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는 1938년부터 하버드대 2학년생 268명과 보스턴 빈민가에 살던 10대 후반 456명의 인생을 정기적으로 추적해 행복한 사람들의 특징을 연구했다.
이 연구는 84년간 진행되며 3대에 걸쳐 초기 연구 참여자들의 후손 1300명 이상으로 확대됐다.
2005년부터 이 연구를 이끌어온 로버트 월딩어(72) 하버드 의대 정신의학과 교수는 그간의 연구 내용을 집대성해 지난달 '굿 라이프'(The Good Life)란 제목의 책을 출간했다
윌딩어 교수가 사람들의 실제 삶을 오랫동안 추적하며 내린 결론은 행복한 인생을 만드는 결정적 요소는 건강도, 돈도, 지위도, 학벌도 아닌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더 건강하고 충만한 삶을 살았다. 질병에 걸릴 확률도 낮았다.
좋은 인간관계란 친구가 몇 명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그래서 의지할 만한 사람이 있느냐의 문제다.
문제는 나를 알아주는 한 사람이 의외로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수십년을 함께 살아온 아내나 남편도 내 마음을 몰라주고 자식조차 내 마음을 몰라주니 나이가 들수록 서운한 일이 많아지고 더 외롭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란 힘들고 지쳐 나도 모르게 짜증을 내도 "도대체 왜 그래?"라고 맞받아치지 않고 "요즘 힘들지"라며 나의 날카로움 뒤에 숨어있는 나의 힘듦을 알아주는 사람이다.
성경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태복음 5장 5절)라는 구절이 있는데 온유한 사람이야 말로 다른 사람의 진짜 속마음을 알아 부드럽게 위로해주는 사람이다.
'온유한'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헬라어 성경에 '프라우스'라고 표기됐다. 프라우스는 야생마가 길들어진 상태라는 뜻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내 감정, 내 기분, 내 의지대로 멋대로 움직이는 야생마 같은 기질이 잘 길들어져 부드럽게 된 상태라는 뜻이다.
흥미로운 점은 '프라우스'의 히브리어 원어는 '아나윔'이라고 하는데 여기에는 온유하다는 뜻과 함께 가난하다는 뜻도 있다는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돈이 없다는 의미지만 포괄적으로 무엇이든 부족한 상태를 말한다. 다시 말해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는 온유함을 가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실제로 배고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더 잘 도와주고 아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이 아픈 사람을 더 잘 위로해 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나의 야생마 같은 성정을 길들여 남의 마음을 알아주는 온유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은 나의 결핍, 나의 약함을 자각하는 것이다.
자신에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부족한 다른 사람을 볼 때 "저 사람 왜 저래?'라는 반응밖에 안 나온다. 자신에게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아야 저 사람도 힘들겠지, 저 사람에게도 사정이 있겠지 하며 남의 마음을 알아줄 수 있다.
이렇게 남의 마음을 알아주다 보면 내 주위에 자연스럽게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다.
"자각이 자아를 뚫고 나오는 순간 요가가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사람들은 자기 몸이 어디가 아픈지는 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어떤 자세나 습관에서 유래됐는지는 정확히 모른다. 요가를 하다 보면 특정 포즈를 취할 때 자기 몸의 어디가 균형이 깨져 있고 잘못된 자세로 굳어졌는지 자각하게 된다. 그 자각이 오랜 습관과 무의식적인 생각으로 굳어져온 자아를 이길 때, 그 때부터 진정한 요가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자각이 자아를 뚫고 나올 때 남을 알아주는 진정한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내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이상하고 문제가 많은 사람인지 아는 자각이 나는 옳고, 내가 너보다는 낫고, 나는 그런대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고정관념으로 단단해진 내 자아를 이길 때 진정한 유대감으로 맺어진 인간관계가 시작된다.
권성희 기자 shkwo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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