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증시가 글로벌 인공지능(AI)·반도체 투자 심리를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떠오르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형주의 주가 흐름이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 증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면서 글로벌 자본시장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풍향계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1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런던·뉴욕·도쿄의 주요 펀드매니저들 사이에서는 거래를 시작하기 전 한국 증시의 움직임을 확인하는 것이 새로운 투자 루틴으로 자리 잡고 있다. 파인브리지인베스트먼트의 하니 레다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이제 우리는 모두 한국 투자자"라며 매일 아침 한국 증시를 살펴 AI 투자 심리를 판단한다고 말했다.
오르투스 어드바이저스의 앤드루 잭슨 일본 주식전략 책임자는20여 년의 투자 경력에서 처음으로 코스피 차트를 주요 관찰 대상으로 추가했다고 밝혔다. HSBC의 헤럴드 반 데어 린데 아시아·태평양 주식전략 책임자 또한 최근 투자 회의마다 한국 시장이 주요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변화는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영향력이 커진 데다 한국 증시 마감 이후에도 뉴욕증시에서 SK하이닉스 ADR과 한국 관련 ETF를 통한 거래가 이어진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 증시를 둘러싼 투자 심리는 사실상 24시간 글로벌 시장에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최근 AI 수요 둔화 우려로 코스피가 하루 만에 9% 가까이 급락하자 그 여파는 미국 증시로 이어졌다. SK하이닉스 ADR은 9.3% 하락했고 글로벌 주요 반도체 종목들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다.
시장 간의 연계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코스피와 나스닥100 지수의 60일 상관계수는 최근 0.46을 기록하며 지난 2년 사이 최고 수준에 근접했다. 이는 최근 5년 평균치인 0.16과 비교해 3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특히 한국 증시가 하락할 때 나스닥100 지수가 반응하는 민감도는 이달 초 1990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상승한 것으로 분석됐다.
이반 파인세스 티그리스파이낸셜파트너스 최고투자책임자(CIO)는 "한국 증시와 주요 반도체주가 미국 AI·반도체 시장의 위험을 미리 보여주는 장전(pre-market) 지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한국은 더 이상 변방의 신흥시장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했다.
다만 높은 변동성은 한국 증시의 지표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코스피는 지난 6월 고점 이후 레버리지 거래 확대 등의 영향으로 약 25% 하락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고점 대비 30% 이상 밀렸다. UBS 스미트러스트웰스매니지먼트의 고바야시 지사 일본 주식전략가는 "레버리지 거래 등으로 변동성이 커진 시장이 투자 심리를 주도하면 주가가 기업의 펀더멘털과 괴리될 수 있어 투자 판단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세은 인턴기자 seni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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