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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가 높은 물가로 신음하고 있다. 이 와중에도 미국 고용시장은 활황이다. 빅테크 기업 중심으로 대량 해고도 늘었지만 새로운 창업 및 일자리 증가로 실업률이 지난 50여 년 역사에서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고용시장이 활황이라서 오히려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는 상황이다.
핵심 이유는 정부의 대규모 재정투자 때문이다. 바이든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약 3조 달러(약 3900조 원) 정도의 확대 재정 투자를 해왔다. 주요 경제 3법이 핵심이다.
반도체법을 통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와 관련 과학기술 투자가 시작됐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서는 기후변화에 대응해 전기차 충전소 50만 개 건설, 친환경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진력하고 있다. 인프라 및 일자리법으로는 미 전역에 다리 및 항만, 공항, 5G 인터넷 인프라, 교육시설 등의 재건설을 위해 2만 개의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21세기 버전 대규모 국가 인프라 재건 투자가 진행 중인 것이다.
이런 대규모 정부투자는 일자리 유지와 창출에 상당히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하지만 문제는 높은 물가다. 인플레이션율은 여전히 6% 중반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다시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인상할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올해 안에 이자율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은 아예 사라졌다.
연준의 추가 기준금리 인상은 한국 경제에 악재다. 2월 중순부터 다시 상승하고 있는 환율이 더욱 급격히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외국인 투자 이탈이 가속화할 수 있다.
미국의 금융 및 자본시장은 그렇지 않아도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 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여 왔다. 현재와 같은 세계적 경기침체와 금융 불안이 지속되면 더 많은 자금이 미국으로 몰려들 수밖에 없다. 따라서 한미 간 금리 격차가 지금보다 더 커지면 외국계 자금 흐름에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또한 환율상승은 무역적자도 악화시킨다.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관세청 자료에 의하면 작년에는 4월 이후 시작된 무역적자로 427억 달러의 역대 최대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 2월 20일까지 단 50여 일 만에 적자액이 186억 달러에 이른다. 환율이 추가 상승하면 이 무역적자 폭도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무역적자 해소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핵심은 중국 변수다. 작년 5월까지만 해도 중국은 한국이 28년 동안 최대 무역흑자를 남기던 나라다. 무역흑자액 비중이 무려 80%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 그 상황이 급변했다. 지난 2월 15일까지 대중 무역적자액은 40억 달러에 달한다. 졸지에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적자국이 된 것이다. 심상치 않은 변화다.
실제 대중 수출 감소가 무역적자의 핵심 원인으로 지적된다.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반도체, 디스플레이, 철강 등 우리의 대중 수출 주요 품목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중국이 경제활동을 재개하면서 하반기에는 대중 수출도 회복되리라는 희망 섞인 전망을 한다. 하지만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일본보다 더 낮은 성장 전망
▲ 지난 2월 23일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대통령실
반도체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국 수출에서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평균 20%를 넘고 중국이 대표적인 수출시장이었다. 하지만 중국은 이미 수년 전부터 대만으로 반도체 수입선을 다변화해왔다.
트럼프 정부에서 시작된 대중 수출규제를 우회하고 양안 간 경제협력을 강화하려는 중장기 전략과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수년간 대만의 대중 반도체 수출은 획기적으로 증가했고 경제도 나아졌다. 작년 대만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한국과 일본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 핵심 이유다.
반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대중국 반도체 시설투자 등에서 큰 제약을 받게 된다. 미국의 반도체법에 따라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10년간 중국에 대한 시설투자를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올해 10월엔 미국 정부가 이 두 기업에 대해 대중 반도체 기술 및 장비 수출 금지를 1년 유예했던 기간이 끝난다. 이후엔 미국의 수출규제가 더욱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중장기적으로 반도체의 획기적인 대중 수출 회복은 어렵다.
상황이 이렇게 어려운데도 윤석열 정부는 '상고하저'를 말한다. 상반기에는 좀 힘들어도 하반기에는 나아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의 경제위기를 단순히 경제순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시적인 경기 하방으로 진단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거시경제 지표들은 이미 장기침체를 예고한다. 대표적인 예가 가계 실질 가처분소득의 감소다. 작년 3분기부터 전기 대비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4분기에는 GDP도 역성장했다. 물론 올 상반기 전망도 어둡다.
외국 전문가들이 보는 한국 경제도 비관적이다. 가장 극적인 예는 지난 1월 말 국제통화기금(IMF)의 올해 세계 경제 전망이다. 대부분 나라의 전망치를 작년 10월에 비해 상향 조정하면서도 한국의 전망치는 오히려 낮췄다. 그것도 30년 장기불황에 시달려오고 있는 일본의 경제성장률보다 낮게 말이다.
1970년대 이후 일본의 경제성장률이 한국을 앞섰던 경우는 딱 세 차례밖에 없었다. 1972년 제1차 석유파동 때와 12.12 쿠데타 및 광주항쟁으로 혼란스러웠던 1980년, 그리고 1998년 외환위기 때다. 지난 50여 년의 장기적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경제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위중하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일수록 유능한 정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대통령과 정부는 국민들의 시선과 주의를 경제나 민생문제가 아닌 다른 데로 돌리기에 바쁘다. 집권 이후 포털 뉴스는 매일 검찰 발 뉴스가 헤드라인을 장식한다.
현재의 위기를 돌파하려는 해결책이 아니라 온통 과거와 싸우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공감과 설득의 리더십보다는 포고령 같은 즉흥적인 말로 임기응변식 대책들을 쏟아낸다. 그래서 더욱 불안하다.
왜 이러는 걸까? 아마도 대통령과 현 정부는 경제위기가 와도 별로 타격을 입지 않거나 오히려 더 이득을 볼 수 있는 기득권 카르텔의 시각으로 현 경제 상황을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일할 수 있겠는가. 이런 경제위기에 무능한 정부는 정말 호환·마마보다 무섭다. 국민이라도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 강명구 / 뉴욕시립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 강명구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강명구 교수는 뉴욕시립대에서 국제정치경제 및 미국과 아시아 국제관계를 가르치고 있다. 일본 재무성 및 프린스턴의 고등과학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에서 방문학자를 역임했다. 주요 연구 및 관심 분야는 경제 안보와 금융위기에 대한 정부의 정책 대응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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