는 먼저 곳간을 지키는 자와 잘 사귀어서 내부 상황을 알아본 후에 굴을 파서 곳간으로 들어갔는데, 굴을 팔 때 소리가 나면 개 짖는 소리를 내어서 다른 사람을 속여넘겼다. 마침내 그는 두루마기를 훔쳐내어 연희에게 주었고, 연희는 진소왕을 구슬러서 맹상군을 귀국하도록 했다.

 

맹상군 일행은 그물을 빠져나온 물고기처럼 함곡관을 향하여 걸음을 재촉했다. 진소왕이 생각을 바꾸어서 뒤쫓아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자 마음이 조급했다. 관문에 이르렀을 떄는 야밤이었고, 관문은 닭이 홰를 쳐야 열게 되어 있었다. 이때 문객 중에서 닭 홰치는 소리를 비슷하게 흉내내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내는 소리에 관문 밖의 닭들도 모두 따라서 홰를 쳤다. 관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날이 밝은 줄 알고 문을 열었다. 문객 중에는 또 문서를 잘 꾸미는 자가 있었는데, 그가 관문을 통과하는 문서를 만들어서 드디어 관문을 빠져나왔다.

 

아닌게 아니라 진왕은 곧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고는 군대를 보내 뒤쫓도록 했다. 관문까지 추격했는데도 관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문서를 뒤적여보아도 맹상군 등이 관문을 나갔다는 기록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맹상군 일행이 아직 여기까지 도착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한참을 기다렸다. 나중에 진상을 깨달았을 때, 맹상군 일행은 이미 진나라 경계를 멀리 벗어난 뒤라서 추격해도 이미 허사였다.

 

맹상군이 제나라에 도착하자, 제나라 왕은 매우 기뻐하면서 그를 재상으로 등용했다. 맹상군이 권력을 장악하자 모여드는 문객이 점점 많아져서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문객들을 세 등급으로 나누었는데, 제1등급은 어육(魚肉) 반찬과 수레, 말을 제공하며, 제2등급에게는 어육 반찬은 제공하지만 수레와 말은 제공하지 않으며, 제3등급에게는 일반 식사만 공급되었다. 제3등급 가운데 풍훤(馮諼)이라는 자가 있었는데, 온 지 며칠 되지 않았다. 그가 검집을 두드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나의 장검아, 돌아가자. 우리의 밥상에는 어육도 없구나!"

 

맹상군은 이 일을 알고서 그를 2등 문객의 반열로 올려주었다. 며칠 후 그 자는 또 장검을 두드리면서 말했다.

 

"장검아, 우리 돌아가자. 문을 나설 때 수레와 말도 없구나!"

 

맹상군은 다시 그를 일등 문객으로 올려주었다. 이제는 할 말이 없을까 하였는데 며칠 후 가신이 맹상군에게 말했다.

 

"풍훤이 또 집에 노모를 부양할 사람이 없다고 노래를 부릅니다."

 

맹상군은 사람을 보내서 그의 노모가 편안한 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 후 풍훤은 다시는 검을 두드리며 노래하지 않았다.

 

얼마 후 맹상군은 사람을 설 땅에 보내서 빚을 받아오도록 하려 했다. 그가 풍훤을 불러서 물었다.

 

"선생은 무엇에 능하오?"

 

 

풍훤은 맹상군의 일을 아는지라 이렇게 대답했다.

 

"그저 계산밖에 할 줄 모릅니다."

 

"그렇다면 선생이 설 땅에 가서 빚을 좀 받아오도록 하시오."

 

"빚 받은 돈으로 무엇을 사야 합니까?"

 

맹상군은 매우 귀찮아하면서 말했다.

 

"내 집에 모자라는 것을 사 오시오!"

 

맹상군의 3천 문객은 모두 설 땅에서 거둔 세상으로 먹여살리고 있었으므로 백성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았다.

 

풍훤이 그곳에 도착하자, 빚을 진 백성들은 감히 얼굴을 내밀지 못했다. 그가 술과 고기를 준비해서 채무자들을 모두 찾았다. 그러고는 장부를 자세히 조사하여 갚을 수 있는 채권과 갚을 능력이 없는 채권을 갈라놓았다. 그가 채무자들에게 말했다.

 

"맹상군은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합니다. 이것은 고리대금을 경영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것이오. 이번에 나를 파견한 일도 당신들을 살펴보라는 뜻에서 보낸 것이오. 능력이 있는 사람은 천천히 갚고, 갚을 능력이 도저히 없는 자는 이제 채권을 태워버리겠으니 영원히 갚지 않아도 좋소."

 

 

그러더니 한쪽의 빚 문서를 몽땅 불살라버렸다. 설 땅의 백성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한마음으로 맹상군을 따를 것을 맹세했다.

 

 

맹상군은 풍훤이 빈손으로 돌아오자 비웃는 어조로 물었다.

 

"나를 위해 선생은 무엇을 사왔소?"

 

풍훤이 태연하게 대답했다.

 

"당신이 모자라는 것을 사라고 했지만, 이집에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고 단지 '의(義)'가 부족한 것 같아서 당신을 위해 '의'를 사왔습니다."

 

그리고 맹상군에게 그 동안의 경과를 이야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빚을 갚을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연히 갚을 것이오, 능력이 없는 자는 죽어도 갚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도망갈 우려가 있으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맹상군은 그의 말에 코웃음만 치면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맹상군의 명성이 날로 커지자 진왕은 매우 화가 나서 도처에 소문을 퍼뜨리게 했다.

 

"천하 사람들은 맹상군만 알고 제나라 왕이 있는 줄은 모른다. 맹상군이 곧 임금의 자리에 오를 것이다"

 

그리고 또 초희왕이 죽은 사건을 이용해서 초나라와 연락 관계를 맺고, 맹상군이 즉위하면 반드시 먼저 초나라를 공격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리하여 초나라에서도 맹상군에 대한 나쁜 소문에 떠돌게 되었다. 용렬한 제나라 왕은 이 소문을 듣자 의심한 나머지 맹상군을 제상직에서 해임했다.

 

인정이 각박하고 세태가 어지러운지라, 맹상군이 득세할 때는 문앞이 시장처럼 붐비더니, 이제 운이 기울어지자 문앞에 쥐 죽은 듯했다. 오직 풍훤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면서 그를 모시고 설 땅으로 갔다. 백성들은 맹상군이 온다는 소문을 듣고 먹을 것과 반찬 그리고 술까지 준비해서 백리밖까지 나와 그를 맞이했다. 맹상군이 감동하여 말했다.

 

"선생이 사놓은 의(義)를 이제서야 보게 되는 군요!"

 

그러자 풍훤이 대답했다.

 

"이곳뿐이겠습니까? 속담에 이르기를 '교활한 토끼는 둥지가 세 곳이다'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하나의 안식처로는 부족합니다. 저에게 수레를 준비해주시면, 제가 진나라에 가서 진왕으로 하여금 그대를 등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때가 되면 지금의 설 땅, 제나라의 도읍지인 임치, 진나라의 도읍지인 함양이 모두 그대의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풍훤은 함양으로 가서 진왕을 만나 말했다.

 

"지금 천하에 유능한 자들이 제나라나 진나라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어느 나라든 인재를 많이 모으면 그 나라가 더 강해질 겁니다. 그러므로 천하는 제나라의 것이 되거나 또는 진나라의 몫이 될 것입니다. 제나라가 오늘날의 규모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맹상군이 유능한 인사들을 우대하고 나라를 요령 있게 다스렸기 때문이죠. 그런데 도량이 좁은 제나라 왕이 날조된 헛소문을 듣고 맹상군의 재상직을 해임하였습니다. 맹상군이 제나라 왕에게 원한을 품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대왕이 그를 진나라로 초청하면 예의로 대한다면, 그는 반드시 진나라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제나라가 어찌 적수가 되겠습니까? 당신이 만약 망설이다가 제나라 왕이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다시 맹상군을 부른다면 그때는 후회막급입니다."

 

진왕은 마침 도처에서 인재들을 모으던 중이라 풍훤의 말에 귀가 솔깃하여 맹상군을 초청하기로 했다.

 

진왕은 사자를 보내서 10여 대의 수레와 황금 100근을 가지고 승상을 맞는 의식으로 맹상군을 영접했다. 풍훤은 자신의 계책이 성공하자 즉시 제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맹산군을 만날 사이도 없이 급히 임치로 가서 제나라 왕을 만나서 말했다.

 

"제나라와 진나라 중에서 누가 패권을 장악하느냐를 결정할 수 있는 관건은 인재에 달렸습니다. 인재를 얻는 쪽이 천하의 패권을 쥐고서 제후들을 통솔할 것입니다. 제가 임치로 오는 길에 들었는데, 진왕이 이미 비밀리에 사람을 보내서 10대의 수레와 황금 100냥으로 맹상군을 초청하여 진나라의 승상으로 등용한다고 합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나라가 매우 위험에 처하지 않겠습니까?"

 

제나라 왕은 매우 당황해 하면서 풍훤에게 대책을 물었다.

 

풍훤이 대답했다.

 

"대왕께서 맹상군의 재상 직위를 회복해주고 더 많은 옥토와 재물을 하사한다면, 맹상군이 감격하여 진나라로 가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설사 진나라가 그를 데려가고 싶더라도 억지로 다른 나라의 재상을 납치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대왕께서 주저하시다가는 시기를 놓치게 됩니다."

 

제나라 왕은 반신반의하면서 사람을 파견하여 실상을 탑지하게 했다. 마침 진나라의 거마(車馬) 일행을 본 그 사람은 밤새도록 임치로 달려와서 제나라 왕에게 사실대로 보고했다. 제나라 왕은 비로소 풍훤의 말이 진실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황급히 맹상군의 재상직을 회복시키는 명령을 선포하고, 그에게 1천 호의 땅을 하사하고 즉시 도읍으로 맞이하도록 했다. 진왕이 보낸 거마 일행과 제나라 왕의 명령이 거의 동시에 설(薛) 땅에 도착했다. 그들은 서로 다투지도 못한 채 자신이 한 걸음 늦었음을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맹상군은 정치적으로 '세 개의 둥지'를 마련하여 아무런 걱정이 없게 되었다. 제나라가 그를 마다하면 진나라로 갈 수 있고, 또 진나라가 거절하면 다시 설 땅으로 갈 수 있었다.

 

진왕이 맹상군을 욕심낸 행위는 제나라에서 맹상군의 지위를 공고히 했다. 맹상군이 과연 어느 정도 능력이 있고 나라를 위해 얼마나 큰일을 할 수 있느냐는 부차적인 문제였다. 핵심은 맹상군이 임금의 자리를 욕심 내지 않는다는 것을 제나라 왕이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왜 진나라로 가겠는가? 이 오해가 풀리기만 하면, 맹상군이 정치에 종사하는 데 따르는 위험은 없어진 셈이다. 이 때문에 맹상군의 관직은 갈수록 높아졌다.

 

맹상군은 문책에 의지하여 자신의 힘을 키웠고, 민심을 수습했으며, 재상의 직무도 회복했다. 그리하여 온전하게 정치를 하게 되었으며 국제적인 '명망'도 높아갔다. 그는 인재를 모으고 사용하는 전범(典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송나라의 대 문학가·역사학자·정치가인 왕안석은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독맹상군전(讀孟嘗君傳)」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맹상군이 유능한 자들을 모으는 데 능했기 때문에 많은 인사들이 그에게 모여들었고, 결국 이러한 사람들의 지혜에 의거해서 호랑이 같은 진나라를 탈출하였다고 한다. 오호라! 맹상군은 그저 계명구도들의 우두머리밖에 될 수 없었으니, 어찌 인재를 잘 선발하는 자라고 할 수 있딴 말인가? 그렇지 않다면 제나라와 같은 강대한 나라가 진정으로 유능한 인재 한 사람만 얻어도 진나라를 제어할 수 잇었을 터인데, '계명구도'와 같은 자들의 힘까지 빌려야 할 필요가 어디 있단 말인가? 말하자면 그런 무리들이 그 문하에 득실거렸다는 것이 바로 진정으로 유능한 선비들이 찾아들지 않은 원인이었다!"

 

 

왕안석의 분석이야말로 정곡을 찌르는 것으로써 오랫동안 공인되어오던 결론을 일거에 뒤집었다.

 


 

중국 역사에는 유능한 선비 때문에 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선례가 있다. 한(漢)나라 말년의 유비는 사실 많은 사람을 사귀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한 사람의 선비를 위해 삼고초려(三顧之禮)를 함으로써 끝내 제갈량의 신뢰를 얻었다. 제갈량 또한 유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융중(隆中)을 나서기 전에 이미 '천하를 셋으로 나누는' 천하삼분지계로 대세를 투철히 분석하였고, 융중을 나와서는 모든 정력을 기울여서 유비로 하여금 '무(無)'에서 '유(有)'로, '소(小)'에서 '대(大)'로 이르도록 하였다. 마침내 그는 유비가 위·촉·오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제갈량의 사례는 왕안석의 관점에 대한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출처 : http://kin.naver.com/open100/detail.nhn?d1id=11&dirId=111002&docId=332474&qb=66e57IOB6rWw&enc=utf8§ion=kin&rank=2&search_sort=0&spq=0&pid=gd2/FB331xwssv83cNVssv--420429&sid=TQ2-nl@gDU0AAD83GdM

 

 

* 책의 내용중에 오자,탈자는 수정하였고 다른역사서의 내용과 극히다른것은 문맥을 수정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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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 : 윗글 내용은 책에서 따온 내용인데 저자가 말미에서 언급한 제갈량이 유비를 도와 위촉오삼국을 통일하는데 공을세웠다고 함은 역사적 사실도 아니거니와 저자의 무지로 보입니다.

 


 

제가 맹상군을 평해본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맹상군을 평함>

 


왕안석은 인재를 씀에 효율을 따지며 3천의 식객이 쓸모없는 자였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볼줄 모르는 맹상군이 거두어 보살피는탓에 제대로된 인재가 없었다 하지만, 위기에 빠진 맹상군을 구하고 또 더욱더 융성하게 한것은 바로 그의 식객이었던 '풍훤'의 능력이었습니다.


 


인재를 씀에있어서 사람을 가려볼 줄 아는 눈은 필요한것이라고도 할 수 있으나, 그것이 최고의 덕목은 아닙니다. 맹상군의 일화가 이야기해주는것은 사람을 씀에 있어서 '평등심(平等心)'이야 말로 최우선의 것임을 보여줍니다.

 


맹상군은 일화에서도 보이듯이 돈을 받아 돌아오지 못한 풍훤의 일처리를 탐탁치 않게 생각하였으므로 사람보는 눈이 뛰어나지 않은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그는 한번 받아들인 사람은 지위나 인품이나 재주에 상관없이 평등하게 대하고 그들과 똑같은 밥을 먹었습니다.

 


 

풍훤이 처음에 3등급의 대우를 받다가 자신의 대우를 올려주기를 강짜부려서 어육을 얻고, 그다음에 또다시 수레를 요구한것은 맹상군의 사람됨됨이를 알아보려고 한것입니다. 만약 거기서 맹상군이 화를내고 풍훤을 내쳤다면 그는 3천의 식객이 있었더라도 신세를 망쳤을 것입니다.

 


 

풍훤은 거기서 맹상군이 '평등심'이 있는 사람임을 알아보고 그가 우매하기는 할지언정 자신이 모셔야할 사람으로 판단하고 충성을 다하기로 작정한것입니다. 그래서 맹상군이 재상의 자리에서 쫓겨나고 빈털터리가 되었을때에도 풍훤만은 그를 떠나지 않은 것입니다.

 


 

만약 맹상군에게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위기에 닥쳐서 그를 위해서 충성을 다해줄 사람을 찾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왕안석의 말이 틀린것은 진정유능한 선비가 어떤사람인지는 몰라도 그런선비가 삼천명이 있은들 풍훤 한사람의 지혜와 충성심을 넘지는 못하였을 것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 때문입니다. 이순신이 전장에 나아가 왜군을 백전불패로 패퇴시킨것은 그가 군율이 엄격한 장군이어서가 아니라 사병들과 함께 밥을 같이 먹고 고락을 같이할만큼 '평등'하게 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부하들은 목숨을 아끼지않고 사력을 다해서 싸웠던 것입니다.

 


책의 저자는 말미에서 유비의 예를 들어 사람을 가려쓰는 안목이있어야 한다고 충고를 하였는데, 사람을 가려뽑아서 대우하는 눈을 가진사람은 도처에서 흔하게 볼 수 있으나 가려 뽑은 사람을 평등하게 대하는 사람은 세상에 희귀합니다.

 


선비가 주군을 정할때에는 반드시 풍훤처럼 그 주인이 평등심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고 선택을 하여야 하는것이며, 좋은 모범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세계적인 기업의 CEO는 한사람의 인재가 만명을 먹여살린다고하면서 사람을 층층이 나누어 평가한대로 높은 차등을 두고 뛰어난 인재는 많은 돈을 주고 평범한 인재는 그에 훨씬 못미치는 대우를 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기에 그런 재벌은 3대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기업의 주인되는 사람은 천만원짜리 술을 마시고 수천억의 봉급을 받고, 일하는 근로자에게는 한푼도 아까워 박하게 대한다면 그것은 평등심이 없는것이며 그 기업이 진정한 위기에 처했을때 풍훤처럼 그를 지켜줄 충성심있는 부하를 얻지 못할것입니다. 수천 수만의 뛰어난 능력이있는 부하들이있더라도 몰락의 위기에 처한 그를 버려두고 떠나가 버릴것은 물론 쓰러지기도 전에 배신하는 자가 속출할 것 입니다. 그것은 인지상정입니다.

 


 

돈으로 그들을 샀으니, 돈없는 주인은 버림받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기업을 영위하더라도 백년을 바라본다면 풍훤처럼 '의(義)'를 살줄알아야 하고 또 자신이 모자라더라도 '평등(平等)'한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위기가 닥쳐오더라도 충성을 다하는 부하들이 있어 결코 위태로워지거나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물며 한나라의 지도자라면 백성과 더불어 고락을 같이하는 '평등심'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가난한 아이들이 밥을 굶을때 그들의 끼니를 돌볼줄 아는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지도자의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 오히려 있는자는 후하게 대하고 가난한 자들의 밥그릇을 빼앗아 자신과 주변사람의 이익에 보탠다면 그나라는 반드시 기울게 될것이며 아무도 그를 위하여 충심을 내지 않아서 위기가 닥쳤을때 막아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모쪼록 남의 위에 서려고하는자나 많은 백성과 부하를 돌보아야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이 평등심을 잊지말고 기억해 두어야 할것입니다. 실로 맹상군은 평등심으로 뛰어난 사람이었다고 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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