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오리무중이었던 새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이 발표됐다. 목표는 성장과 공정의 선순환이다. 이를 위한 4대 경제운용 기조에서 세 가지 보편적 가치가 눈에 띈다. 자유, 공정 그리고 연대. 많이 들어 본 좋은 말이다. 세부 내역을 들여다볼 겨를이 없는 국민들에게 위안을 줄 수 있을 단어들이다.
자유가 너무 추상적이라 어색하지만 이걸 빼면 불평등 완화와 사회통합을 강조하는 포용적 성장전략 혹은 지난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자세히 읽어보면 이런 수사에 반하는 내용이다. 자유를 외치지만 강자의 자유뿐이고, 공정을 말하지만 실질적 공정에 역행하며, 연대를 내세우지만 연대를 해치는 내용이다. 상식적이지도 않고 시대에 역행하며 겉과 속이 달라 기만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같은 그림을 그린 사람들이 경제를 보는 큰 틀은 이런 것으로 보인다. 있는 자들의 세금 부담을 낮추고 재벌과 대기업을 비롯한 경제적 강자들에 대한 감시와 감독의 채찍을 거두면 이들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그렇게 활력이 되살아나면 그 낙수효과 덕에 국민들이 행복하게 된다.
이런 논리를 만드는 현실 인식은 이렇다. 지금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성장잠재력이 하락하는 원인은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막는 규제, 경직적 노사관계 그리고 연공 중심 임금체계 등이다. 바로 이런 구조적 문제가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을 낮추고 노동생산성도 낮추는 근본 원인이라는 것이다.
본질을 비껴가도 한참 비껴간 인식이다. 노사관계와 임금체계가 아무리 바뀌어도 재벌과 대기업 집단의 경제력 집중, 하도급 관계에서 일어나는 불공정한 이익 배분과 기술 탈취가 지속되는 한, 고용의 대부분을 책임지는 중소기업의 생산성 향상을 기대하기 어렵다. 재벌을 대표하는 경제단체의 주장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공익을 대표한다는 정부가 이런 논리로 현실을 진단하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정부 역할은 공정한 시장 만들기
▲ 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기업성장센터에서 열린 새정부 경제정책방향 발표 회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체적으로 경제정책 기조에는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보인다. 우선 있는 자들에 대한 세금 경감과 재벌과 대기업을 비롯한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가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추론에 의존한다는 점이다. 막연하고 비현실적이며 합리적이지도 않다. 또한 낙수효과로 국민들이 행복해지기를 기대하지만 오히려 강자들만을 위한 힘의 질서를 강화하고 양극화와 불평등을 악화시키는 결과를 야기할 뿐이다.
두 번째 심각한 문제는 지금처럼 세계 경제의 미래 전망이 어둡고 불확실성이 큰 위기 국면에서 이런 낡고 허술한 틀만으로 대처하겠다는 매우 안이한 자세다.
"정부는 과도한 시장개입을 지양하고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지난 정부의 개혁과제를 파기하거나 되돌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장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불평등과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하여 삶의 질을 개선하는 정부의 역할을 "지양해야 할 과도한 정부의 시장개입"으로 보는 것은 심각한 오류다.
애덤 스미스부터 현대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경제학이 강조하는 정부 본연의 역할은 바로 공정한 시장이 작동할 수 있도록 시장 참여자의 반칙을 감시하고 불완전한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것이다. 한국의 시장 질서는 매우 불공정한 힘의 질서가 지배하고 양극화되어 있다. 오랫동안 고속 경제성장을 우선시했던 정부가 이런 본연의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과거에는 고도성장이 가능하니 견딜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부 본연의 역할이 꼭 필요한 발전단계에 접어들었다. 정상적이고 공정한 시장 질서를 확립하고 국민의 전반적 삶의 질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만 발전을 지속할 수 있다. 지난 정부 5년의 이러한 개혁과제들은 반드시 계승 발전시켜야 한다.
발표된 경제운용 방향은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 입법과 같은 건전재정 기조 확립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복지국가로 전환해야 하는 발전단계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부의 위기관리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으며 건전재정을 걱정할 만큼 국가부채의 문제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어서 시의적절한가 의문이다.
경제정책 방향에서 가장 큰 비중을 규제개혁에 두고 있다. 자세히 보면 "규제혁파"라는 용어가 말해주듯이 규제완화에 가깝다. 규제 공백을 메우거나 실효성을 강화하는 규제개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이처럼 규제완화로 "민간 중심의 역동적인 경제"를 만들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낙관적 상상에서 관료적 사고의 한계가 보인다.
"장기간 관행적으로 운영되어 온 규제"를 "시대흐름에 맞게 재정비"한다고 한다. 그러나 경제력 집중의 문제에서 감시 강화보다는 완화를, 그리고 공공사업 참여와 입찰에서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의 참여를 강조한다. 도시 용도지역제와 입지규제 개편은 무분별한 부동산 개발과 투기를 조장할 수 있다. 오히려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정책으로 보인다.
공정거래법의 부당지원과 사익편취 행위와 관련된 규제에 대한 지침개정, 경제법령상 형벌 규정 개정,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과 친족범위 조정, 벤처기업 복수의결권 제도 도입, 플랫폼 기업 자율규제안 등은 한국 자본주의의 고질적 병폐인 재벌의 사익편취와 경제적 강자의 불공정 행위의 공간을 넓힐 수 있다는 우려를 낳는다.
시대 역행하는 규제완화, 부자감세
▲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앞에서 참여연대 활동가들이 ‘윤석열 정부 경제정책방향 전면 수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권우성
공정한 선진 자본주의로 발전하려면 재벌과 대기업의 반칙을 더욱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기술 탈취에 징벌적인 손해배상을 하는 등 구체적인 처벌 방안은 나오지 않았다. 오히려 전속고발제도 운용의 엄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지침을 개정한다고 한다. 제도가 축소 운용될까 우려된다.
하도급 거래와 플랫폼 경제에서도 민간 주도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현존하는 힘의 불균형과 우월적 지위의 남용 문제를 시정하기 위한 적극적 제도 정비와 규제의 실효성을 높이는 개선안은 없다. 결국 공정거래의 정착보다는 구속력 없는 형식적 협약과 보여주기 행정에 머물 공산이 크다.
공공사업과 입찰에서 (대기업) 차별 규제 완화, 투자·상생협력촉진 과세특례제도의 폐지 등과 같이 중소기업의 기회와 수익 확대를 위한 최소한의 정책까지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것도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와 공정경제라는 정책방향에 역행한다.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고 재벌의 사익편취를 근절하며 불공정한 대중소기업 관계를 청산해야 창업과 중소기업 성장으로 활력있는 기업생태계가 만들 수 있다.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보유세 완화와 공정시장가액 비율 하향조정, 금융투자소득세 도입 유예, 주식양도소득세 폐지, 가업승계 특례의 대폭 확대(매출액 기준 1조 원까지 적용하고 사후관리 기간 축소) 등 대기업과 최상위 계층에 가장 큰 혜택을 주는 부자감세안이 눈에 띄는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감세의 합리적 근거도 찾아보기 힘들고 고물가-고금리 시대와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비한 대책으로도 볼 수 없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악화된 소득과 자산 불평등을 더욱 가중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정책이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부자증세를 강화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부의 대물림,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라는 시대적 요구에도 역행한다.
노동시장 개혁 방향은 노동시간, 노동자의 건강, 산업재해 등에 규제의 유연성을 키우고 노사 간 자율적 합의를 존중한다고 한다. 중대재해처벌법 등에서는 경영자 책임을 완화하는 쪽에 맞춰져 있다.
노동정책의 기본철학이 부재하고 마치 '규제혁파' 혹은 기업친화적 성장전략의 부속물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과 과로로 내몰지 않게 하고, 높은 산업재해의 위험에 노출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은 국민의 기본권과 관련된 최상위 과제이다. 경영활동 위축을 명분으로 타협해야 할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노동정책은 노동시장의 근간을 설계하는 것이고, 국가의 책임과 역할이 막중한 영역이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이 교육도 왜곡
이런 기본적 규제를 감당할 수 없는 기업을 살릴 것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기업만이 생존하도록 규제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길이 선진 경제로 발전을 지속하는 길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양극화된 노동시장에서는 극소수의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무한경쟁만 있을 뿐이다. 이런 시장에서 자신의 소질을 자유롭게 개발하여 창의역량을 극대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좋은 일자리를 잡을 수 있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최선이다. 그래서 대학교육과 초중등교육 모두 비정상적인 왜곡이 발생하게 된다.
교육개혁은 발표한 것처럼 대학 자율에 맡긴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임금, 복리후생, 산업안전 등에서 부문별 격차를 현격히 줄이고 복지와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그래야 다양한 부문에서 다수가 안심하고 자신의 역량을 계발할 동기를 갖게 된다.
노동시장 양극화 해소와 고용보험과 같은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방안에 대해 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다양한 부문에서 좋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공부문 일자리에 대한 기회를 비수도권, 고졸자 등에 확대하는 노력은 지속해야 한다. 녹색산업, 순환경제, 플랫폼 경제 등과 같이 새로 성장하는 산업에서 좋은 일자리가 만들어지도록 유도하는 정책적 고민도 필요하다.
탄소중립 사회로의 전환은 화석연료 기반 에너지에서 탄소 배출이 없는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향후 5년 동안 재생에너지 확산에 본격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향후 경제발전에 거대한 걸림돌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에 대해 경제정책 방향이 구체적이지 않은 것은 큰 문제다. 신재생에너지 확산과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정책 방향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투자와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 등이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아울러 탈탄소 전환의 의무와 책임을 특정 집단과 지역에 전가하지 않고 모든 국민이 나눠지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한 대책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이 역시 정부 발표에서 보이지 않는다. 탄소중립 사회 전환으로 인해 탄소집약도가 높은 부문의 노동시장이 받는 충격은 어마어마하다. 향후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지역을 중심으로 이런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할지에 대한 대책을 찾아야 한다.
위기 때 국가 역량 중요해져
사회복지 서비스의 민간 참여 확대도 크게 우려된다. 보편적 복지에 대한 국민의 권리와 국가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고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복지와 사회안전망이 미비하고 지역 간, 계층 간 불균형도 심각한 현실을 고려할 때 보편성과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영리를 우선시하는 민간 사업자들의 역할을 확대하면 부자들을 위한 맞춤형 서비스 시장은 키울 수 있겠지만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접근권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부동산 관련 정책방향은 부동산 관련 대출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 완화, 공급확대를 위한 인허가 관련 규제 완화 등이다. 빚내서 집 사라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보내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으로 빠른 금리인상이 확실시되는 시점, 그것도 과열된 부동산 자산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서려는 시점에서 이런 정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정책이다. 대규모 건설경기 부양 같은 단기 성과주의의 유혹인가? 서민 주거안정을 목표로 부동산 정책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위기에 처할수록 민간주도, 시장주도로 경제의 체질을 완전히 바꿔야 합니다." 행정부 수반이 경제정책 방향을 소개하면서 강조한 말이다. 전혀 의미가 통하지 않는 말이다. 전제와 결론의 연관성도 없고 논리적이지도 않으며 사실에 반한다.
위기에 처할수록 복지와 사회안전망 그리고 국가와 공공부문의 위기관리 역량의 중요성이 커진다. 코로나19 위기 때도 그랬고 외환위기와 세계금융위기 때도 그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의 체질을 시장주도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있는 자들의 경제적 기득권을 지키는 후진적 시장경제냐? 아니면 보편적 삶의 질을 높이는 민주적 시장경제냐? 전자의 현상유지는 안 된다.
▲ 주병기 /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소셜 코리아 편집·운영위원) ⓒ 주병기
* 필자 소개: 이 글을 쓴 주병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소셜 코리아>의 편집·운영위원과 서울대 경제연구소 분배정의연구센터 소장을 맡고 있습니다. 미 캔자스대와 고려대 경제학과에서 재직했으며 한국응용경제학회장, Journal of Institutional and Theoretical Economics 편집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연구 분야는 미시경제학, 재정학, 정치경제 등이고 분배적 정의, 불평등과 소득분배, 공정한 경제기제 등의 주제로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주요 저서로 <분배적 정의와 한국사회의 통합>, <정의로운 전환>, <정책의 시간>, <혁신의 시작> 등이 있습니다.
윤 대통령 나토 정상회의 행보... '미국 가까이, 중국 멀리' (0) | 2022.07.01 |
---|---|
신구권력 충돌, 협치가 사라졌다 (0) | 2022.06.25 |
김동연 경기지사직 인수위 '경기도 비상경제 대응체제' 가동 (0) | 2022.06.17 |
윤석열 후보 시절의 흑역사... 지금 이웃나라들은 초비상 (0) | 2022.06.07 |
윤석열 정부의 '급변침'…러시아를 '적'으로 돌리면 한반도는? (0) | 2022.06.06 |