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AI 투자 붐 ‘반도체 호황’ 3가지 달라졌다…‘긍정 회로’만 돌리기엔

AI, 로봇, 우주, 수소

by 21세기 나의조국 2025. 11. 5. 13:28

본문

AI 투자 붐 ‘반도체 호황’ 3가지 달라졌다…‘긍정 회로’만 돌리기엔

박종오 기자2025. 11. 5. 06:06
 
 
① 짧아진 불황으로 산업 체질 개선
② ‘과점 장기화’로 기업 경쟁 자제
③ 수요 폭증…위기감에 공격 투자
인공지능(AI) 투자 붐으로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클립아트코리아

“인공지능(AI)의 압축 성장으로 메모리 칩의 ‘수요 쇼크’(충격)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은 지난 2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에스케이 인공지능(AI) 서밋’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최 회장은 “인공지능 버블(거품) 우려는 과장”이라며 “메모리 칩 수요가 당분간 계속될 것”이라고도 했다.

 

인공지능 투자 붐으로 메모리 수요가 대폭 늘며 ‘반도체 슈퍼사이클(대호황)’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촉발한 최근의 메모리 활황은 기존 반도체 사이클과는 다른 점이 많다. 전문가들은 크게 3가지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우선 짧아진 불황 주기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지난 9월 펴낸 ‘메모리 슈퍼사이클’ 보고서에서 “메모리 사이클의 주기가 짧고 완만해졌다”고 진단했다. 애초 디(D)램, 플래시 메모리 등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곤 했다. 메모리는 기업이 대량 생산하는 범용 제품이다. 가격이 뛰면 공급을 대폭 늘려 출혈 경쟁을 벌이다가, 수요가 꺼지면 가격과 이익이 곤두박질했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과거의 메모리 경기 침체기는 1~2년, 호황기는 최장 2년 이상 이어졌다. 2년마다 불황과 호황을 반복한 셈이다. 그러나 최근의 메모리 침체기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초까지 8개월간만 이어졌다. 불황의 골이 얕아지고 재빨리 반등하는 산업 전반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체질 변화는 무엇 때문일까? 신용평가기관인 한국기업평가는 그 배경으로 메모리 3사의 ‘과점 장기화’를 꼽는다. 삼성전자, 에스케이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등 시장을 오래 지배한 기업들이 더는 ‘치킨 게임’을 하지 않고 공급을 적당히 조절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기업들이 서로 경쟁을 자제하며 메모리 과잉 공급 위험이 줄어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이들 3사는 2023년 메모리 침체기에도 일제히 생산량을 줄인 전례가 있다. 지금의 메모리 공급 부족은 기업들이 의도한 측면도 있는 것이다.

 

반면 수요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견고해졌다.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들이 “인공지능 경쟁에서 밀릴 수 있다”는 공포에 사로잡혀 천문학적 빚을 내면서까지 인프라 투자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개인용 컴퓨터(PC) 보급, 2007년 스마트폰 ‘애플 아이폰’ 출시, 2017년 클라우드 산업 확산 등 과거 소비재 주도의 칩 호황에 견줘 이번엔 공룡 기업들은 물론 각국 정부까지 인공지능 관련 투자에 팔을 걷어붙였다. 판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펴낸 ‘경제상황 평가’ 보고서에서 “이번 반도체 확장기는 인공지능 혁명에 의해 촉발돼 기업의 인프라 투자 수요와 국가적 지원에 힘입어 지속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향후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아우르는 산업 융합으로 이어져, 보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인공지능 모델은 챗지피티(GPT) 등 생성형 인공지능에서 논리적 사고 능력을 갖춘 추론형, 물리적(피지컬) 인공지능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에 따라 반도체 수요도 계속 유지되리라는 것이다.

 

메모리 산업의 ‘나 홀로 호황’ 사이클엔 우려할 점도 있다. 한국 경제의 반도체 의존도가 갈수록 확대되면 경제 전반이 잘나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1~9월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의 4분의 1에 이른다. 사실상 반도체를 빼면 수출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또한 향후 메모리 사이클 변동에 따라 수출·경상수지 등 거시 지표와 증시·세수 등이 일제히 출렁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반도체 학계 전문가는 “지금은 기존 기업용 서버의 교체 수요에 더해, 메모리 생산라인이 범용에서 인공지능 메모리(HBM) 중심으로 전환된 데 따른 공급 부족이 겹치며 메모리 수요 전반이 폭증하는 ‘착시 현상’이 생긴 것”이라며 “인공지능발 메모리 사이클이 금방 꺼지진 않겠지만, 시장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과대평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짚었다.

 

권남훈 산업연구원장은 “우리 경제는 인공지능발 반도체 슈퍼사이클 덕분에 그나마 버티는 게 현실”이라면서도 “첨단 산업의 기본 소재인 반도체뿐 아니라 제조업 기반의 인공지능, 로봇 기술 등을 중점적으로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종오 기자 pjo2@hani.co.kr, 권효중 기자 harry@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