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 폭등 정부대책, 선심성은 곤란하다
[인권의 바람]평등과 인권 중심의 접근 필요
2023년 1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친 경제고통지수(Economic Misery Index)가 1999년 6월 실업률 집계 기준 변경 이래 1월 기준 가장 높다고 한다.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 분석자료) 지난달 실업률 3.6%와 물가 상승률 5.2%를 합쳐 경제고통지수는 8.8, 기존 최고기록인 2010년 1월(8.5)을 넘어선 것이다. 2010년에는 물가 상승률이 3.5%였다고 하니 현재 경제고통을 일으키는 핵심은 물가임을 알 수 있다.
물가 상승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은 무엇일까. 통계청이 2월 2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3년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110.10로 전월 대비 0.8% 상승했다. 전년 동월과 비교하면 5.2% 상승했고 전월보다 0.2%p 올랐다. 생활물가지수에 영향을 미치는 집세나 서비스비용도 전년 동월보다 6.1% 올랐다. 통계청의 분석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물가의 상승에는 공공요금의 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 농축수산물, 공업제품 등 상품의 상승률은 전월 대비 0.8%이지만 전기‧가스‧수도는 전년동월대비 28.3%(전월과 비교해서는 4.6%)나 올랐다. 2010년 이후 최고치다.
필자의 경우에도 엄청난 공공요금의 인상을 경험했다. 작년 12월 7만 원이던 요금이 올해에는 12만 원에 육박한다. 난방비 폭등의 심각성은 뉴스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한국의 공공요금은 작년부터 연이어 인상했다. 12월과 1월이 춥다고 날씨에 핑계를 대기에는 격차가 심하다. 전기료는 전월 대비 9.2%, 상수도료는 3.4% 올랐다. 전년 동월 대비 도시가스 요금은 36.2%, 지역 난방비는 34.0%, 전기료는 29.5%, 상수도료는 4.0%나 올랐다. 물론 가스요금의 인상에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으로 러시아산 PNG(파이프라인천연가스)의 공급량이 줄어든 것이 영향을 끼쳤음은 사실이다. 전쟁으로 인한 가스 공급의 어려움과 가격 급등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급작스런 난방비 대폭 인상에는 윤석열 정부의 실책이 한몫했다. 국제 천연가스 가격이 안정되어 산업용은 국제 시장가격과 연동시켜 인하하는 국면에서, 정부는 가정용만 인상했다. 그러니 서민들의 체감위기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동안의 미수금을 만회하겠다는 듯이, 한겨울에 가정용 가스비를 대폭 인상하도록 한 것은 문제다. 적어도 겨울이 지나고 인상하도록 했다면 이렇게까지 서민들의 삶이 힘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난방비만이 아니라 물가인상이 전 영역에서 나타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들을 비롯한 서민들에게 물가상승은 생계의 위협을 불러오는 생존권의 문제다. 따라서 국가의 해결 방안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접근은 시혜적이어서는 안 되며, 권리중심적이어야 한다.
선심이 아닌 인권중심적인 물가대책 필요하다
물가폭등으로 사람들의 삶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장할 의무가 국가에 있다. 이는 인권의 문제다. 모든 사람에게는 에너지에 대한 권리와 사회보장에 대한 권리가 있다. 공공요금이라고 말하는 전기, 도시가스, 물은 공공성이 보장되어야 하는 에너지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적이다. 세계인권선언이나 국제인권규약인 경제적 사회적 및 문화적 권리에 관한 규약(이하 유엔사회권규약)과 유엔사회권 일반논평의 해석을 통해 이를 구체화할 수 있다.
2002년 유엔사회권위원회는 물에 대한 권리 일반논평 15호를 발표했다. 90년대 후반 일부 국가에서 물 민영화를 시행하면서 물 값이 비싸지자, 비위생적인 물을 사용하다 건강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유엔은 물에 대한 권리를 구체화한 논평을 냈다. 이 논평은 물이 아닌 다른 에너지에도 적용가능하다. 에너지는 인간이 존엄성을 가진 삶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불가결하기에 중요한 권리이며, 다른 권리들을 실현하는데 필수적인 선결 조건이다. 공공재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의무가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가스 및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의 가격을 어떻게 안정화할 것인지는 에너지에 대한 권리의 원칙들을 적용하면서 찾아볼 수 있다. 흔히 에너지로 인해 삶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하려면 세 가지 측면(에너지가격, 가계소득, 에너지효율)에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고 한다. 이를 물가폭등 대책에 적용하면 가계비용을 늘리는 공공요금에 대한 대책, 물가를 따라잡을 지불능력을 키울 가계소득 대책, 에너지효율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주거대책 및 에너지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먼저 개인용 전기와 가스비, 교통비 등 공공요금 인상은 자제되어야 한다. 사회적 권리의 보장을 위해 ‘가용성, 접근성, 양질, 차별금지’의 요소가 지켜져야 한다. 가용성은 해당 국가에서 가용 가능한 자원을 사용해서 개인이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제 규모 10위의 국가인 만큼 공공요금 인상 방식이 아닌 국가재정으로 충당할 수 있는 방안 모색이 가능한 나라다. 즉, 국가재정을 어떻게 마련해서 어디에 쓸 것인가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세금 정책 등 소득분배정책도 바뀌어야 한다. 소득분배정책 없이 공공요금에 대한 서민들의 경제적 접근성을 강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이명박 정부 때와 마찬가지로 부자감세를 밀어붙였다. (국회 예산정책처 자료에 의하면, 2009년부터 2013년까지 5년간 MB 감세는 전체 62조 4000억 원) 윤석열 정부의 법인세 인하 규모는 5년간 60조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연증가분까지 하면 250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사회보장을 위한 재정이 더 필요한 시기에 부자감세를 한 것은 불평등을 심화한다. 이제라도 정부는 재벌이나 대기업의 이익이 아니라 대다수 서민을 위한 부자증세와 같은 국가재정계획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에너지 사용자가 기업으로부터 인권침해 받지 않도록 보호할 의무 역시 국가가 갖는다. 빈곤층은 전기와 가스 공급이 중단 돼 생명과 건강을 잃는 위험에 처했다. 자영업자의 비중이 큰 한국 사회에서 공공요금 인상으로 인한 중소영세자영업자들의 위기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소상공인연합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난방비가 30% 이상 상승했고, 전기료도 15% 인상돼 부담이 켜졌다고 한다.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긴급난방비 지원 등의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물론 개인용이든 산업용이든 한국의 에너지값이 다른 나라에 비해 싸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보장제도가 다른 경제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한국에서 공공요금 인상은 개인의 삶을 낭떠러지로 몰 수 있다. 시민의 보편적인 에너지 접근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는 에너지의 안정적인 수급대책을 마련하고 공급과 관리체계를 세심하게 세워야 한다.
둘째, 가계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작년 말부터 유럽 및 남미 등 전 세계에서 물가 폭등에 따라 삶이 위협받는 이들이 거리로 나와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임금 인상은 필수적이다. 특히 최저임금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최고임금으로 전락한 현실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을 비롯한 임금 인상에 국가가 적극 나서야 한다. 문재인 정부 시기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으로 인해 실질적으로 임금이 삭감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임금 보전을 위한 추가적인 계획과 최저임금 산입범위 조정도 동반되어야 한다.
임금소득이 충분치 않은 시민들을 위한 긴급지원정책으로 가계소득을 보충해주는 대책도 필요하다. 물가 인상으로 인해 생계비가 많이 들어가는 현실에서 고정급으로 책정된 수급비로만 살아가기 어려운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전반의 개선이 필요한 때이다.
셋째, 에너지 비용부담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삶을 위한 주거대책이 필요하다. 그리고 에너지 불평등을 시정하면서 에너지 과소비를 막는 방향으로 에너지기본권을 인정하는 법과 제도가 필요하다. 앞의 두 가지가 당장에 필요한 시급한 대책이라면 이는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대책일 수 있다. 지나치게 낡았거나 주거가 부적당한 공간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의 에너지 비용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크다.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낡은 다세대주택의 가스요금이 아파트보다 더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반적인 주거정책이나 부동산정책이 바뀌어야 한다. 낡은 건물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는 방식은 빈곤층은 포괄하지 않는 대책이다. 개발이 아닌 재생으로 낡은 건물의 난방효율을 늘리기 위한 지자체의 구체적인 지원계획이 수립되어야 한다. 에너지는 언제든 고갈될 수 있기에 기후 위기에 대응하면서도 모두가 평등하게 에너지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생색내기식 대책이 아닌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때
물가폭등에 대한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긴급복지지원 연료비를 4만 원 인상하는 안(월 15만 원)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적이다. 더구나 도시가스보다는 등유와 LPG를 주로 사용하는 농어촌지역 대책은 빠져 있다. 자영업자 대책도 아직 없다. 홈리스 등 공식경제에 잡히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도 없다. 물가 인상으로 인한 어려움은 홈리스도 동일하게 겪을 수밖에 없다.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위험과 긴급사태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받을 수 있게끔 보장 범위의 점진적 확대가 필요하다.
기후위기 등 사회불안 요인이 많은 현대사회에서 위기에도 삶이 흔들리지 않도록 하려면 사회보장제도가 더욱 튼튼해져야 한다. 특히 불평등이 심화하는 현실에서 사회보장제도의 재분배 역할은 진가를 발휘한다.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하면서 부의 재분배를 위한 조세정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위기 때마다 도돌이표식 예산 낭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다. 위기를 기회로 만들려면 국가의 적극적이고 중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물가폭등에 제대로 접근하도록 힘을 모아 대응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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