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제표로 읽는 회사 이야기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 연합뉴스
에스케이(SK)하이닉스가 미국 나스닥에 증권예탁주식(ADS)을 상장하기 위해 국내 금융당국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에 각각 증권신고서와 등록신고서(Form F-1)를 공시했다. 시장에서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이라 부르지만, 발행 주체인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엄연히 주식을 신주로 발행한 것이다.
ADR은 미국 주관은행이 SK하이닉스의 원주(한국 주식)를 보관하고 이를 담보로 미국 시장에서 발행해준 주식 증서, 즉 일종의 영수증 개념이다. 국내 주식이 태평양을 건너 직접 나스닥 시장으로 출고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투자자들은 이 증서를 바탕으로 잘게 쪼개져 유통되는 ADS를 매매창에서 사고파는 구조이다.
원칙대로라면 주식 보유자에게 영수증인
ADR을 주고 매도자에게는 회수해야 하지만 빈번이 주식거래가 일어나니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미국의 예탁기관이
ADR 통합증서를 보관하고 그 묶여 있는
ADR에 대한 주주들의 지분 권리를 컴퓨터 화면상에 주식 숫자로 띄워주는데 이것이
ADS이다. 국내 주식을 국외에서 거래하느라 용어와 절차가 다소 생소하지만, 앞으로 우리 기업들의 국외 주식시장 진출 사례가 더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이번 기회에 개념을 확실히 잡아두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장점유율이 말하는 것
SK하이닉스는 이 등록신고서 도입부에 큰 글씨로 회사를 ‘World's Premier Memory Leader Full Stack AI Memory Creator’로 소개하고 있다. 인공지능(AI) 가속기와 데이터센터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기획부터 패키징까지 아우르며 맞춤형 AI메모리 솔루션 전체(Full Stack)를 공급하는 세계 최고의 기술 리더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SK하이닉스의 시장점유율을 보면 고대역폭메모리(HBM)가 56.4%, 디램(DRAM)이 29.1%, 낸드(NAND)가 18.5%로 각각 1~3위에 올라 있다. 디램과 낸드의 시장점유율 1위는 각각 38.7%, 32.5%의 삼성전자이다.
메모리 반도체 기업의 주식에 투자한 입장에서는 이 시장점유율 그래프 추이를 좀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미묘한 변화가 보이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가 자랑하는 HBM의 시장점유율 56.4%는 대단한 수치지만 사실 2025년의 63.2%에 비해 다소 하락했다. 그 틈을 삼성전자와 마이크론이 각각 1.2%포인트, 5.7%포인트 늘렸다. 디램도 2025년 34.8%였는데 2026년 5.7%포인트가 줄었고 삼성전자 점유율이 4.2%포인트 늘었다.
낸드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점유율이 2025년에 견줘 각각 2.4%포인트, 0.2%포인트 줄었고 그 틈을 미국의 샌디스크와 마이크론, 중국의 YMTC가 조금씩 잠식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메모리 기업 대부분의 실적이 고공행진을 하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등록신고서에는 반도체 시장 규모에 대한 추정치 정보도 나오는데 2026년 메모리 전체 매출액은 6330억달러(약 960조원)를 예상하고 있다. 참고로 2027년엔 1100조원이 넘는다. 2025년 시장규모가 2160억달러에 불과했는데 1년 만에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이렇게 밝은 미래가 예상됨에도 주식은 항상 싼 가격에 거래돼왔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이 고작 7배밖에 안 된다. 2027년 예상 순이익과 비교하면 5배 내외일 정도다. 그동안 주가가 무섭게 올랐지만 실적 상승세가 워낙 뚜렷하기 때문에 아직도 저평가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반도체는 그동안 계속 성장과 불황을 반복하는 사이클리컬(Cyclical·경기에 민감) 산업이기 때문에 저평가가 타당하다는 의견도 많다. 이 호황이 끝나면 다시 또 불황이 찾아올 것이니 주가를 높게 쳐줄 수 없다는 논리이다. 그런데 이 등록신고서에 나오는 그림을 보면 이제 사이클리컬이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막대그래프가 의미하는 것은 전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HBM과 디램, 낸드 등 메모리 반도체의 매출액과 예상 매출액 총합이다. 인공지능(AI)이 태동하면서 2024년에 HBM의 매출액이 처음 발생한 뒤 성장하고 있지만 데이터센터에는 여전히 디램과 낸드 등을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실제 매출 규모는 이런 레거시(범용) 반도체가 더 큰 편이다.
지금은 과도기적 상황
막대그래프 위의 꺾은선그래프는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기업용 메모리의 비중을 보여주는데 2026년을 기점으로 50%를 초과한다. 그 전까지는 기업용보다는 개인용 반도체 시장이 더 컸다. 즉, 스마트폰, 노트북, 차량, 가전제품 등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훨씬 큰 시대였다. 그러니 경기변동에 반도체 수요도 영향받을 수밖에 없었다.
2020년 코로나19 대유행 속에 기업들이 속속 클라우드컴퓨팅을 도입하면서 그때부터 기업용 반도체 수요가 커질 것으로 점쳐졌지만 20%대에 불과했다. 그러나 2024년
HBM 매출액이 발생함과 동시에 기업용 메모리 반도체 비중을 보여주는 꺾은선그래프의 기울기가 가팔라지기 시작해, 2026년부터는 50%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즉, 비서(
Agent)
AI, 스스로 행동하고 판단하는 피지컬
AI의 시대가 열리면서 더 많은 데이터센터가 필요해지고, 그 안에 무수히 많은 메모리를 집어넣어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AI의 꽃은 피지컬
AI인데, 이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도 들어가지 못했으니 기업 반도체 수요는 한동안 줄지 않을 것이다. 많은 애널리스트도 이제는 반도체를 사이클리컬 산업으로 분류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물론 정답은 없다. 하나 확실한 점은 많은 사람이 메모리 반도체 산업의 장기 성장에 동의하는 시점부터는 변동성이 다소 줄면서 주가도 다시 방향을 트리라는 것이다. 실적 대비 주가가 정말 싸니 말이다. 아마 지금은 과도기적 상황이 아닐까 싶다.
박동흠 공인회계사·한국금융연수원 겸임교수
박동흠은 많은 사람에게 기업 숫자의 의미를 알려주기 위해 글을 쓰고 강의하는 일을 주로 한다. 뉴스나 소문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숫자를 찾아 분석하면 숨은 뜻을 헤아리고 미래를 예상할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생긴다. 그 힘을 소개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