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디넷코리아=이나리 기자)반도체 없이 살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반도체는 이제 사회와 산업의 생명수이자 권력입니다. 모든 것을 움직이고 연결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멈추고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1960~1970년대 노동집약적인 우리 경제를 첨단·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킨 반도체가 이제 기술 패권 경쟁과 4차 산업혁명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았습니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생태계 확장은 어느 때보다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지디넷코리아가 창간 22주년을 맞아 '반도체가 미래다' 시리즈를 3부에 걸쳐 연재합니다. 우리 수출 산업의 첨병을 넘어 경제 안보 자산으로 평가받는 한국 반도체 산업의 현주소를 면밀히 짚어보고, 무엇을 준비하고 미래를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 방향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1부: 세계는 반도체 전쟁
2부: 한국 반도체 신화는 계속된다
3부: 전문가에게 듣는다
사진=이미지투데이세계적으로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이 장기화되자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관련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이를 통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에서 직접 개발해 공급하겠다는 목표다. 또 모빌리티 산업이 자율주행차, 전기차로 급속한 전환기를 맞으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면서 이들 업체들의 대응 전략도 더욱 빨라지고 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국내 팹리스 업체들이 NXP, 인피니언,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르네사스 등 글로벌 차량용 반도체 기업들과 경쟁해 완성차 고객사를 확보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 기술을 가지고 있기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한다. 다만, 후발주자인 만큼 더 우수한 성능, 가격 경쟁력을 통해 고객사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 전기차·자율주행차로 차량용 반도체 폭풍 성장
차량용 반도체의 종류는 기능에 따라 전장 제어 역할을 하는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전력 반도체, 센서, 인포테인먼트에 적용되는 부품들로 나뉜다.
그동안 우리나라 팹리스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지 않았던 것은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이다. 초미세 공정을 활용한 첨단 시스템반도체와 달리 차량용 반도체는 설계·제조 난이도와 개발·생산 비용 대비 수익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일반적으로 모바일용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는 100달러를 웃돌며 10~20% 수준의 이윤이 발생하는 반면, 차량용 MCU는 10달러 미만의 저가 제품 중심으로 10% 미만의 이윤이 발생한다. 이런 이유로 종합 시스템반도체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포함한 여러 반도체를 다품종 대량생산 방식으로 공급해 왔다.
하지만 자율주행차, 전기차 시대로 전환되면서 차량용 반도체 수요가 급격이 확대되면서 수익성도 높아질 전망이다. 내연 기관차에는 반도체가 200~300개 들어갔다면, 앞으로 전기차에는 500~1000개,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이상이 탑재되기 때문에 앞으로 차량용 반도체 수요는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는 2020년 380억달러에서 2026년 676억달러까지 두배 이상의 성장이 전망된다.
차량용 반도체 공급 생태계(사진=카운터포인트)■ 국내 차량용 반도체 기술력 충분해...대량생산 가격 경쟁력 확보 관건
김형준 차세대지능형반도체사업단장은 "그동안 우리나라 팹리스 업체들이 차량용 반도체를 개발하지 않았던 이유는 수익성이 낮았기 때문이다"라며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가 차량용 반도체 개발에 나설 경우 선진 기업의 기술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다"고 밝혔다.
유재희 반도체공학회 부회장겸 홍익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국내 자율주행 칩 기술은 유럽 업체에 비해 아직은 부족하지만, 전장 디스플레이 사업은 경쟁력 확보가 가능하고, 소량 다품종 차량 반도체를 개발하는 기반 기술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유 교수는 또 "중요한 것은 국제 신뢰성 표준 인증과 국제 정책에 부합하도록 반도체를 개발하는 것"이라며 "자동차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에 차량용 반도체의 신뢰성 표준은 다른 산업보다 엄격하며 다수의 차량에 탑재되어 검증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차량용 반도체는 높은 수준의 기능·안전 신뢰성 확보를 위해 ASE-Q100, IATF 16949, ISO 26262 등 국제적 표준 인증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최근에는 탄소 배출량을 저감하기 위한 반도체 탄소발자국 인증 정책 등도 추가되는 추세다.
다만, 국내 팹리스 업체가 개발한 칩을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과 경쟁을 뚫고 완성차 업체에게 공급할 수 있을지 여부가 관건이다.
김형준 사업단장은 "후발주자는 설계를 잘해서 더 좋은 성능으로 반도체를 만들고, 가격도 낮춰서 공급해야 한다"라며 "이는 어느 시장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기존 시장에 후발주자로 들어가려면 두가지 중 하나는 부합되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어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확대됨에 따라 잘 만든 칩을 대량생산해서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 중요해 졌다"라며 "이제는 기술과 가격의 싸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제2 반도체 신화에 도전하는 팹리스·파운드리…정부까지 나섰다
인포테인먼트용 반도체 (사진=텔레칩스)국내 차량용 반도체 기업은 텔레칩스가 대표적이다. 텔레칩스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AP를 공급하고 있으며, 주요 고객사는 현대기아차다. 최근에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AI 반도체(NPU)를 개발했으며, 지난해 처음으로 MCU 시제품을 출시했다.
이 제품은 삼성전자 12인치 웨이퍼 28나노 공정으로 생산했으며, 현재 고객사와 협력을 진행 중이다.
주로 가전제품용 MCU를 공급하던 어보브반도체도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어보브는 지난해 말 차량용 모바일기기 급속충전 MCU를 출시 후, 고객사 확보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라이다용 MCU, 주차보조시스템(PAS)용 MCU 등도 개발해 협력사에 공급을 추진 중이다. 현재 어보브는 자동차 제어용 MCU를 개발하고 있다.
어보브, 차량용 모바일기기 급속충전 MCU (사진=어보브반도체)국내 1위 팹리스 업체 LX세미콘도 디스플레이구동칩(DDI) 중심 매출 구조에서 차량용 반도체로 영역 확대에 나섰다. LX세미콘은 올해 2분기 조직도에 차량용 반도체를 담당하는 오토 개발담당을 신설했고, 지난 6월에는 차량용 반도체 R&D 투자를 목적으로 텔레칩스 지분 10.9%를 취득하기도 했다. LX세미콘은 자동차 클러스터와 중앙디스플레이(CID)용 칩을 다임러에 공급하고 있으며, 자동차를 위한 실리콘카바이드(SiC) 전력 반도체 개발에도 한창이다.
완성차 업체인 현대자동차도 일부 차량용 반도체의 내재화를 추진 중이다. 현대차그룹은 반도체 수급과 내재화 전략을 위한 반도체전략 태스크포스(TF)를 올해 초 기획조정실 내에 신설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국내 팹리스 등과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지난 8월에는 차량용 반도체 스타트업 보스반도체에 투자한다고 밝혔다.
이 밖에 넥스트칩, 픽셀플러스, 동운아나텍, 라닉스 등의 팹리스와 반도체 설계자산(IP) 스타트업 오픈엣지 등이 차량용 반도체 개발을 하고 있다.
국내 파운드리도 차량용 반도체 공정을 개발하면서 팹리스의 생산을 뒷받침할 전망이다.
DB하이텍은 지난 8일 0.13㎛(마이크로미터, 1㎛=100만분의 1m) 칩 크기의 복합전압소자 120V 공정 플랫폼을 확보하며 자동차용 전력반도체 공정 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키파운드리(SK하이닉스 인수)도 지난 2월부터 자동차 반도체 등을 위한 고전압 BCD(바이폴라-CMOS-DMOS) 8~150V급 공정을 지원하고 있다.
경기 부천시에 있는 DB하이텍 본사(사진=DB하이텍)최근 정부까지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국내 대다수의 팹리스 업체들은 매출 1천억원 이하의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기에 장기간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절실하다.
산업통산자원부는 지난해 11월 미래차 핵심 반도체 기술개발을 위한 R&D에 2025년까지 5년간 총 957억원 투입을 결정했다. 더불어 국산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차량용 반도체 성능평가 인증지원 사업'에도 올해부터 2024년까지 250억원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팹리스 업체들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차량용 반도체 신뢰성 평가 장비를 5년 동안 40여종 구축할 계획이다.
또 지난 7월 산업부는 차량용 반도체 R&D에 2024년부터 5년간 5천억원 규모의 예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나리 기자(narilee@zd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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