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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이고 국민이고 다 죽게 생겼는데... "좀 미안"

정치·사회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10. 29.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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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고 국민이고 다 죽게 생겼는데... "좀 미안"

[안호덕의 암중모색] 심각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걸 드러낸 위기관리 시스템

 

 

"아예 올스톱이예요. 가뜩이나 가격이 올라 주저주저하고 있는데, 소문이 하도 흉흉하니까 주문한 것도 취소하고 미루고 있어요. 곧 연말로 접어드는데 직원 월급이나 줄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설마 했다. 지난달 28일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레고랜드 테마파크 기반조성사업을 맡았던 강원중도개발공사(GJC)에 대한 기업 회생을 추진하겠다고 밝혔을 때 나와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심상찮은 조짐은 지난주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컴퓨터 사무기기 납품을 하는 지방 거래처 매출이 뚝뚝 떨어졌다. 큰 거래처에 전화를 돌렸다. 힘들다는 하소연이 돌아왔다. 코로나 팬데믹이 잦아들면 나아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안 좋아지고 있다고 우는 소리다. 매입처에서도 전화가 온다. "어때요? 전화가 통 없으시네." 나도 되묻는다. "다른 곳은 어때요?" "다 똑같아요. 밥값 하기도 힘드네요."

세계적인 고금리, 정부의 긴축재정 정책에 발가벗겨진 국민들의 살림살이. 김진태 강원도지사의 섣부른 돌팔매에 죽을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현실이 된 것 같다.

살얼음판 같은 실물 경기였다. 고금리 고환율 고물가에 신음하는 시장에 바위가 떨어졌다. 바위를 던진 이는 김진태 지사다. GJC의 기업 회생 신청 소식이 알려지면서 일파만파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돈줄을 막힌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사면초가의 궁지로 몰리는 형국이다. 비교적 큰 건설사라고 다를 바 없다. 어떤 기업이 어렵다, 곧 부도처리 될 것이라는 소문이 유령처럼 떠돈다. 정치가 경제를 돕지는 못할망정, 정치인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 하나가 나라 경제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형국이다.

당장 레고랜드 공사를 맡은 동부건설은 지난 11일 대금지급일을 넘기고도 공사비를 못 받았다는 뉴스가 나왔다. 하청업체의 공사 대금도 미뤄질 것이고 인부들의 임금 지급도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25일 강원도청 앞에서는 하청업체들이 모여 공사 대금 지급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대한민국 신용도까지 흔들어 놓았다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을 통해 귀국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러나 김진태 지사는 사태 수습보다 면피가 우선인 것으로 보인다. '파산보다는 회생이 낫다. 회생 절차 내에서 다 받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반감을 키웠다. 고의 부도를 내놓고 최선을 다하겠다는 변명, 김 지사 발언은 그 뻔뻔함과 다를 바 없다.

김진태 지사의 GJC 회생 신청.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는가 하는 것도 따져 볼 문제다. GJC가 흑자 기업인가 아닌가 하는 것은 논란에 있다. 그리고 28일 자로 만기가 도래한 2050억 발행어음에 대해 주관 증권사인 BNK와 연장 합의를 했는지, 회생 신청을 협의했는지도 확인이 필요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강원도가 발행어음 연장을 추진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성사될 수 있는 일을, 회생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을 먼저 세워놓고 무리하게 밀어붙였다는 건 이견이 없어 보인다. 지방자치단체의 회생 절차 선언이 어떤 평지풍파를 일으킬지 제대로 살핀 구석도 보이지 않는다.

"레고랜드 중심 동북아 관광 허브 춘천! 세계적 수준의 체류형 문화·관광클러스터 조성하겠습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춘천에 출마한 당시 김진태 새누리당 후보는 레고랜드를 동북아 관광 허브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그보다 앞서 2014년에는 문화재위원회가 레고랜드를 승인하지 않았으면 소양강에 빠져 죽겠다는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기기도 했다.

2018년 레고랜드 사업 지연을 이유로 당시 최문순 강원도 지사의 사퇴를 요구한 일도 당시 김진태 의원이 앞장섰다. 그리고 최근 갑작스러운 김진태 지사의 GJC 회생신청. 과거 레고랜드에 보인 집착을 생각하면 최문순 전 지사 흔적 지우기를 위한 정치적 결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김진태 지사의 GJC의 회생 신청은 직접 관련된 몇몇 기업의 피해로 국한되지 않는다. 안전하다고 평가받았던 지방채, 국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당장 채권을 발행해 시행되어야 할 사업의 차질은 물론 기존 채권도 연장 불가 판정을 받거나 높아진 금리를 감당해야 한다.

건설사나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기업들, 자영업자들은 더 막막하다. 지자체에도 떼일 수 있다는 불안 심리가 커진 상황에서 사기업과 자영업자의 돈 구하기는 더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경제는 심리다. 코로나 정국에서 한국 경제가 유지될 수 있었던 건 국가신인도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김진태 지사는 강원도는 물론 대한민국의 신용도까지 흔들어 놓았다.

윤석열 정부 대응은 답답하다
 

 윤석열 대통령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대화하고 있다. ⓒ 대통령실


사태가 긴박하게 흘러가자 강원도는 내년 1월 29일까지 보증채무를 이행하겠다 확언했고, 그래도 혼란이 확산되자 올해 12월 15일까지 상환을 앞당기겠다는 수습책을 내놓았다. 지난 23일에는 중앙 정부도 채권 시장에 50조 원 규모의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채무보증 연장이나 2050억 정도로 막을 수 있는 일을 국가 예산 50조를 투입한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국내 채권에 대한 신뢰를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비관론도 팽배하다.

27일 해외 출장길에서 돌아온 김진태 지사는 공항에서 "좀 미안하게 됐다"라고 사과했다. 같은 날 그보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비상경제민생회의에는 기대와 달리 채권 시장 혼란에 아무런 입장이나 대책이 없었다.

김진태 지사가 시장에 던진 충격파는 '좀 미안'으로 퉁 칠 문제가 아니다. 중앙정부와 금융당국도 책임없다 말할 수 없다. 김 지사의 기업회생 방침을 정부가 사전에 몰랐다면 무능의 극치다. 알고도 묵인했다면 위기관리 시스템이 심각할 정도로 부실하다는 걸 드러낸 셈이다.

나라를 뒤흔드는 혼란을 야기한 이 사태에 대해 금융당국이나 감사원이라도 나서 잘잘못을 가려봐야 되지 않나? 레고사태가 제2의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가 될 수 있다는 예측도 있다.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조차 IMF 때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위기대응 능력이 빛을 발해야 될 시점에 윤석열 정부의 대응은 밋밋하다 못해 답답하다.

강화유리에 충격이 가해지면 와장창 내려앉는다. 김진태 지사가 시장에 던진 돌팔매에 여기저기 쩍쩍 갈라지는 소리가 들린다. 국가경제, 국민경제 위기다. 수출 활성화, 규제 완화, 세제 혜택 확대. 27일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논의된 내용들이다. 필요하지 않다고 볼 수 없지만 지금의 불은 내수와 국민경제에 붙었다. 소화기는 시장과 국민 살림살이를 향해야 한다. 또다시 기업이 줄도산하고 노동자들이 집단 해고되는 사태는 막아야 하지 않나?

"저게 국가 전복 세력이지 뭐여. 기업이고 국민이고 다 죽게 생겼구만." '좀 미안'을 언급하는 김진태 지사가 나오는 텔레비전 화면을 보면서 50대가 내뱉듯 쏟아낸 말이다. 나도 같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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