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12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중요하다'고 진지하게 얘기하지만 관련 이슈들이 중요한 시기는 지났습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 위원들은 (기대인플레이션을 꺾기 위해) 한동안 공포감을 조성하겠죠. '분위기 반전을 확인한 후 투자하겠다'는 사람이 많은데 정말 코미디입니다. 위험을 어느 정도 감수한 사람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시장에서는 소수만 수익을 내니까요. 유명 트레이더 에드 세이코타는 이를 두고 '돈을 잃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절대로 돈을 벌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11월 14일 서울 여의도 이베스트투자증권 사무실에서 ‘주간동아’와 인터뷰했다. [홍중식 기자]
윤지호 이베스트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이 11월 14일 '주간동아'와 가진 인터뷰에서 현 투자 상황에 대해 내놓은 의견이다. 미국 노동부가 11월 10일(현지 시간)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지난해 동월 대비 7.7% 오르며 시장 전망치(7.9%)를 하회했다. 인플레이션 둔화 움직임이 관측되면서 증시가 반등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2023년 경기침체를 겪으면서 증시가 최저점을 찍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센터장은 이 같은 시각에 대해 "사람들이 '경기침체가 확인되고 저점을 찍을 때, 혹은 금리인상을 멈출 때 안전하게 매매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순간이 있을까 싶다"고 평가했다. "주식시장에서는 본능을 거스르며 남들보다 반보 앞서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얻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윤 센터장은 증시가 사실상 바닥을 찍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확인한 코스피 2130 정도가 거의 바닥 지점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10월부터 이어진 증시 반등에 대해서는 "그간 최악의 상황을 주가에 반영해 가치 대비 가격이 매력적인 구간에 들어와 있었다. 그 와중에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상황이 나아져 환율과 금리, 주식 등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분석했다. 다음은 윤 센터장과 나눈 일문일답.
9월 말 "한국 증시가 바닥을 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시간이 흐르고 보니 당시가 저점이었는데 판단 배경이 궁금하다.
"주식투자에서 기회는 위험이 적을 때 생긴다. '언제가 가장 위험한가'라고 반문할 수 있는데, 경기 전망이 굉장히 낙관적이고 사람들이 자신감이 넘칠 때다. 오히려 전망이 부정적이고 사람들이 낙담에 빠졌을 때, 무엇보다 기업가치 대비 가격이 너무 쌀 때 (주가가) 하락할 위험이 적다. 같은 맥락에서 당시 '주식을 사야 하지 않겠나'라고 이야기했다."
당시는 영국 연기금 파산 우려, 한국 레고랜드 사태 등으로 위기감이 커 매수가 쉽지 않았다.
"시장에는 많은 정보가 있다. 여기서 소음을 걸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처럼 말이다. 모든 소리를 다 들을 필요가 없다. 가치 대비 가격이 매력적인 구간에 들어섰을 때는 매크로 이벤트를 너무 주시하지 않아도 된다. 소음일 뿐이다. 반대로 장이 좋아졌을 때는 매크로 이벤트에 집중해야 한다. 상황이 바뀔 수 있는 부정적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달간 주가가 너무 빠르게 상승해 겁이 나기 시작할 것이다. 고점이 어디냐에 너무 집중하지 말자. 저점을 확인한 만큼 가치 대비 가격이 매력적인 기업이 어디에 있는지 들춰보는 것이 현명한 접근이다."
"몇 달간 CPI가 시장 예측치보다 높게 나왔다. 이 때문에 시장에 트라우마가 생겨 CPI 발표를 앞두고는 항상 공포 분위기가 조성됐다. CPI 7.7%, 코어CPI 6.3%가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다만 항목별로 나눠보면 긍정적인 변화가 관측된다. 에너지, 주거비 관련 항목은 여전히 견고하지만 헬스케어 부문에서는 긍정적 기류가 보인다. 얼마 전만 해도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끝을 모르겠다'며 겁을 줬다. 막상 인플레이션 지표를 보니 '우려가 지나쳤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점차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저효과가 나타나는 시점이기도 하다. 중요한 포인트는 동시에 외환시장에서 급격하게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이례적인 수준으로 급락했다.
"일주일 사이 환율이 10% 가까이 빠지리라고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원래 원/달러 환율은 달러 인덱스와 따로 움직였다. 둘의 상관계수가 0.5가 안 됐는데 올해 0.97까지 올라갔다. 최근 달러 인덱스가 114까지 상승했다 하락하면서 원/달러 환율에 반영됐다. 물가가 진정되고 있지만 국내에 산적한 이슈가 많은 만큼 원/달러 환율이 다시 1400원대로 가는 것 아니냐는 물음도 나온다.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본다. 환율은 전 세계 경제에서 특정 국가의 국내총생산(GDP) 비중과 연관된다. 최근 미국 사정이 상대적으로 나았던 것은 맞지만 달러가 너무 독주했다. 유럽과 중국, 일본 등 여러 나라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났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시장이 급속도로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
"‘주가수익비율(PER) 조정은 끝났지만 주당순이익(EPS) 조정이 남았다' '역실적장세가 시작될 것이다' '곧 있으면 한계기업들이 망하기 시작할 것이다' 같은 말이 나온다. 모두 경기침체가 올 것이라는 얘기에서 파생됐다. 다만 딥 리세션(deep recession: 깊은 경기침체)이 올지, 마일드 리세션(mild recession: 완만한 경기침체)이 올지가 정리돼야 한다. 향후 기업 실적도 악화되고 경기침체도 올 것이다. 중요한 것은 주가가 어느 시점에 경기침체 상태를 반영하는지는 시간이 지나서야 알 수 있다는 사실이다. 주가가 경기를 선행하는 것은 맞지만 언제쯤 바닥을 치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그 시기가 좀 더 빨리 올 때도 있고, (경기침체 시기와) 비슷하게 올 때도 있다. 경기가 언제쯤 바닥을 칠 것 같나."
2023년 상반기를 전망하는 시각이 많다.
"시장이 경기를 6개월 선행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어떤 경우 11개월 앞서 주가가 바닥을 찍을 때도 있다. 경기 선행지수 중 '확산지수'라는 것이 있다. 37개국이 전월 대비 경기 선행지수가 좋아졌는지 여부를 나타내는 지표다. 올해 이 지표가 -100을 기록했다. 조사 대상국 모두 경기가 안 좋아진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다. 경기가 안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어쩌면 우리는 이를 (증시에) 반영해놓았을 개연성이 꽤 높다. 올해 코스피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8배에 도달했는데 이는 금융위기 때 수준이다."
9월 30일 코스피가 연중 최저점(2134)을 기록했다. 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하나은행 명동점 딜링룸. [뉴스1]
"당장 코스피가 2600에 도달하기는 상당히 버거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PBR 1배를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인데, 기업 이익에는 한계가 있다. 상단은 좀 막힐 것 같다. 다만 자본총계가 매년 증가하는 만큼 내년이 되면 상단이 올라갈 것이다. 중요한 점은 하단 역시 올라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기침체, 역실적장세 등 온갖 얘기를 하면서 '코스피 2000이 깨질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지만 과연 그럴까. 매력적인 지점, 즉 PBR 0.8배에 해당하는 지점이 내년 상반기면 2200대로 올라올 테고, 하반기가 되면 더 올라갈 전망이다(표 참조). 길게 보면 향후 코스피 2200~2300은 금융위기 수준에서야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매크로 소음'에서 벗어나 결정을 하자. 인플레이션이 언제 잡힐지에 대한 고민보다 기업가치와 가격을 봐야 한다. 지금부터는 종목 내에서 무슨 기업을 선택하느냐의 싸움이다."
2023년 "반도체산업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반도체 재고 조절 사이클에 들어가다 보니 재고가 어마어마하게 쌓였다. 반도체산업 실적이 굉장히 안 좋아지는데 삼성전자 주가가 조용히 오르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과거 '9만 전자'일 때 반도체산업의 성장 스토리를 얘기하던 사람들이 '5만 전자'가 도래하니 미래가 없다고 한다. 그러는 사이 삼성전자 주가는 6만 원대로 상승했다. 내년 경기가 좋아진다면 세상은 어떻게 바뀔까. 사람들이 음식을 더 많이 먹을까. 차량이나 각종 설비가 바뀌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을까. 삼성전자 주가가 5만 원대로 하락했을 때 소위 장기투자자는 소음을 멀리하며 매수했다. 외국인들이 특히 그랬다. 한국 투자자들은 반대로 매도했는데 많이 답답했다."
"9만 전자가 한창 이슈일 때 원/달러 환율이 1100원이었다. 수출이 잘되다 보니 '원/달러 환율이 1000원 간다'는 말도 나왔다. 당시 삼성전자 주가를 달러로 환산하면 83달러 정도였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44원까지 치솟으면서 삼성전자 주가가 달러 기준 37달러까지 떨어졌다(그래프 참조). 외국인 입장에서는 주가가 반토막보다 더 떨어진 상태였다. 반도체 경기가 내년 1분기까지 안 좋겠지만 그럼에도 외국인들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수한 이유다. PBR 기준으로도 저렴했지만, 달러 기준으로는 너무나 가격이 낮았다. 향후 원화가 다시금 강해질 때면 사람들이 다시 '10만 전자'를 외치겠지만 그때가 오히려 조심해야 할 때다."
2023년 주목할 만한 기업이 있다면?
"반도체산업은 좋다. 다만 2023년 상반기까지는 전망이 좋지 않다. 2차전지산업의 경우 올해 지수가 너무 상승했다. 대형 섹터 중 남은 것은 자동차산업 같은데 아직 문제 요소가 있다. 당장 실적이 잘 나오는 기업보다, 실적 악화가 둔화되는 기업을 찾아보는 것이 방법이다. 영화 '아바타: 물의 길'이 12월 개봉한다는데 그때면 사람들이 극장에 많이 가지 않을까. TV를 틀면 여행 얘기밖에 안 하는데 관련 산업은 어떨까. IT(정보기술) 기업의 경우 모두가 상황이 안 좋다고 하는데 LG전자는 전장사업에서 실적 개선이 관측되더라. 자기 길을 가기 시작하는 기업들을 잘 찾아보라."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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