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권력 충돌, 협치가 사라졌다
[최창렬 칼럼] 경제·국제 위기 속 집권세력의 과제
신구 권력 교체기에 나타나는 갈등 중 중요한 것은 주요 정책의 변화와 인사에 관련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전 정권의 정책 중 대북정책, 부동산 정책, 경제정책 기조, 조세정책 등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선거를 통해 집권한 세력은 국민들의 위임 과정을 통해 지난 정권의 정책을 수정할 수 있는 정당성을 부여받았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정책 변화는 이미 대선 공약에 포함되어 있으므로 절차적 측면에서 문제 될 것이 없다.
문제는 근소한 표차로 승리한 세력이 전임 정권의 정책을 수정할 때 야당과의 논의를 통해 기존 정책의 장단점을 고려하고, 급격한 정책 변화가 가져올 부작용 등에 대한 성찰과 토론을 전제로 하고 있느냐다.
윤석열 정부와 전임 정권의 정책에서의 철학적 지향과 기조는 보수와 진보의 이념 성향의 차이와 함께 분명한 차별성을 지닌다. 정당이론에서 볼 때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모두 보수정당이라고는 하지만 정책지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분명하다.
물론 대선 기간에 양당이 공약한 정책 중 부동산 공급을 통한 주택 시장의 안정을 도모한다든지, 재정정책을 통해 코로나19로 인한 피해 계층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등 정책적으로 공유할 부분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다가 사실상 폐기한 소득주도성장, 탈원전 정책,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임대차법 등 부작용이 끊이지 않았던 부분들은 새 정부 입장에서는 대폭 수정이 불가피하다.
이러한 정책의 수정은 국회의 입법 과정이 없으면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정부의 시행령을 통해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하지만 다수의석을 점하고 있는 야당의 반발 때문에 한계가 있고, 법률 개정을 수반하지 않고는 정책 수정의 범위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결국 여야의 협력과 대화를 통한 협치 없이는 집권세력은 정책의 주도권을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선거 전후로 여야가 입만 열면 외치던 '협치'라는 용어는 데이터 상에서도 거의 사라졌다. 총선거가 2년 가까이 남은 시기적 요인과 여야 정당 내부의 계파 갈등의 내외적 요인이 협치에 대한 관심을 멀게 한 측면이 있을 것이다.
다시 협치의 불을 지피지 않으면 여야의 극한 충돌은 도돌이표로 반복될 것이며 정치는 다시 당내 공천과 자리다툼으로 얼룩지는 구태와 퇴행의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다. 정권 초기임에도 불구하고 민생과 통합, 협치가 구호 차원에서조차 사라진 것은 지난 정권에 대한 수사와 공공기관장 인사를 둘러 싼 신구 권력의 충돌에 기인한다. 게다가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이 현안으로 떠오른 것도 원인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정권 출범 초기의 허니문 기간인데도 컨벤션 효과도 없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앞서는 이른바 '데드 크로스'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아프게 새길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 취임 40여일이 지났지만 새로운 기풍의 진작은 보이지 않고 전 정부와의 갈등이 더 부각되는 양상이다.
결국 집권세력이 풀어야 한다. 윤 대통령의 취임 후 행보 중 도어스테핑(Door Stepping)은 신선한 시도다. 그러나 최근 몇 개의 발언들이 도마 위에 오르면서 대통령의 언론과의 즉문즉답이 준비되지 않은 발언들이란 비판들이 나왔다. 대통령실 주변 인사에 검찰 출신들이 상대적으로 많이 포진한 것도 긍정적 평가에 인색한 이유일 것이다.
전임 정권 때 미진했던 사건 재수사나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 재조사로 야당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된다고 이를 애써 피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야당과의 협치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된다. 국회가 개점휴업 상태지만 대통령실의 정무수석의 역할도 보이지 않는다. 국회가 개원조차 못하는 현 상황은 여야 모두에게 책임이 크다. 그렇지만 결국 국정을 주도하고 이끌어 갈 주체는 집권당이며 집권세력이다.
고환율과 고금리, 고물가의 최악의 경제환경과 IMF 위기를 능가하는 복합위기, 신냉전의 암운이 짙게 드리우는 한반도 주변의 국제정치 등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여야는 당내 주도권 다툼으로 위기를 돌파할 리더십 부재 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럴 때 대통령을 비롯한 집권핵심들이 야당을 포용하고 새로운 협치의 모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전국단위의 큰 선거가 없는 이때가 여야 모두 정치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정책경쟁을 펼쳐 나갈 좋은 기회가 아니겠는가.
공천을 의식한 당권 경쟁과 당내 주도권 다툼이 여야 모두를 구태정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다. 위기란 위험과 기회라는 이중적 상황을 암시한다. 특히 국정 주도세력인 여당과 정부가 정책변화를 이끌고 연착륙시키기 위해서는 다수당인 야당과 대화하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귀담아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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