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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임을 깨는 사고

◆의사결정학

by 21세기 나의조국 2022. 9. 2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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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론연구소  김동렬  2022. 09. 23
 

 

간단하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둘은 대칭이다. 대칭만큼 쉬운게 없다. 축구를 해도 한 사람이 왼쪽으로 드리블하면 패스를 받으려고 반대쪽으로 뛰어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아는 것이다. 몰이사냥을 하는 늑대들도 이 정도는 알고 있다.

 

    대칭은 변화다. 모든 변화하는 것은 대칭을 나타낸다. 박힌 돌은 대칭이 아닌데 구르는 돌은 대칭이다. 날아가는 새는 대칭이다. 자라는 나무는 대칭이다. 자라고 있는 소금 결정도 대칭을 띤다. 종유석도 대칭으로 자란다. 산 것은 대칭이고 죽은 것은 모두 비대칭이다.

 

    움직이는 것은 대칭이고 멈춘 것은 비대칭이다. 움직이면 방해자를 만난다. 방해자와 충돌하면 반작용을 한다. 반작용의 중심점인 코어를 중심으로 대칭이 만들어진다. 비대칭이면 형태가 깨지기 때문이다. 몽돌은 설악에서 양양 해변까지 굴러오면서 모서리가 부서졌다.

 

    비대칭이 깨지고 대칭이 남았다. 대칭이야말로 모든 의사결정의 근본이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변화다. 변화는 대칭이다. 대칭을 추적하면 된다. 우주는 전방위로 대칭이다. 이것을 보고 저것을 알 수 있다. 앞을 보고 뒤를 안다. 오른쪽을 보고 왼쪽을 알 수 있다.

 

    뭐든 대칭이라는 사실만 알아도 인생의 무수한 경쟁들에서 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대칭을 모르더라. 앞을 보여줘도 뒤를 모르더라. 초보적인 대칭도 모른다. 힌트가 다 나왔는데도 정답을 모르더라. 넌센스 퀴즈라고 말하면 그게 힌트가 되는 거다.

 

    넌센스 퀴즈는 답인데 답이 아니다. 그렇다면 답이 아닌게 답이네? 쉽잖아. 인공지능만 해도 그렇다. 공간 아니면 시간인데 공간적 확률은 있고 시간적 맥락은 없다. 인공지능은 매 순간 리셋된다. 인공지능의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 매끄러운지를 감시하는 기능이 없다.

 

    휴머노이드 로봇의 실패도 그렇다. 똑 봐도 골반이 없잖아. 그게 없다는게 보이지 않나? 사실 대칭은 복잡하다. 주변과 중심의 대칭은 잘 모른다. 수도권과 지방의 대칭은 알면서 왜 그걸 모르지? 골반이 인체의 중심이다. 골반이 수도권이면 팔다리는 지방도시가 된다.

 

    한반도를 봐도 서울 중심으로 철도가 X자다. 골반 중심으로 X자가 되어야 휴머노이드 로봇이 똑바로 선다. 닫힌계의 안과 밖의 대칭, 전체와 부분의 대칭을 사람들이 모른다. 확산과 수렴의 대칭은 모른다. 낱개의 대칭은 안다. 사과 한 알에 손가락 하나를 대칭시킨다.

 

    셈을 세는 것이다. 시간의 전후대칭도 안다. 공간의 좌우대칭도 안다. 그런데 공간과 시간의 대칭은 모른다. 지금까지 나온 모든 인공지능은 공간분석에 치중해 있다. 시간을 따라가는 맥락은 분석이 없다. 여당과 야당의 대칭은 아는데 국민과 정치권의 대칭은 모른다.

 

    프레임에 갇혀서 프레임을 깨지 못하는 것이다. 대칭에 잡혀서 대칭 위의 또다른 대칭을 찾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프레임에 갇혀서 한 방향으로 몰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 무리를 이루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가다가 들쥐처럼 절벽에 떨어진다.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의 여러 현상도 그러하다.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맞다. 그러나 받아들이면 된다. 원자라는 프레임을 깨면 된다. 프레임의 우물에 갇혔다. 우물 안에서 우물 밖을 상상할 수 있다. 플라톤의 동굴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가 보는 것이 그림자라면?

 

    이게 아니라면? 데모크리토스가 원자개념을 떠올릴 때 원자에 기대했던 것은 장의 흔들림에 있다. 원자가 없으므로 장이 있다. 장은 둘의 교차점이고 거기에 수렴하는 방향성이 있다. 결정된 것이 없으므로 그것을 결정하는 것이 있다. 손가락이 아니라면 달을 보면 된다.

 

    손가락도 달도 아니라면 둘의 사이를 보면 된다. 그사이를 잇는 라인을 보면 된다. 프레임을 깨려는 의식적인 노력을 해야 한다. 집단 안에서 역할을 얻으려고 하므로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 하고 한 놈을 찍으려는 태도를 버려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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