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18일은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입니다. 한국 사회 전반에 남긴 김 전 대통령의 발자국은 명징합니다. 13주기를 맞아 정치권에서는 김 전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 국정관리 능력을 재평가해보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사회적 갈등이 그 어느 때보다 첨예한 정치 양극화 시대, 여야 정치권이 김대중의 유산에서 배울점을 찾자는 겁니다. <오마이뉴스>는 각 분야별로 다섯 차례에 걸쳐 김 전 대통령이 남긴 정치적·정책적 유산을 재조명하는 전문가 기고를 싣습니다. 그 세 번째는 김대중 연구자인 장신기 사회학 박사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현대사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역사적인 인물이며 다방면에 걸친 그의 정치적·역사적 유산은 여전히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3주년을 맞아 필자는 두 가지 이유에서 김대중과 문화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첫째, 문화의 중요성이 시간이 갈수록 강조되는 상황에서 한국 문화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김대중의 역사적 공헌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문화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의 문화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한류를 통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소프트파워 증진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김대중 재평가의 중요한 지점이며 김대중이 대표하는 민주·진보 세력의 역사적 가치에 대한 평가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둘째,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미래를 개척하는 거시적인 안목과 진취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김대중은 대통령선거에 승리한 직후부터 한국전쟁 이후 최고의 국란으로 불리운 IMF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이것만으로도 힘든 일이었음에도 집권 초기부터 문화와 지식정보화(IT) 두 분야를 21세기 대한민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 총력 지원했다.
김대중의 판단은 적중했다. 이 두 분야는 현재 한국경제 발전과 국격 상승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에 대한 김대중의 세 가지 안목
그러면 먼저 문화에 대한 김대중의 인식을 살펴보도록 하자. 필자는 이것을 세 가지 측면에서 정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문화정책의 핵심 기조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이다. 이것은 기존 보수 정부의 문화정책기조를 혁명적으로 전복시킨 것으로서 의미가 매우 크다. 위와 같은 김대중의 인식은 1966년 7월 국회 발언에서 최초로 확인된다.
"영화를 관료들이 검열할 것 같으면, 관료적인 사고방식, 낡은 사고방식 또는 비문화인 사고방식을 가지고서 이 예술을 억압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입니다. … 문화인들에게 자율적으로 맡겨야 한다, 이것이에요. … 정부가 뒷받침해 줄 일은 영화 금융에 대해서 돈이 없어서 좋은 영화를 못 만듭니다. … 정부가 일부를 저리 융자해주고, 이래 가지고 여기에서 대부를 해가지고 회수하고 이렇게 할 수 있도록 이런 것을 만들어주는 이런 세 가지 방향으로 이 영화를 육성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에요."
1966년부터 김대중은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그 이후에도 이와 같은 입장을 강조했던 김대중은 1992년 11월 "정부는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유명해진 이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오래 전부터 준비된 문화대통령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 2004년 1월 7일, 일본 대중문화 제4차 개방으로 일본음반이 일반에 판매 허용된 가운데 광화문 교보문고 음반매장에서 한 손님이 일본음반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 김대중은 문화 개방과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1995년 <신동아> 1월호 기고에서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우리는 문화의 개방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 우리는 과거에 천하를 지배하던 막강한 중국 문화를 받아들이고도 이를 창조적으로 극복해냈다. 서구 문화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왜 일본 문화만 두려워해야 하는가. … 우리는 문화에 대해서 좀 더 자신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나가야 한다. 세계 모든 문화에 대해서 개방을 하되,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나쁜 것은 버리면서 주체적으로 소화하고 내 것으로 발전시키는 자세를 강화해야 한다."
김대중은 한국의 문화 역량에 대해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문화 개방이 한국 문화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셋째, 김대중은 문화의 경제적 측면에 주목했다. 1995년 <신동아> 1월호 기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문화 산업을 육성해야 합니다. 21세기는 경제와 더불어 문화의 시대입니다. 문화 상품이 공업 제품 못지않게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 그리고 관광 산업, 예술 교류 등이 경제 발전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할 시대가 온 것입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과 만나는' 문화 산업의 개발에 힘써야 합니다."
이처럼 김대중은 문화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해서 문화를 경제성장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화에 대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던 김대중은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혁신적인 문화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김대중 대통령, 문화강국을 이루다
김대중 정부의 주요 문화정책은 세 가지 차원에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정책 기조의 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법·제도·예산 관련 내용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문화 발전을 국정의 핵심 과제로 설정했다. 1998년 12월에 발표한 1999년 5대 국정지표(국정 개혁의 강화, 경제 재건의 시작, 국민 화합의 실현, 지식 기반의 확충, 문화 관광의 진흥)에 '문화 관광의 진흥'을 포함시켰을 정도로 문화 발전을 국정 핵심 과제로 내세웠다. 그리고 이것은 각종 정책으로 뒷받침됐다.
1999년 2월에는 문화산업 진흥을 위한 법적·제도적 정비를 위해 문화헌법이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의미가 큰 '문화산업진흥기본법'이 제정됐다. 그리고 1999년 3월에는 문화산업진흥정책의 장기적 비전과 전략을 담은 '문화산업진흥 5개년 계획'을 수립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조는 예산정책에도 반영됐다.
김대중 정부가 처음으로 설계한 예산은 1999년도 예산이었는데 이때 문화 부분 관련 예산을 전년 대비 37.1% 인상했고 그 다음해에는 45%를 인상해서 2000년도에 정부 예산의 1.02%가 됐다. 특정 분야의 예산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처럼 김대중 대통령은 법·제도·예산 분야 지원을 통해서 문화산업 발전의 기초를 마련하고 문화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비전과 전략을 구체화했다.
▲ 2003년 12월 15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가 서울 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린 '제11회 춘사 나운규 영화예술제'에 참석, 수상한 영화인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날 공로상을 수상했다. ⓒ 연합뉴스
둘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 기조의 후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다. 이것을 영화 분야를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무엇보다 영화에 대한 통제가 심했고 그 영향이 컸기 때문이다. '칼질'이라고 불리운 검열제도가 1985년 상반기까지 있었고 이후 검열제도가 사전심의제, 상영등급보류 규정 등으로 변화했다. 하지만 검열의 잔재가 남아 있어서 문화예술인들의 창작의 자유는 보장되지 못했다. 이 문제가 김대중 정부 때 해결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는 영화인들의 숙원이었던 등급보류제를 폐지해서 창작의 자유를 보장했다.
셋째, 일본 대중문화 개방으로 대표되는 문화개방 정책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주변의 반대에도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문화의 저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김대중은 우리 민족이 중국 대륙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음에도 중국 문화에 동화되지 않고 독창적인 문화를 창조한 것을 근거로 문화 개방에 대한 진취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를 강조했다.
김대중은 문화개방이 우리 문화의 발전에 도움이 될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이와 같은 배경에서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했다.
이와 같은 김대중 정부의 문화정책은 성공했다. 먼저 김대중 대통령 재임 시기 문화 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몇 가지 통계자료를 통해서 보면 문화 산업의 시장 규모는 1999년 8조5959억 원에서 2003년 18조5112억 원으로 급증했다. 이중에서 영화분야를 보면 한국 영화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1998년 25.1%에서 2003년 53.6%로 급증했다. 또한 수출액의 경우 1998년 307만 달러에서 2003년 3252만 달러로 10배가량 증가했다. 이처럼 김대중 정부 시기에 한국의 문화산업은 크게 발전하여 문화강국이 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다.
한류의 개척자, 김대중
그뿐만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은 한류의 형성과 발전에 있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는 김대중 정부 외교의 성공과 관련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에 영향을 주는 주요 국가들(주변 4대 강국인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및 동남아 국가들과 유럽 여기에 더해서 북한)과 모두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냈다. 이때는 한국 외교 최고의 전성기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의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일본과의 외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이후 한일관계에 있어 가장 밝은 시기, 최고의 전성기를 이끌어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일본대중문화로 대표되는 문화개방·교류 정책을 주도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한국 문화가 일본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전체에 확산할 수 있었다. 그래서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문화의 세계화, 한류의 형성과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했다.
여기서 주목할 지점은 한류 형성 원인에 대한 김대중의 해석이다. 김대중은 한류를 낳은 문화적 저력이 한국의 자생적 민주화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했다. 김대중은 2005년 9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천 년 이상 조공을 바쳤던 중국이 이제 우리 문화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식민지배하던 일본 또한 한류 열풍 속에 휩싸여 있습니다. 동남아시아, 중동, 유럽, 미국 등 세계 도처에서 한류의 진출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한류의 발전은 오늘의 우리가 이룩한 민주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를 지배하던 중국과 일본이 이제 우리 문화를 수용하게 된 기적과 같은 사실은 한국의 민주주의가 자신의 희생 속에 국민이 쟁취한 자생적 민주주의라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자생적 민주주의만이 세계를 감동시키는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김대중은 한국이 자주적으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과정 속에서 형성된 진취적이고 창조적인 정신이 한류를 낳은 문화적 저력이 됐다고 봤다. 민주주의와 문화 발전의 상관관계에 대한 김대중의 깊은 통찰이며 매우 독창적인 해석이다.
최근에도 보면 한류를 낳은 문화강국 한국의 저력을 주로 문화산업 구조 및 문화예술인 양성 시스템 등에 초점을 맞춘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볼 때 한국의 자생적 민주화에 주목한 김대중의 해석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김대중은 한국 민주화투쟁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한류의 개척자라는 점에서 이 해석은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또한 김대중은 생전에 한류가 세계적 현상이 될 것임을 예언한 바 있다. 김대중이 생존해 있을 때만 해도 한류는 동아시아 지역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었는데 지금 확인할 수 있듯이 김대중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또한 김대중은 한류가 동북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평화와 협력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봤다. 소프트파워 한류의 국제정치적 역할과 기능에 주목한 것이다. 김대중은 동아시아공동체 담론과 외교를 주도했었는데 한류가 여기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는 교훈
▲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7년 11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권우성
문화 분야에 있어 김대중의 역사적인 공헌의 현재적 함의는 무엇일까? 첫째, 문화에 대한 김대중의 인식과 태도는 자유와 민주주의였다. 특히 김대중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동시에 강조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김대중은 문화발전이 자유와 민주주의의 심화와 정비례 관계에 있다고 인식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양대 가치이자 정체성의 근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의 병행·균등발전이 항상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분리, 자유와 민주주의의 불균등 발전은 정치위기와 사회혼란을 초래한 중요한 원인이었다. 김대중은 민주주의에 기초한 자유, 자유있는 민주주의를 추구한 정치가였으며 문화분야 업적을 통해서 이를 현실 속에서 구현했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김대중의 정치철학은 의미가 크다.
둘째, 국가적 위기 상황 속에서도 당면과제에 대한 대응뿐만 아니라 미래를 위한 준비도 병행하는 김대중의 국정운영 리더십은 역사적 귀감이다. 김대중은 국가부도위기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과 동시에 문화와 지식정보화 등 밝은 미래를 개척하기 위한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을 제시하고 국정 핵심과제로 추진했다. 이 결단으로 오늘날 한국은 문화강국, IT강국이 됐다.
정치는 예측된 과제에 대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예측되지 않은 여러 사안에 대처해야 할 때가 많다. 또한 그 정도가 심해서 위기상황도 발생하기 마련이다.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고 정치가는 그런 정치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삶을 향상시키기 위한 능력을 갖춰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은 역사적인 귀감이 될 수 있는 국정 운영 리더십을 보여줬다. 국가부도위기 상황 속에서도 문화강국으로 이끈 김대중의 리더십은 그것의 대표적인 경우다.
김대중의 정치철학, 국정운영리더십은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크게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된다. 정치가 밝은 미래를 위한 실천의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길 바란다.
유시민 "尹, 대통령 할 만한 사람 아닌데 뽑았다고 유권자들이 평가하는 듯" (0) | 2022.08.19 |
---|---|
맞는 말' 윤석열이 빠진 함정, 정치 외면하는 건 정치인이 아니다 (0) | 2022.08.19 |
'윤석열 정부 100일' 문재인 정부 흔적 지우기 속도..에너지전환·신북방·신남방 없앤다 (0) | 2022.08.17 |
"윤석열 대통령 100일, 역대급 무능정부" (0) | 2022.08.17 |
무능하고 부패한 정부는 공공토지를 팔아 치운다 (0) | 2022.08.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